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현질 전사
-1권 7화
대부분은 정대식과 같이 썰자팟을 위해 모였다.
엇비슷한 수준의 딜러끼리 적게는 네 명에서부터 많게는 열몇 명에 이르기까지.
대충 머릿수를 채워 사냥하기 쉬운 몬스터를 목적으로 던전에 진입했다.
수입도 적고 별 경험이 되지는 않아도, 위험 부담을 최소로 해서 안전하게 사냥하는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마냥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딜러끼리 있으면 어그로 관리가 안 되는 관계로, 조금이라도 불의의 상황이 닥치면 아수라장이 되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이런 썰자팟에 모이는 헌터들은 거의가 정대식과 마찬가지로 초보거나, 생계형이거나, 실력이 형편없었다.
손발이 안 맞아 자칫 잘못하다간 같은 헌터의 공격에 맞아 죽거나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런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하고, 정대식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여차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끼는 거다! 뭐니 뭐니 해도 난 내 목숨이 중요하니까. 어설프게 남을 돕거나 나서지 말고 최대한 몸을 사려야지.'
그때 휴대폰 메시지가 띠링, 울렸다.
-어디예요?
다름 아닌 썰자팟을 모집한다던 사람이었다.
정대식은 자신의 위치를 알렸고, 곧 누군가 다가오는 광경을 봤다.
그는 덩치가 산처럼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였다.
무슨 산적 같아 보였는데 수염만 깎으면 나이가 젊을 것 같았다.
"혹시, 크와트 잡으러 가는 썰자팟에......?"
"예에."
그는 정대식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곧장 반말을 썼다.
"초보라 그랬지?"
"......그래."
초보긴 했지만 그게 죄도 아니고.
정대식도 꿀릴 게 없다 싶어 반말을 썼다.
그런데 원래 말버릇이 그런가 보았다.
상대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마지막이야. 나머지 사람들은 다 기다리고 있어. 짐꾼이랑 트럭도 준비됐고. 출발만 하면 돼."
"좋아."
"총 인원은 여섯 명. 나를 포함한 근딜 셋에, 당신까지 원딜이 셋이야. 수입은 공평하게 나누되, 내가 파티장이니까 10%를 더 가져갈 거야. 기타 부대 비용은 총수입에서 제할 거고. 불만 없지?"
정대식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가 나머지 팀원을 불렀다.
보아하니 파티장과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아는 사이 같았다.
아마도 몇 번 모여서 사냥을 같이 해 본 듯 분위기가 익숙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티장이 파티원을 소개하며 그 사실을 밝혔다.
"난 용대형이야. 근딜이고 곤봉을 주 무기로 쓰지. 다른 근딜 둘은 김준석, 기철민이야. 둘 다 검사고, 저기 원딜 둘은 강민혁과 신금주. 강민혁은 궁사, 신금주는 마법사."
다들 만나서 반갑다고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용대형이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몇 번 만나서 같이 사냥해 본 경험이 있어. 원래는 원딜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펑크를 내서. 급하게 사람을 구한 거야."
그는 곧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우린 뭐, 친목질을 하면서 괜한 사람 따돌리고 그러진 않아. 어디까지나 목적은 사냥이니까. 거기에 충실할 거라고. 당신도 초보잖아? 그럼 차라리 우리 같은 파티에 끼는 게 나아. 초보는 딴 데서 잘 끼워 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합지졸들 모여 있는데 가 봤자 별 경험도 안 되고 고생만 해. 짐꾼 생활 해 봤다니까 잘 알겠지?"
그 말에 신금주가 신기하다는 듯 뇌까렸다.
"짐꾼이다가 각성을 했다고?"
덩달아 김준석도 중얼거렸다.
"아직 초보라면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다는 말이잖아? 감회가 새롭겠네."
정대식은 별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용대형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 정대식은 헌터와 사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친목 파티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아무래도 같이 합을 맞춰 본 사람들은 공격 순서가 매끄럽다.
괜한 힘을 낭비하거나 애먼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적다.
정대식에게 기대하는 바도 적을 테니, 사냥하기가 보다 수월할 테다.
그런데 갑자기 파티원 중 한 사람이 용대형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검사라는 기철민이었다.
"잠깐만, 초보라고? 난 그런 말 못 들었는데."
그러자 용대형이 무슨 문제 있느냔 식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급하게 구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고작 크와트 잡으러 가는 건데 별 상관없잖아? 게다가 말했다시피 짐꾼 일 해 봤다니까 아주 초보라 보기도 어려워."
그 말에 기철민이 코웃음을 쳤다.
"크와트는 몬스터 아냐? 그리고 짐꾼은 어디까지나 짐꾼이지. 헌터랑 무슨 상관이라고? 저런 초보는 데려가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돼.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지."
"야, 사람 면전에 두고...... 적당히 해라."
"몬스터 잡는다고 설치다가 오히려 근딜인 우리를 공격하면 어떡해? 그런 경우 한두 번 봤어? 그냥 빼고 가! 원딜이라면 민혁이랑 금주 둘 만으로도 충분해."
"금주는 우리 방어해 주는 것만으로도 벅차. 그럼 원딜이 민혁이 하나란 말인데 크와트는 수가 많아서 한 명으론 안 돼."
"크와트가 뭐 얼마나 위험하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크와트도 몬스터라며? 그럼 대비가 충분해야 하는 거 아냐?"
용대형은 눈을 부라리고 으름장을 놨다.
"내가 너희랑 같은 원딜이긴 해도, 이 파티장은 엄연히 나야! 내 판단에 따른 거니까 불만 표시는 여기까지야. 계속 투덜댈 거면 네가 빠져!"
용대형은 파티장으로서 나름대로의 권위가 있어 보였다.
