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0 회: 파트 13. 과거로의 길을 누가 열 것인가. -- >
【공지한대로 오늘부터 연재 재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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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흔과 코나가 선방으로 시간을 버는 사이, 우베와 무거운 케이블을 진 발리스타병들은 시장의 청과거리를 가로질러 숨이 넘어가도록 달렸다. 그때 조금 전 베흔이 쓰러뜨리고 지나 온 불타는 좌판 너머에서 근위대 가디언들과 병사 대여섯 명이 석궁을 들고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앞을 막아섰다.
“멈춰!”
“으엑!”
적병들에 놀란 발리스타병들이 옆의 폐허로 몸을 날리며 악을 썼다.
“저길 어떻게 지납니까!”
우베도 난감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10명은 베흔과 코나가 어찌저찌 막고 있지만 정면의 골목을 막고 선 저 정예병들에게 고작 보병대 기초 군사훈련 정도나 받았을 발리스타병들을 이끌고 맞설 수는 없었다. 우베는 발리스타병들을 내버려둔 채 혼자 베흔에게로 도망칠까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때, 그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
우베가 갑자기 손수건을 번쩍 쳐들고 어깨 위를 쏙 내밀었다.
“쏘지 말아요! 전 군인이 아니라고요!”
우베의 말에 그들이 움찔했다. 정말로 우베는 군복 차림도 아니고 쿠크리는 뒤춤에 차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우베는 함께 있는 발리스타병들에게도 손을 쳐들라고 손짓했다. 발리스타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손을 쳐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안도한 상대방들이 석궁을 겨눈 채 이들 비무장의 여섯 명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분대장으로 보이는 가디언이 위협적으로 물었다.
“너희들 거기서 뭘 훔쳐오고 있던 거냐!”
그는 여전히 골목 한쪽에서 타고 있는 좌판을 옆으로 걷어차고는 무기를 겨눈 채 한 발 다가왔다. 우베가 겁먹은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중요한 발리스타 부품이 있어서 가져오는 중인데요.”
“거기서 꼼짝하지 말고 그것만 내놔!”
“정말 드려요?”
가디언의 고함에 우베가 한 번 더 물었지만 가디언의 무서운 시선만 받았을 뿐이었다.
우베는 가방에 숨기고 있던 주먹만한 기화연료 통을 그들 쪽으로 휙 던졌다. 발화 발리스타의 탄두를 뜯어보았을 리 없는 이들은 주먹만한 물건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엉?”
우베가 던진 통은 바로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고 보도블럭이 깔린 바닥을 고무공처럼 한 번 퉁 튕겨 올라 사람 머리보다 더 높이까지 붕 올라갔다가 불타고 있는 좌판 주변으로 떨어졌다. 5명의 근위대들은 그때까지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좌판 주변의 병사 한 명이 그 통을 받으려 한 발 내밀고 손을 내민 순간, 짧은 펑 소리가 나며 통이 사방으로 깨어져 흩어져버렸다.
“뭐야, 이게?”
멍해진 병사들과 가디언들이 서로 마주본 순간, 부서진 통에서 사방으로 미세한 에어로졸이 되어 흩뿌려지는 인화물질의 냄새가 그들의 코끝을 찔렀다. 거의 같은 때, 불타고 있는 좌판 위에서 시작된 소름끼치는 노란 불꽃이 이들이 선 골목 전체를 눈 깜짝할 새 집어삼켰다.
“우악!”
압력에 놀란 우베와 발리스타병들이 뒤로 벌렁 밀려나 자빠졌다. 갑옷을 안 입은 가디언은 순식간에 온몸에 불이 붙어 날뛰었고, 갑옷을 입은 근위대 정규군들도 그 충격에서 무사하지는 못했다. 충격으로 튕겨난 채 얼떨떨해진 그들은 자신들의 갑옷에 불이 붙어 녹아들어가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나가!”
우베가 허리춤에서 아버지의 유품인 쿠크리를 빼들고 앞장서 뛰어나갔다. 사실 싸움에 별반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앞장설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그는 미친 듯 날뛰고 있는 가디언 옆을 잽싸게 피해 무기력해진 적병의 목을 쿠크리로 힘껏 후려쳤다. 어차피 놔두면 죽을 가디언에게 괜히 접근해 명을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너희도 따라와!”
