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046화 (1,041/1,132)

< -- 1046 회: 파트 15. 고향으로 가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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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키를 갖고 도망간 네포프 칼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하임달 5번 행성에 내내 머물던 케스난은 그가 이미 동부에서 피살당한 것 같고, 그자가 가진 사제의 키를 이미 입수했다는 보안국의 비밀연락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물론 보안국의 연락에는 ‘아직 확실치는 않으니 일단 추적은 계속해 봐라.’라는 사족이 달려 있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황제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욕에 불탔던 그로서는 이만저만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쫓던 ‘프레소’인지 음료수인지 하는 녀석의 배후도 어느 정도 밝혀져 가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어쨌든 추적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교단에서는 네포프를 잡아오면 큰 수송 사업권을 넘겨주겠다고 했고, 교단 핵심부에 잠입하려면 없는 네포프라도 만들어내야 할 판이었다.

어쨌든, 네포프가 이곳에 있을 것 같다고 알려준 것이 그들이니 그도 일단은 보안국에서 받은 연락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지금까지 하던 추적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야 나중에 그쪽에 너희가 시킨 대로 할 만큼 했다고 화를 낼 핑계거리라도 생길 테니.

하지만 그 임무도 갑작스런 사건에 틀어지고 말았다.

“왜 너희들뿐이냐?”

케스난은 보랏빛 긴 원피스 치마 사이로 다리를 확 꼬고 앉으며 눈에 불을 켜고 물었다. 문 닫은 작은 광산 창고에 끌려온 3명의 길드원들은 마스터 앞에 꿇어앉아 벌벌 떨고만 있었다.

프레소를 찾는 임무를 맡은 부하 훈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당황한 케스난은 다시 수하들을 풀어 이번엔 그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렇게 사람을 풀어 반나절 만에 가까스로 찾아낸 건 훈트의 밑에서 조사를 맡았던 똘마니들 셋이었다. 정신병자처럼 엉망이 된 몰골로 악취를 풍기며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잡혀온 그들은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훈트에게 일이 생긴 건 알겠다. 내가 궁금한 건 왜 네놈들이 내게 안 오고 추접스럽게 터미널에서 찌린내를 풍기며 시궁쥐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냐는 거지.”

케스난이 팔걸이를 똑똑 두드리며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거실 사방엔 케스난에게 충성하는 경호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공포에 떨고 있던 길드원 하나가 결국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32번 백금 광산의 옛 관리자 명단에 프레소라는 이름이 있어서…….”

“그래서?”

케스난이 저 셋에게서 풍기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에게서는 하나같이 코를 찌르는 찌린내가 풍겼고 한 놈은 셔츠에 토한 자국까지 있었다.

“바, 밤중에 그쪽 몰래 잠입했다가 경비 용역에게 당했습니다.”

“허, 그냥 당한 자국이 아닌 것 같은데?”

케스난의 눈짓에 경호원 하나가 피투성이의 셔츠를 그들 눈앞에 휙 던졌다. 바로 이들이 뒷골목에서 잡혔을 때 속에 입고 있던 셔츠였다. 셔츠에는 어디에선가 튄 듯 핏방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케스난이 눈을 이글거리며 그 3명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미안하지만 광산 용역들은 그냥 묻어버리지 이렇게 피를 많이 내 가며 죽이지 않아. 내게 뭘 숨기는 거냐?”

그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케스난이 대뜸 그들 중 한 명의 뺨을 오른손의 갈고리로 사정없이 찍어 확 잡아당겼다.

“아, 악!”

단숨에 뺨이 꿰어버린 거구의 덩치가 악 소리를 지르며 케스난의 앞으로 질질 끌려왔다.

“네 이마에 바닥을 찧은 자국이 있어, 나 말고 어떤 놈에게 고개를 숙인 거냐?”

뺨이 꿴 거한은 바들바들 떨며 어벙벙해진 발음으로 무어라 소리를 내려 했다.

“즈어는 그냐 부잡펴…….”

“훈트를 네가 죽였든, 중간보스가 죽는 걸 보고도 연락도 안 하고 내뺐든 뒈질 짓이기는 매한가지지만 지금 입으로 실토하는 게 그나마 편할 거다. 앞니하고 손가락이 날아간 뒤엔 입술에 물고 펜으로 자백해야 할 테니까. 하긴, 그것도 안 하면 입술도 썰어주겠지만.”

