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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885화 (880/1,132)

< -- 885 회: Part 6. 저승길에 남겨놓은 발자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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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를 잘 했다고 칭찬을 해 줘야 하는지, 길길이 뛰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소이다.”

[12번 잔딕]도 확인할 겸, 다른 용무도 해결할 겸 다른 동료 마구스들과 함께 트라에타오나 교단의 하임달 궁까지 달려온 아스탈은 예상도 못 했던 다른 소식에 얼굴 근육까지 파르르 떨며 쏘아붙였다. 천하의 아트위야 앞에서 지금껏 험한 말이라고는 한 번도 못 했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눈까지 시뻘겋게 변한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밀리타가 그쪽으로 넘어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

명목이 없어진 아트위야는 대신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살며시 외면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스탈을 따라온 3명의 다른 동료마구스들, 가르시바와 살름, 타크티의 시선 역시 별반 곱지를 않았다.

“그레이오팔이 실려 오면 무조건 죽이라고 인근 병원의 우리 사람들에게 긴급통지까지 띄워 놨는데 미처 명령이 하부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셔틀 편에 응급실로 실려오고 의료진이 배정되어서…….”

“그대답지 않게 변명을 하깁니까? 그래서, 결론이 뭐라는 건데요?”

아스탈이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아트위야의 금색 눈에 대뜸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아트위야가 애써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심폐소생만 끝낸 상태에서 보안국 놈들이 생명 유지장치까지 통째로 떼어서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합니다. 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 아닌데.”

아스탈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씩씩거리던 숨을 잠시 가다듬었다. 아트위야가 민망한 듯 말을 이었다.

“뇌손상이 심했다고 합니다. 뇌세포를 회복한다고 해도 이전의 성격이나 기억이 일부 훼손되었을 수도…….”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무심결에 목소리를 쩌렁 높였던 아스탈은 갑자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트위야의 눈빛에 급히 표정을 추슬렀다. 아무리 실수가 있다고 해도 아랫사람들 앞에서 현신을 망신 줄 만큼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마구스들이 각자의 후계자까지 모두 데리고 나온 특별한 날이었다.

“됐소, 나중에 생각하지.”

아스탈은 아트위야를 나무라는 일을 일단 이 정도에서 접었다.

“어차피 30년 동안은 하렘에 갇혀서 제대로 된 정보에 접근도 못 했으니 그쪽에 넘어가도 어차피 놈들에게 새삼스레 중요한 내용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요. 물론…….”

밀리타가 카렐의 품에 안겨있는 광경을 무심결에 떠올렸던 아스탈은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솟구치는 부아를 억지로 참았다. 갑자기 혈압이 솟구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쨌거나, 잔딕 좀 봅시다.”

아스탈이 아트위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곤란한 주제에서 벗어난 아트위야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투명 상자에 든 [12번 잔딕]을 내밀었다.

“맞습니까?”

“수명개조가 됐다고 기억까지 무한대는 아니라오.”

아스탈은 잔딕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그가 딱히 아는 것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야투 그 늙은이가 곧 올 테니 확인해 주겠지요. 어쨌든 수고하셨소.”

아스탈은 잔딕을 수하에게 넘기고는 별로 내키지 않는 칭찬을 마지못해 한 마디 해 주었다.

“완성된 셔틀은 어딨소.”

아스탈은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돌아섰다. 이 다섯 마구스 일행이 서 있는 곳은 조명도 앞사람 분간이나 가까스로 될 정도였고 주변은 온통 깜깜했다.

“극적인 효과라도 내려고 이렇게 연출을 해 놓으신 거요? 간만에 하임달 궁 구경이나 하게 불이나 좀 켭시다.”

“그럽죠.”

아트위야가 한쪽에서 동력 스위치를 쥐고 있던 엔지니어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가 동력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온통 짙은 어둠뿐이던 일행의 머리 위로 눈부신 조명이 쏟아졌다.

“유후.”

재물과 돈이라면 눈빛이 달라지는 살름 마구스가 제일 먼저 손뼉을 짝짝 쳤다. 그리고 이런 ‘어른 장난감’에 유독 관심이 많은 바유 교단의 타크티 빈 바유 마구스가 뒤를 이어 함께 손뼉을 쳤다.

“수고하셨소, 아트위야.”

타크티가 아트위야에게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6척 반(195cm)이나 되는 호리호리한 키에 어깨까지 늘어진 긴 금발, 매혹적인 푸른 눈의 이 잘생긴 남자는 마구스들 중 유일하게 ‘콧대 높은 아트위야’의 침실에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는 소문도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빼어난 외모와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멍청한 언행으로 ‘입만 닫고 있으면 금발의 이오타 요아킴’이라는, 욕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남자였다.

