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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4화 (4/297)

# 4

현질 전사

-1권 4화

현재 정대식이 구입할 수 있는 스킬은 총 네 가지였다.

강력권, 신속, 강철 신체, 오감 강화라는 거였다.

'강력권'은 힘을 일시적으로 증가시킨 주먹질이었다.

근력이 순간적으로나마 세 배로 향상되고 30% 확률로 크리티컬이 터져 열 배의 공격력을 발했다.

단순히 힘만 강화한 거라 무식해 보이지만 몬스터와의 전투 상황에 있어서는 가장 쓸모가 있어 보였다.

다음의 '신속'은 말 그대로 몸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 주는 기술이었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가거나 뒤로 빠지거나 하는 움직임이 가능했다.

스킬이 발동될 경우 3초 간 민첩이 세 배가 강화되었다.

이 또한 별거 없어도 위기 상황에서 부상이나 치명상을 방지할 수 있을 터라 유용해 보였다.

'강철 신체'는 몸의 내구력을 높여 주는 스킬이었다.

강력권이나 신속이 시동어를 외쳐야 하는 액티브 스킬이라면, 강철 신체는 패시브 스킬로 적의 공격력을 10% 경감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방어력이 증가하는 셈이라고 해야 하나?

'오감 강화'는 촉각,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을 1분 간 강화시켜 주는 능력이었다.

이건 탐색을 할 때 위험 상황을 미리 감지하거나 적의 움직임을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엔트로피, 내가 갖고 있는 강화 스킬이랑 이런 스킬들이 다른 점이 뭐야?"

기술 목록을 살피던 정대식의 질문에 엔트로피는 간단명료한 답을 들려주었다.

<강화 스킬이 전반적인 상태에 작용한다면, 이러한 기술들은 특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이 스킬들과 내 강화 스킬을 중첩해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면 더 좋은 스킬들이 나오는 거고?"

<그렇습니다.>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것 같다고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가격이었다.

제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구입해 쓰지 못할 정도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좋은 기술을 구경이라도 하기 위해선 추가 금액을 내고 상점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것도 돈이고, 저것도 돈이고, 다 돈이었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군.'

정대식은 신의 공간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내심 혀를 찼다.

'누가 탐욕의 신 아니랄까 봐.'

정대식이 살 수 있는 기술의 가격은 하나 당 2천만 원.

능력치보다는 저렴하다 해도 그 역시 비쌌다.

'기술이라고 해 봤자,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손에 남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가 보유한 기술 창에 목록이 하나 늘어나는 것뿐인데, 돈을 몇천만 원씩 써야 하다니.'

솔직히 간담이 떨려 선뜻 결제가 안 됐다.

'아, 아냐. 살 수 있는 게 있다고 다짜고짜 구입부터 할 게 아니다. 신중해야지.'

갖고 있는 자금이 얼마 안 되는 고로, 아무렇게나 현질을 할 순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해야 할 일의 목적에 맞춰 돈을 써야 했다.

정대식은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해 까끌까끌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일단 각성자가 되어 초능력을 얻었으니, 헌터 일을 하기는 해야 한다. 비록 그 능력이 현질이라고 하니까 황당한 노릇이지만, 헌터가 되는 건 바라마지 않던 일이야.'

정대식이 헌터를 부러워하며 각성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돈!

오로지 돈이다.

'헌터가 되어 던전에서 사냥을 하면 짐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만질 수가 있어. 몇백만 원쯤은 슬라임만 때려잡아도 된다 이거야!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던전으로 들어갔다간 비명횡사하기 딱 좋아. 기본적으로는 날 지킬 무기를 갖추어야 해. 비록 싸구려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정대식은 그간 짐꾼으로 헌터들을 따라다니며 주워들었던 지식을 총동원했다.

'그러려면 무기를 사야 한다는 말인데. 이것도 아무거나 살 순 없어. 암만 싸구려라 하더라도 각성자들이 쓰는 무구는 종류도 많고 비싸니까.'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점이 필요했다.

