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887화 (882/1,132)

< -- 887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

.

.

막막해진 슈라가 지붕을 올려보았다. 불에 탄 섬유 조각이 눈송이처럼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십 대의 셔틀을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이 거대한 격납고는 철골 뼈대 위에 특수 섬유로 피막을 씌운 경량구조였다. 그렇다보니 일단 붙은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지붕을 휘감으며 무시무시한 불꽃을 아래로 뿌려대고 있었다.

“이런.”

슈라가 손 안의 인화물질 병을 힐끔 쳐다보았다. 차라리 혼자 있다면 사에나에게 달려들어 끌어안고 함께 타죽을 테지만 품 안에서 의식을 잃은 아트위야 때문에 이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젠 죽든 살든 일을 저질러야 하는 순간이었다.

사에나의 동향을 재빨리 확인한 슈라는 발밑에 떨어져 있는 셔틀 판넬 하나를 덥석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사에나가 당긴 일격이 그의 코앞에서 번쩍 했다.

“악!”

개조된 석궁에서 날아온 짧은 볼트가 셔틀 판넬을 관통해 어긋나며 슈라의 어깨와 등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던진 인화물질 병도 공중에 휙 날아올랐다.

“엇.”

대담한 사에나지만 눈앞에서 큰 불길이 확 치솟자 주춤거리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인화물질이 사방으로 터지면서 짙은 연기와 열기가 주변으로 확 퍼졌다. 불길 너머로, 어깨가 피투성이가 된 슈라가 아트위야를 짊어지고 헐레벌떡 도망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에나가 다시 석궁을 겨누려 했지만 불길과 연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를 않았다.

“도망쳐 봤자지.”

사에나는 앞을 가로막은 불을 피해 옆의 사람 키만한 박스를 훌쩍 뛰어넘어 뒤를 쫓았다. 제아무리 헤네티지만 몸을 다쳐 비틀거리는 놈 정도는 충분히 잡을 자신이 있었다.

느릿느릿 도망치던 슈라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사에나를 떨칠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슈라는 의식을 잃은 아트위야의 가슴 속에 손을 넣어 그곳에 달려 있던 목걸이를 확 잡아끊었다. 가죽줄에는 누군가의 손목에 있는 편이 더 어울려 보이는 두 개의 백금팔찌와 손가락만한 전자식 키가 매달려 있었다.

“이거나 먹어!”

슈라가 무언가 번쩍거리는 것을 휙 던지자 깜짝 놀란 사에나가 반사적으로 몸을 바싹 낮추었다.

“저 감옥 안에 그 임자가 있거든!”

슈라가 아트위야를 안고 엔진 뒤로 몸을 날렸다. 슈라가 던진 물건은 사에나의 머리를 위를 훌쩍 넘어 조금 전 되돌아 나온 철문 앞쪽에 쨍그렁 소리를 울리며 떨어졌다. 분명 인화물질 병은 아니었다.

“이런.”

사에나가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눈에 익숙한 백금 팔찌와 큰 전자식 키가 가죽줄에 매달려 있었다. 사에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지하실 쪽을 휙 돌아보았다.  카렐이 황제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요한 일이 있다’며 돌연 행방불명되었던 수나 마구스의 팔찌가 분명했다.

“수나 마구스가?”

여전히 열려 있는 지하실, 아니 지하 감옥 철문 안쪽으로 바깥의 시커먼 유독가스와 열기가 무섭게 들이치고 있었다. 사에나는 슈라 쪽을 다시 돌아보았다. 박스 틈새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슈라의 눈과 사에나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마스터 키니까 저걸 잡으러 가던지, 날 잡으러 쫓아오던지!”

슈라가 몸을 숨긴 채 악을 썼다. 그때 불길에 휩싸인 천장의 철제 구조물에서 끼익 하고 기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려보는 둘의 시선 사이에 서로의 본심을 읽기 위한 짧은 탐색전이 흘렀다.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저 안이 홀랑 타 버릴걸!”