케스난이 살살 속삭이며 그자의 뺨을 코앞까지 바싹 잡아당겼다. 덩치의 찢어지는 비명이 다시 거실을 울렸다. 케스난은 펜치와 절단기를 들고 성큼 다가오려는 경호원에게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했다. 거한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계속 버둥거렸다.

“자, 마지막 기회다. 훈트는 어찌된 거냐?”

“거, 거무늘 다하다…….”

덩치가 갈고리를 입에 문 채 더듬거렸다. 케스난이 짜증을 내며 갈고리를 확 빼내고 얼굴을 구두굽으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바닥에 튕겨나간 거한이 뺨을 쥐고 바닥에서 끙끙거렸다.

“너희 셋 다 쓰레기 같지만 제일 많이 실토하는 놈 하나만 살려주고 나머지는 스페이스에 산 채로 던져주마. 당장 떠들어 봐라. 어느 놈이 제일 시끄러운지 보자.”

주변을 조여 오는 경호원들의 기세에 파랗게 질린 수하 중 하나가 결국 울부짖으며 입을 열었다.

“32번 백금광산에서 자료를 갖고나오다 괴한들에게 잡혀서…….”

“괴한? 어느 괴한?”

케스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수하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한이 있어도 남의 손에 죽도록 놔두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이번엔 뺨이 찢긴 거한이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망을 보다 뒤에서 습격을 당했는데…….”

“몰라?”

케스난의 눈꼬리가 험악해지자 나머지 한 명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저희 모두를 순식간에 붙잡았는데 가디언인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폐광 비슷한 곳으로 끌려가 저희 보는 앞에서 훈트를 고문했습니다. 손톱을 뽑고 살을 지지고 성기를 잘라내는데 저희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훈트가 고문당하고 죽는 앞에서 오줌이나 질질 지리고 있었냐!”

부하가 죽었다는 것보다 적 앞에서 추하게 벌벌 떨었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난 케스난이 목소리를 높였다. 얻어맞고 고문을 당하는 건 분명 무섭긴 해도 배짱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길드원들에게 아주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자들이 모조리 오줌을 지리고, 심지어 풀려난 후에도 이렇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건 뭔가 이상했다.

겁에 질린 수하들이 울부짖었다.

“그냥……웬 키 큰 금발 남자 한 명이 있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그자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정말입니다! 보자마자 다리가 막 풀리고 떨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친구도 울다가 토했고…….”

“닥치지 못해!”

케스난의 목소리가 창고를 쩌렁 울렸다. 하지만 ‘키 큰 금발남자’라는 말에 무언가 퍼뜩 드는 느낌은 있었다.

‘염병할, 혹시 그 놈?’

케스난이 한쪽 주먹을 움켜쥐고 파르르 떨었다. 자신의 임무를 알고 있고, 부하들을 쫓아와 죽일 자라면 교단이 분명했다.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고 그간 주변을 일부러 눈에 띄게 어슬렁거리고 있던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훈트를 공격한 것도 그들, 그것도 바유 교단의 네코 마구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마구스라면 길드원들을 순식간에 울보 멍청이로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큰 키에 푸른 눈에 금발이고 엄청나게 잘생긴 새하얀 피부의 남자더냐?”

잠시 서로를 쳐다본 셋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그런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볼 때마다 다리가 풀리고……고문하면서 얼굴 들이댈 땐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훈트가 어찌되었다는 거냐?”

“한 시간 넘게 고문당하다가 죽었습니다.”

“놈들이 원한 답이 뭐냐?”

“그냥 저희가 뭘 알아냈는지 물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래서 놈들이 뭘 알아갔느냐?”

케스난의 이 물음에는 셋이 다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잘못 대답했다가는 적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이유로 끝장이 날 판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도서관 사서에게 받아 온 프레소라는 놈의 도서 대여신청서를 빼앗아갔습니다.”

“그걸 빼앗겼는데 훈트만 죽이고 너흰 살려줬으니 너희가 그 서류가 증거라는 걸 불었다는 뜻이구나?”

“아, 아닙니다! 저흰 아무 것도…….”

케스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피가 묻은 갈고리를 죽 닦았다.

“끌고 나가, 당장 돌아가 무슨 일이 있어도 훈트의 시체를 찾아와라. 충성을 다한 놈의 시체를 이런 데 놔둘 수는 없지.”

그는 제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 셋을 놔둔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경호원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저놈들은 어떡할까요?”

