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86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
.
.
눈가를 살짝 찡그렸던 카렐이 얼굴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는 손을 앞으로 향했다.
“쳐라.”
황제의 명령을 받은 힐러도 뒤따라 얼굴을 가리고는 허리춤에 끼고 있던 나팔을 힘껏 불었다. 낮은 음조의 나팔소리가 새벽하늘을 물들이면서 어깨에 자기 몸뚱이만한 큰 기계를 하나씩 짊어진 거구의 ‘시라즈 여단’의 젊은 X병사들이 거친 바위들을 후다닥 뛰어넘어 셔틀 제조창 주변의 황무지로 뛰어들었다.
사관이 아닌 일반 병사들은 하나같이 7척(210cm) 가까운 거구에 검은 후드로 얼굴까지 완전히 가렸다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보아서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에게는 이번이 첫 실전이었다.
큰 바위를 뛰어넘은 병사들이 등에 지고 간 ‘기계’를 바닥에 내려놓고 훌쩍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세 개의 바퀴에 전기장치라고는 전무한 원시적인 내연엔진, 좌석 하나밖에 없는 작고 간단한 트라이크지만 사람 한 명을 싣고 거친 바위들 위를 내달리기에는 충분했다.
“돌격!”
트라이크에 올라탄 8백여 명의 황제 직속 시라즈 여단의 젊은 병사들이 문제의 격납고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8백여 대의 기계가 내뿜는 요란한 엔진소리, 바닥의 거친 흙과 돌을 흩뿌리며 생긴 뿌연 흙먼지가 마구스들이 모여 있는 격납고 주변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놈들 셔틀이 뜨기 전에…….”
병사들을 뒤따라 바위를 막 넘은 카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군용 셔틀 십여 대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셔틀은 공장 주변에 둘러쳐진 장애파를 피해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는 작은 글라이더에 탄 병사들 수백을 주변에 새처럼 확 뿌려놓았다.
아무런 동력장치가 없는 날개에 체중을 의지한 2백여 명의 병사들은 지상에서 흙먼지를 내뿜으며 돌진하고 있는 전우들의 머리 위를 쌔액 스쳐 문제의 공장을 향해 조금씩 고도를 낮추었다. 이들에겐 장애파도, 전파무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셔틀이 뜰 때까지 저놈들을 차단해!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제조창 외곽에서 마구스 일행을 지키던 쿠베가 2백여 명의 헤네티들에 제조창을 지키던 경비병들 백여 명까지 모조리 동원해 급히 외곽으로 내보냈다. 시라즈의 기습도 빨랐지만 이들의 대응 또한 못지않게 빨랐다.
“사격 개시!”
3백여의 무장병력이 순식간에 외곽에 방어선을 만들고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위력적인 ‘마우저’에 날개가 찢어진 글라이더 몇 대가 옆으로 기울면서 땅에 곤두박질쳤고, 부서진 트라이크가 박살이 나며 흙바닥에 굴렀지만 바닥에 나뒹군 병사들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방패와 무기를 빼들었다.
“저 새끼들 X 같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쏴!”
언뜻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건장한 적병의 모습에 놀란 쿠베가 소리를 질렀다. 쿠베가 지휘하는 헤네티들이 사격을 퍼부으며 외곽에서 X들의 접근을 저지하는 사이, 제조창의 엔지니어들과 노동자들은 격납고 안에 있던 셔틀들을 서둘러 밖으로 끌어냈다. 마구스 일행이 타고 왔던 셔틀과 이번에 새로 마련한 5대의 [불릿]까지 모두 끌어내느라 제조창 부근은 엔지니어들과 노동자들, 병사들로 정신이 없을 만큼 혼란스런 상황이 벌어졌다.
“현신께선 불릿에 타시는 게 좋겠습니다! 에너지장벽도 쳐 있고 사방에 저놈들 셔틀입니다! 보통 셔틀로는 못 따돌립니다!”
타고 왔던 셔틀에 허겁지겁 오르려는 마구스 일행들을 경호담당 슈라가 막아섰다. 그가 가리킨 스캐너 화면엔 주변을 맴돌고 있는 수십 대의 고속셔틀이 보였다.