슈라는 아트위야를 번쩍 들쳐업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고 적과 무언의 타협을 본 사에나는 그 반대편인 격납고 안쪽으로 방향을 휙 돌려 불길과 연기 사이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목걸이를 휙 낚아챈 그는 격납고 구석의 응급함을 깨고는 소화기와 비상 마스크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트라이크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씨!”

머리 위에서 귀청을 찢는 굉음이 울리며 지붕의 연결 조인트들이 열을 받아 탕탕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트라이크의 엔진 토크를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린 사에나는 철문 쪽으로 방향을 휙 돌려 스프링처럼 튕겨나갔다. 불 속에서 약해진 지붕과 벽이 조각조각 떨어지며 격납고 안쪽으로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어 있기만 해 봐라!”

사에나는 불이 붙은 채 쏟아지는 철골과 지붕 자재들 사이를 쏜살같이 피하며 지하실 철문으로 무섭게 질주했다. 몸을 바싹 붙이고 돌진한 그는 문을 통과하기가 무섭게 힘껏 당겨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지붕에서 떨어진 큰 환풍기의 조각난 날개와 부품들이 닫힌 철문을 후려치면서 귀청을 찢는 소음이 울렸지만 서막에 불과했다.

사에나가 안에서 신경전을 벌이던 그 시간, 격납고 앞은 막 이륙하려는 셔틀을 향해 돌격하는 시라즈의 병사들과 벽을 쌓고 그들을 막으려는 헤네티들, 수송셔틀로 도망치려는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뒤엉켜 걷잡을 수없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헤네티들에 차단당한 시라즈 병사들은 멀찍이에서 셔틀 몇 대의 엔진을 부숴 이륙을 못 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후미에 세워진 6대의 불릿에만은 여전히 접근을 못 하고 있었다.

“저기 출발한다!”

준비를 끝낸 검은 색 불릿 한 대가 떠오르는 모습에 시라즈 병사들의 맘이 더 급해졌다. 그들의 초조함은 후미에서 다가오고 있는 누런색 위장 차량의 등장에 배가되었다.

“저게 뭐냐, 또 놓치는 거냐!”

시라즈의 후미에서 막 도착한 카렐은 힐러의 만류를 뿌리치고는 타고 오던 차 문을 확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놀란 호위병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격분한 황제를 에워싸고 다시 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폐하, 제발 들어가십시오! 놈들이 자살공격을 할지도 모릅니다!”

“비켜!”

카렐이 버럭 성을 냈다. 용이 새겨진 검은색 불릿이 사방을 에워싼 시라즈의 병사들을 뿌리치고 공중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곳을 노려보던 카렐이 낮게 중얼거렸다.

“가짜 대신관 그놈이다.”

같은 순간, 막 이륙하는 불릿 안쪽에 있던 아스탈도 그의 존재를 느꼈다. 문가에서 초조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스탈은 멀찍이 멈춘 차에서 내려서는 검은 망토 차림의 키 큰 전사가 누군지를 바로 직감했다.

“황제다. 황제라고.”

침착하려 하고 있지만 아스탈의 목소리는 어느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예?”

아버지의 말에 깜짝 놀란 이디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문 밖으로 급히 머리를 내밀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도 없이 묻혀 있던 이 딸이 갑자기 눈에 살기를 띠며 나오는 모습에 아스탈이 놀랄 정도였다.

“황제가요? 어디죠?”

이디나가 병사의 스코프를 빼앗아쓰고는 난생처음 마주한,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황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게 그레이오팔인가요?”

이디나의 목소리도 아버지처럼 가늘게 떨렸다. 거리도 꽤 먼 데다가 자욱한 흙먼지와 검은 마스크, 온몸을 가린 검은 망토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후드의 시커먼 그늘 안에서 무시무시하게 광채를 뿜고 있는 두 개의 오팔빛 눈동자,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전사의 실루엣만은 그의 가슴에 마치 비수처럼 강한 기억을 남겼다.

“세상에, 눈이 어쩜…….”

