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12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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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히 가셔야 하겠습니까?”
배가 부르고 무거운 몸에 갑옷을 걸치고 크테시폰을 나서는 대신관에게 하페즈 마구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자신이 맡은 경보병대와 함께 칼데아군 사령부에 있던 그는 어떻게든 이디나를 말려 볼 맘에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대신관의 다짐은 완강했다.
“그럼 결전의 순간에 내가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 하겠나?”
이디나는 어제의 깜깜한 하늘과는 딴판인 분지의 하늘과, 여전히 회색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제플린 산 정상부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술에 야무지게 힘을 주었다. 제플린 산 정상의 구름까지 어느 정도 가시면서 9시 정도면 수송함으로 코런덤을 실어 착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참모들의 보고가 있었다. 그의 앞에서는 검은 철성 공략을 위해 떠나는 코런덤 3천과 일반 헤네티 병사 2천여 명이 사뭇 비장한 분위기로 4척의 수송함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정상부에 해는 들었지만 바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수송함이 착륙하기 어려울 거랍니다. 자칫 수송함이 사고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하페즈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역시 효과는 없었다.
“더 머뭇거렸다가 놈들이 먼저 지원부대를 보내서 자폭셔틀이나 자기와이어 같은 방공부대를 설치할 시간을 주면 곤란하지 않나.”
“그럼 일단 전투병만 보내시고 위대한 현신께선…….”
“가짜 대신관의 최후를 내 눈으로 확인하려 한다.”
겉으로는 매몰차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본심은 카렐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를 가진 이후, 그를 한 번도 마주한 일이 없었다. 그를 잊기 위해 사카 같은 충성스런 헤네티들도 몇 번 침실에 들여 보고, 잘생긴 소년들과 노닥거려보기도 했지만 뱃속의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무언가 외롭고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모순된 속내를 견딜 수가 없었다. 거의 손 안에 잡았다가 놓쳤던 발렌틴도 처음엔 그냥 죽여버리려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황제를 쏙 빼닮은 아이의 잘생긴 얼굴을 눈앞에서 본 이후로는 차마 그런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차라리 양자로 키워 뱃속에 있는 딸아이의 배우자로 삼으면 어울리겠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시키기까지 했다.
케스난을 잡아들였던 그날, 하페즈에게서 ‘아이를 죽여도 되겠습니까?’라는 연락을 받고 무슨 미친 소리냐며 펄쩍 뛰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 산 위에 아직 황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황제를 발견하면 몸소 그자의 숨통을 끊으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슈라가 이디나의 갑옷을 매만져주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말주변 번드르르하고 편한 곳 찾는 건 이전 육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구나.”
이디나는 여느 때처럼 대신관의 측근 경호를 맡은 부단장 슈라를 올려보며 빈정거렸다. 말주변 없고 우직한 여단장 사카는 윗분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보다는 항상 부하들과 함께 움직이다보니 이디나의 눈에 자주 띄지는 않았다.
“지금껏 나를 위해 고생한 그대들에게 그 영광을 주겠다.”
한 발 물러난 이디나는 멀리 제플린 산 위를 다시 올려보았다. 솔직히 그는 황제를 마주했을 때 정말로 그의 목에 칼을 꽂을 수 있을지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서 할룩스 통신이 되냐? 민간용 할룩스 말이다.”
이디나의 뚱딴지같은 물음에 쿠마르가 자료를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흐음……무단 탐험가들의 구조요청이라도 할 수 있게 분견대에서 통신위성을 설치했다고는 들었습니다. 날씨가 맑아졌으니 아마 이 행성 내에서는 되겠지요. 그런데 이 안에서 민간 할룩스로 통신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디나가 억지로 웃으며 돌아섰다.
“하긴 그렇지.”
수수한 갑옷 위에 길고 검은 망토를 늘어뜨린 이디나는 앞장서는 슈라를 따라 수송함에 올랐다.
“위대한 현신께서 드신다!”