“그대의 멋진 ‘불릿’ 부러워하다가 흘린 침으로 옷이 성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오.”

장난기 많고 땅딸막한 가르시바 마구스가 5대의 화살촉 모양 셔틀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는 도크로 나서며 농담을 던졌다. 색만 조금씩 다를 뿐 아트위야가 타고 다니던 바로 그 셔틀이었다.

“시험비행은 제 목숨을 걸고 1년이나 실시했으니 이젠 맘 놓고 타셔도 될 겁니다. 원하시는 대로 도장도 방금 끝냈습니다. 이번에 황제와 싸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오호, 그럼 다섯 대 모두에 그대의 체취가 배어있다는 말이요?”

타크티의 능글한 언사에 아트위야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대 것만 안 타 봤다면 어쩔 겁니까.”

쓸데없이 추근덕거렸던 타크티는 아트위야의 냉담한 대응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저 둘이 굉장히 사이 좋아 보이더니, 요즘 좀 이상하지 않아요?”

거구의 살름이 몸을 잔뜩 숙이고 가르시바의 귀에 속삭였다. 사실 말이 속삭이는 것이었지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들을 정도였다.

“듣자하니 아트위야가 제대로 맘에 둔 남자가 새로 생겼다오, 못 들으셨소? 큭큭.”

“아하.”

눈치를 챈 살름이 킥킥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기야, 남자 입을 평생 봉하고 만날 순 없으니.”

“흠흠.”

아트위야가 낮은 헛기침으로 동료 마구스들의 쓸데없는 잡담을 일단 차단했다. 그제야 입을 다문 마구스들이 각자의 셔틀로 다가가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킴메리.”

아버지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한 이디나는 뒤를 따라오고 있는 여동생을 힐끔 돌아보았다. 언니의 부름에 동생이 아버지를 꼭 닮은 회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쳐들었다.

“네?”

“성년이 된 걸 축하한다.”

“고마워요, 언니.”

동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지만 그리 선량한 눈빛은 아니었다. 마구스 가문에서 ‘성년’이라는 건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디나는 30살이 다 되어가는 나이이지만 가문 기준으로는 아직 성년이 아니었다.

“어젯밤 아버지께서 잘 해 주셨니?”

“하긴, 궁금하시겠지요.”

킴메리가 앞니를 살짝 드러내고 기이하게 웃었다. 이디나는 동생의 모멸적인 언사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듯, 여전히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젠 내가 맏이인데 동생들 일을 누가 챙기겠니.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꼭 이 언니한테 물어보려무나.”

이디나는 동생의 고운 갈색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 중 처음으로 성년 딱지를 달고 온갖 야심이 주체 못하게 철철 넘치는 여동생은 무능력한 언니의 격려 따위엔 별로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언니도 오늘밤에 약속 있다고 들었는데요?”

“응?”

이디나는 이번에도 표정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저 20살도 되지 않은 동생이 벌써부터 자신의 일상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가증스럽게 느꼈을 뿐이었다.

“난 너보다 자유롭지 않니. 나도 까짓 데이트 좀 하면 안 되니?”

“매번 딱지만 맞으니 그러죠. 또 엄한 사람 하나 아버지 손에 가겠네요.”

“푸훗.”

이디나는 동생이 비웃건 말건, 능청스럽게 웃기만 했다.

“저기 있는 타크티 빈 바유 마구스 정말 잘생기지 않았나?”

이디나가 동생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언니의 엉뚱한 말에 킴메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

“그래서요? 설마…….”

“아까 하는 말 들었는데, 너랑 셔틀 같이 타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이디나가 동생의 귀에 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미남 마구스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말에 동생의 표정이 그제야 싹 달라졌다.

“저 양반 셔틀 모는 거 굉장히 좋아하거든.”

이디나가 다시 선한 웃음을 보였다.

동생이 아직 어리고 철은 없지만 저 ‘입을 닫아야 마구스다운’ 남자에게 외모 따위로 관심이 끌릴 리도 없고, 게다가 마구스 가문 사람들끼리의 ‘사적인 관계’는 절대 금지된 터부인 이상, 스스로 무덤을 팔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저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 몸이 달은 젊은이로서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터였다. 어쨌든 동생이 아직은 표정까지 감출 만큼 영악하지는 못한 게 분명했다.

“속내야 내 알 바 없지만 너한테 관심은 있는 것 같으니 가서 말이나 좀 트고 오려무나.”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해요.”

킴메리는 언니 이디나의 옆을 스쳐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하지만 셔틀을 구경하는 척 하던 그는 아니나다를까 타크티 마구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디나, 오랜만이야.”

동생을 지켜보던 이디나는 익숙한 아트위야의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이번에 자네 광산과 우리 제철소가 광물 공급계약을 끝냈다지?”

