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현질 전사
-1권 11화
정대식의 질문에 곽이석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설명했다.
"돈을 목적으로 이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오가는 돈의 단위가 커서 대부분은 헌터가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제아무리 돈을 벌어 봤자 쓰는 게 더 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무엇보다 이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야. 아무리 돈이 대단하다 한들 목숨 값보다 귀할까? 그러니 몇몇 선택받은 상위 몇 퍼센트를 빼놓고는...... 아니, 실은 그들도 돈을 목적으로 헌터 일을 계속한다고 볼 순 없어."
정대식은 무심코 물었다.
"그럼 뭘 목적으로 헌터 일을 계속하는 거죠?"
그 질문에 곽이석이 몰라서 묻느냐는 듯 말했다.
"당연히 재미지!"
"......."
정대식은 말문이 막혔다.
그때 문유범이 그를 불렀고, 곽이석은 다음에 또 보자며 가 버렸다.
정대식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그러면서 오늘의 사냥을 돌이켜 봤다.
바로 코앞에서 지옥개의 아구창을 마주 봤던 일을 곱씹었다.
그러자 곽이석이 한 말이 매우 어처구니없었다.
'재미? 고작 재미로 그런 일을 한다고?'
정대식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정대식이 헌터 일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돈 때문이었다.
목표한 건물을 사들이고 부자가 되고 나면, 이런 위험한 일은 얼른 때려치울 작정이었다.
'문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그만큼 돈을 써야 한다는 거지만.......'
정대식은 배가 고픈 것을 느끼고 인근 기사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식당 안은 한산했다. 그래서 두루치기 한 판을 시켜 놓고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사업가 마인드로 생각하자. 그래, 돈이 돈을 번다고 하잖아? 이건 투자야!'
일정 수준까지 능력이 올라가기까지는 돈을 아낄 수가 없었다.
강해져야 몬스터를 때려잡아 돈을 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보다는 입장이 나았다.
일반 헌터들은 무조건 던전에서 몬스터를 때려잡아 가며 힘들게 강해진다. 그에 반해 현질은 얼마나 편리하고 안전한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말했다.
"......오늘 막공을 뛰어 보니까 강화 능력이 여러모로 대접을 받더라고. 이걸 더 좋게 만들 순 없어?"
정대식의 질문에 엔트로피가 답했다.
<가능합니다. 기술 항목을 확인하십시오.>
정대식은 곧장 기술 탭을 열어 강화 업그레이드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입을 쩍 벌렸다. 입을 쩍 벌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턱이 빠질 뻔했다.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비싸? 가격이 완전 미쳤군!"
강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드는 금액은 억이었다.
그것도 그냥 억이 아니다.
10억이었다.
10억!
'이건 집 한 채 값이잖아? 이 돈이 있으면 이딴 능력을 살 게 아니라 아파트를 사겠다!'
정대식은 빠진 턱을 간신히 추슬렀다.
'뭐, 얼마나 좋기에 가격이 이렇게 처 비싸...... 쳇, 됐어. 이건 일단 보류하고.'
그리고 다른 구매 종목을 살펴보았다.
'으음, 원래 마력을 20까지 높여 두려고 했었으니까 포인트를 살까?'
현재 정대식의 마력은 18이었다.
그걸 19까지 올리는 데 드는 돈은 900만 원이었다.
20까지 올리려면 1,000만 원이 드니까 총 1,900만 원이 필요한 셈이었다.
'망할, 비싸!'
마력 수치가 올라갈수록 똑같은 1포인트라도 계속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슨 다단계에 걸려들기라도 한 것처럼 억울한 기분마저 찾아들었다. 그 바람에 괜히 애꿎은 엔트로피를 노려보며 정대식은 이를 득득 갈았다.
'제기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자금이 1,500은 있잖아. 이걸 어떡해야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를 궁리해야 해.'
능력치는 마력을 몇 번 사 봤더니 아무래도 스킬에 흥미가 갔다.
저번에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살 수 있는 스킬의 종류가 조금쯤 늘어났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지나치게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신속' 정도라면 살 만한 것 같았다.
가격도 딱 1,000만 원이었다.
'강화 스킬이 있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방어 능력이 없어. 어디까지나 안전제일을 추구하는 내 입장에서는 불안한 노릇이지. 그런 의미에서 신속 스킬을 사 두면 제법 쓸모가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뭐니 뭐니 해도 위기 상황에서 최고의 계책은 36계 아니겠어?'
"두루치기 나왔습니다!"
고민하는 정대식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루치기가 등장했다.
매콤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게 참 맛있어 보였다.
그러나 정대식은 젓가락은 들 생각도 않고 고민에 빠졌다.
'그래, 사자! 신속을 사는 거야! ......아냐, 잠깐만. 지금 내 상황에서 신속 스킬을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엄밀히 말해 정대식의 강화 스킬이 쓸 만해진 건 마력 수치를 몇 포인트나마 높여 둔 덕분이었다.
그러니 신속 스킬도 그냥 스킬만 가지고서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대식은 자신의 짐작을 확인하려 엔트로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봐, 신속 스킬 말인데."
<말씀하십시오.>
"신속 스킬이 쓸모가 있으려면 강화 스킬과 마찬가지로 마력 같은 게 영향을 주는 거지?"
<그렇습니다. 신속 스킬은 체력과 민첩 수치가 높을수록 그 위력이 좋아집니다.>
"체력하고 민첩이라고? 각각 뭐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 건데?"
<체력 수치가 높으면 신속 스킬의 유지 시간이 길어집니다. 민첩 수치가 높으면 신속 스킬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끄응......."
