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39 회: 파트 15. 고향으로 가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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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일지 3권을 입수한 것일까요?”
트라에타오나 교단의 아트위야 마구스가 다른 마구스들을 둘러보며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항상 밝기만 하던 이 현신의 표정이 굳어 있는 모습에 다른 마구스들도 약간씩은 불안한 눈빛들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샤마시 교단의 거구 살름 마구스가 불만어린 표정으로 아라무트의 카히나 성에서 돌아온 바에자를 쏘아보았다. 한 달여 전, 카히나 성을 함락시켰을 때만 해도 황제가 치료할 길을 막아버렸다며 영웅처럼 의기양양했던 바에자는 황제가 돌연 삼각루트 재건을 발표하고 하임달 9번 행성을 황제령으로 편입시키면서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놈들이 대신관 팔찌까지 입수한 것이라면 더 난감해지죠. 이미 에아 팔찌가 있으니 방법만 안다면 황제령에서 하임달까지 삼각루트를 뚫을 수 있으니.”
살름이 바에자에게 계속 빈정거렸다. 할 만큼 해 놓고도 죄인 취급받는 것이 불쾌해진 바에자도 상대의 거구에 기죽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확 노려보았다. 그때, 아직 마구스 경력이 짧은 바유 교단의 네코 마구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황제령의 삼각루트 시설이 아직 온전하겠습니까? 400년 가까이 지나서 다 삭아서 작동 안 할 텐데요? 남부도 통제소 다시 손보느라 몇 달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전 아케메니안 궁이 무너졌을 때 스페이스의 워프루트에 신호를 보내는 지상 부분 발신기도 다 날아갔을 테고요. 유평제가 그 위에 다시 황궁을 세웠으니 이전 시설은 어차피 다 먹통 아닌가요?”
“그렇다면 퍽이나 좋겠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경력이 긴 땅딸보 가르시바 마구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291년 하임달의 결전 때 그 장치가 작동되었던 기록이 있어요.”
“아니,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죠?”
“오르마즈 그놈이 지금 황궁을 지을 때 발신기와 삼각루트 시설을 몰래 되살렸다는 말이지 뭐겠소. 당시에 오르마즈 그놈이 유평제 밑에서 총리대신으로 건설 책임자이지 않았소.”
“아우, 그 징글징글한 놈.”
네코와 몇 마구스들이 지금까지도 이들의 발목을 계속 붙잡는 죽은 오르마즈의 용의주도함에 치를 떨었다.
“아하, 그러고 보니 33년 전에 바에자 현신이 헤네티 수백 명으로 황궁 기습했을 때 임무 중에 거기 삼각루트 시설을 파괴하고 에아 마구스 딸년 잡아오는 것도 있지 않았소?”
심술궂은 살름이 다시 시비를 걸자 바에자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비록 코리온과 사에나의 임기응변으로 실패는 했지만 아스트라이아 홀을 무너뜨리고 황궁 전체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나름의 전과를 올렸었다. 루토를 포로로 잡은 것도 그때였다. 하지만 한때 콜로니를 풍미했던 명장으로 패전이라고는 해 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만큼, 그날의 첫 실패는 바에자에게 한이라고 해도 될 만큼 뼈저리게 남아있었다.
“그만들 하시오.”
상석에 앉아 내내 딴생각을 하던 대신관 이디나가 살름과 바에자의 짧은 충돌을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뭔가 어색해진 분위기에 분위기 돌릴 거리를 찾던 아트위야기 이디나의 가슴과 아랫배를 힐끔 쳐다보았다.
“요즘 입덧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신다더니 다행히 살이 빠지지는 않으셨습니다. 이제 2개월이나 되었나요? 벌써 몸이 약간 변하신 것 같군요.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랍니다.”
“고맙소, 염려해주신 덕분에.”