“계약내용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이디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아냐, 아냐, 난 계약 같은 건 신경 안 쓴다네. 장사 소질은 꽝이거든. 그런데 우리 제철소 매니저가 사색이 다 됐던걸. 자네하고 단가 협상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위대한 현신께서 자네의 그런 열정과 능력을 알아주신다면 얼마나 좋을지 안타까울 뿐이야.”

이다나가 슬쩍 눈동자를 움직여 아트위야의 눈을 보았다.

아트위야가 파란색 눈동자를 섬뜩하게 반짝거리며 말했다.

“아참, 타크티 마구스가 죽은 나딘의 의료기록을 입수했다는 말은 했었던가.”

이디나의 턱에 힘줄이 확 잡혔다.

“편지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게 왜 보내셨는지요?”

“공개할 생각은 없네. 그냥 알고 있으라고.”

아트위야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낀 이디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직책상 거래가 유독 많았던 아트위야가 자신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건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직접적인 협박을 보내온 건 처음이었다. 아트위야와 타크티 일당이 정말 자신이 오빠 나딘을 죽였다는 증거를 찾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앞으로 두고두고 써먹으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이디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아트위야의 뒷모습을 슬쩍 노려보았다.

“저 따위 멍청이와 손잡고 날 협박하다니, 실망일세, 아트위야.”

아트위야에게서 관심을 끊은 이디나는 타크티와 함께 온 그의 맏아들 ‘네코 빈 바유’에게로 조용히 향했다. 그 역시 아버지를 닮은 미남자이지만 입만 열면 머리에서 깡통 소리가 나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야무진 눈빛의 남자였다.

“네코, 내 제안 생각해 봤어?”

대신관의 딸 킴메리와 쑥덕거리고 있는 아버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던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디나에게 슬쩍 웃음을 보였다.

새 셔틀을 구경하느라 부산한 셔틀 도크 안에 노인 하나가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모습을 나타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러게 자네도 몸 좀 새 걸로 바꾸라니까, 야투 박사.”

아스탈은 늙고 무거운 몸으로 엉거주춤 다가오는 아프라스 야투 박사에게 가벼운 핀잔을 주었다.

“이거 좀 확인해 달라고.”

아스탈은 상자에 든 [12번 잔딕]을 이 늙은 학자에게 내밀었다. 야투 박사는 손에 장갑을 끼고는 조심조심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이제 됐나? 이제 황제에게 사형선고가 확정된 거겠지?”

아스탈이 여유만만하게 물었지만 야투 박사는 잔딕을 든 채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이거……어디서 나셨습니까?”

“놈들이 시그마 오르마즈의 시체에서 꺼내는 걸 봤습니다.”

이번엔 이 물건을 빼앗은 헤네티 슈라가 대답했다.

“……시그마의 시체가 분명했나? 눈으로 확인했어?”

젊은 헤네티에게 따져 묻는 야투 박사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제야 무언가 직감한 아스탈도 슈라를 노려보았다. 당황한 슈라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눈으로는 못 보고…… 그놈들의 반응이 시체를 찾은 것 같아서…….”

“이거 가짜라고! 일단 설치가 끝나고 시간이 지난 잔딕은 내용물이 확 줄어서 깡통처럼 가볍다고! 이건 새것하고 똑같은 무게잖아!”

창백해진 슈라는 아직 영문도 모른 채 다른 마구스들에게 셔틀 제원을 설명해주고 있던 아트위야를 휙 돌아보았다.

“설마…….”

그때, 이들이 있는 도크 안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이 도크의 주인인 아트위야가 설명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뒤이어 방금 야투 박사가 들어왔던 문으로 트라에타오나 교단 헤네티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와 아트위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속미상의 무장 병력이 북쪽과 동쪽 외곽 바위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당황한 아스탈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는 이 자리에 모여있는 동료 마구스들, 그들을 따라온 후계자들까지도 모조리 위험에 처하게 된 꼴이었다. 적이 그 사실까지 아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자칫 교단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사막 고원 중앙의 트라에타오나 교단의 셔틀 제조창 주변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박아놓은 듯 사람 키 서너 배 정도의 뾰족뾰족하고 거친 바위로 꽉 채워진 좁은 지대가 반지처럼 빙 에워싸고 있었다.  이른 새벽의 황량한 고원에선 제법 쌀쌀하고 건조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검은 망토와 후드로 온몸을 가리고 바위 사이에 서 있던 장신의 전사가 입가를 씰룩거리며 팔짱을 끼었다.

“기가 막힌 입지로군.”

“저기가 맞습니다, 폐하.”

보안국장 사에나가 스캐너를 확인하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바위지대 중간의 셔틀 제조창은 서너 동 정도의 큰 건물과 몇 채의 사무동으로 이루어진, 누가 봐도 전혀 의심받을 것 없는 평범한 공장이었다.

