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021화 (1,016/1,132)

< -- 1021 회: 파트 13. 과거로의 길을 누가 열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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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욱!”

그가 떨어진 곳은 중앙바위 북쪽 아래 공장골목이었다. 리프트케이블의 브레이크를 걸기는 했지만 거리를 제대로 못 잡았는지 허름한 창고의 지붕을 제대로 디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수며 안쪽으로 쑥 빠져들었다. 부서진 지붕재와 함께 건물 안으로 쑥 꺼진 그는 안에 가득 쌓인 상자와 석회포대 위를 차례대로 부딪치며 굴렀다.

루토는 바에자를 꽉 끌어안고 그에게 가해질 충격을 자신의 몸으로 모조리 받아냈지만 마지막 순간 결국 팔의 힘이 풀리며 품에서 놓치고 말았다.

“끄, 윽.”

몇 바퀴를 데굴데굴 굴러 먼지 쌓인 바닥에 나뒹군 루토가 화상을 입은 팔을 움켜쥐고 파르르 떨었다. 두 사람 몫의 충격을 혼자 다 받아낸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뇌진탕이라도 왔는지 눈앞도 흐릿하고 정신이 어질어질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끊어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들고 간절한 이를 불러보았다.

“현신님, 어디 계십니까.”

그는 조명도 없는 어두컴컴한 창고 안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바에자는 그에게서 30척(9m) 정도 떨어진 곳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형편없는 착지였음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크바르나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인지 마치 꿈에 있는 것 같았다.

“현신님, 괜찮으십니까?”

루토가 떨리는 목소리로 바에자를 불렀다. 바에자가 꿈틀거리며 고개를 드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 넌 괜찮냐? -

바에자의 의식이 머릿속을 울리자 루토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전 괜찮…… 쉿.”

루토가 입을 얼른 다물었다. 누군가 창고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바닥을 디디는 것이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의 스텝이었다. 루토는 바위산 위에서 함께 뛰어내린 근위대 병사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멀찍이 있는 창고의 허름한 나무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예상했던 근위대 병사가 아니었다.

‘민간인?’

긴장한 루토가 칼자루를 쥐었지만 제대로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중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짧게 친 머리칼의 남자였다. 바싹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루토는 남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온몸의 털이 바싹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말라 움푹한 뺨이 남자의 음산한 웃음과 함께 더 도드라졌다. 피로 흠뻑 젖은 짐꾼 셔츠 옷깃 사이로 불쑥 솟은 승모근과 단단한 흉근이 보였다.

‘저놈 뭐야?’

루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그는 다시 팔이 풀리며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무언가 기분 나쁜 냄새가 느껴졌지만 의식이 흐려 무언지 가물가물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의 손에 들린 무언가가 희미한 달빛에 반짝거렸다.

“이, 이런.”

루토가 자리에서 의미 없이 버둥거렸지만 남자는 그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자는 화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바에자에게 발소리 하나 없이 다가갔다. 바에자에겐 아무 무기도 없었다. 루토는 그제야 이 남자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무언지를 깨달았다.

“피다이…….”

중화상을 입고 쓰러진 바에자도 이 소름끼치는 남자의 기운을 느꼈는지 석회포대 밑으로 엉금엉금 기어 그에게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어떡해서든 바에자를 지키려는 마음에 루토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렸지만 힘이 빠진 팔다리는 야속하게도 말을 듣지 않았다. 불에 탄 마우저는 떨어지며 내버려야 했다.

“이, 이놈, 나한테……덤벼, 이 망할 놈아.”

루토가 절규가 허망하게 창고 안을 울렸다.

막 포대에 매달려 일어나려는 바에자의 등을 무릎으로 콱 내리찍은 그 남자는 그의 목을 뒤로 휙 꺾더니 연필 깎는 작은 칼로 고기를 썰듯 옅게 베어버렸다. 목젖이 잘린 바에자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남자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얕게 썰어 그의 목을 아주 천천히 잘라냈다. 숨이 붙은 채 버둥거리는 바에자의 피가 주변을 웅덩이로 만들었다.

“아, 아아악!”

숨이 붙은 바에자의 목이 포를 뜨듯 조금씩 썰려나가는 끔찍한 광경에 루토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바에자의 몸부림과 경련이 조금씩 약해지더니 결국 그의 손이 힘없이 뚝 떨어졌다.

“경고를 어긴 대가다.”

바에자의 목을 거의 잘라낸 피다이는 시체를 석회포대 앞 바닥에 내버려둔 채 일어나 루토를 돌아보며 다시 웃었다.

“데이가 직접 다녀갔다고 네 수장에게 일러라.”