“충전하느라 시간이 좀 걸려도 그편이 낫습니다! 6대나 되니 중요한 수행원분들과 나눠서 타고 최고속도로 빠져나가십시오! 불릿 정도 속도면 장애파 발생기도 못 잡을 겁니다!”
“그렇지만 크기가 너무 작은데…….”
아스탈은 자신이 타고 온 승용셔틀과 불릿을 얼른 비교해 보았다. 지금까지 타던 건 적어도 20명 이상 태울 수 있어 딸들과 수행원까지 모두 태워 올 수 있었지만 고속의 불릿은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대신 대여섯밖에 못 타는 것이 흠이었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고!”
“놈들은 불릿에 마구스가 탄다는 걸 알 테니 분명 그것만 노릴 겁니다! 다른 셔틀들은 그동안 능력껏 빠져나가면 됩니다!”
“잠깐, 아트위야는? 아트위야는 어디 있나?”
아스탈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이 제조창의 주인인 아트위야의 모습이 조금 전부터 보이지를 않았다.
“제가 찾겠습니다. 모두 일단 타십시오!”
슈라가 머뭇거리는 아스탈을 재촉해 반 강제로 불릿에 밀어 넣었다.
“다른 분들께서도 빨리 타십시오! 빨리! 앗.”
슈라는 아버지 아스탈을 따라 불릿에 오르려는 킴메리를 얼른 붙들었다.
“비상 상황입니다. 규정을 모르십니까.”
“뭐라고?”
“비상시엔 현신의 후계자께선 현신과 같은 차량이나 셔틀을 타선 안 됩니다.”
슈라는 아스탈과 이디나 옆을 계속 어슬렁거리던 타크티의 아들 네코를 덥석 잡아 아스탈의 셔틀에 밀어 넣었다.
“여기 타십시오!”
이디나는 슈라가 자신보다 킴메리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후계자에 준하는’ 맏딸의 안전을 먼저 확인해야 했지만 윗사람 눈치를 누구보다 잘 보는 슈라는 눈 밖에 난 딸자식이 아버지를 따라 타는지 마는지는 별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념한 듯 표정을 푼 이디나가 낮은 한숨과 함께 슈라에게 슬쩍 귀띔을 주었다.
“타크티 마구스 셔틀에 빈자리가 많을 거야, 슈라. 킴메리한테도 제일 익숙하고.”
“알겠습니다.”
슈라는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혼란통에 반쯤 넋이 빠져 있는 킴메리의 손을 허겁지겁 붙들고 타크티의 셔틀로 향했다. 이디나는 짐짓 씁쓸한 얼굴로 동생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킴메리.”
아버지 아스탈을 따라 불릿에 오르던 이디나는 타크티의 셔틀에 오르고 있는 동생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먼저 타 기다리고 있는 네코의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황제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아스탈 일행에게 상황은 여전히 급박했다. 바깥으로 여전히 시라즈의 군인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셔틀은 출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외곽 건물들에선 엔지니어들이 미리 준비된 비상 시나리오대로 건물과 자료들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는 중이었고, 몇몇은 중요한 부품이나 물건을 셔틀에 허둥지둥 싣는 중이었다. 건물 몇 개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제조창은 대규모의 전쟁터 한복판처럼 정신도 차리기 어려운 혼란이 연출되었다.
“안 돼, 이대론 안 돼.”
엄청난 기세와 압도적인 숫자로 몰려오는 시라즈 여단의 모습에 암담해진 슈라는 아직도 불릿의 이륙준비로 부산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엔지니어들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빨리! 빨리! 뭐 하나! 불릿을 당장 다 띄우지 않고!”
슈라에게 멱살이 잡힌 수석 엔지니어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직 연료 충전도 덜 됐다고요! 이대로는 30분도 못 납니다! 10분만요! 10분만!”
엔지니어가 슈라의 손을 떨치고 불릿에 연결된 동력 케이블을 가리켰다.