작은 작업용 손도끼를 빼들고 뒤이어 달려나온 발리스타 분대장도 갑옷을 벗어내려 발광하고 있는 근위대 병사의 머리를 힘껏 내리찍었다. 평생 이렇게 적군과 직접 마주해 본 일이라고는 없었을 발리스타병들은 죽음의 공포에 몰리자 곧바로 용사로 돌변했다. 그들은 쓰러진 근위대에게서 칼을 빼앗아 발광하는 적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빨리 돌아가자!”
사병들을 모두 해치우고 돌아선 우베는 마지막으로 쓰러져 불타며 여전히 숨이 붙어 있던 근위대 가디언의 뒷목에 칼을 힘껏 찔러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이제야 도착한 베흔은 사방이 시커멓게 그슬려 타고 있는 적 시체들과 골목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리둥절해했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무려 5명이나 되는 근위대들을 때려잡고 동료에게 자랑할 거리, 사기까지 가슴에 가득 채운 발리스타병들은 이번엔 누가 시키기도 전에 무거운 케이블을 다시 짊어지고 시장을 나섰다.
“서쪽 바위로 올라가!”
케이블을 구해 가까스로 적의 장악지역을 빠져나온 베흔은 민간인으로 북적거리는 광장을 빙 돌아 카히나 성을 이루는 바위들 중 두 번째로 높은, 거의 700척(210m)에 달하는 서쪽 바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케이블에서도 제일 무거운 마구리 볼트를 짊어지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랐다.
이 무거운 케이블을 지고 시가지를 가로지르고, 또 바위에 오르느라 탈진한 발리스타병 한 명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실신했지만 멈춰서 느긋하게 돌봐주며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우베가 빈자리를 채우고, 쓰러진 병사를 등에 업은 코나가 끙끙대며 계단을 밟고 숨이 넘어가게 올라갔다.
“이거 얼마 못 버티겠는데요!”
높은 곳에 올라와 비로소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게 된 우베가 비명처럼 꽥 소리를 질렀다. 성 내의 시가지가 5분의 1 정도는 이미 불에 타고 있고, 조금 전 그들이 목숨을 걸고 다녀 온 동쪽의 시장은 이미 근위대들이 새카맣게 덮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주 전선은 조금 전까지 아샤드 경이 크바르나들을 지휘해 공격을 독려하던 중앙 바위 아래까지 넓어져 있었다. 아샤드 경이 크바르나들을 지휘해 저지하려 하고 있지만 누가 보기에도 분명한 열세였다.
“그나저나 자이납하고 라스는 아직 연락 없어!”
코나가 버럭 화를 냈다.
“몰라요, 자이납이 돌아오면 아까 크바르나 사관이 연락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요.”
우베는 크바르나들에게서 얻어 온 군용 할룩스를 확인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이납과 라스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설마 저기 있는 건 아니겠지?”
코나가 가리킨 건 성의 출입문 부근에 와글와글 몰려 오도가도 못 하고 있는 수천의 민간인 무리였다. 구름다리는 끊기고, 시가지는 불길에 휩싸이고, 광장이 근위대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그들은 나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 자기들끼리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저 중간 어딘가에 자이납이라 라스가 있다면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할 판이었다.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올라와!”
베흔의 독촉에 그들은 힘을 짜내어 기를 쓰고 올라갔다. 그들이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이곳에 몇 번이나 강습을 시도한 근위대와 필사의 사수전을 펼친 50여명의 크바르나들이 강하 도중 사살당한 근위대의 시체 수십 구 사이에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거의 절망에 빠져 있던 그들은 난데없이 발리스타 케이블을 짊어지고 나타난 이들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장은?”
베흔이 돌아보니 코리온이 부서진 발리스타 옆에서 이 기계를 담당하고 있던 발리스타병들에게 뭐라 설명을 들으며 어슬렁거리고 서 있었다. 베흔이 그에게 들으라는 듯 쏘아붙였다.
“댁의 그 잘난 몽니 때문에 애먼 몸종하고 자이납만 행방불명이요. 연락이 끊겨 퇴각에 데려가기도 어려울 것 같소.”
