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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1058화 (1,053/1,132)

< -- 1058 회: 파트16. 신들의 전쟁 (완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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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명의 분견대 병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중간께의 차량 짐칸에 꽁꽁 묶여 있던 쿠마르는 사방에서 마우저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도 마우저를 피해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었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떡해서든 죽어야 할 때이지 지금 살려고 발버둥 칠 때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그의 끈을 매 놓은 난간에 마우저가 명중하고 관통하면서 조임쇠가 풀려 덜커덩거리기 시작했다.

“염병할! 난간 도로 세워! 빨리 막아!”

한 차에 탄 분견대 분대장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사격을 막아주던 철제 난간이 안쪽으로 쓰러지면서 안으로 볼트에 마우저 탄까지 마구 날아들고 있었다. 병사들이 떨어진 난간을 세우려 한쪽으로 몰리면서 쿠마르에 대한 감시도 자연히 소홀해졌다.

“에익!”

기회를 잡아 벌떡 일어난 쿠마르는 손이 뒤로 묶인 채 짐칸 뒤로 악을 쓰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병사들이 어어 하는 새 황무지 위를 속도를 내어 달리고 있는 화물차의 짐칸에서 땅바닥으로 그대로 몸을 던졌다.

“우으읍!”

그의 몸은 고운 흙이 쌓인 흙바닥에 동댕이쳐지며 몇 번을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고 팔다리가 꺾이는 끔찍한 아픔이 몸을 후려쳤지만 어쨌든 그는 살아있었다.

쿠마르는 몰아치는 모래폭풍을 올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지.”

그가 막 고개를 든 순간, 시커먼 모래폭풍 너머에서 갑자기 웬 시커먼 것이 확 달려들어왔다. 그가 채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뒤따라오던 육중한 화물차가 바닥에 넘어져 있는 쿠마르의 작은 몸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지나가버렸다. 남은 잔해 속에서 그의 희미한 푸념이 들려왔다.

“염병할……아리아노 그것한테 걸리고 나서 재수 옴 붙었어. 대체 몇 번째야.”

뒤늦게 목 뒤에서 솟구친 불이 즉사한 그의 몸을 지직거리며 태워가기 시작했다. 22년 전, 사오시안트 궁에서 과부가 된 아리아노의 저주를 들은 이후 도대체 몸이 남아나는 일이 없었다. 내내 구박만 받던 쿠마르는 이번에도 그렇게 또다시 몸을 잃었다.

“모두 차에 타! 빨리!”

15대의 차량이 모두 언덕을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카렐은 함께 나온 가디언과 장병들의 등을 탁탁 치며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제일 후미의 차량 2대가 달려와 속도를 늦추자 그들이 우르르 달려가 짐칸에 차례대로 올라탔다. 카렐은 그 차들에 타는 대신 빠른 발에 최대한의 속도를 붙여 세하 비장이 탄 1번 차량을 쫓아 달려가 옆 문짝에 훌쩍 매달렸다.

“이쪽 방향이냐?”

문짝에 매달린 카렐은 푸른색 물결이 ‘길’의 흔적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바닥을 가리켰다.

“예! 잘 보이십니까?”

“그래, 아주 잘 보인다! 이상한 게 발견되면 알릴 테니까 계속 달려!”

카렐이 문짝에 매달린 채 목청을 잔뜩 높여 차창 안쪽에 소리를 질렀다. 일단 포위망을 돌파한 15대의 차량은 지난번 끊어진 서쪽 협곡의 다리가 있던 자리로 최대한 속도를 붙여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일부러 다듬은 ‘길’이 아니다보니 온통 돌밭 아니면 흙구덩이라 차가 달리기에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차가 원래 이렇게 시끄럽냐?”

카렐이 운전병에게 물었다. 차 자체가 시끄럽고 워낙 심하게 덜커덩거려 양쪽 모두 얼굴이 빨개질 만큼 소리를 질러야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엔진 때문에 이렇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운전병이 악을 쓰고 대답했다.

“이 길이 다리가 끊긴 협곡까지 이어지냐?”

“예! 도로 상태가 나쁘니 안에 들어오십시오! 거긴 위험합니다!”

“여기가 더 잘 보여!”

카렐이 운전병이 잡고 있는 조종간을 살짝 옆으로 비틀었다. 차는 길 중간에 놓인 큰 바위를 살짝 지나 가파른 오르막에 접어들었다.