“글라이더가 날아듭니다!”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과 동시에 슈라의 눈앞으로 뭔가가 휙 스쳐 날아갔다. 헤네티들의 사격을 뚫고 제일 먼저 도착한 글라이더를 타고 우람한 거구의 X 병사 하나가 이미 엔지니어와 노동자들로 북적거리는 불릿 격납고 앞에 확 뛰어들었다. 7척 가까운 거인이 중간에서 떡하니 몸을 일으키자 셔틀 이륙 준비를 하던 엔지니어들이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뒤이어 또 다른 병사들이 하나 둘 땅에 내려서면서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갔다.
“동료들이 올 때까지 셔틀이 못 떠나게 시간을 끌어!”
글라이더를 타고 도착한 시라즈의 X 사관들이 속속 착륙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악을 썼다. 대오도 없이 산발적으로 떨어진 X 병사들이 막 도주를 준비하던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 셔틀에 달려들었지만 현신의 퇴각을 사수하려는 헤네티들의 결사적인 저항 때문에 마구스들이 있는 불릿에는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그동안 육상으로 돌진한 시라즈 선봉대도 육중한 전차로 철조망을 밀어 쓰러뜨리고는 뒤따라오는 동료들을 위해 길을 뚫었다. 몇몇은 트라이크를 탄 채로 철조망을 짓밟으며 넘었고, 몇몇은 아예 트라이크를 버리고 번개처럼 빠른 기세로 철조망을 후다닥 뛰어넘었다. 날짐승을 능가하는 빠른 몸놀림에 석궁 사격 따위는 거의 소용이 없었다. 운 좋게 명중한 마우저도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방패에 큼직한 자국을 내거나, 고작해야 팔다리에 맞춰 쓰러뜨린 것이 전부였다.
“비켜!”
웬 누런 망토 차림의 괴한이 탄 트라이크 한 대가 엔진이 부서질 것 같은 굉음을 쏟아내며 철조망을 짓밟고 공중으로 붕 날아올라 젊은 X 병사들의 트라이크를 무섭게 앞지르고 나아갔다. 그 폭주족은 앞에서 어물거리며 돌아서는 경비병 한 명을 들이받아 옆으로 사정없이 튕겨내고는 저지선을 돌파해 긴 흙먼지 꼬리를 그리며 격납고를 향해 미친 듯 돌진해 나아갔다.
“전진! 황상께 첫 피를 바쳐라!”
시라즈를 앞장서 이끄는 사관들이 그 망토를 뒤따라 철조망을 넘으며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무장한 자들은 다 죽여! 명령은 하나뿐이다!”
사관의 명령에 병사들이 악 소리를 내지르며 더욱 더 무서운 기세로 몰려들었다. 표적을 지시받은 그들의 눈엔 눈앞의 적 이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석궁이나 마우저를 들고 주춤주춤 물러나는 헤네티들을 향해 붉어진 눈을 크게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그 괴물같은 친위군 병사가 동료들에 뒤처진 경비병의 뒷덜미를 덥석 붙잡아 단숨에 목을 찢어 내던지는 모습에 헤네티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거 미친 괴물들이야!”
이 육중한 병사들이 방어선에 들이닥치면서 정신없이 사격을 퍼붓던 헤네티들의 대오가 일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때 맞춰 피하지 못한 경비병들이 이 괴물 병사들의 발에 밟히고 몸이 으스러지며 내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사막 중간의 격납고를 뒤흔들었다.
“물러나! 물러나서 불릿 격납고 주변을 우선 지켜!”
외곽 철조망 사수를 결국 포기한 쿠베도 팔을 저으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전방에서 X들을 저지하던 헤네티와 경비병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 마구스 일행이 있는 불릿 격납고 주변에 2차 방어선을 만들었다.
트라이크들 중 제일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는 ‘누런 망토’는 이미 불릿들이 서 있는 격납고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격납고도 다 태워버려!”
슈라가 인화물질 병을 몇 개 챙겨들고는 엔지니어들에게 손을 크게 저었다. 노동자와 경비병들이 남은 인화물질을 들고 와 마지막 남은 핵심시설인 불릿 격납고에 던지기 시작했다.