이디나가 살짝 웃으며 흐뭇하게 아랫배를 더듬었다. 쿠마르의 말대로, 초기에 사용한 배란촉진제와 약물 덕분에 뱃속의 아기는 일반적인 자연임신보다 한 달 가까이 빨리 자라고 있었다. 덤으로 입덧까지 빨리 찾아와 가뜩이나 입이 짧은 이디나를 힘들게 했지만 최소한 그는 아기 생각을 할 때마다 어느 때보다 기분만은 좋아보였다.
“어쨌든 우리는 한 발 앞서 작업을 시작했고, 앞서가는 입장이니 너무 초조해하시들 마시오.”
이디나의 손짓에 잠시 날을 세웠던 살름도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하임달 9번에 황실 분견대가 몇 명이요?”
이디나의 물음에 아트위야가 냉큼 대답했다.
“옛날엔 100명 넘게 머물렀지만 지금은 교대되는 거 생각하면 40명이 전부입니다. 전투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라서 가디언도 없고 정규군만 있나봅니다. 여기에 30년 전부터 하임달 전투 유골 발굴단이 20명쯤 들어와 있고요. 그 이상 늘리고 싶어도 항속거리가 받쳐주는 셔틀이 2, 30명 남짓 타는 셔틀 두 대뿐이라 못 늘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디나가 이번엔 가르시바 마구스 쪽을 돌아보았다.
“지난번 지시한 수송선 개조는 다 끝났습니까?”
“시험비행 중이지만 말씀만 주시면 쓸 수는 있죠.”
가르시바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원래 2000명 타던 것을 개조하느라 유용공간이 많이 줄었지만 완전무장한 500명과 40~50일분 식량 정도는 충분히 실을 수 있습니다. 대신관께서 딱 시기적절하게 판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평소 아부와도 거리가 멀고 칭찬에도 인색한 가르시바지만 이번만은 이디나에게 솔직히 본심을 드러냈다.
이디나가 아버지에 이어 대신관에 오르자마자 황실에 공격적인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제일 먼저 지시한 것이 하임달 9번까지 직접 갈 수 있는 장거리 개조 수송선의 확보였다.
하지만 개조에 상당한 돈이 들고 내부 용적도 절반으로 줄어드는데다가 일단 삼각루트가 열리면 늘어난 항속거리는 어차피 쓸데없는 무용지물이 되어 괜히 돈만 버리는 게 아니냐며 같은 마구스들도 이구동성으로 반대했었다. 그렇지만 이디나가 삼각루트 복원을 계획하면서도 한편으로 삼각루트를 우회할 수 있는 수송선 개조를 지시한 건 나름의 복안이 있었다.
“남부 놈들이 검은 철성과 황금탑을 우리에게 주기로 했지만 솔직히 말해 믿을 놈들은 아니지. 만일을 대비해 하임달에 우리가 선발대를 보내놓는 게 좋겠습니다.”
이디나는 바로 왼쪽의 7시 방향에 앉아있는 잘생긴 금발에 벽안의 미남자를 돌아보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네코 현신께서 비행에 능하시고, 군 경험도 많고 기상과 지질 전문가이시니 거의 맞춘 듯 적당하군요. 내 코런덤 50명과 공병대 100명을 줄 테니 그대의 헤네티들 350명쯤 보태어 먼저 가서 그곳을 선점하고 있으시오. 나중에 남부 놈들이 와서 군말 못 하게요. 가는 길에 하임달 5번에서 그 외팔이 년이 네포프 칼리 놈을 잘 찾고 있는지도 한 번 확인하시고요.”
“불릿을 타도 하임달 5번에서 꼬박 하루는 걸릴 텐데요. 수송선은 5, 6일은 걸릴 테고요.”
네코는 차마 싫다는 말도 못 하고 간접적으로 슬쩍 불평을 드러냈다. 하지만 역시나 매만 벌 뿐이었다.