정대식은 그 기준을 포지션이라고 판단했다.

'나 같은 초짜가 던전에 혼자서 들어가긴 무리야. 누구하고라도 팀을 이뤄 가야지. 그러려면 나에게 맞는 포지션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거기에 적합한 무기를 사야 해.'

정대식은 자신의 계열이 강화계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강화계에게 적합한 포지션이 뭘까?'

정대식은 그가 줄곧 따라다녔던 헌터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헌터들이 몬스터 사냥을 위해 꾸리는 팀을 흔히 공격대라고 불렀다.

공격대 안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나뉘는데, 그게 포지션이다.

'강화계, 강화계면 탱커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는 한데.'

탱커는 팀원, 혹은 파티원이라고도 불리는 공격대원들 대신에 몬스터의 공격을 맞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방어와 체력이 중요해서 강화계가 적합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정대식은 곧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탱커는 무리야. 탱커는 정신계 능력이 함께 필요하다고. 몬스터를 자신에게 고정시켜 딜러에게 시간을 벌어 줘야 하니까.'

몬스터의 이목을 끄는 재주는 탱커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그걸 속어로 '어그로를 끈다'라고 한다.

몬스터는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해도 엄연히 지적 생명체다.

즉,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적들을 놔두고 굳이 공격이 잘 통하지도 않는 탱커에게 주력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탱커는 어떤 식으로든 몬스터의 주의를 끄는 재주가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강화계 능력 하나로 탱커 역할을 하기는 무리였다.

'치유 능력이나 버퍼 능력이 있어야 하는 보조계열 포지션은 당연히 무리고.'

힐러, 버퍼 등으로 분류되는 보조계 포지션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므로 전방에 나가서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

덕분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취약한 자리이기도 했다.

전투 능력이 별로 없어 상황이 악화되면 생명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는 관계로 영 마뜩찮았다.

물론, 강화계인 정대식과는 상관없는 위치이기도 했다.

'그나마 해당되는 게 딜러로군.'

이른바 공격수인 딜러는 근거리 공격수 '근딜'과, 원거리 공격수 '원딜'로 나뉜다.

'강화 능력 하나로 몬스터와 바로 붙어서 싸워야 하는 근딜은 당연히 무리지.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원딜. 원거리 딜러라.......'

정대식은 근심에 잠겼다.

그동안 던전을 돌아다니며 관찰해 온 바.

딜러는 탱커나 힐러, 버퍼에 비해서 상당히 흔했다.

아무래도 몬스터와 치고받는 역할인지라 몸으로 때우는 입장인 고로, 특수한 능력이 필요치 않은 탓일 테다.

그래서 던전에서는 짐꾼 다음으로 천한 취급을 받았다.

짐꾼이 천민이라면, 딜러는 흔해 빠진 평민이랄까?

그러한 딜러에서도 급이 나뉘는데, 그나마 근딜의 처지가 조금이나마 나았다.

근딜은 전방으로 나아가 몬스터와 직접 상대한다는 용맹을 인정받는다.

반면 원딜은 멀찍이서 근딜을 거드는 역할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딜러 주제에 안전한 곳에서 몸을 사린다고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 바람에 원딜은 공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근딜도 어려운 판국에 원딜이 쉬울 리가 없었다.

'결국 해답은 썰자팟인가.'

썰자팟은 딜러들끼리 모인 공대를 칭하는 속어다.

그저 그런 딜러들이 경험을 쌓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노는 것보다 낫다는 심정으로 하급 몬스터를 학살하러 가는 파티를 이르는 말이다.

딜러들뿐이라 어그로 관리도 전혀 안 되고, 백업도 없는 셈이지만 약해 빠진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죽이는 거라 큰 문제는 안 된다.

다만, 당연하게도 돈이 적었다.

