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24 회: 파트 3. FimbulWinter - 세 번째 겨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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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덜 끊어진 그자는 자신을 찌른 자말을 노려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입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 제대로 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그자는 자말과, 구석의 수레에 실려 있는 마야를 향해 야속한 시선으로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그렇게 말 한 마디 못한 채 숨이 끊기고 말았다.
“어떤 놈들인지는 털어놔야 할 것 아냐!”
격앙된 제네르가 그자의 턱을 움켜잡고 다시 악을 썼다. 이번 일이 왜 있었는지, 어떤 자들, 어떤 조직의 소행인지 말을 해 줄 유일한 피의자가 죽어버린 셈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공격하려는 것 같아서…….”
당황한 자말이 더듬거리며 변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제네르에게는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할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씨이! 어떤 놈들 짓이냐고! 어떤 놈들이냐고!”
죽어버린 관리인을 의미 없이 흔들던 제네르는 주먹을 쳐들고 시체를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주먹에 얻어맞은 시체는 둔탁한 소리만 낼 뿐 그가 원하는 내용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빌어먹을 놈들 짓이냐고.”
자리에서 부르르 떨던 제네르는 가족들의 시체가 가득 실린 수레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으며 결국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랫사람들 앞이었지만 어처구니없이 몰살당한 가족들 시체 앞에서 그런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
죽은 부모님의 시체를 끌어안고 섧게 우는 제네르 옆에서 자말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피가 배어나는 옆구리를 붙들고 다른 수레에서 신음하고 있는 마야 쪽을 힐끔 돌아보고는 침통한 얼굴로 눈을 감쌌다.
“괜찮아요, 마야도 있고 저도 남아 있잖아요. 괜찮아요.”
자말이 수레의 시체를 안고 우는 제네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주었다.
“빨리 초소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폭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요. 다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백 명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 마야도 빨리 치료해야 하고요.”
“마야? 마야?”
힘겹게 일어섰던 제네르는 그제야 정신이 반쯤 돌아왔는지 막내 여동생 쪽을 돌아보았다. 금발에 푸른 눈, 승마와 기병 생활로 다져진 다부진 몸까지 제네르를 똑같이 빼닮은 키 큰 여자가 언니의 광기를 그대로 지켜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야? 괜찮은 거니?”
제네르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혈육의 이름을 조심스런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아직도 공포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듯, 가늘게 떨리고 있는 마야의 푸른 눈동자가 맏언니의 젖은 시선과 딱 마주쳤다.
“가요, 가!”
마야는 자신을 안아주려 뻗어오는 제네르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마야? 나라고, 언니라고. 그냥 상처 좀 보려고…….”
제네르가 그의 상처에 손을 대려 했지만 마야는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언니의 손을 거칠게 밀어냈다. 이 동생도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공포에 질린 채 제네르를 쳐다보던 그는 자말 쪽도 휙 돌아보았다.
“이 여자 쫓아내 줘, 자말! 여기서 빨리 꺼져, 이 여자야!”
“맙소사.”
언니인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며 발광을 하는 동생의 모습에 제네르는 조금 전의 슬픔까지 잊어버린 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마야도 한때 남극성당에서 유학을 공부했고, 기병 초급장교 생활도 했었고, 지금은 생물학자로 종마장의 말들을 개량하던 다재다능한 엘리트였다. 언니 못지않게 똑똑하던 그가 지금은 공포 앞에서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어쩌다, 어쩌다…….”
제네르가 말을 더듬거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자말이 얼른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인들이 다 죽은 와중에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싸우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집 안에서 가족들 비명소리를 듣고 저렇게……. 후우, 조금 안정된 후에 다시 말을 걸어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또다시 감정이 북받친 제네르는 더러워진 두 손으로 침통에 빠진 얼굴을 가렸다. 가족들은 몰살당했고, 유일하게 남은 동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빨리요, 여길 빨리 떠야 합니다.”