이디나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짚었다. 그가 아는 그레이오팔이 없지는 않지만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저 전사의 짐승 같은 시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밀리타 고모하고는 완전히…….”

“빨리! 빠져나가지 않고 뭐해!”

창백해진 아스탈이 멍하니 황제를 응시하던 딸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문가에서 급히 물러서며 조종석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기 무기에 걸리기 전에 빨리 가지 못해!”

승무원이 서둘러 문을 잠그고 [밀폐 확인] 신호가 들어오자 비로소 엔진이 가속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격노에 당황한 시라즈의 병사들이 헤네티 몇을 가까스로 쓰러뜨리고는 막 출발하려는 아스탈의 불릿 밑으로 다짜고짜 달려갔다.

“도망 못 가게 해!”

몇몇이 엔진을 겨누고 사격을 시도했지만 이 어마어마하게 빠른 괴물은 뒤쫓는 시라즈 병사들을 놀리듯 엄청난 폭음을 남기며 공중으로 급가속을 해 멀어져갔다. 영문도 모른 채 접근했다가 후폭풍을 제대로 맞은 수십의 시라즈 병사들, 노동자들이 뒤로 한참을 붕 날아가 땅바닥 위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나동그라진 병사들의 모습에 시라즈 사관들이 급히 명령을 수정했다.

“떠오르면 접근하지 마! 일단 뜬 건 자기무기에 맡기고 놔 둬!”

첫 번째 불릿이 무사히 출발을 하자 뒤이어 또 다른 불릿 두 대가 서둘러 그 뒤를 쫓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중요한 짐들과 엔지니어, 노동자들을 태운 일반 셔틀도 속속 그 뒤를 따라 땅을 디디고 위로 떠올랐다.

“빨리 타! 지금 못 타면 끝이야!”

교단 엔지니어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린 승용셔틀이나 화물셔틀에 불을 지르고 다른 셔틀로 헐레벌떡 옮겨 탔고, 제일 늦게 물러난 헤네티와 경비병들은 셔틀에서 내려 주는 비상용 줄을 붙들고 줄줄이 매달렸다.

도저히 셔틀을 따라 탈 수 없는 처지가 된 몇몇은 자살용 캡슐을 깨물고 이곳저곳에서 잇따라 픽 쓰러졌다, 막 이륙하던 셔틀 몇 대가 자기 무기의 공격에 제어를 잃고 옆으로 기우뚱거렸다.

그때, 셔틀 엔진소리보다 더 큰 마찰음이 주변을 울렸다.

“무슨 소리지?”

철골 건물이 기운 건 시작한 건 마지막 출발하려던 2대의 불릿을 향해 막 공격이 집중되기 시작할 때였다. 사투를 벌이던 시라즈 병사들과 헤네티들은 싸움도 잊고 일제히 격납고를 돌아보았다.

“무너진다! 피해! 모두 피해!”

시라즈 병사들은 불타는 건물에서 뿜어나오는 열기와 연기,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불꽃과 파편을 피해 급히 건물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기회를 잡은 마지막 교단 셔틀 행렬이 차례로 떠올랐고, 남은 불릿 두 대도 급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한 대는 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아직 주인을 태우지 못한 마지막 은색 한 대는 출발하지 못한 채 불타는 격납고 출구 부근을 계속 맴돌았다.

“여기! 여기!”

불에 타 막 무너지려는 건물 잔해에서 아트위야를 짊어진 슈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까지도 맴돌기만 하던 은색 불릿이 쏟아지는 불꽃을 무릅쓰고 격납고까지 바싹 다가갔다.

“하, 학!”

슈라는 불릿 안에서 뻗어 온 트라에타오나 교단 경호 헤네티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은색의 불릿은 그를 싣고 천천히 공중으로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헤네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불릿에 오른 그는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에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지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후계자께선…….”

아트위야의 헤네티들이 당혹스런 얼굴로 서로 마주보았다. 슈라는 그들에게 짜증스레 손을 저어 보이고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조종석으로 다가갔다.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거야?”