수송함의 선창에 있던 8백여 명의 코런덤 헤네티들이 일제히 자리에 꿇어앉으며 위대한 현신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들 모두는 이번에는 죽어도 바로 되살아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백 년 충성을 바쳐 온 그들이 그 정도로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이디나는 신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육체이고, 설사 그를 위해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번 전투만 승리한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금 이전 콜로니를 지배했던 전성기로 되돌아갈 것이다. 교단의 영광스런 부활을 위해 그대들의 지금 뼈를 저 산꼭대기에 묻는다 해도 무엇이 아쉽겠는가.”
“물론이옵니다!”
코런덤들은 누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을 만족스럽게 돌아본 이디나는 바깥이 내다보이는 위층의 선실로 향했다.
“아트위야 현신과 야투 신관은 아직 소식이 없느냐?”
“트라에타오나 교단 헤네티들이 총동원되어 동쪽 산 주변을 샅샅이 찾고 있지만 흔적도 없습니다.”
없어진 그 둘을 생각하면 출정하면서도 그의 속이 어딘지 편치 않았다. 그 둘과 연관해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바에자를 생각하면 더더욱 불안했다.
한숨과 함께 창가에 선 이디나는 다시 주머니의 할룩스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혼자 있고 싶다.”
황제가 있을 제플린 산을 올려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이디나는 수송함의 엔진이 작동하는 진동에 조심스레 할룩스를 꺼내보았다. 한때 황제와 자신을 이어주었던 낡고 흔한 구형 할룩스였다.
황제도 그때 그 할룩스를 여전히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디나는 지금껏 이 할룩스를 꺼 놓은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연락을 못 한다 해도 그저 이것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가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랫사람들이, 아니 카렐이 안다면 기절초풍할지 몰라도, 임신으로 무거워진 몸을 느낄 때마다 그의 품이 너무도 그리웠다.
“이젠 정말 버려야지.”
마음을 야무지게 먹은 이디나는 기계를 끄고 부숴버리려 했지만 왠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황제가 기계를 꺼버렸거나 코드를 완전히 해제했다는 것을 확인하면 훨씬 맘 편하게 이 기계를 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디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음성연결]을 눌렀다. 카렐이 할룩스를 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는 [연결 불능]이라는 신호를 기다리며 숨까지 멎고 할룩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정말로 혹시라도 연결이 된다면 그는 얼른 할룩스를 꺼버릴 참이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울리는 짧은 동안에도 이디나는 자신이 대체 어떤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맙소사.”
이디나의 손이 떡 굳어버렸다. 짧은 연결음 후, 약간의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분명 신호가 가고 있었다. 황제가 자신과의 할룩스를 여전히 켜 놓고 있다는, 그것도 여기까지 가져왔다는 뜻이었다. 이디나는 당장이라도 [연결 해제]를 누르고 싶었지만 그의 손끝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직거리는 지독한 잡음을 내며 어렵사리 신호만 갈 뿐, 건너편에서 반응이 없었다.
“제발, 제발.”
이디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아직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떤 상태인지도 너무도 궁금했다. 대신관이나 적으로서가 아닌, 그의 아이를 가진 여자로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전장에서 적으로 만나기 전, 설사 죽일 년이라는 욕일지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일부러 안 받는 거야. 분명해.’
낙담한 이디나는 할룩스를 꺼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 딸깍 하고 연결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디나의 심박수가 최고조로 치솟았다.
“누구시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웬 소년의 목소리였다. 미처 예상 못 했던 뜻밖의 상황에 이디나는 뭐라 대답을 할지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누군지는 몰라도 먼 곳에서 ‘할룩스가 돼?’라고 묻는 웬 굵은 남자 목소리도 들려왔다. 소년이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연결되었으니 말씀하세요. 누구신지요?”
“나, 난…….”
혀끝이 굳은 이디나는 결국 연락을 그대로 끊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최대한 정리해 보았다. 황제가 철성이든 황실군 병영이든 할룩스를 가져와 켜 놓았다면 왜 황제가 직접 안 받았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할룩스로 연락을 하기 전보다 더 상황이 복잡해져버렸다. 그는 혹시 황제가 죽은 건 아닌지 염려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지레 화들짝 놀랐다.
“곧 출발합니다!”
함장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울려퍼졌다. 이디나도 이젠 대신관의 처지로 돌아가 황제를 죽여야 했다.
“그래, 마지막 선물이라고 치지 뭐.”