“그래, 상대가 상대니 실토한 건 넘어가도 훈트의 시체를 놔두고 싸돌아다닌 건 용서 못 한다. 훈트 가는 길 심심하게 않게 같이 묻어버려.”

케스난은 붙잡힌 자들의 울음소리와 절규를 한 귀로 흘리며 치맛자락을 끌며 성큼성큼 창고를 나섰다.

저 한심한 작자들의 처리가 아니어도 그에게는 깊이 생각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케스난에게 일을 맡겨놓고도 옆에서 대놓고 감시의 눈길을 부릅뜨고, 심지어 이번엔 심복까지 보란 듯 납치해 해치고 그가 어렵게 구한 자료를 중간에서 가로채버렸다. 자신이 완전히 이용당했다는 것에 화가 치민 케스난은 살름을 찾아 이번 일을 대놓고 화를 낼까 생각도 했지만 일단 ‘프레소’라는 작자의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조금만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나중에 살름 그 새끼를 어떻게 죽이면 잘 죽였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때, 케스난의 머릿속에 또 다른 의심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동부에서 죽었다는 그 네포프가 진짜일까? 아니면 혹시…….’

표정이 확 굳은 케스난이 갑자기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적이 ‘프레소’라는 이름까지 알아냈다면, 그것도 마구스 중 하나가 직접 찾아와 자신의 계획에 끼어들어 먼저 그자를 찾아낸다면 정말 낭패였다. 그자가 네포프가 아니라면 자신이 엉뚱한 정보를 쫓은 실없는 사람이 되는 꼴이고 교단에 잠입하는 건 물 건너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케스난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혹시라도 그자가 진짜 네포프라면……그땐 더 큰일이지.’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케스난은 쪽지에 [키가 가짜일지 모르니 절대 제거수술을 하지 마십시오.]라는 내용을 재빨리 적어 밀봉해서는 뒤따라오는 믿을만한 수하에게 넘겼다. 쪽지를 받은 수하는 다른 용무가 있는 척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갔다.

베흔 일행이 하임달 9번 행성에 도착한 건 예정대로 9월 11일 오후 무렵이었다. 그동안 좁은 쿠셋에서 뒤엉켜 지내느라 갑갑해 반쯤 미쳐가던 일행은 하임달 9번이 가까워진다는 말에 일제히 창이 있는 셔틀 캐빈으로 뛰어나왔다.

“그때도 저랬어요?”

자이납이 내심 실망한 듯 눈앞에 보이는 황량한 행성을 가리켰다. 한때 아케메니아를 훨씬 능가하는 낙원이었다는 고향 행성은 사방이 누런 빛, 혹은 군데군데 검푸른 빛으로 둘러싸인 별 볼 것 없는 황무지 행성 같았다.

“그럼 수십억이 몰살당한 땅에 꽃밭이라도 있을 줄 알았냐?”

베흔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우베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숨은 쉴 수 있는 거죠?”

때마침, 쿠셋에서 나와 뻐근한 몸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땅딸막하고 까무잡잡한 여자 상등병이 다가와 끼어들었다.

“뭐, 숨이야 쉴 수 있지만 기관지 세척 한 번 하면 되죠, 킥킥.”

“어휴.”

우베가 한숨을 내쉬며 몇 시간 전 부조종사에게서 건네받은 특수 마스크를 만지작거렸다.

베흔은 여자의 팔뚝에 있는 쇠창살 문신을 힐끔 보고는 물었다.

“산토스 상등병이라고 했소? 여기 말뚝이라 들었는데?”

“그야 여기만한 데가 없으니까.”

이 병사는 지난번 마르텔로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며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어나갈 듯 팔딱팔딱 뛰며 복도 어딘가로 휭 하니 사라져버렸다. 셔틀이 행성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표면의 모습에 점점 선명해져갔다.

“옛날엔 3분의 2가 바다였다면서요? 이게 뭐에요? 물은 하나도 안 보이네.”

라스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모래폭풍 때문에 있어도 안 보일걸.”

베흔은 비교적 최근―그래 봤자 160년 전 하임달 전투 때― 새로 나온 이곳의 표면 지도를 꺼내보았다. 행성 표면엔 과거 대륙이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비교적 높은 육괴 2개가 있고, 한때는 바다였을 저지대가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하임달의 결전이 있었던 분지는 북극 부근의 큰 고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과거에 바다가 있었다면 그곳은 지금 같은 고원이 아니고 큰 산을 낀 거대한 섬이었을 듯했다.