남자, 아니 피다이의 수장 데이는 끔찍한 죽음을 맞은 바에자의 시체와 아직 숨이 붙은 루토를 놓아둔 채 아무 일도 없던 듯 창고 밖으로 사라졌다.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던 루토는 결국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퇴로가 뚫렸다! 중앙 바위와 서쪽 바위 정상으로 집결해!”

중앙 바위를 탈환하면서 공중의 퇴로가 뚫리자 궁지에 몰려 있던 크바르나들과 제후군 정규군들이 서둘러 집결지로 물러나오기 시작했다. 베흔이 있는 서쪽 바위 위도 시가지에서 퇴각해 온 군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버글거렸다.

공중을 선회하던 수송선이 로프를 내려주자 크바르나들과 정규군들이 줄줄이 줄을 타고 올라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이 처음 공격을 개시했을 때 에너지장벽 때문에 바로 강습을 못 하고 10분 가까이를 지체한 것이었다. 신전을 지키던 위병 한 명의 용감한 행동으로 그 짧은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완전히 고립되어 못 빠져나온 군인들은 많지 않았다. 수백 년간 정을 붙이고 살아 온 성을 적의 손에 내주고 물러나오는 크바르나들의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베흔과 코나는 눈에 불을 켜고 자이납과 라스를 찾았지만 그 둘의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빌어먹을! 그 천방지축 년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바위 정상으로 올라오는 군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베흔이 버럭 화를 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가 그토록 총애하는 자이납을 놓고 간다면 후환이 보통이 아닐 것이 뻔했다. 그나마 저항을 펼치던 병력까지 빠져나가면서 바위 아래 시가지는 제 세상 맞은 듯 뛰어다니는 근위대 병사들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없어요! 못 나왔나봐요!”

몰려 올라오는 군인들을 헤치고 바위 아래까지 뛰어 내려갔다가 돌아온 우베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쩌죠?”

우베는 연결도 되지 않는 자이납의 할룩스 코드를 재차 두들겨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코나는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코리온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들이 자이납을 찾아 헤매는 사이, 서쪽 바위로 올라온 크바르나들과 제후군들은 탈출용 수송선에 거의 올라탄 상태였다.

“지체할 시간 없습니다! 빨리 타세요!”

퇴각을 지휘하던 크바르나 장교가 여전히 계단 앞에서 미련을 못 버리고 발만 구르고 있는 베흔 일행을 재촉했다.

“조금만, 10분만 더 안 돼요?”

우베가 애원했지만 장교는 화난 얼굴로 손을 저었다.

“성 주변 포위한 근위대들이 벌써 장애파 깔기 시작했어요! 지금 안 나가면 수송선이 추락한다고요! 지금도 위험해요!”

“하지만 어떻게…….”

자이납을 적진에 놓고 가야 한다는 말에 우베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구석에서 죄인처럼 웅크리고 있던 코리온이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주머니에서 리모콘을 꺼내들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분견대에서 내가 타고 온 불릿을 몇 분이면 불러올 수 있으니 수송선은 먼저 보내라.”

“그놈의 선심 좀 일찍 쓰지.”

코나가 이를 드러내며 손에 철퇴를 쥐고 계단 앞에 섰다. 베흔이 먼저 가라고 손짓을 보내자 퇴각용 수송선은 그의 일행을 서쪽 바위 꼭대기에 놓아둔 채 공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샤드 경과 울피가 있는 중앙 바위 정상에서도 2척의 수송선이 군인들과 성직자들을 싣고 이곳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민망한 얼굴로 한쪽에 웅크리고 있던 코리온은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정상 한쪽에서 죽어 있는 근위대 사관의 시체에 다가갔다. 그자의 어깨에는 전사와 함께 연결이 해제된 할룩스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체에서 할룩스를 슬그머니 떼어낸 코리온은 포병들이 쓰던 공구함을 집어 들고 다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뭐 하는 겁니까?”

베흔이 슬쩍 시선을 주었다. 코리온은 할룩스 뚜껑을 열고 무언가 혼자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사망으로 인한 통신 해제만 풀면 근위대 통신을 엿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요?”

“지휘부의 보안통신은 어렵겠지만 병사들의 일반통신을 엿듣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지.”

“허, 빚진 거 갚으려면 잘해보슈.”

베흔이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학장이 나름 죄책감을 느껴 이것저것 하려는 듯 보였지만 이미 기분이 잔뜩 상해 있던 베흔과 다른 일행들 기분을 풀어주기는 분명 역부족이었다.

“이제 남은 건 우리뿐이네?”

코리온에게서 관심을 끊은 베흔이 썰렁해진 바위 위를 휙 둘러보았다. 코나가 퉁명스레 덧붙였다.