이디나는 항상 품고 다니던 뱃속 태아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이제 손바닥만한 크기로 자란 태아는 얼굴과 손발, 눈까지 분간이 될 정도였다. 그는 아이가 제발 그레이오팔로 태어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는 태아의 사진을 할룩스 화면에 담았다. 그리고는 지난 며칠간 고심을 하고, 교단의 비밀 역사자료까지 모조리 뒤져가며 어렵게 정한 아이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여 황제의 할룩스로 전송했다.
황제가 이미 죽었는지, 살아있어도 ―자신의 손에 죽기 전에― 열어보기나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보낸 것만으로도 아이의 엄마로서 도리를 절반은 한 느낌에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그래, 이젠 정말 죽이러 가는 거야.”
이디나는 할룩스를 버리지 않고 다시 품에 넣었다.
그때, 조금 전 내보냈던 쿠마르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뛰어 들어왔다.
“대신관님! 적진에서 수송함 2척이 북쪽으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디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플린 산 정상부가 아직 착륙이 어려운 날씨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무리해서 공격을 강행하고 있는 건 순전히 황실군이나 친위군이 지원군을 보내기 전에 선수를 치려는 것이었다. 적군에는 자신보다 더 정신이 나간 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쿠마르가 밖을 내다보며 초조하게 물었다.
“우리 함대도 당장 출발하라고 할까요?”
“말이라고 하나!”
이디나가 탁자를 쿵 내려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밑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던 지상요원들이 허둥지둥 수송함에 올라타고 해치가 닫히더니 서둘러 이륙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먼저 닿는 것이, 빨리 자리를 잡고 방공망을 깔아 적이 더 못 오도록 막는 자가 절반은 먹고 시작하는 셈이었다.
수송함 함장의 목소리가 방송으로 들려왔다.
“철성 남쪽의 고원에 착륙하겠습니다. 북쪽의 적 방공망을 피하기 위해 동쪽으로 우회합니다!”
코런덤의 소형 수송함은 사방으로 먼지를 흩날리며 판지셰르 분지를 박차고 서둘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 북쪽 제플린 산으로 앞장서 올라가고 있는 황실의 수송함 2척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다행입니다. 그리 많이 늦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쿠마르가 적 수송함을 가리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정작 이디나는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관이군.”
공중에서 내려다본 판지셰르 분지는 35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칼데아의 대군이 흰 갑주로 하얗게 뒤덮은 가운데 검은 제복을 입은 북쪽의 황실 동맹군이 그보다 훨씬 얇지만 밀도 높은 대오로 제플린 산자락을 길게 막아선 채 대규모 회전을 앞두고 있었다. 언뜻 검은 둑을 향해 막 돌진하려 꿈틀대는 거대한 하얀 파도처럼 보였다. 하임달의 결전이 벌어졌던 바로 그곳에서는 이제 당시보다 2배나 규모가 커진 새로운 전투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디나와 3천의 코런덤, 2천의 헤네티들이 탄 4척의 수송함은 동쪽으로 크게 빙 돌아 검은 철성이 있는 제플린 산 정상에 천천히 접근해갔다. 저공으로 지나다 보니 얼마 전 아트위야와 야투가 행방불명된 동쪽 산자락도 그대로 내려다보았다. 날씨가 최악을 달렸던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제플린 산과 주변 산맥의 세세한 지형이 맑아진 하늘 아래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저게 대체 무어냐?”
망원경으로 밑을 살피던 이디나가 눈가에 힘을 주고 물었다. 아트위야와 야투가 행방불명된 산과 검은 철성이 있는 제플린 산 사이의 거대한 골짜기를 가로질러 육중한 파이프가 마치 꼬치를 꿰듯이 걸쳐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다리처럼 보이는 것 말이다.”
이디나가 가리킨 곳을 본 슈라와 쿠마르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쿠마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조사해 본 바로는 아트위야 현신과 야투 신관이 플라칼 가 정찰대와 나가기 전에 흡기구 어쩌고 하는 말을 지나가다가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카 대장이 들어갔던 그 구멍이 혹시 철성을 연결하는 게 아닐까요?”
“흡기구?”
