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4화 (24/297)

# 24

현질 전사

-1권 24화

용대형은 정대식이 하는 말을 쉬이 믿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그러자 기철민이 앞으로 나서서 정대식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케르베로스라고? 언감생심...... 너 같은 놈은 케르베로스 발톱에 한 번 긁히기만 해도 죽어 나자빠질 거다."

그는 곧 정대식이 걸친 강화 알루미늄 갑옷을 손으로 툭툭 쳤다.

"이딴 방어구 좀 걸치니까 본인이 뭐라도 된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서라. 그런 똥배짱으로 여태까지 살아 있었던 게 용한 노릇이지! 가서 냉수 마시고 정신이나 차려!"

정대식은 그런 기철민의 손을 뿌리치고 내뱉었다.

"싫음 말라고. 너희 아니라도 같이 갈 딜러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애먼 딜러들 잡아 잡숫지 말고!"

끝까지 큰소릴 치는 기철민을 파티원인 신금주가 말렸다.

"잠깐만, 좀 가만히 있어 봐."

그때 이미 정대식은 간다는 말도 없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정대식을 따라붙으며 신금주가 질문을 던졌다.

"너도 기다려 봐. 혹시 네가 그 짐꾼 출신인 더블 포지션이야?"

"더블 포지션? 딜러에 버퍼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말이라면...... 그래, 맞아. 더블 포지션이지."

"그래. 소문을 들었어. 예전에 짐꾼이던 어떤 남자가 각성해 헌터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실력이 대단하더라는......."

신금주의 말에 용대형도 불현듯 기억이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석우원의 팀을 살려 줬다는 그 강화계 능력자 말이야?"

용대형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때 막공이던 석우원의 팀이 지하 5층에서 기어 나온 케르베로스에게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해치우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제법 유명했다.

당연히 그 일의 일등 공신인 정대식에 대한 소문도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정대식이 석우원과 어울려 줄곧 S23던전에 출몰했던데다가, 석우원이 거기서 모은 자금으로 정식 공격대를 창설한다고 설치는 바람에 더 소문이 났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여기 멤버가 새로 창설한 정공으로 간다고 그랬지? 설마 그 정공이 석우원이 만든다는 공격대? 그래서 용대형이 석우원을 알고 있는 거 아냐? ......만일 그렇다면 이 바닥도 참 좁아터졌구먼.'

속으로 그런 생각을 주워섬긴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지금은 네 종류의 포지션까지 커버가 가능해."

"뭐?"

입을 쩍 벌리는 그들에게 사실을 일렀다.

"탱커에 원딜, 버퍼, 힐러까지 네 가지 포지션을 다 맡을 수가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신금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 네가 더블 포지션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트리플이라는 말까지는 못 들었어. 버퍼까지야, 강화계 능력자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힐러까지 도맡는다는 거지? 그건 변화계 능력자여야 하는 거잖아?"

정대식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잘난 체를 해 보였다.

그러자 용대형이 어리둥절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럼 듀얼리스트라도 된다는 말이야?"

정대식이 미처 뭐라 하기도 전에 기철민이 꽥 소리를 쳤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다들 속지 마, 저번까지만 해도 저 자식, 완전 초보였다고. 이렇게 짧은 시일 내 변화계 능력까지 얻는다는 게 말이 돼?"

기철민은 순전히 사기라고 펄펄 뛰었다.

그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걸 보아하니, 같이 갈 마음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정대식은 자신의 능력이 어떻고 저떻고,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손을 내저었다.

"됐다, 됐어. 같이 가자는 말은 취소할게. 그냥 너흰 너희대로 사냥 가. 난 나대로 갈 테니까."

정대식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오히려 뒤에 남겨진 용대형과 그 무리가 아쉬움이 남아 보였다.

오로지 기철민만이 끝까지 기세등등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저 봐, 다 거짓말이니까 내빼는 것 좀 보라고!"

욱하는 마음에 사실을 보여 줄까 싶기도 했으나, 역시 귀찮았다.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냥터엘 가느니, 그냥 혼자 가는 게 낫겠다고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면서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즉시 구인 공고를 올렸다.

-'케르베로스 막공 구합니다. 탱커, 버퍼 완비. 서울역 대기 중.'

이번엔 힐러와 원딜 이야기는 뺐다.

어차피 그거까지 넣어 봤자 믿지도 않을뿐더러 괜히 힐러에 기대려는 어중이떠중이만 모인다 싶어서였다.

어차피 필요한 건 딜러뿐이다.

딜러는 널리고 널렸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쪽지가 우수수 날아들었다.

정대식은 개중에 적당한 사람을 골라 즉시 답장을 했다.

-지금 바로 가능합니까?

* * *

과연, 서울역에서 딜러를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대식은 근딜 넷에 원딜 셋이라는 다소 거창한 구성으로 서울역을 출발했다.

마음 같아서는 배당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섯 명만 모집하고 싶었으나, 상대는 케르베로스다.

다들 힐러도 없는 상태에서 꼴랑 여섯 명만으로 케르베로스를 사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로, 애써 일곱을 구해 머릿수를 여덟까지 채웠다.