“자이납하고 라스도요.”

성 내는 이미 적군이 완전히 장악했고, 그들이 이 바위 위로 올라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코나가 철퇴를 툭툭 털며 이를 드러냈다.

“도대체 이놈들 어딨는 거야?”

불릿은 장애파를 뚫고 날 수 있지만 적들이 올라오기 전에 자이납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아니, 그들의 행방을 찾아내기라도 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테나스 이그나토가 이끄는 근위대 8군단 지휘부가 카히나 성에 정식으로 입성한 건 크바르나들이 수송선을 타고 도주한 후, 10여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악명 높은 2천 계단을 올라오는 중에 크바르나들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카히나 성의 바위 곳곳에 있던 레즐린 가의 발리스타 포격부대는 강습부대에 무력화되어 큰 위협이 되지 못했고, 민간인들의 혼란으로 성문이 막히고 다리도 끊겨 크바르나들이 변변히 방어선도 짜 보지 못했다.

“역시 그분이 대단하셔.”

말을 몰고 무너진 구름다리 자리에 공병들이 놓은 임시 다리를 처음으로 건너며 테나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몇몇 세부적인 사항에서 어긋나긴 했지만 바에자의 계획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들은 크바르나를 상대로 두말할 것 없이 완승을 거둔 것이었다. 비록 크바르나들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이제 이 난공불락의 성과 아라무트는 그들의 차지였다.

군인들은 다 쫓아냈지만 이제 골 아픈 문제는 민간인들이었다. 카히나 성에 거주하는 민간인 수천 명이 구름다리가 있는 공터부터 성문 밑을 지나 성 안쪽까지 걸쳐 개미떼처럼 길을 꽉 막고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성의 인구가 2만이나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추슬러야 할 민간인들은 또 이 몇 배였다.

특히나 서부 발리스타의 포격을 당했던 구름다리 부근은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포격으로 타죽은 민간인의 시체 백여 구와 중화상으로 죽어가고 있는 더 많은 숫자의 민간인들이 한데 뒤엉켜 도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당장 이쪽의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와중에 그들에게 나눠줄 의료 자원은 없었다.

시체 타들어가는 역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 테나스는 투구의 면갑을 내리며 끈을 조였다.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민간인들 옆을 무심하게 스쳐 무너진 성문을 지났다. 패닉에 빠진 민간인이 부숴버리고 지나간 성문은 경첩에 흉물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성문을 지나 광장에 막 접어든 테나스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혼란 그 자체였다. 광장 한쪽엔 성문 밖에서부터 이어진 민간인들의 거대한 무리가 근위대들의 감시 하에 와글와글 모여 있고, 광장 주변의 시장과 골목은 군데군데 불타고 있는 건물들과 그 사이를 꽉 채운 시커먼 연기 때문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학살하고 초토화시키자고 온 것도 아닌데 여기 좀 어떻게 해 봐.”

테나스가 짜증을 내며 뒤따라온 공병대와 사역부대를 손짓해 불렀다. 본대와 함께 도착한 사역부대가 소화설비를 찾아내 서둘러 시가지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저긴?”

테나스는 갑자기 굉음이 들려 온 서쪽 바위 위를 돌아보았다. 근위대들 수십이 계단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잰걸음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퇴각에서 낙오된 적병이 아직 몇 명 남아 저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넘어올 테니 저쪽은 염려 마십시오.”

서쪽 바위에서 일단 관심을 끊은 테나스는 기계눈의 렌즈를 최대한 벌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런데 여기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이르 경은 어디 갔지? 우리가 입성할 때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부 길안내 맡으라고 했잖아?”

테나스의 퉁명스런 물음에 중대장이 당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다리에 대한 포격이 완료된 후에 부하들과 안쪽 관청 쪽으로 들어가시는 걸 봤답니다.”

“빌어먹을 놈.”

사이르의 속내를 눈치 챈 테나스가 이를 드러냈다.

“보나마나 보물 먼저 빼돌리러 갔을 거다. 당장 달려가서…….”

테나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할룩스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강습군을 지휘했던 슈라의 연락이었다.

“움?”

“여긴 레즐린 가 창고 앞이요. 위대한 현신의 팔찌가 여기 있을까 해서……빨리 와 봤는데…….”

어두컴컴한 굴에 서 있던 슈라가 갑자기 숨을 가다듬었다. 화면에 나타난 슈라의 얼굴은 생전 처음 보는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헤네티들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고 창백해진 모습을 본 건 테나스도 처음이었다. 슈라의 머리칼과 얼굴이 위에서 흘러내린 피로 범벅이었지만 다쳐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저승이라도 다녀온 얼굴이네? 혹시 다 도둑맞은 거요?”