코리온이 입술에 힘을 꽉 주며 돌아섰다. 물론 그의 성격에 ‘내 잘못이요.’라고 말하리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베흔이 아는 그는 여기 있는 군인 민간인들이 다 죽어도 자신의 결심이 잘못되었다고 여길 인간이 아니었다.
“여기 온 밥값은 고사하고 일만 개판을 쳐 놓았으니 이거라도 제대로 못 하면 내가 여기서 확 밀어버릴 줄 아시오.”
코리온은 못 들은 척 근위대 강습부대가 시체무더기가 되기 전 끊어놓고 간 발리스타의 케이블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 황제의 황실군 석궁 개량 작업에 참가한 덕분에 칼 쥘 줄도 모르는 이 남자도 최소한 발사무기 쪽에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베흔이 맞지 않는 케이블을 풀어서 가져오는,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무리수를 택한 것도 이 남자 때문이었다.
“간단히 답해 주십시오, 저길 쏴야 합니다. 이 발리스타의 림이 이 강한 케이블을 지지할 수 있겠소?”
2스타디아 정도 떨어진, 이곳보다 아주 조금 높은 중앙바위 정상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는 적들의 머리가 종종 보였고, 공중 에너지 장벽의 꼭대기 부분이 삐죽 나온 것이 보였다. 저것을 부수지 않으면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양쪽 발리스타의 제원이 적힌 표를 모두 받아든 코리온은 메모 하나 없이 암산을 하는 듯 싶었다.
“표에 있는 재료 특성이라면 서너 발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뒤는 언제 부서질지 알 수 없다.”
“됐소, 그럼. 하고 보는 거지.”
베흔은 따라온 발리스타병들에게 케이블을 걸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동쪽 바위의 발리스타 케이블과 서쪽 바위 발리스타 몸통의 기묘한 합방이 이루어졌다.
사실 이곳 발리스타라고 완전히 성한 건 아니었다. 림과 당기는 장치같이 기본적이고 튼튼한 부위만 멀쩡할 뿐 조준장치나 자동 장전장치 같은 정밀한 부위들은 모두 부서져 제 모양이 아니었다. 조준을 위한 보조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사실상 그냥 ‘감으로’ 쏘아야 할 판이었다.
양쪽 팀의 발리스타병들은 그동안은 생판 써 본 일도 없었을 각도기와 줄자, 수동식 장력측정기를 들고 하나하나 재어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표적은 중앙바위 정상의 에너지장벽 포스트! 1발 장전!”
흙바닥에 쭈그려 앉은 코리온은 옆에서 성 내의 지도와 도면, 양쪽 발리스타의 제원표, 작은 쪽지에 손으로 열심히 계산을 해서는 분대장에게 쪽지로 건네주었다.
“림의 각도 14 추가! 장력은 그대로, 세로각 -3!”
분대장의 목소리와 함께 절반 부서진 발리스타가 고개를 쳐들며 끼익 소리를 내고 다 죽어가는 비명을 울렸다. 원래 쓰던 것보다 훨씬 강한 케이블을 받쳐야 하는 발리스타의 림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꾸드득 꾸드득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첫발 쏘고 나면 저놈들이 분명 응사할 테니 안전한 곳에 숨어!”
“발사!”
어쨌든 발리스타는 펑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치솟아 양쪽 바위 사이의 긴 공간을 휙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공중에 약간은 어색한 직선 가까운 곡선을 그리고는 루토와 바에자가 이끄는 근위대가 밑에서 올라오는 크바르나들을 상대로 두 시간 가까이 버티고 있는 중앙바위 정상에 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난데없는 발리스타 공격에 놀란 건너편의 근위대들 사이에서 비명과 찢어지는 고함이 들려왔지만 이곳보다 위치가 높아 잘 보이지는 않았다.
“으악!”
중앙바위 밑에서 올라오는 크바르나들에게만 온 신경을 쏟고 있던 바에자, 루토와 셔틀을 타고 도착한 20여명의 근위대원들은 갑자기 건너편 바위에서 날아온 발리스타에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야! 발리스타 양쪽 다 부쉈다고 했잖아!”