자신이 트리플 포지션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때까지는, 파티원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인원수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일단 한 번만 같이 사냥을 하고 나면 정대식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 듀얼리스트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음 사냥에는 기꺼이 합류하려고 들 터.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모집해, 용대형이나 석우원처럼 안정적인 파티를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공격대는 그다음이다.

아직 공격대를 만들 건지 말 건지, 확정을 한 것도 아니고.

일단은 막공을 꾸려 보면서 천천히 생각해 볼 참이었다.

정대식과 그 일행이 탄 벤은 오래지 않아 S23던전 앞에 도착했다.

정대식은 던전에 당도하자마자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짐꾼을 구하고, 장비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등등.

그들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서 채비를 갖추어 곧장 지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 5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골라 지옥쥐, 지옥견, 지옥마견 등등, 잔챙이들을 처리해 나갔다.

다들 케르베로스 사냥이라는 말을 듣고 온 만큼, 실력이 제법 됐다.

더욱이 정대식의 버프를 받고 있다 보니, 지옥마견 정도는 어렵잖게 잡아낼 수 있었다.

"워후! 오늘 끗발이 짝짝 붙는데."

"한 번 쳤다 하면 그냥 죽네."

너 나 할 것 없이 감탄을 흘리는 도중에, 한 여자가 정대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당신, 강화계 능력자죠? 보통 강화계 능력자라고는 해도, 자기 보전하기 급급해서 버퍼 역할까지는 못하는데. 대단하네요! 마력량이 굉장한가 봐요?"

공격이 몇 배의 위력으로 들어 먹히다 보니, 모두가 신나 하는 눈치였다.

어렵잖게 지하 4층까지 진입해 지옥마수를 맞이하고 나서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단순한 강화를 먹여 주는 것만으로도 딜러들의 공격에 지옥마수가 "캥캥!"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짐꾼들이 사냥감을 처리할 동안 짧은 휴식을 가지고, 정대식을 포함한 여덟 사람은 마침내 지하 5층에 진입했다.

이미 와 본 적 있는 장소지만 자신이 파티를 도맡아서 오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처음 석우원과 케르베로스를 맞닥뜨렸을 땐 꼼짝없이 죽는다고만 여겼었는데.

어느새 제 발로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오다니.

불과 석 달 만에 이룬 성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면 기철민이 펄펄 뛴 것도 이해는 갔다.

자신이라 하더라도 몇 달 전엔 초보이던 녀석이, 갑자기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간다고 설치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반응이 지나친 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선택을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겨우 그 정도의 실력으로는 썰자팟을 돌면서 안전과 수입을 도모하는 게 옳았다.

정대식도 현질 능력이 없었더라면 기철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온다!"

나지막한 경고에 정대식은 생각을 그쳤다.

어둠이 뒤덮인 복도 저 끄트머리에서, 뜨거운 입김이 일렁거렸다.

"크르르르르......."

케르베로스가 나타난 것이다.

상대가 상대다 보니, 여태까지와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모두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케르베로스를 주시했다.

지옥마수까지는 처치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들이지만, 케르베로스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전부 정대식을 의식하고 서 있었다.

정대식이 파티장인 한편으로는, 탱커의 역할을 도맡고 있는 탓이었다.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셋씩이나 달려 있는 관계로, 어그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머리 하나라도 주의가 흐트러지면 옆에 붙어서 공격하는 근딜의 피해가 극심해진다.

그러다가 근딜이 전부 나가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다음부터는 아수라장이다.

탱커 한 명 만으로는 케르베로스를 쓰러트릴 방도가 없었다.

원딜은 탱커나 근딜과는 달리 방어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케르베로스가 지친 탱커를 뚫고 그쪽으로 뛰어들면 전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어그로를 얼마나 잘 끄느냐가 이 사냥의 성패를 결정할 터였다.

정대식은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핥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간다!"

근딜들이 신호를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고, 원딜들이 일제히 엄호 사격을 했다.

그들의 선두로 뛰어가며 정대식은 스킬을 썼다.

"적의 집중!"

천만 원을 주고 구입한 스킬이 제 위력을 발휘할 때다!

"아오오오오오오-----------------."

수십 마리 늑대들이 한꺼번에 우는 것 같은 하울링.

그 울음소리를 내뱉은 끝에 케르베로스가 여섯 개의 눈을 번쩍 떴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안광이 정확히 정대식을 향해 있었다.

활활 불타는 케르베로스와 눈이 마주치자 간담이 서늘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쾌재를 올렸다.

케르베로스가 이쪽을 쳐다보았다는 건, 어그로가 제대로 끌렸다는 뜻이었다.

'됐다!'

케르베로스는 양쪽으로 갈라져 옆구리 쪽으로 달라붙는 근딜들을 무시했다.

멀리서 날아드는 원딜들의 협공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정대식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강화!"

정대식은 강화 스킬을 자신에게 더했다.

또한 근딜과 원딜에게도 아낌없이 퍼부었다.

파아아아앗!

그의 마력이 빠져나가며 근딜들의 공격이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벙!

투다다다다당!

근딜들의 공격이 옆구리에 집중되며 케르베로스가 고통에 주춤했다.

"캐앵, 캥!"

그런 케르베로스의 세 개 머리 중 한가운데, 원딜들의 공격도 집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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