“그러니 불릿이 있는 현신 중 하나가 가야지요. 아트위야 현신은 사제의 키를 찾는 임무를 맡고 있고, 바에자 현신은 전투 지휘를 맡고 있고 가르시바 현신은 운영을 맡고 있고 살름 현신은 55호 바이러스 연구를 맡고 있으니 어차피 할 일 없는 건 그대밖에 더 있소?”
“게다가 2000급의 수송선이라면 항로에 깔아놓은 황실군 통신 중계용 비컨에 잡힐 겁니다. 우리가 가는 걸 빤히 알 텐데…….”
자꾸 빼려 하는 네코에게 이디나가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리 배짱이 없으세요? 알아도 무슨 상관입니까? 분견대 놈들 본토와의 통신도 차단할 겸 가면서 다 부수어버리세요. 황실군에서 거기 갈 수 있는 건 고작해야 2, 30명 타는 셔틀 두 대 뿐이라잖습니까? 황실 놈들은 공격받아 통신 끊긴 걸 알아도 당장은 대응할 방법도 없어요. 오는 놈들 있으면 적당히 밟아주시고요. 남부와 삼각루트 개통이 2달도 안 남았으니 검은 철성 차지하고 그냥 기다리기만 해도 됩니다.”
이디나의 능글능글한 웃음에 네코는 한숨만 내쉬었다. 이디나가 대신관이 되기 이전 제거하려 했다가 완전히 목줄이 잡혀버린 네코는 이번에도 찍 소리 못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 황궁에 다녀오겠습니다.”
바에자가 불쑥 끼어들자 마구스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의 느닷없는 제안에 이디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궁에는 왜요?”
“지난번 황궁 지하의 에아 신전을 덮쳤을 때 삼각루트 관제시설을 못 부수고 빠져나온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가서 황실 놈들이 황제령에서 하임달로 감히 루트를 뚫지 못하도록 아예 뿌리를 뽑고 오겠습니다. 설욕전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디나는 안 그래도 옛 패전의 흉터를 지우지 못하고 있는 바에자의 부아를 긁어놓은 살름을 슬쩍 노려보며 ‘작작 좀 하시지.’라며 입놀림으로 핀잔을 주었다. 바에자가 패전의 경험이 없었다는 건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첫 패전으로 입은 충격이 몇 배는 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조금 전 일로 자존심이 상한 바에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관제시설의 제어판은 에아 신전의 카타콤베 출입문 옆의 공개된 자리에 떡하니 있어서 도리어 공격하기 힘듭니다. 대신 그 제너레이터 장치를 부수면 됩니다. 그걸 되살리려면 몇 달, 몇 년은 걸릴 겁니다.”
“그게 어딨는데요?”
아트위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바에자가 냉큼 대답했다.
“카타콤베의 옛 폐쇄된 실험실 안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우, 그 표본병 그득한 소름끼치는 곳? 난 돈 주고 가래도 싫어.”
가르시바가 몸서리를 쳤다. 아직 젊어서 그곳에 가 본 일이 없는 젊은 이디나와 네코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 가 본 일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오만……거기가 내 할아버지 야푸르께서 숨을 거두신 곳 아니요?”
“예, 맞습니다. 표본병이 제게 덤빌 일은 없을 테니 제 부하 세 명과 다녀오면 충분합니다. 황제가 삼각루트를 영영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놓겠습니다.”
“그래도 황궁인데 너무 위험할지도……놈들도 이전에 한 번 당했던 자리를 또 당하겠소?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시지 않습니까??”
이디나가 머뭇거렸다. 33년 전처럼 황제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제위 초의 전시도 아니고, 모든 틀이 다 갖추어진 제국에서 이전에 한 번 공격을 했던 황궁 지하에 명색이 현신이 다시 들어가겠다는 시도가 그의 눈에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지난 호드르 시에서 페로에게 입은 옆구리 부상과 카히나 성에서 다친 것도 완전히 나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제대로 상한 바에자는 여전히 강경했다.