아트위야가 사라진 동쪽 산맥과 거대한 파이프를 지켜보는 이디나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는 제플린 산 아래에서 대회전을 준비하고 있는 칼데아군과 바에자의 근위대 쪽을 휙 돌아보았다. 그의 입술 끝이 가늘게 떨라고 있었다.
“크테시폰에 남아 있는 헤네티들 시켜서 그 구멍 주변에서 플라칼 가 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게 해라. 플라칼 가 놈들이 수상하다.”
이디나의 머릿속에 갖은 의혹이 맴돌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가 아트위야의 행방불명에 집중하고 있을 여유는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함교에서 함장이 외치는 고함이 방송을 통해 들려왔다.
“철성에 접근합니다! 아직 난기류가 심해 흔들릴 테니 조심하십시오!”
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선이 위아래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기상학자들의 예상대로, 정상에서 몰아치는 강풍은 이런 소형 수송함까지 손아귀에 쥐고 흔들 정도였다. 무중력 상태처럼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에 휘청거리는 이디나를 슈라가 급히 확 끌어안고 받쳐주었다.
“조심하십시오!”
이디나는 그 와중에도 손에서 망원경을 놓지 않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말로만 들었던 강철제 야수 같은 거대한 검은 철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틀 전 세닉 가가 참패를 당했던 철성 앞의 넓은 고원이 두 번째 피의 축제를 기다리며 그들 앞에 자리를 펼쳐놓고 있었다. 철성 앞에서는 조금 앞서 착륙한 황실의 수송함 2척이 보였다.
“어, 어, 저놈들 박살이 났습니다!”
쿠마르가 황실 수송함을 가리키며 손뼉을 쳤다. 수송함 한 척은 착륙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지 외부엔진 하나가 멀찍이 떨어져 불타고 있고, 선체도 한쪽으로 완전히 주저앉은 채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적의 수송함이 착륙을 제대로 못한 것을 고소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디나는 이 길을 나선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저놈들 포병대부터 내놓는데요?”
슈라가 흔들리는 함교에서 어렵사리 중심을 잡으며 적진을 살폈다. 형편없는 꼴로 착륙한 황실 수송함에서 크바르나들이 아나콘다 포부터 제일 먼저 끌어내어서는 교단 수송함을 향해 설치하고 있었다.
“아나콘다를 조심해라! 놈들 사정권 밖에 착륙해.”
4척의 수송함은 하는 수 없이 철성에서 적당히 떨어진 고원 외곽에 접근했다. 철성 앞에는 무려 50여 문의 포대가 보였고, 그 중 절반 정도는 세닉 가에서 노획한 구형 포대이지만 나머지는 황실-친위군의 자랑인 신형 아나콘다 포였다. 발리스타 포대가 수송함이나 셔틀을 잡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아나콘다라면 이렇게 덩치가 큰 수송함은 단 한 발로 치명타를 입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쓸데없이 가까이 접근했다가 1천이 넘는 병력이 고스란히 공중분해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
4척의 수송함 함장들이 강력한 서풍에 악전고투하며 선체를 조금씩 땅에 붙였다.
“착륙합니다!”
강풍에 밀린 수송함에 또다시 무중력상태에 가깝게 훅 내려앉았다. 슈라의 품 안에서 놀란 이디나의 몸에도 힘이 꽉 들어갔다. 짧은 비행을 끝낸 수송함이 굉음을 내며 쿵 내려앉더니 기우뚱해졌다. 이디나가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쿠마르와 함께 있던 헤네티 장교들도 바닥에 뒹굴었다. 선체 한쪽이 부서지는지 또 한 번의 충격과 함께 선체가 푹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이디나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혼자 모두 받아낸 슈라가 다급히 물었다. 잠시 얼떨떨했던 이디나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슈라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다. 친위군 못지않게 이쪽의 상황도 심각했다.
“온전한 건 한 척뿐입니다.”
쿠마르가 질겁을 했다. 이디나의 수송함은 왼쪽 랜딩보드가 주저앉아 동체착륙을 했고, 함께 착륙하는 3척의 수송함 중 여단장 사카가 탔던 한 척은 맞바람 때문에 뒤로 주저앉아 방향타와 엔진이 박살이 난 채 불꽃을 뿜고 있고, 또 한 척은 부서진 수송함의 파편에 동체 측면을 얻어맞아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양쪽 군대 모두 최악의 착륙이었다.