'그래도 짐꾼보다는 낫지.'

제아무리 썰자팟이 별 볼 일 없다고는 하지만 짐꾼의 보수보다야 나을 테다.

고생스러움을 따져 봐도 짐꾼보다는 썰자팟이 훨씬 낫다.

'그래, 짐꾼보다 잘 벌면 됐지, 뭐.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현실적으로.'

헌터라고 죽자고 몬스터와 싸워 댈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목적이 돈이라면, 적당히 몸을 사리면서 사냥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원딜이나 썰자팟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니, 정대식처럼 큰 욕심 없는 사람에겐 그게 딱이었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꾸준히만 하면 건물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그래, 그걸 목표로 움직이는 거다. 일단은 무기 구입을 해야지.'

정대식은 어떤 걸 사는 게 좋을지 미리 궁리를 해 보았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엔트로피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대식의 주의가 흐트러지면 자연스럽게 화면이 꺼지고 엔트로피도 대기 상태로 되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력을 뭉쳐서 띄우면 얼마든지 다시금 구동이 가능했다.

그래서 일단은 무기 구입에 대한 것부터 먼저 알아보았다.

정대식은 후져서 느려 터진 휴대폰을 붙잡고 좁은 창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무기 상점을 검색했다.

'대략 시세를 알아 두었으니 내일 상가에 나가서 적당한 걸 사야겠어. 그 전에 헌터 등록부터 먼저 해야지.'

보통 각성을 하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각성자 등록이다.

그걸 해야지만 무기 소지 허가증이 나오는 관계로, 무기를 사러 가기 전에 각성자 관리청에 들르기로 했다.

그렇게 내일 하루의 동선을 머릿속에 짜 두고, 정대식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오늘 하루 지나치게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어제와 한 치 다름없는, 불 꺼진 방에 누워 있으려니 여전히 실감이 안 났다.

자신이 각성을 했다는 사실이 남 일처럼 느껴졌다.

'......차차 실감이 나겠지.'

정대식은 말똥말똥한 눈을 억지로 감고 잠을 청했다.

Chapter 2. 첫 사냥

"우우와아아아!"

정대식은 고함을 지르며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이 흥건한 채로 손을 뻗어 황급히 벽을 더듬었다.

그리고 손에 닿는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그제야 깜깜하던 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쪽방이라 창문이 없는 관계로, 불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갑갑하다고 못 견딜 환경이었으나, 정대식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악몽을 꿔서 그런지 햇빛이 간절해졌다.

그는 황급히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슬리퍼를 끌고 해가 비치는 골목 어귀로 나가 거기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 나니까 놀란 맘이 가라앉으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뭔 꿈을 꿨지? 굉장히 재수 없는 꿈이었던 거 같은데.'

정대식은 이마를 쓸어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괴상한 꿈이었어. 내가 신의 공간에 불려 가서 각성을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꿈.......'

잠시 멍하게 간밤을 돌이켜 보던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냐, 그건 꿈이 아냐!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어제 난 정말로 신의 공간에 불려 갔다! 그리고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을 만났어!'

정대식은 자신이 각성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재차 확인하려 마력을 모아 공중에 띄웠다.

그러자 어김없이 허공에 커서가 나타났고, 정대식은 속삭이듯 말했다.

"엔트로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말풍선이 커서 속에서 튀어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진짜네."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각성자가 된 거 말이야."

엔트로피는 정대식의 말이 지나치게 당연하다 여긴 것인지 어쩐지, 한 박자 대답이 늦었다.

<정대식 님은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 님께 선택받은 각성자가 확실합니다.>

"그래, 알겠다. 그만 들어가 봐."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치우고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각성자가 된 게 확실하단 말이지.'

그는 잠자코 방 안으로 돌아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든 것도 없는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방문은 잠그지도 않은 채 외출에 나섰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어제 계획해 둔 대로 곧장 각성자 관리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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