“놈들은 카타콤베까지는 발견했지만 아직 표본실은 존재도 모르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방법도 알 리가 없고요. 싸움 한 번 없이 감쪽같이 파괴하고 돌아나올 자신이 있습니다.”
바에자의 강력한 요구에 이디나도 하는 수 없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케스난이 한 지역에 이렇게까지 오래 머문 일은 퍽이나 드물었다. 하지만 워낙 음지에서 활동하는 데 익숙한 그에게 하임달 5번 행성의 지하 컴플렉스에 머물며 북부길드를 이끄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임달 5번 행성의 대부분 지역은 바깥 거주가 불가능해서 두더지처럼 내내 땅 속에서 사느라 얼굴이 누렇게 뜰 지경이 되었지만 이곳은 밑바닥 암흑가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천국이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에게 도리어 어려운 건 교단이 의뢰한 네포프 칼리의 꼬리를 잡는 일이었다. 황제가 동부에서 ‘네포프 칼리 살해사건’으로 의심되는 기록을 찾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그는 이곳에서 여전히 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는 하임달 5번에서는 제일 고급의 호텔에 머물며 네포프와 그를 데리고 있었다는 ‘몸 절반에 화상을 입은 자’에 관한 목격자를 찾아 거의 10명 가까운 똘똘한 심복들을 풀어놓았다.
황실의 공식적인 수사관이나 요원들과는 달리 밑바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심복들은 창녀와 술집, 술주정뱅이와 죄수 출신들을 가리지 않고 자료들을 모았고, 때로는 납치나 협박, 고문에 심지어 조합이나 관공서의 자료까지 터는 ‘썩 합법적이지 않은’ 수단까지 서슴없이 써 가며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다.
그 기간 내내, 케스난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교단의 시선을 가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교단이 자신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임무도 일종의 시험이나 최악의 경우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지만 일단은 모른 척 주어진 일을 최대한 성실하게 밀어붙였다.
언젠가 살름의 귀띔에 따르자면, 이번 임무만 성공하면 교단과 하임달 9번 행성 사이를 오가는 중요한 화물을 20년 이상 독점 취급하는 권리를 줄 것이라는 것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대의 화물선을 운용하는 운송업자의 탈을 쓰고 있는 케스난으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큰 건이었지만 더 중요한 건 교단이 ‘뭐 하나 볼 것도, 쓸모도 없는’ 하임달 9번 행성과의 사이에서 무려 20년간이나 화물을 날라야 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내내 허탕만 치던 그는 20일째 되는 날에야 무언가 눈길이 가는 자료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하임달의 딱 하나뿐인 공공도서관에서 하임달의 결전 2년 후인 293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달 간격으로 꾸준히 책을 빌려가는 한 남자의 기록이었다. 중간에 몇 번 구멍이 난 일이 있기는 해도 이 남자는 놀랄 만큼 규칙적으로 책을 빌려갔고, 그 오랜 기간 연체도 거의 없었다.
“프레소? 무슨 이름이 이래? 꼭 음료수 이름 같네.”
케스난의 물음에 그의 수하 훈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케스난의 휘하에서 사람들 뒷조사를 주로 맡고 있는 이 수하는 빌려간 책의 목록을 다시 가리켰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성이 없고, 빌려간 책의 절반 이상이 유학 책이라는 거죠.”
“그래, 무슨 의미인지 알아.”
케스난이 킬킬거렸다. 제국 평민 중에는 성이 없는 사람들도 제법 많지만 대부분 사교도들이었다. 반대로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없는 성이라도 만들어야 정상이었다.
“마지막에 빌려간 게……염병할, 어제잖아? 그럼 다시 나타날 때까지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냐?”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단 성직자 중에도 학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놈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오래 단골로 드나들었다면 사서들도 당연히 이자의 외모를 알겠지?”
“당연히 조사해 왔습죠. 성직자는 절대 아닙니다.”