“다리가 끊긴 곳에 적병이 있겠지?”

“이전 정찰병 보고에 적 공병들 십여 명이 다리를 재건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적 공병들은 직통로인 송풍로 공사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풍로 공사는 얼마나 되어가는데?”

“아직 3분의 1정도밖에 뚫지 못했지만 놈들이 이번에 큰 컴프레서를 들여와서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때, 카렐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선두차량이 바로 방향을 살짝 움직이자 뒤따라오는 차량들도 뒤따라 함께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곧 거친 오르막 산길에 접어들어 달리기 시작했다.

카렐은 할룩스를 켜고 후미의 차량을 불러냈다. 그곳엔 자이납과 세네피스가 함께 타고 있었다. 세네피스는 직접 싸우지는 못하지만 자신처럼 이곳의 푸른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행에게 큰 힘이었다. 카렐이 자이납에게 물었다.

“적이 쫓아오고 있나?”

“아닙니다! 아직은 아무도 안 보이는데요……아니, 안 보인다고 하십니다.”

카렐은 일단 할룩스를 끊었다. 적이 안 쫓아온다는 것이 꼭 반가운 것만도 아니었다.

“어쩌면 또 한판 붙어야 할는지도 모르겠군.”

그는 버려두고 떠나온 분견대 기지를 돌아보았다. 그나마 시설다운 시설이 갖추어져 있던 저곳을 버리고 왔으니 이젠 검은 철성에 도착하거나, 중간에 막혀 끝장이 나거나 둘 중 사생결단밖에는 길이 없었다.

카렐은 이미 버린 기지에서 마지막으로 시선을 끊고 머리 위를 올려보았다. 검은 철성이 위치하고 있을 이름도 모르는 산의 까마득한 고봉이 올려다보였다. 이제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 위로 가야만 했다.

“이게 다 뭐냐.”

카렐이 이끄는 분견대가 북쪽의 산으로 달아나버린 후에야 가까스로 현장으로 달려온 네코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손해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적 기지에 대한 변변한 전면공격은 한 번 해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한 번도 못 싸워 본 상태에서 적의 ‘불릿 쇼’에 뒤이은 번개 같은 선제공격 한 번에 포위망을 뚫리고 적을 내보내 준 꼴이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연결되어 벌어지면서 나름 베테랑이라는 그로서도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의 눈앞엔 카렐이 쏘아댄 마우저와 병사들이 쏜 볼트에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와 부상자들 수십이 신음하고 있고, 돌진하는 차에 치어 중상을 입고 못 움직이는 병사들도 여럿이었다.

“이놈은 또 죽었네.”

네코는 재가 되어 있는 쿠마르의 시체 앞에 서서 혀를 찼다. 시체 중간엔 죽은 자의 일련번호가 적힌 작은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지금쯤 크테시폰의 재생실에서 우릴 원망하고 있겠군.”

“특등급 가디언들이 분명했습니다. 특등급만 적어도 3, 4명 이상입니다.”

이곳을 지키던 헤네티 장교가 배가 갈라진 채 죽어있는 병사를 가리키며 민망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이번에 새로 온 놈들이로구나.”

네코가 눈살을 찌푸렸다. 적의 일부는 교단의 무기인 마우저로 무장했고, ―아직 적을 누가 이끌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신중하기보다는 대담하고 허를 찌를 줄 아는 자가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 무장인 네코도 이대로 패닉에 빠져 주저앉을 인물은 아니었다.

“놈들은 분명히 서쪽 골짜기 길로 갈 거다. 당장 헤네티 50명과 보병 4백으로 추격대를 조직해라. 갈 길이 빤하니 놈들을 뒤쫓는다.”

“거긴 다리가 끊겼는데 무슨 생각으로 가는 걸까요?”

“이렇게 빨리 움직였다면 분명 저들도 뭔가 미리 준비를 해 왔겠지. 부교를 만들 자재를 가져왔거나.”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판지셰르 산의 까마득한 정상을 올려본 네코는 그들이 지금까지 작성해 놓은 이곳 지도를 바닥에 확 펼쳐놓았다. 지도엔 산 서쪽의 바위 사면을 타고 올라가는 분견대의 군사도로가 구불구불하게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산 중턱에 있는 깊은 골짜기 다리에서 도로는 끊였고, 지도도 공란이었다.