“허, 어느 시절 지도에요? 이거 이젠 하나도 안 맞아요.”

그새 복도를 한 바퀴 뛰고 돌아온 산토스 상등병이 킬킬거리며 또 오지랖 넓게 굴었다. 그는 지도에 있는 저지대―과거 바다였던―의 깊은 곳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임달 결전 직후에 한 30년 동안 저지대 판 경계에 걸쳐서 어마어마한 화산폭발이 연이어서 일어났었죠. 우리 주둔지 부근에서도 두세 건 있긴 했는데 저지대에서 난 것만큼은 비교도 안 돼요. 우리가 재배치되어 돌아왔을 땐 기지가 온통 화산재에 뒤덮여서 그거 파내는 데만 몇 달이 걸렸어요. 그맘때 화산재가 덮어서 수십 년간 어마어마하게 추웠죠.”

“지금도 그래요?”

겁먹은 라스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물었다. 상등병이 킬킬거리며 라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휴, 예쁘장한 친구가 귀엽게 굴기까지.”

그 모습에 괜히 발끈한 자이납이 얼른 라스와 산토스 상등병 사이에 쑥 끼어들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다는 거예요?”

당황한 산토스 상등병이 얼른 표정을 사무적으로 바꾸었다.

“화산폭발 이후로 날씨가 도깨비가 됐어요. 추위가 지나가니까 갑자기 더워지고 적도 부근에 큰 비가 자주 오기 시작했어요. 나야 무지렁이라 잘 모르지만 프레소 녀석 말이 무슨 입자가 많아져서 연쇄반응으로 비가 오는 거라더군요. 100년 넘게 비가 내리면서 옛날에 육지였던 저지대 중에 꽤 몇몇 곳은 지금은 제법 큰 호수……뭐, 너그럽게 보면 작은 바다라고 할 만한 곳도 생겼어요. 고지대엔 개울이 생긴 곳도 있고요.”

베흔과 코나가 슬쩍 서로 마주보았다. 비록 굉장히 느리긴 하지만 하임달 9번 행성을 언젠가 ‘낙원’으로 만들겠다는 누군가의 꿈이 사람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마침 셔틀이 행성의 대기권에 접어들면서 탁 트였던 창밖이 짙은 갈색의 먼지구덩이로 바뀌었다.

“허어, 여기 조종사는 뽀나스라도 좀 주라고 해야것네.”

셔틀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자이납이 벌벌 떨며 벽을 짚었다. 몇 스타디아 앞도 제대로 분간 못 할 짙은 모래폭풍 속에서 셔틀이 어떻게 항로를 찾아가고 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고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모래폭풍은 점점 더 짙어졌고 셔틀은 당장 부서질 듯 쿵쾅거리고 흔들렸다. 지금이 한낮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엄마야, 근데 우리 길 맞게 가고 있는 거예요? 무슨 한낮이 이래?”

라스가 유리창에 달라붙어 벌벌 떨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나는 것이 아닌지 바싹 얼어붙어 있는 베흔 일행과는 달리 이곳 분견대 병사들은 내릴 준비를 한다며 목에 수건을 걸고나와 흥얼거리며 사방에 널어놓았던 속옷을 걷어가고, 막 세수를 하고 나와 물기투성이로 머리를 털며 돌아다녔다.

“뭐 평소보다 좀 심하긴 하네요.”

산토스 상등병이 또 오지랖을 떨고 갔다. 베테랑이 저리 말할 정도면 오늘 날씨가 좀 안 좋긴 한 모양이었다. 흙먼지 속에서 기체가 몇 번이나 방향을 틀고, 고도를 오르내리며 한참을 요란을 떨었다.

웬만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흔까지도 참다못해 창에 얼굴을 붙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악천후라도 무슨 착륙이 이래? 꼭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베흔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고봉들의 실루엣이 긴 지평선을 덮고 있는 행성 표면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자이납이 기지를 찾으려 바닥을 내려다보았지만 그냥 시커멀 뿐이었다.

“여긴 착륙 유도등도 없대요? 도대체 기지가 어디야?”

그때, 마치 일행들을 놀리듯 갑자기 모래폭풍 사이로 십여 채의 조립식 막사와 초소들이 있는 공간이 마술처럼 돌연 확 드러냈다.

“흐익.”