정대식은 두루치기가 식어 가는 것도 모르고 고민에 빠졌다.
'신속 스킬이 있어 봤자 체력이나 민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별 볼 일 없다는 거잖아. 사실 체력이 좋으면 굳이 신속 스킬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오래 달리기가 가능할 거 아냐. 달려서 도망치는 데 별다른 재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럼 스킬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상태 항목을 개선하는 것이...... 으으으.......'
정대식은 아예 머리를 싸맸다.
'으아아아! 모르겠다!'
무려 1,000만 원이다.
1,000만 원!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겨우 하루 만에 벌어들인 돈이라 해도 정대식에게는 여전히 큰돈이었다.
그걸 앉은 자리에서 쓰려니 생각이 이만저만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이건 어디까지나 투자다! 당장 갚지 않으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이 아니라고. 충분히 고민해 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당장 던전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잖아? 적어도 다음 사냥 때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그제야 비로소 눈앞의 두루치기에 관심이 갔다.
뒤늦게 배고픔을 자각하고 정대식은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Chapter 4. 케르베로스
결국 정대식은 신속 스킬 구입을 포기했다.
대신 체력을 올리기로 맘먹었다.
"좋았어, 체력 1포인트 구입!"
그러나 호기롭게 외쳤던 그는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엉? 어째서 체력을 1포인트 올리는 데 돈이 900만 원이나 들어가는 거야?"
수치가 높아질수록 포인트의 금액이 높아진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건 마력이고, 이건 체력이 아닌가.
마력과 체력은 엄연히 별개의 종목일진대, 어찌하여 돈이 800만 원이나 더 필요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천연덕스럽게, 그러나 정대식의 귀에는 몹시 뻔뻔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태의 종류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마력을 사든, 체력을 사든, 민첩을 사든 상관없이 포인트 구입은 무조건 돈이 올라간다 이거야?"
<그렇습니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는 말을 듣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욕할 기분도 안 났지만 입에서는 자연스레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런 슈발......."
그럼 앞으로 뭘 사든지 간에 포인트의 금액은 점점 오른다는 말이다.
그러자 깔끔하게 신속 스킬을 포기하고 체력을 사려고 결정했던 마음이 흔들렸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스킬을 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아냐, 어차피 체력이 없으면 신속 스킬을 사 봤자 유지 시간이 조루일 테니 쭉정이일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체력을 구입하는 게 맞는 일일까? 민첩을 올려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으으아아악!"
정대식은 머리를 싸매고 지저분한 이부자리를 뒹굴었다.
"죽겠네!"
또다시 약 반나절 가까이를 고민한 끝에 정대식은 처음 결정했던 대로 체력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뭘 하든지 간에 체력이 가장 밑바탕이 되어 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일단 기운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진득하게 할 수 있지 않겠어? 공격력이든 방어력이든 체력이 영향을 끼칠 테니까, 역시 체력을 구입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결심을 해놓고도 체력을 1포인트 올리는 데 손이 덜덜 떨렸다.
'이걸로 900만 원을 써 버렸다. 남은 건 600만 원가량.'
틀림없이 각성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통장에는 약 6,000만 원가량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수중에 남은 건 600만 원뿐이었다.
헌터가 되었으면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어째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여관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탓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남은 600만 원을 쉽사리 쓸 수 없었다.
그걸 남겨 놓은 채로 정대식은 다음 일거리를 찾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사냥, 존나게 사냥하는 방법뿐이다!'
그는 곧장 막공 게시판을 찾았다.
어디에 참가를 해 볼까 탐색하다가, 도중에 생각을 바꿨다.
'일전에 지옥개를 잡으며 느낀 거지만 원딜과 버퍼 두 가지 포지션을 한꺼번에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아. 게다가 내 실력은 7등급 정도잖아? 내가 일일이 자리를 찾을 필요가 없지.'
그는 게시판을 바꿨다.
따지자면 구인 게시판이 아닌 구직 게시판으로 들어갔다고 해야 하나?
던전별로 분류해 파티에 참가할 사람을 구하는 곳이 아닌, 본인의 스펙을 올려서 파티를 구하는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콧대 높은 힐러, 버퍼, 혹은 특수 직종.......
소환사나 정령사 같은 직종이 글을 올리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정대식은 게시글을 작성했다.
-'공방 버프 되는 7등급 원딜, 레이드 구함'
별다른 내용도 없이 게시글을 남기기가 무섭게 쪽지가 쏟아졌다.
쪽지가 어찌나 많이 오는지 주체가 안 될 지경이었다.
"이런!"
정대식은 서둘러 자신이 올린 글을 지우고, 도착한 쪽지를 찬찬히 훑어봤다.
적당히 참가할 만한 파티를 고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 해 봤자 강화 스킬 달랑 하나다. 그것뿐인데도 7등급에 가까운 실력을 갖추게 된데다 두 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소화하는 게 가능해졌어.'
아직 정대식은 그 어떤 스킬도 구입하지 않았다.
그가 돈을 써서 구입한 거라고 해 봤자 몇 점의 포인트에 불과하다. 상점도 겨우 한 번을 업그레이드했을 뿐이다.
문득 그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까 어렴풋이 의문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능력치와 기술을 구입하면,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거지?'
찰나와 같은 생각이 스쳐 정대식은 퍼뜩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 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단시간에 뽑아내야 해. 앞으로 먹고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고 나면 재빨리 손을 터는 거야. 그 정도가 되는 데는 그리 많은 능력이 필요치도 않을 거라고.'
그는 멀리 뻗어 나가려는 상상을 무참히 접어 버리고 다음 사냥을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