“지금 다리 끊긴 곳에 사카 대장이 가 있지?”

“예, 헤네티 10명과 병사 30명 정도가 있습니다.”

“놈들은 분명 그리로 간다. 사카 대장에게 매복해서 놈들을 기다리라고 해라.”

“매복이요?”

장교의 물음에 네코가 눈을 크게 뜨고 그자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래, 매복. 놈들이 다리 만들기를 기다리라는 말이다.”

카렐이 이끄는 15대의 화물차량은 돌과 가파른 비탈, 중간중간 구덩이가 널린 험악한 길을 어렵게 전진해 계속 산을 올랐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길은 좁고 험해졌다. 망가진 길목이 나타나는 일도 점점 잦아졌고, 미끄러져 길을 벗어난 차를 끌어내는 횟수도 갈수록 많아졌다. 움직이는 시간보다 서서 구덩이를 메우고, 쌓인 돌더미를 치우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처음의 기세등등하게 달릴 때의 속도는 점점 걷는 속도에 수렴해갔다.

칼과 창 대신 큰 삽과 곡괭이를 짊어진 카렐은 몇 명의 가디언과 함께 차량보다 앞서나가며 도로가 망가진 곳을 즉석에서 고치고, 혹시 모를 매복이나 위험한 지역을 확인했다. 명색이 황제가 할 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고작 백여 명의 장병들과 함께 고립된 행성에 들어온 처지에 체면 따위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젠 5스타디아 정도만 가면 됩니다.”

길 한쪽을 막고 있던 돌무더기를 쳐내고 있는 카렐에게 세하 비장이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얼마 전 베흔과 프레소 일행이 다리 부근에서 도망치며 길에 쏟아 부었던 돌더미가 돌아오는 길엔 도리어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15대의 차량은 돌더미를 치우는 동안 꼼짝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다.

“놈들이 분명 쫓아오고 있을 텐데.”

카렐이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선 미끄러지면 끝장이겠네.”

카렐이 삽을 털어 다시 등에 둘러메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왼쪽으로는 거의 수직의 바위절벽이 떡 막고 있고, 오른쪽으로도 한 번 미끄러지면 브레이크를 잡기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가파른 자갈밭 내리막이 모래폭풍 너머 어딘지 끝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황상, 이게 다 뭡니까? 세상에, 제국에서 가장 귀한 분께서…….”

기다리다 못해 후미 차량에서 달려온 세네피스가 일꾼처럼 흙투성이가 되어 있는 카렐의 모습에 정색을 하며 그의 얼굴에서 흙을 닦아주었다. 당황한 카렐이 마찬가지로 먼지투성이가 된 세네피스에게서 먼지를 훅 불어 날려주었다.

“뒤쪽을 보고 계시라니까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합니다.”

카렐이 계속 툴툴거리는 세네피스를 달래기 반, 협박 반으로 후미에 되돌려 보냈다. 이 자리에서 삽질을 제일 잘 하는 코나가 울퉁불퉁해졌던 바닥을 탁탁 고르고는 선두차에게 오라며 손짓을 보냈다.

“적군이 있을지 모르니 너무 빨리 오지는 마라. 네피는 어머니와 함께 후미 책임지고 지키고 있고.”

카렐은 삽을 화물칸에 던져 넣고는 베흔, 자이납과 함께 차량보다 앞서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칼이나 창 대신 마우저를 쥔 카렐은 주변에 바싹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아갔지만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적이 없나?]

카렐이 수화로 물었다. 베흔과 자이납도 인기척을 못 느끼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길은 이제 거대한 수직 벽 중간을 조각칼로 길게 파낸 것 같은 모양으로 변해갔다. 자연 지형으로는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이곳에 억지로 길을 내기 위해 절벽을 쪼아 굴을 뚫듯이 파낸 흔적이 안쪽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비라도 오면 피하기는 좋겠다.]

카렐이 빈정거렸다. 우묵하게 들어간 길이라 왼쪽과 머리 위는 막혀 있고, 오른쪽으로는 산 밑으로 이어진 가파른 내리막 자갈밭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방을 확인하며 조심조심 다가간 카렐은 어느새 다리가 끊겼던 자리까지 도착했다. 그곳은 베흔이 프레소 일행을 데리고 퇴각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리를 받치던 기둥들과 옛 다리 상판으로 썼음직한 크고 넓적한 널빤지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기둥에서 몇 발짝 나아가자 곧바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발끝을 막아섰다. 몰아치는 강풍에 휘청거리기라도 했다가는 바로 골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데요.]