“일단 가속만 하면 저놈들 자기무기로는 절대 못 잡습니다.”

조종사가 불릿의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셔틀 레이서 출신이고, 그간 아트위야의 밑에서 불릿을 몰았던 만큼 불릿 조종사들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라 슈라도 맘이 확 놓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크!”

슈라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창밖으로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주저앉는 격납고의 모습이 보였다. 놀란 황제의 군대가 혼비백산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고, 현장에서 낙오되어 미처 도망치지 못한 노동자와 엔지니어, 경비병들이 불꽃과 엄청난 연기 속에 파묻혀 사라지는 끔찍한 광경도 보였다.

“살았을까.”

슈라는 풀어 헤쳐져 있는 아트위야의 가슴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가 가짜 현신이라 욕을 했던 그 소름끼치는 여자도 분명 저 안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어쩌면……정말 현신일지도 몰라.”

슈라는 불길 건너편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그 여자의 무서운 눈길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저 느낌이지만, 저 안에서도 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잡으십시오!”

조종석에서 들려온 고함에 깜짝 놀란 슈라가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바로 앞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화물셔틀 한 대가 조금씩 추진력을 잃고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런, 젠장.”

조종사가 재빨리 방향을 돌려 막 추락하는 화물셔틀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피해갔다. 바닥에 내리꽂힌 셔틀은 사막에 충돌하며 큰 폭음을 내고 불길에 휩싸였다. 안전장치는 미리 꺼져 있었고 탈출에 성공한, 아니 탈출을 시도한 자도 없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기체와 함께 불길 속에서 재로 변해버렸다.

“걱정 마십시오, 마구스님들의 불릿 4대는 먼저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조종사가 출력을 최대로 올리자 안에 탄 사람들의 귀가 멍멍해지면서 발밑 풍경이 무서운 속도로 뒤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캐너 화면엔 이 셔틀 제조창을 빽빽하게 에워싼 수십 대의 적 간이용 자기무기 위치가 그대로 찍혀 나오고 있었다. 그들 중 여러 대가 이 셔틀을 겨누었는지 [공격 중]을 뜻하는 붉은 표시가 깜박거리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몇이나 동원한 거야! 빨리 가! 우릴 겨누잖아!”

초조해진 슈라가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띵할 만큼의 충격과 함께 불릿의 속도가 일순간 조준이 불가능할 만큼 빨라지면서 붉은 불은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야훗!”

황제 측 군대의 추격을 떨치면서 안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이 괴물 같은 셔틀을 만든 트라에타오나 엔지니어들의 호언장담처럼, 일단 출발만 한 후엔 ‘원시적인’ 황실의 무기로 잡는 건 불가능했다.

“후우.”

긴장이 풀린 슈라가 바닥에 앉은 채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함께 탈출을 시도한 일반 셔틀의 운명은 그리 좋지 못했다. 거의 2, 3대 중 1개 꼴로 포위망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캐너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게 뭐야, 대체.”

절망 섞인 얼굴로 스캐너를 외면하고 막 돌아서던 슈라가 뒤늦게 무언가를 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유난히 뒤처진 한 대에 그의 시선이 멎어 있었다.

“저게 뭐냐? 왜 저래?”

“저건…… 바유 교단의 불릿 같습니다만.”

그제야 스캐너를 본 조종사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뭐?”

슈라가 부상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캐너 화면에 얼굴을 들이댔다. 마지막에 출발한 바유 교단의 불릿이 어찌된 일인지 전혀 가속을 못 하고 있었다.

조종사가 급히 할룩스를 켜고 외쳤다.

“이봐!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 해!”

“모르겠습니다! 셔틀에 가속이 잘 안 되어서…….”

건너편 바유 교단 불릿 조종사의 목소리에 초조함과 공포가 묻어나고 있었다. 속도를 제대로 못 내는 불릿은 보통의 셔틀만도 못한 깡통에 불과했다.

“조향 계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속이 되지 않습니다!”

“적 자기무기에 잡힌 게 아니고?”