훈트는 손으로 직접 능숙하게 그린 몽타주를 내놓았다. 푸른 눈에 짧게 친 옅은 갈색 머리칼, 길고 갸름한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진, 큰 특징 없는 코카서스인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가 가진 자료에 있는 네포프 경의 얼굴과 비슷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기 큰길 막고 서 있으면 이런 놈들 1분에 한 명씩은 걸리겠다.”
케스난의 시큰둥한 반응에 훈트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본다는 사서들도 호리호리한 체형에 굉장히 미남이라는 것밖에는 별 특징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키가 6척 1촌(183cm) 정도라니까 북부에선 평범한 키고 이런 얼굴형의 남자는 대개 호리호리한 몸매니 그것도 특징이라기는 어렵습니다.”
“그 오랜 기간 도망을 다닐 정도면 분명 성형수술을 했겠지. 나름 평범한 얼굴에 가깝게 했겠지만 원래부터 유명한 미남이었으니 그 틀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 외엔 특징 없어?”
“머리가 항상 짧았다는 걸 보니 광산에 광부로 있거나 군인일 가능성이 있고…….”
“여기 사람들 절반 이상은 광부야.”
“목소리는 항상 조근조근하고 어휘나 문장을 봐서 많이 배운 사람이 분명해 보였답니다.”
“그럼 무식쟁이가 한 달에 5권씩 책을 빌리겠나?”
케스난이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의심은 가지만 조사는 여기서 딱 막혀버렸다.
케스난은 교단에서 그에게 넘겨준 네포프 칼리의 유전자 칩을 꺼내보았다.
“그자의 유전자 자료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 잡지는 못해도 확인만이라도 가능할 텐데.”
“그래서 거기 사서에게 돈을 좀 찔러주고 그자가 손으로 작성한 서류를 뒤져달라고 했습니다. 2, 3일 이내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하면 표면에서 DNA를 검출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케스난은 그의 손에 칩을 넘겨주며 덧붙였다.
“그건 그거고, 이자가 다시 도서관을 방문할 날까지 기다릴 순 없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책을 빌려가고 반납한 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책을 빌려간 날짜의 공통점을 알아보고 범위를 좁혀 봐. 여기 광산들은 정해진 날짜에만 광부의 외출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공통점이 있는 광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군인들도 마찬가지고.”
“알겠습니다. 더 알아보고 최대한 빨리 보고 올리겠습니다.”
수하를 내보낸 케스난은 다 식어버린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돌가루로 가득 덮인 하임달 지하의 삭막한 풍경을 내다보았다.
“이거 드세요.”
아들 발렌틴의 목소리에 케스난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새 어떻게 알았는지 쟁반에 따뜻한 차와 과자를 담아 엄마에게 가져오고 있었다. 케스난의 입가에 새삼 미소가 흘렀다. 이 야무진 아들을 볼 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지난 얼마간 세네피스와 함께 지내고 돌아온 발렌틴은 모처럼 엄마 품에 돌아와 기분이 좋아보였다.
케스난은 아들이 가져온 찻잔을 받아들고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항상 똑똑하구나.”
“지난번에 수베르 갔을 때 황상께서 이거 주셨어요.”
발렌틴은 사뭇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목에 건 오팔 조각 펜던트를 내보였다.
“그런데 황상께서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좀 말라 보이셨어요. 어디 아프신가 봐요.”
아들의 말에 케스난의 가슴이 탁 막혀왔다. 그가 찾아야 할 사제의 키도 딱 저 모양, 저 색깔의 보석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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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트는 황궁과 이디나가 있는 타르서스, 케스난과 (베흔, 코나가 곧 갈) 하임달의 3원 중계입니다. ㅎㅎㅎ 조만간 초짜 꽃미남 마구스 네코도 마구스로서의 숨겨진 능력을 드러낼 듯합니다. (알고보면 정말로 아주아주 무서운(???) 남자입니다.)
그나저나 여유분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는데 과거편 빼고 진행하니 연재 진도가 굉장히 빨라져서 돌연 제가 쫓기는 느낌이 되었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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