카렐이 그레이오팔 눈가에 붉은 광채를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저기가 정말로 ‘하임달 궁’이라면 시라즈 별궁은 초호화 궁전이라고 지탄받아도 할 말이 없겠어. 안 그렇소, 학장.”

카렐이 다친 다리에 프레임을 대고 이곳에 나와 있는 코리온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바위 꼭대기에 엎드려서 전방을 주시하던 자이납이 방정맞게 낄낄대고 웃었지만 루스탐을 빼고는 아무도 따라 웃는 사람이 없었다. 애당초 표정이 없는 사에나나 그를 ‘나의 현신’이라며 받들고 있는 코나는 물론이고 황제를 호위하는 십여 명의 시라즈 여단 X들과 가디언 힐러까지도 얼굴이 그림으로 붙여놓은 듯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사에나가 자료를 펴들고 말을 이었다.

“당국에 합법적으로 등록된 셔틀 제조창입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선 꽤 이름 있는 경주용 셔틀 전문 제작소입니다. 기술유출을 핑계로 이런 외진 곳에서 외부인들을 철저히 차단하고 운영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혀 의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광산도 그러더니, 이유들은 하나씩 다 있군. 이전 이런저런 핑계로 접근 못 하게 하는 시설들을 모조리 긁어봐야겠어.”

카렐이 한 다리를 바위 위에 딛고 서며 코웃음을 쳤다. 사에나가 한 마디 덧붙였다.

“놀라실지 몰라도, 리쿠 학장님께서 지난번 레이스에 몰고 나가셨던 셔틀도 저기서 주문 제작했던 것으로 압니다.”

코리온의 낯빛이 잠시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페를 눈앞에서 잃고 의기소침해 있던 그는 오늘도 여전히 힘이 없어보였다.

“아직 저들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많으니 교단에 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신 학장께서 도움을 좀 주시오.”

카렐이 어깨에 손을 얹자 코리온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싸움도 할 줄 모르는 그를 황제가 굳이 여기까지 불러온 건 교단에 아들을 납치당하고 분노에 불타고 있는 그의 맘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카렐이 옆에 있는 힐러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런데 에너지 장벽 설치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지형이 험하고 경비가 삼엄해서 쉽지 않습니다. 가능한 곳은 간이장벽을 설치하고 나머지 지역엔 자기(磁氣)무기를 든 요원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한 대라도 놓쳤다가는……아니, 그년이 타고 다니는 그 괴상한 셔틀만이라도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카렐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이런 곳을 택했는지 몰라도, 저 공장에 모르도록 접근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공장 주변엔 다른 셔틀이 접근 못하도록 장애파 발생기가 빼곡하게 깔려 있고, 반경 10스타디아 정도는 토끼 한 마리도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쭉 뻗은 평원이었다. 바로 그 바깥쪽은 차량이나 말은 감히 들어서지도 못할 만큼 험악한 바위밭이 성처럼 감싸고 있었다.

“여기.”

코트만 걸치고 있던 사에나의 어깨에 코나가 두툼한 망토를 걸쳐주었다.

“바람도 찬데.”

사에나는 가슴에 꼼꼼히 금줄을 걸어 채워주는 이 땅딸막한 연인을 흘끔 내려다보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몸매를 살려주는 딱 붙는 사제 코트 위에 무언가 한 장이라도 더 걸치는 것을 참지 못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에나의 코트 허리선을 매만지던 코나가 작게 말했다.

“새 옷 안 맞고 불편하면 말하고.”

“딱 맞아. 지난번 태워서 버린 코트처럼.”

“이까짓 옷은 몇 벌이라도 지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코나가 더 이상의 말을 피했다. 둘은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억양도 없이 건조한 말투로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빵하고 과자 많이 구워놨으니까 황제령 돌아갈 때 가져가.”

“응.”

필요한 대화만 딱 끝낸 둘은 허리춤의 무기를 쥐고 무표정하게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니미럴.”

바위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공장을 살피던 자이납이 무심코 욕을 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격납고 문이 열리고 있어요. 안에 셔틀들이 보이는데요?”

“설마, 벌써 들킨 거냐.”

카렐이 다시 시계를 보았다. 구석구석에 숨은 정찰 헤네티들이 언젠간 눈치를 채리라 예상은 했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에너지장벽은 아직 완성 안 됐나!”

카렐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직 동쪽 일부가 열려 있습니다.”

“안에 셔틀들이 나와요. 어쩌죠? 달아나려나 봐요.”

바위 위에 있던 자이납이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눈가를 살짝 찡그렸던 카렐이 얼굴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는 손을 앞으로 향했다.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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