지레 놀란 일행이 움찔했다. 짙은 모래폭풍에 휩싸인 기지는 착륙 유도등이나 신호수는 고사하고 건물까지도 불이 다 꺼져있어 마치 유령의 마을 같았다.

3일을 달려온 이 늙고 육중한 셔틀은 착륙이 가능할까 싶은 상황에서도 딱 한 번 쿵 소리를 내고 바닥에 한 번에 내려앉았다. 잠시 가슴을 쓸어내렸던 베흔이 혀를 내둘렀다.

“조종사 실력이 최고라더니 진짜 명불허전이네. 아무래도 이놈 조종사 우리 시라즈 기동셔틀에 스카웃이라도 해야겠는걸.”

때마침 방송에서 부조종사의 장난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아, 제국의 제일 변방, 수십만의 귀신들과 동고동락하는 하임달 분견대 기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시각 9월 11일, 15시, 대낮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짐을 챙겨 나와 셔틀 문 앞에서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베흔 일행에게 문 옆을 지키고 있던 선임사관 마르텔로가 입술을 똑똑 두드려 보였다. 이곳에 익숙지 않은 일행들은 그제야 어색한 마스크와 고글로 입과 눈을 가렸다. 마르텔로가 주먹으로 문을 쾅쾅쾅 세 번 치고 나서는 입구를 확 열었다.

“우읍!”

생각 없이 앞쪽에 있던 우베가 갑자기 밀려들어온 맹렬한 바람에 몇 걸음 뒤로 밀려나 베흔의 가슴에 꽝 부딪쳤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앞으론 문 앞에 바싹 붙지 마쇼.”

마르텔로가 낄낄대며 일부러 조그만 우베와 라스를 제일 먼저 밖으로 확 밀어냈다. 그 거구의 힘에 밀려 타탁거리며 밖에 나온 순간, 너무도 낯선 풍경에 둘은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어버렸다.

“저, 정말 이런 곳이었어요?”

분명 낮 시간이지만 하늘은 온통 누런빛이고, 해는 보이지 않았다. 검거나 뿌연 미세먼지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맹렬히 몰아쳐 주변 풍경도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작 멀리 보이는 기지 뒤쪽 웅장한 고봉 산맥의 실루엣 정도가 희미하게 드러날 뿐이었다.

“근데 산 모양이 꼭 상어 등지느러미 같네.”

우베가 가리킨 기지 뒷산은 서쪽으로는 가파르고 동쪽으로는 둥글고 완만한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뒤따라 나온 프레소가 슬쩍 거들었다.

“전향력 때문에 산이 천 년 넘게 모래하고 화산재가 섞인 강한 서풍만 맞아서 그렇습니다. 산 서쪽면은 심토까지 다 날아가서 돌산이 됐고, 동쪽면은 날아온 모래와 화산재가 쌓여서 푹푹 빠지는 모래산이 되었죠. 여기 산의 모양이 대체로 다 그렇습니다.”

우베가 몇 마디 더 물어보려 했지만 프레소는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래폭풍 사이로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그때만 해도 안 이랬는데.”

두툼한 마스크를 쓰고 뒤이어 나온 베흔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하임달의 결전을 치렀을 무렵의 이곳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비록 황량하긴 해도 바람도 거의 없고 흩날리는 짙은 재도 없는, 나름 지낼 만한 곳이었다.

“그래, 여기가 고향 행성이라니.”

비록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오랜 기억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 베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히 건물로 향했다. 이곳은 더 이상 그가 기억하는 그곳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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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고 가시면 밉습니다~~~( ̄∇ ̄)ブ~~★

진도가 빨라서 잘하면 출판본 7, 8권 총 완결본은 예년보다 빨리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리미엄도 빨리 따라잡으려 하루 5편씩 광연재중인데 따라와주시는 분이 거의 없으니 새로 올리기가 민망할 지경;;; 조회수가 무료 연재본 10분의 1만 나와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쿨럭;;

몸풀기중인 차기작으로 명예회복이나 노려야 할는지. -_-;;

아참, 올레eBook에서도 전자책 판매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스24 등에서 전자책 2부는 1부와는 다른 시리즈로 묶여있으니 [혈맥]으로 검색하시면 찾을 수 있으실 겁니다.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출판본 종이책 주문게시판 http://www.vein.pe.kr

전자책(eBook) 서비스 : 유페이퍼, 예스24, 교보문고(예정)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리브로, 인터파크, 올레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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