신전 밑에 있다가 먼지와 돌덩이를 뒤집어쓴 바에자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이들에겐 다행히도 발리스타가 약간 빗나가 신전의 한쪽 기둥에 맞고 끝났지만 쏟아지는 지붕재에 얻어맞은 바에자의 오른쪽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체로 위장하느라 그는 갑옷을 미처 입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다 부쉈습니다! 저쪽 것도 케이블을 끊어서 분명 못 쓸…….”
재빨리 망원경으로 서쪽 바위 위를 살핀 루토는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저들의 발리스타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그를 놀라게 한 건 한때 직속상관이었던 베흔의 모습이었다. 그는 저 무서운 남자의 존재 자체에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코리온의 모습까지 보였다. 저 둘의 조합이라면 없는 발리스타도 만들어내고 남을 듯 보였다.
“우리 발리스타는 어딨습니까!”
“서부 발리스타는 저기까지는 못 닿는다! 최대한 흩어져!”
바에자가 근위대 병사들에게 흩어지라며 바삐 손짓했다. 사이르가 지원해 준 저지대의 서부 초대형 발리스타는 성문 부근까지는 닿을 수 있지만 이 바위 꼭대기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지난 수베르에서 자폭셔틀에 맞아 컨테이너 째로 내버리고 와야 했던 근위대의 초장거리 발리스타 [아나콘다]가 뼈저리도록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마우저로라도 쏴!”
마우저를 든 루토와 바에자가 얼른 반대편 바위에 대고 응사를 시작했지만 저들은 이미 두터운 모래더미 뒤에 몸을 숨긴 뒤였다.
“또 날아온다!”
두 번째 날아드는 발리스타는 각도가 조금 더 높았다. 워낙 근거리라 근위대원들이 미처 몸을 제대로 숨길 새도 없었다. 공중에서 뚝 떨어진 발리스타는 에너지장벽 포스트 바로 코앞에 뚝 떨어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편 중 몇 개가 공처럼 퉁퉁거리며 튀어오르는 모습에 몇몇 경력 짧은 근위대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기화탄두다!”
신전 뒤에 몸을 숨긴 바에자의 고함에 루토가 부리나케 몸을 날렸지만 상당수 병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완전히 장악했던 바위 정상 전체가 순식간에 붉은 화염에 횝싸였다.
“빌어먹을! 저 콧수염 새끼!”
루토가 연기로 매캐해진 공기 속에서 침을 뱉으며 악을 썼다. 절반에 가까운 십여 명의 병사들이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병사들도 불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상이 워낙 좁아 지금까지는 방어하기가 도리어 유리했지만 적이 발리스타를 쏘는 이상 이젠 그 유리함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변해 있었다. 적의 포격에도 변변히 피할 곳이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켁, 켁!”
시커먼 연기 속에서 스코프를 끼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던 루토는 또 한 발의 발리스타가 날아오고 있는 것, 그리고 여전히 그의 앞에 너무 큰 벽으로 버티고 있는 베흔이라는 존재를 느꼈다.
“또 날아온다!”
루토가 고개를 들었지만 매캐한 연기 때문에 어느 방향인지를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바에자가 대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이번에 날아온 발리스타는 에너지장벽 포스트 쪽으로 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현신님! 포스트 부근은 피하십시오!”
루토는 다짜고짜 고함을 질렀다. 짙은 연기를 뚫고 발리스타의 날카로운 마찰음에 뒤이어 무언가 박살이 나는 소리와 사방으로 날리는 파편이 보였다. 다행히 이번엔 기화포탄은 아닌 듯했지만 그게 무조건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일반 포탄이라면 살상보다는 에너지장벽 포스트를 부수려는 목적이라는 뜻이었다.
루토는 무심결에 위를 올려보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장벽이 살아있었다. 저들은 포스트를 보호하는 커버를 부순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저들이 아래서는 보이지도 않는 이곳까지 어떻게 이토록 정확하게 발리스타를 날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밑에서 적이 안 올라오나 보라고! 계단을 부숴!”
신전 쪽에서 들려온 바에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것을 보니 다행히 그는 아직 무사한 듯했다. 하지만 바에자의 예측은 정확했다. 지금까지 견제사격에 막혀 못 올라오고 있던 크바르나들이 정상이 쑥대밭이 된 사이 철제계단을 타고 재빨리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들에겐 최악의 순간이었다. 이곳이 뚫리고 에너지장벽 포스트가 부서진다면 크바르나들을 꼼짝없이 놓칠 판이었다.