기철민이 곧장 수그러들었고 다른 파티원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용대형이 트럭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그럼 진입한다."
* * *
용대형이 트럭을 몰고, 비어 있는 짐칸에 짐꾼들과 헌터들이 나눠 탔다.
기철민의 눈총이 따가운 가운데, 트럭은 차가 두 대 지나칠 만큼 널찍한 터널을 따라 달렸다.
오래 가지 않아 어떤 공터가 나왔고, 그곳엔 몇 대인가의 지프차나 트럭이 서 있었다.
거기에서 짐꾼들이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 공터에는 각 구역으로 이어진 또 다른 통로가 여러 개 있었다.
차가 다닐 만큼 넓진 않지만 사람 두엇이 걷기에는 충분한 넓이였다.
그 앞에도 친절하게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어떤 몬스터가 주로 출몰하는지 표시되어 있었고, 간혹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나 터널에서 나오는 특정 아이템을 구입하려는 브로커의 명함이 붙어 있었다.
크와트가 출몰하는 통로 앞에서, 파티원들은 간단히 장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짐꾼들을 공터에 남겨 둔 채, 용대형을 앞세워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용대형의 뒤로 강민혁과 김준석이 섰고, 제일 가운데엔 신금주가, 그리고 정대식이 섰다.
마지막으로 기철민이 후방을 지키게 되었는데, 그가 정대식이 든 자동 소총을 보고 경고했다.
"그거, 나한테 겨누기만 해 봐. 뱃가죽에다 구멍을 뚫어 줄 테니까."
초보에 불과한 정대식이 자동 소총을 갖고 있는 게 적잖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초보의 입장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초보 헌터들이 당하는 설움은 짐꾼 못지않았다.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로 취급을 받는데다가 수익을 나누어 가는 탓에 더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입을 다물었다.
괜히 말대꾸를 했다가, 악감정이라도 사면 어떡한단 말인가?
전투 상황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으므로 치미는 짜증을 집어 삼켰다.
'쳇!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헌터가 되었어도 신세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네.'
터널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곧 다소 복잡한 구조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마법사인 신금주가 빛의 공을 공중에 띄웠다.
"라이트 볼!"
주먹만 한 불빛이 허공에 둥둥 떠가며 주위를 밝혔다.
제법 너른 공간에 당도해, 용대형이 곧 무언가를 꺼냈다.
"크와트를 불러 모을 테니까, 준비해."
그는 크와트의 후각을 자극하는 향을 피웠다.
인간에게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 향이었다.
무향의 냄새가 솔솔, 사방으로 번져 가자 곧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크와트가 나타난 것이다!
"크르르르르......."
"크으으으......."
사나운 울음소리에 정대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크와트라면 짐꾼 생활을 하며 몇 번이나 본 몬스터였다.
반쯤 살아 있는 걸 본 적도 있었다.
그땐 하나도 무섭지 않더니, 지금은 오금이 달달 떨릴 지경이었다.
그는 딱딱 부딪치려 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자 크와트가 하나둘씩,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크와트는 대략 1미터 가량의 대형 견만 한 몬스터였다.
외양은 곤충과 비슷한데, 개미와 사마귀를 반반 섞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반들반들하고 푸르스름한 외골격에 사마귀의 앞발 같은 무기가 있었고, 개미처럼 둥근 얼굴에다가 날카로운 턱을 갖고 있었다.
놈들은 무리 생활을 하는 관계로, 어둠 속에서부터 네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온다!"
용대형이 짧고 강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신금주가 곧장 영창을 했다.
"슬로우!"
마법의 영향으로 이쪽으로 달려들던 크와트의 속도가 조금쯤 늦춰졌다.
아주 약간, 머뭇거리는 정도였으나 극도로 긴장하고 있던 정대식에게는 거의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 틈을 타 강민혁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슈슈슛!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화살이 날아가고, 그제야 정대식은 정신을 차렸다.
'아차, 나도 원딜이었지! 공격해야 해!'
그는 아까부터 움켜쥐고 있던 자동 소총을 꼬나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 공격을 가했다.
투다다다다!
마력이 쑥 빨려 나가며 마력탄이 용대형에게로 덤벼들던 크와트에게 직격했다.
크와트가 "캐앵!"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숨이 끊어져 죽지는 않았다.
공격력이 부족한지 용대형이 나서서 확실히 끝장을 내야 했다.
그래도 용대형은 정대식을 격려하려는 듯, 엄지를 척 하니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재차 모여드는 크와트에게 공격을 가했다.
정대식도 다시금 자동 소총을 휘갈겼다.
투다다다다다다!
그러나 금세 기력이 달리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젠장!'
절감기를 달았어도 자동 소총이 잡아먹는 마력이 만만찮았다.
'돈을 500이나 줬는데...... 싸구려 아냐?'
공격력이 적은 탓에 쉴 새 없이 공격하려니 더 그랬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있어 마력이 바닥나 버릴 것 같았다. 그럼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관계로, 마음이 초조했다. 그때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맞다, 나 기술 있잖아? 강화!'
강화계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
그거라도 사용해 봐야겠다 싶어서 정대식은 자동 소총에다 강화를 부여했다.
"강화."
그러자 자동 소총이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동시에 자동 소총 위로 웬 숫자가 반짝이다 사라졌다.
다른 사람은 그걸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정대식도 순간적으로만 볼 수가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저 숫자는 강화 스킬로 공격력이 100% 증가하고 크리티컬 확률이 50% 올라간다는 뜻인 거 같은데?'
그 짐작은 들어맞았다.
갑자기 정대식이 내쏘는 마력탄의 빛이 좀 더 선명해졌다.
무엇보다 마력탄에 맞은 크와트가 단번에 죽어서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륵!"
"키르르르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쓰러져 근딜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당황해 정대식 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갑자기 다 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