테나스의 가벼운 물음에 슈라가 대답 대신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가문 창고로 들어가는 큰 철문과 그 안쪽에 2중으로 쳐진 철창문이 있었다.

“값 많이 나가는 것들은 크바르나들이 먼저 가져갔소. 전부터 언제든 여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습디다. 다 포장이 되어 있었고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슈라의 할룩스 영상이 창고의 철창문 위쪽을 향했다. 순간 테나스도 놀라 말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철창 위엔 내장이 온통 발겨지고 얼굴껍질이 난도질당한 시체 네 구가 마치 건어물 말리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한 비린내가 이곳까지 풍겨오는 것 같았다. 시체에서 흘러내린 5줄의 창자가 소시지처럼 땅바닥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저게 대체 누구요?”

“살아남은 놈 말로는 사이르 경과 장교들이라 하는군.”

슈라는 구석에서 반쯤 미쳐서 발광하고 있는 이스마엘 가 노예들과 근위병들을 가리켰다. 저런 광경에 제정신을 유지할 리가 없었다.

“크바르나들이 저런 짓을 저질렀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고…….”

슈라가 여전히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대담한 헤네티까지 겁에 질려 저렇게 횡설수설한다면 무언가 정말로 무서운 존재가 다녀간 것이 분명했다. 순간 테나스의 뇌리에 한 세력이 스쳤다.

“설마…….”

“저들에게 데이가 다녀갔다고 전하라 한 모양이요. 저네들 코앞에서 제후와 장교들을 저리 해 놓고 유유히 사라졌다니 거기도 조심하시오.”

“이런, 씨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테나스가 순간 입을 가리고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데이 그자가 이곳에 있다면 누구도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사이르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이르가 죽은 게 아니었다.

“현신께선! 현신께선 무사하신 거요!”

“아직 모르겠소, 지금 현신과 루토 모두 연락이 되지 않아 찾고 있는 중이요.”

테나스는 공포에 차마 투구도 벗지 못한 채 계속 주변만 둘러보았다. 그 괴물 피다이가 이 도시 구석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테나스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슈라에게 말했다.

“데이인지 뭔지 그쪽에서도 최대한 수색해 주시오, 영감이 맘먹고 나섰다간 우리 지휘체계가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난 여기서 민간인 중에 숨지 않았는지 확인할 테니.”

“알겠소.”

“그런데 거길 털었으면 위대한 현신의 팔찌도 가져가 버렸겠군.”

테나스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공략에서 이 성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목표였던 팔찌를 못 찾았으니 승전을 거둬 놓고도 이디나를 볼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아직 모릅니다.”

“음?”

동굴에서 나선 슈라는 그 앞에 묶여 있는 성직자를 가리켰다. 고문을 당했는지 이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운 좋게 이 한 놈을 잡았는데 아까 전투 중에 웬 젊은 남자가 황제에게 보낼 중요한 물건이 든 상자를 가지고 민간 지역으로 도망쳐서 크바르나들에게 ‘나무상자를 진 남자’를 찾으라고 비상이 걸렸던 모양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고 민간인들 몰려있던 곳이 우리 수중에 들어와서 미처 못 찾고 어쩔 수 없이 도망간 것 같소.”

“상자? 어떤 상자?”

테나스의 기계눈이 갑자기 크게 열렸다. 슈라가 손으로 대충 자기 어깨 넓이만큼을 펼쳐보였다.

“나무 색깔을 한 요만한 상자에 들어있다고 합디다.”

테나스가 눈의 렌즈를 광각으로 최대한 넓게 열고 또다시 민간인들을 죽 훑어보았다. 그는 뒤따라온 장교를 손짓해 불렀다.

“여기 민간인들을 전원 검색해.”

“이 많은 사람들을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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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연재부터 속 뒤집어지는(??)내용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바에자는 매번 수난의 연속(?)입니다.

가시기 전에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시고요~~2012년 새해인데 그냥가시면 섭섭합니다~( ̄∇ ̄)ブ~~★

노블레스 연재도 봐 주시는 분이 없어 참담한데.....무료연재와 유료연재를 함께 한 것이 애당초 과욕이었나 봅니다. 노블레스 올리는 만큼 연재분은 지울 건지 논의했다가 그냥 남겨두기로 했더니.....흑;; 어쩌겠어요;; 제 결정인데 책임져야죠. 여기라도 힘을 좀 주세요 ( '');;;

♠ 전자책은 1부의 9, 10권을 1월중에 올려서 1부를 완결지을 예정입니다. 2부의 1,2권도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아참, 그리고 전자책 서비스 업체에 올레e북은 여전히 승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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