“불릿 먼저 띄워! 빨리! 빨리!”
셔틀들을 지키던 슈라가 아스탈의 불릿에서 충전케이블을 확 빼 내던지고는 동체를 쾅쾅 두들겼다. 나머지 셔틀들도 더 이상의 충전을 포기하고 일제히 엔진을 켜기 시작했다.
“대장! 아트위야 현신과 그 후계자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살름 마구스의 후계자분도 안 보입니다!”
“뭐?”
슈라가 창백한 얼굴로 격납고 안쪽을 휙 돌아보았다.
“아트위야 현신의 후계자께서 뭔지 몰라도 지하의 ‘근사한 것’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살름 현신의 후계자와 함께 들어가시는 걸 누가 봤다고 합니다! 아트위야 현신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아들을 찾아 지하에 뛰어 들어가시는 걸 누가 봤다고 합니다!”
“젠장! 왜 그런 짓을!”
슈라는 이미 불이 붙어 타기 시작한 격납고 안에 허겁지겁 뛰어 들어갔다. 연기가 매캐하게 들어찬 격납고 제일 안쪽까지 들어간 그는 지하와 연결된 철문 열리는 소리에 멈칫거렸다. 반사적으로 마우저를 겨누었던 그는 아트위야의 수행원이 이미 의식을 잃은 현신을 등에 업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모습에 얼른 무기를 거두었다. 그 수행원은 슈라를 보자마자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아트위야를 급히 어깨에 짊어진 슈라는 그가 나온 시커먼 지하실을 다시 돌아보았다.
“이봐! 다른 분들은! 구한 거야? 아닌 거야!”
기진맥진한 수행원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두 층 아래까지는 모시고 왔는데……모르겠습니다, 전 이분을 업고 나오느라 다른 분들은 미처…….”
수행원이 힘겹게 기침을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여기에 계십니까! 슈라입니다!”
슈라는 시커먼 내부를 향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그렇지만 이미 검은 연기가 제법 들어찬 안쪽에서는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몇 번을 외쳤어도 돌아오는 건 탁한 연기와 메아리뿐이었다.
“어쩌죠?”
제대로 걷지도 못 하는 수행원이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어쩌긴, 규정대로 해야지.”
슈라가 입가를 씰룩거리며 허리춤에서 인화물질 병 두 개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수행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니, 저 안에 아직 살아 계신데…… 안에는 아직 불이 옮겨 붙지도 않았습니다!”
“새 현신이 될 몸은 많다. 생포되어 치욕을 겪으시는 것보다 낫다.”
그가 안에 인화물질 병 한 개를 힘껏 던져 넣은 그 순간, 바깥쪽에서 내연엔진의 듣기 싫은 굉음이 이 소란통에서도 그의 귀청을 찢을 만큼 크게 울려왔다.
“익!”
막 고개를 돌린 그의 눈앞에 시커먼 형상이 매연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몸 빠른 슈라가 얼른 몸을 날려 가까스로 피했지만 남겨진 수행원은 그보다 운이 나빴다. 무언가 위력적인 일격이 탈진해 있던 수행원의 목에서 살점을 통째로 떼어내고 관통해서 벽에 질벅한 피얼룩을 그렸다.
“으익!”
볼트를 피해 바닥에 주저앉았던 슈라가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연기 속에서 휙 튀어나온 트라이크의 속도가 사람 하나를 짊어진 그보다는 훨씬 더 빨랐다. 무서운 속도로 노동자들과 헤네티들을 뚫고 격납고 안쪽까지 폭주해 들어온 누런 망토의 트라이크가 방향을 휙 돌리며 소름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아쿠!”
제자리에서 급회전하는 트라이크의 꼬리에 사정없이 받힌 슈라가 반대편으로 붕 날아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끔찍한 충격이 몸을 때렸지만 그는 현신을 꽉 끌어안고 충격을 자신의 몸으로 모조리 받아내고는 얼른 몸을 굴려 큰 부품상자 뒤로 재빨리 기어들었다.