주변을 구석구석 둘러본 자이납이 다시 수화로 알렸다. 카렐의 예민한 감각에도 가까운 곳에서 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섬뜩한 지형이네.”

카렐은 주변을 넓게 확인했다. 약 200척(60m) 폭의 협곡 건너에는 마치 이쪽을 거울로 본 듯한 모양의 낭떠러지가 있고 그곳에도 부서진 다리의 흔적이 아직까지 흉물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아라무트의 영감님이 여기서 영감을 얻은 걸까요?”

함께 아라무트에 갔던 자이납의 농담에 카렐이 짧게 웃었지만 상황이 그리 만만치는 않아보였다. 아라무트에서처럼 다리의 ‘한 가닥 줄이라도’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카렐과 세네피스를 뺀 다른 사람들에겐 강풍에 앞도 거의 보이지도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빨리 부교 자재를 내려!”

카렐이 뒤따라오는 차량들에 멈추라며 손짓했다. 추격해오고 있을 교단 병력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병사들이 선두 차량에 실렸던 부교 자재를 끌어내려 서둘러 무너진 자리로 메고 왔다.

“단단히 받쳐. 한 발뿐이니까 망치면 끝이야.”

힘 좋은 카렐과 베흔, 카토가 큼직한 기둥만한 앵커 발사기를 함께 어깨에 둘러멨다. 보통의 리프트 케이블의 앵커로는 흠집밖에 못 내는 이곳의 단단한 바위에 와이어로프를 안전하게 박기 위한 도구였다.

“준비!”

뒤이어 펑 소리가 울리며 열 접착제를 품은 앵커가 가는 줄 2개를 매달고 강풍 속에서 날아올랐다. 200척의 거리를 가로질러 날아간 앵커가 건너편 절벽 꼭대기에 꽝 소리를 내고 꽂히며 반대편 고리가 완성되었다.

“제대로 박혔다. 상판으로 쓸 자재 가져와!”

병사들이 다리의 바닥판으로 쓸 막대뭉치를 줄줄이 짊어지고 달려왔다. 고강도 봉을 와이어로프를 따라 길게 엮은 다리는 사다리를 바닥에 눕혀놓은 것 같은, 정말 긴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할 엄두를 못 낼 모양새였다. 제대로 된 교량 자재를 가져오긴 불릿의 크기가 받쳐주지를 않았다.

“빨리 걸어! 4개 분대 줄 맞춰 서 있고!”

이런 작업에 익숙한 분견대 작업자와 장병들은 이 다리의 한쪽 끝을 방금 반대편과 연결한 줄에 잡아맸다.

“당겨! 하나, 둘! 하나, 둘!”

마르텔로의 구령에 맞춰 50명 가까운 병사들이 줄다리기를 하듯 반대편 앵커와 연결된 줄을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다리 모양의 바닥 부분이 조금씩 풀리며 협곡 사이에 걸쳐지지 시작했다.

“엄마야, 이런 다리를 어떻게 건너요!”

다리가 세워지는 광경을 구경하러 나온 니사가 비명을 꽥 질렀다. 다리의 바닥은 안심하고 디딜 수 있는 ‘판’이 아니고 가는 봉이 1척 남짓의 간격으로 박혀 있는 성긴 구조였다. 이 위를 걷다가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가는 니사 같은 작은 체구는 밑으로 쏙 빠져나가고도 남을 모양새였다.

“게다가 옆으로도 출렁거리고…….”

“원래는 이보다 촘촘했는데 무게를 줄이느라 봉을 중간에 하나씩 뺐거든. 그래도 난간은 있잖나?”

카렐의 능청스런 대답에 니사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때, 세네피스와 함께 화물차의 후미 쪽에 있는 네피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쫓아오는 적군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그러시네? 내 눈엔 안 보이는데 지도하고 대충 비교해 보니까 15스타디아(2.25㎞)쯤 되나봐. 4백에서 5백쯤 되나봐.”

“15분에서 20분이면 오겠네.”

카렐의 마음이 급해졌다. 지나온 길에 마우저를 쏘아 일부러 사태를 일으켜 놓고 최대한 방해물을 놓고 오려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서둘러라!