“이런!”
그들의 앞을 막아보려 계단 입구 쪽으로 달려가던 루토는 적 발리스타에서 또 한 발이 솟구치는 소리를 들었다. 가디언의 예민한 귀로 두 번째 날아왔던, 기화탄두 특유의 공기저항이 큰 마찰음 파장이 분명히 분간되었다. 크바르나들이 올라오기 전에 이곳을 완전히 ‘청소’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현신님 피하십시오!”
루토가 손을 저으며 달려갔다. 첫 번째 기화탄두의 매캐한 연기가 조금씩 가시면서, 두 명의 근위대 병사들과 함께 철제계단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바에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에겐 불을 막을 갑옷이 없었다.
“기화탄두입니다!”
막 달려가던 바에자가 고개를 휙 돌려 루토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발리스타의 탄두가 바에자 바로 등 뒤, 고작해야 20척(6m)정도에 뚝 떨어지며 사방으로 돌조각과 파편을 날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파편과 함께 이번에도 10개가 넘는 공 같은 것이 사방으로 붕 날아올랐다. 그 중 하나가 멍하니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바에자에게서 멀지 않은 곳으로 튕겨올랐다. 바에자와 함께 가던 두 병사들이 맨몸의 바에자를 몸으로 덮치는 광경이 루토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렌지색의 강렬한 폭발이 그와 근위대 병사들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우악!”
루토는 충격파에 밀려 뒤로 벌렁 자빠졌다.
“현신님! 현신님!”
루토는 팔과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었지만 아랑곳없이 벌떡 일어났다. 바에자가 있던 자리에 갑옷이 온통 시커멓게 그슬린 병사들 두 명이 불이 붙어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들 밑에 깔려 있는 바에자의 모습이 보였다. 온전치 않은 것이 분명했지만 온통 검댕과 먼지를 뒤집어써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진입해!”
그때, 철제 계단 쪽에서 방패를 앞세운 크바르나들이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젠 바위 정상을 계속 사수할 수는 없었다. 루토는 마지막까지 남은 근위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퇴각! 퇴각!”
루토는 자신의 망가진 몸도 채 의식할 새 없이 번개처럼 달려가 시커멓게 변한 그의 현신을 한 팔에 덥석 낚아채 허리춤에서 리프트 케이블을 빼들었다. 바위의 난간 한쪽에 리프트 케이블의 앵커를 건 그는 중앙 바위의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긴 케이블에 매달린 둘의 몸이 카히나 성에서도 가장 높은, 까마득한 절벽 밑으로 죽 곤두박질쳤다.
뒤이어 다른 근위대들도 그를 따라 부상을 입은 동료를 들쳐 업고 정상에서 몸을 던졌다.
“제발, 제발 버티세요!”
바에자가 어느 정도 다쳤는지 미처 확인할 새는 없었지만 그의 품 안에서 고통에 겨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제발 자신이 도착하는 절벽 제일 아래에 크바르나들이 버글거리는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기를 빌었다. 초인적인 의지로 바에자를 안고 뛰었지만 그 역시 제 상태는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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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연재 재개합니다. 첫회는 베흔과 코리온, 우베까지 죄다 밥값합니다. ㅎㅎ
다음 한두 편은 연중 후유증을 덜고....연재에 돌아오실 분들을 위해 연재 간격을 좀 길게 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처럼 바로 연재하니 조회수에 큰 빵꾸가 나더군요...^^;;)
가시기 전에 추천이나 코멘트, 평점 잊지 마시고요~~한참만에 재개인데 그냥가시면 섭섭합니다~~ ( ̄∇ ̄)ブ~~★
(요즘 1점 테러로 스트레스 만빵이라서요...-,.-;;)
♠ 전자책은 1부의 9, 10권을 1월중에 올려서 1부를 완결지을 예정입니다. 2부의 1,2권도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내년 여름까지 전자책도 종이책을 따라잡을 참이라 쉴 틈이 없네요;;;;)
아참, 그리고 전자책 서비스 업체에 올레e북은 여전히 승인중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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