이디나는 가장 피해가 커 보이는 사카의 수송함을 불러내어 물었다.
“그쪽은 괜찮냐?”
“전사들은 괜찮습니다.”
여느 때처럼 지나치리만큼 간단한 사카의 대답이 되돌아왔다. 슈라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럼 돌아갈 길이 거의 막혔다는 뜻입니까?”
“이길 테니 상관없다. 슈라.”
잠시 놀랐던 이디나도 사카의 자신에 찬 태도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위대한 현신이 아무리 존경스러워도 그만 안고 있는 게 낫겠다. 슈라.”
잠시 두려움에 떨었던 교단군 지휘부는 대신관의 느닷없는 너스레에 긴장이 확 풀어지며 사기가 되살아났다.
“모두 나가! 전투에 임한다!”
지휘부 상태야 어쨌든 수송함이 일단 자리를 잡자 코런덤과 2천여의 일반 헤네티들은 이틀 전 세닉 가가 쓸데없는 포탄세례를 퍼부으며 시간과 물자 낭비를 했던 바로 그 위치에 우르르 내려서기 시작했다. 철성 앞에 포진한 황실군과 크바르나와 포대 사정권 바로 밖이었다. 각 대대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목소리를 높였다.
“코런덤은 당장 1선을 짜고! 시민 헤네티 전사들은 포대하고 자폭셔틀, 자기와이어 방열하고! 사역대는 제일 후열에 물자를 내려! 빨리! 빨리!”
갑옷과 방패, 마우저와 짧은 검으로 중무장한 코런덤은 순식간에 철성을 빙 에워싸고 포진을 짰고, 헤네티들은 수송함에 싣고 온 포대와 물자를 끌어내렸다.
“20분 내로! 놈들이 행여 달아날 생각도 못 하게 빨리 움직여!”
노련한 헤네티 장교와 사관들의 고함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틀 전 이곳을 공략했던 세닉 가와 병력과 규모는 비슷하지만 전투력과 지휘관의 자질 모두 댈 바가 아니었다. 앞장서 싸울 코런덤뿐만이 아니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포병대, 사역부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철성을 빙 에워싸고 보병대의 포위망을 짜고, 안쪽의 황실군이 달아나지도, 더 이상의 지원군이 오지 못하도록 방공망까지 설치하는 데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짧지만 정신없는 준비 시간이 지나고 나자 도리어 고원 부근은 소름끼칠 만큼의 침묵이 흘렀다. 철성을 지키는 2천의 크바르나와 1천의 시민병들,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 집결을 끝낸 3천의 코런덤과 2천의 헤네티들은 거의 몇 달 만에 산정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 그리고 서쪽에서 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서로를 침착하게 노려보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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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나는 병 주고 약 주고 다시 병 주고.....지금까지도 갈대의 전형입니다. ㅎㅎㅎ
3부 후반부는 아무리 봐도 수송함들의 무덤입니다. 앞으로도 무수하게 무덤 파는 수송함을이 나오겠지만요. ㅎㅎㅎ
아참.....출판본 원고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다음주쯤 출판공지를 내려 합니다. 처음으로 원고를 거의 마무리한 후에 내는 출판공지가 될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래서 예약기간은 짧게 잡고 바로 인쇄 들어갈 예정입니다. 엔딩 이벤트로 예약기간 종이책 구매자 중 원하는 분들께는 혈맥 전권 중 원하는 전자책 1권을 드리는 이벤트를 생각중입니다. ^^
전자책도 종이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낼 예정입니다.
5월에 제 신작 공개 일정이 추진중이라 그 전에는 출판작업을 끝낼 예정입니다.
이번엔 연재본에 포함 안 된 부분이 워낙 많아 분량도 많고 힘든 게 많았네요. (교정하시는 분들은 추가분이 많은 걸 아실 겁니다. 물론 아직 그분들께도 안 보내진 미공개분이 더 많습니다만;;;)
이제 420-470-490의 3권으로 낼지, 약 700페이지의 2권으로 낼지만 결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를 보니 그 정도 두께도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만....책값은 비싸지겠지만요^^;;)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세요~~~( ̄∇ ̄)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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