카렐의 손짓에 줄을 당기는 병사들의 구령이 한 박자 빨라졌다. 바닥판은 건너편에 점점 가까워졌다. 완전히 풀린 바닥판이 반대편 절벽에 부딪치며 철커덕 하는 소리가 울렸다. 마르텔로가 병사 2명의 어깨를 탁탁 차며 건너편을 가리켰다.

“아직은 다리가 너무 느슨하게 매어있으니까 너희가 건너가서 저쪽 기둥에 와이어로프 고정하고 최대한 팽팽하게 당겨서 안 흔들리게 해! 그 다음에 차량이 한 대씩 건너가고 군인들은 각자 군장을 짊어지고 마지막에 건넌다!”

지시를 받은 상등병과 보병 1명씩이 윈치를 등에 짊어지고 강풍 속에서 아직은 아슬아슬하게 걸려 흔들리고 있는 다리의 와이어로프에 매달렸다. 50여명의 병사들은 이들이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다리 건너편과 줄을 최대한 팽팽하게 당기고 버티었다. 그 때, 머리 위 어딘가에서 핑 하는 귀에 익은 진동음이 울렸다.

“으익!”

다리에 매달렸던 2명의 병사들이 놀라 중심을 잃고 휘청 하며 발이 미끄러졌다. 뒤이어 또 한 발의 무언가가 머리 위에서 날아와 건너편에 어렵게 박아놓은 앵커의 고리를 땅 소리를 내며 후려쳤다. 그 충격에 건너편 앵커의 고리가 꺾이면서 어렵게 건 다리가 건너편에서 끊겨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다리 반대편과 연결된 줄을 붙들고 있던 50여명도 허둥지둥 줄을 놓고 한쪽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엄마아! 저거 도망가!”

눈치 빠른 자이납이 후다닥 달려가 병사들이 놓고 달아난 줄을 덥석 붙잡았지만 그의 힘으로도 200척 길이의 다리 무게를 받치기는 무리였다. 건너편 앵커에 박혀있던 케이블이 완전히 풀리면서 어렵게 건 다리가 그대로 바닥으로 쏟아져 이쪽 낭떠러지에 출렁거리고 부딪쳤다.

“우아아악!”

다리에 매달려있던 2명의 병사들이 끊어져 흔들리는 다리 중간에서 비명을 질렀다. 이젠 다리가 아니고 그냥 줄사다리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가만히 있어! 구해 줄 테니까 매달려 있어!”

마르텔로가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가려는 것을 베흔이 덥석 붙잡았다. 이들의 머리 위 어딘가에서 마우저가 마구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어떤 새끼야!”

베흔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다리가 거의 완성되기까지 끈기있게 기다렸다가 거의 완성되었다 싶은 순간 앵커를 부숴 치명타를 선사한 셈이었다. 뒤이어 길 오른쪽의 내리막 자갈밭에서 위장포로 온몸을 감싼 채 몸을 파묻고 숨어 있던 적병들까지 쏟아져 나와 석궁과 마우저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염병할! 매복이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두 명의 병사들이 머리 위 절벽에서 내리꽂히는 마우저에 발과 어깨를 맞고 나동그라졌다. 상등병 둘이 재빨리 달려 나가 쓰러진 둘을 질질 끌고 되돌아왔지만 이대로는 아무 곳으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 위는 분명 수직 절벽인데!”

구석에 달라붙은 베흔이 버럭 화를 냈다.

“이 다리 누가 어떻게 좀 해 봐요!”

그때까지도 줄을 붙들고 있던 자이납의 톤 높은 고함이 시끌시끌하게 주변을 울렸다. 그는 이미 끊어져 출렁거리는 다리 밑단과 연결된 줄을 붙든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어렵게 설치한 다리는 끊겼고, 매복에, 뒤를 쫓아오는 적까지 만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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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트는 초장부터 몇 편 계속 쎄게 나갑니다. ㅎㅎㅎ

과부의 한이 맺히게 한 쿠마르는 내내 팔자가 사납습니다.

잘 풀리던 카렐에게 첫 위기(?)입니다. 네코와 사카가 그냥 당해주지는 않죠. ^^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지 말고요~~~( ̄∇ ̄)ブ~~★

노블레스, 프리미엄도 그냥가시면 역시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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