“학, 학.”
슈라는 어질어질해진 머리를 억지로 쳐들어 박스 옆으로 슬쩍 머리를 내밀었다. 엔진과 바퀴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솟을 만큼 과열된 트라이크가 보였고, 그 위에서 웬 마른 여자 하나가 검은 코트 위에 걸친 거추장스런 누런 망토를 휙 벗어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익!”
사에나가 쏜 또 한 발이 박스 모서리를 단발에 박살을 내 흩어놓았다. 기겁을 한 슈라도 재빨리 마우저를 빼들고 반격을 하려 했지만 방금 트라이크에 받히면서 중간이 부서져 있었다. 이 강력한 무기는 너무 정밀하다보니 내구성이 약한 것이 흠이었다.
“이런.”
궁지에 몰린 슈라는 한 팔에 아트위야를, 한 팔에 불이 붙은 인화물질 병을 꽉 끌어안았다. 얼핏 스친 옷차림과 얼굴에서, 그는 상대가 누군지를 바로 파악했다.
“오호, 폭주족 가짜현신이시로군.”
슈라가 상대를 슬쩍 도발해 보았다. 그 역시 상대가 에아 혈통을 받은 어마어마한 명사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네가 안고 있는 년 혹시 우리 총리께서 아주아주 보고 싶어 하시는 그년이 아닐까 몰라.”
흥분을 가라앉힌 사에나가 여전히 석궁을 앞으로 겨눈 채 빈정거렸다. 트라이크를 폭주해 선봉으로 이곳까지 달려왔던 그는 헤네티 지휘관이 인화물질 병을 들고 격납고 안에 뛰어드는 모습에 ‘뭐 중요한 게 있나’ 하는 직감에 무작정 쫓아 들어온 터였다.
‘음?’
사에나는 열려있는 철문 안쪽 지하실로 바깥의 매개한 연기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 큰 공간 혹은 시설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격납고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섬유로 만들어진 지붕은 이미 타들어가고 있었고, 당장 빠져나가지 않으면 양쪽 모두 달아날 기회조차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상대가 불 속에서 달아날 생각도 않고 버티는 모습에 아트위야를 지키는 슈라도, 그를 겨눈 사에나도 피가 바싹바싹 말랐다.
그때, 바깥에서 불릿과 셔틀이 이륙하는 엔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하실에선 불이 제대로 타오르기 시작했는지 사람들 비명도 들려왔다.
‘빌어먹을, 어쩌라고.’
이미 다른 팀들은 퇴각을 시작한 게 분명했다. 슈라의 눈앞에 샛노래지는 느낌이었지만 저 마녀 같은 자칭 에아 현신은 양쪽 모두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불 속에서 그를 겨누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년 완전 미쳤잖아.’
슈라가 인화물질을 쥔 채 계속 침을 삼켰다. 상대가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여야 역습을 하건 도망치건 택일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사에나는 지붕이 타던, 밖에서 누가 도망가건, 지하에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점점 커지건 듣지도 않는 듯 조준만 하고 인형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봐, 밖에서 나는 엔진음도 안 들리나봐? 우리 편들 도망가고 있거든?”
맘이 급해진 슈라가 악을 썼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저, 저 지하 안에 감옥이 있어! 안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명색이 보안국장이면 빨리 들어가 구해야지! 저 안엔 지금…….”
“내 식구도 아닌데 타 죽든 말든.”
사에나가 불 속에 선 채 슈라가 숨은 박스를 겨눈 석궁 끝에 눈을 똑바로 고정시키고 음산하게 웃었다.
“난 여기서 나쁜 놈 죽이는 게 더 좋아.”
+++++++++++++++++++++++++++++++++++++++++
어제부로 진짜 호랑이해가 되었네요. 새해 복 한아름씩 받으세요 ^^
혈맥 The Iron Vein 팬카페 : http://cafe.daum.net/TheIronVein
The Iron Vein 개인지 주문게시판 : http://www.tasawwuf.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