“모르겠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이렇게 빨리 통제를 잃을 리가 없는데…….”

패닉이 된 건너편 조종사가 초조한 얼굴로 이것저것 두들기며 고개를 저었다. 화면엔 뒤쪽 캐빈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킴메리와 ‘빨리 가지 않고 뭐 하냐.’라며 소리치는 타크티 마구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추어 레이싱에 나갈 만큼 셔틀 광으로 알려진 남자이지만 완전히 조종법이 다르다보니 한 발 뒤에서 무기력하게 소리치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다 잡히게 하고 싶어!”

타크티 마구스의 찢어지는 호통과 동시에 할룩스 영상이 확 사라져 버렸다. 당황한 조종사가 다시 연결을 시도했지만 되지를 않았다. 창백해진 조종사와 슈라의 시선이 동시에 스캐너로 향했다. 뒤로 조금씩 처지던 타크티의 불릿은 어느 순간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슈라가 타크티와 킴메리의 개인 할룩스를 호출해 보았지만 둘 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때, 뒤따라오던 화물셔틀의 긴급 전문이 들어왔다.

- 바유의 붉은색 불릿이 추락하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생존자는 없어 보입니다. -

“세상에.”

슈라가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마구스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별로 없던 타크티의 죽음은 어차피 그에겐 별반 중요한 일이 아니었지만 킴메리는 달랐다. 대신관의 장남 나딘이 죽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신관이 처음 ‘성년을 맞게 해 주었던’ 킴메리마저 세상 느낌을 채 만끽해보지도 못한 채 가 버렸으니 경호 담당인 그로서는 아찔한 일이었다.

“적군 공격에 걸린 거야.”

슈라가 멍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뿐이었다. 아니, 그렇게 처리하는 게 누구도 책임질 질 일 없는 가장 ‘안전한’ 결론이었다.

“아마……그럴 겁니다.”

셔틀을 제조한 트라에타오나 소속 조종사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놈들이 그새 우리도 모르는 신무기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게 분명해.”

슈라가 자리에 웅크리고 앉으며 계속 혼잣말을 반복했다.

“그런데……그분께 뭐라 말씀드리지?”

이디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양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아버지 아스탈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번 달에만 벌써 두 번째 자녀의 죽음이었다. 이디나 역시 조금 전까지는 ‘어떡해요’를 연발하며 겉으로는 눈물을 글썽였지만 이런 자신의 위로 따위가 별반 소용이 없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니 황제하고 쌤쌤이군.”

옆자리에서 들려 온 낮은 목소리에 이디나가 얼른 입을 가려 보였다. 그리고는 푸른 눈을 반짝이는 이 금발의 잘생긴 미남자에게 속삭였다.

“넌 이제 나보다 잃을 게 훨씬 많아졌다는 걸 명심해.”

표정이 확 굳어버린 네코에게 이디나가 속삭였다.

“아버지의 딸이 죽었거든.”

“…….”

네코의 입술에 힘이 확 들어갔다. 이 똑똑한 남자는 ‘목숨밖에는 잃을 것 없는’ 여자의 한 마디가 공범에 대한 압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불릿의 핵심소재 납품을 했던 이디나가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셔틀에 손을 댄 건 분명 자신이었다.

이번 일로 아버지 타크티만 죽었다면 차라리 낫겠지만 대신관의 딸까지도 함께 죽었으니 이젠 그 비밀에 그의 마구스로서 정치생명까지 걸린 셈이었다.

“고마워, 이디나.”

네코는 ‘이제 내게 존대해야지?’라는 말을 목구멍 뒤로 꾹 넘기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새 마구스가 된 걸 축하해, 네코.”

표정을 싹 돌변한 이디나도 그제야 입가에 짧게 웃음을 보였다.

“난 오늘밤 데이트가 정말 즐겁겠어.”

+++++++++++++++++++++++++++++++++++++++++++++

3부의 진짜 악당이 과연 누굴까요?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The Iron Vein 개인지 주문게시판 : http://www.tasawwuf.pe.kr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