자말의 재촉에 마지못해 돌아선 그는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휘청거리며 말에 올랐다. 그리고 상장군을 지키는 4명의 중무장 기병들이 얼른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황실군 최고지휘관을 지키는 호위병인 만큼, 모두 사관 이상의 계급에 무장 수준의 장비와 기량을 갖춘 잔뼈 굵은 정예병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자말을 따르는 분견대 소속 일선 기병들과도 차이가 확연했다.
“가자.”
제네르의 고삐를 대신 잡은 자말은 뒤의 병사들에게 수레를 끌고 오라며 손짓을 하고는 서둘러 1번 초소로 향했다.
“입 가리세요.”
말 위에서 흐느적거리는 제네르의 입가에 자말이 손수건을 꺼내어 대 주었다. 그는 어느새 뿌옇게 변해버린 주변을 둘러보며 눈가를 잔뜩 찡그렸다.
“공기가 굉장히 나쁩니다. 저 화재 때문인지…….”
자말이 그를 다시 추슬러 주었지만 패닉에 빠진 제네르는 주변 공기가 어떤지, 시야가 어떤지 따위를 인식할 여유조차 없었다. 자말은 뒤를 추격해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초조한 표정으로 연신 돌아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길 만큼이나, 돌아가는 길도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뿌옇게 흐려진 공기 속을 한참 나아간 일행은 끝도 없이 흐려지기만 하는 시야에 조금씩 곤경을 겪고 있었다. 지금껏 주둔한 익숙한 곳이었지만 방향과 거리 감각이 흐려지면서 훈련된 군인들조차 이렇게 당황하고 있었다.
“왜 이리 앞이 안 보이지. 다 온 것 같은데.”
앞서가던 보병대 사관이 투구의 호흡장치를 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우리 초소도…….”
“길을 잃은 것 아닐까?”
방향을 잃었다는 공포감에 병사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다행히 잿빛 대기 너머로 검은 초소 건물의 형체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반 스타디아(75m) 앞도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해 지기 직전처럼 깜깜한 게 뭔가 이상합니다.”
선두의 사관이 뒤따라오는 자말과 상장군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화재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느낌이 이상한지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리는 것 같고……빨리 실내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관은 소매 위에 거무스름하게 내려앉은 짙은 회색 먼지를 급히 털어내 버렸다. 지금까지 머뭇거리던 병사 한 명이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화산이 소리 없이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닐까요? 조금 전 지진도 그렇고 말입니다. 이것도 화산재일지도…….”
“말도 안 돼, 5일 전 다녀간 지질학자도 아무 변화가 없다고 했어.”
병사들 사이에 잠시 논쟁이 벌어졌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사관이 멀리 누군가가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엇!”
사관의 손짓을 받은 병사들은 초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낯선 실루엣에 일제히 석궁을 겨누었다. 평소 같으면 얼굴에 붙은 밥알도 알아볼 거리였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아군은 아니다’ 정도만 어렵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말에 탔다. 사격 준비.”
석궁을 겨눈 병사들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호드르 시가지와 가까워서 민간인도 종종 드나드는 곳이었지만 조금 전의 참사와 제한된 시야로 신경이 곤두선 병사들 눈에는 움직이는 건 모두 적으로만 보였다.
“잠깐.”
자말이 흥분한 병사들을 일단 저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상대방도 이쪽을 발견했는지 움직임을 멈추는 것 같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신분을 밝혀라.”
“그쪽은 누구죠?”
마찬가지로 이 일행을 뒤늦게 발견한 검은 그림자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지만 곧 조심스런 말투로 되물어왔다.
“그쪽이 누군지부터 먼저 밝혀! 50명의 병사들이 널 조준중이다!”
자말은 고작 20명 조금 넘는 병력을 2배가 넘게 과장하며 일단 큰소리를 쳤다. 앞이 잘 보인다면 바보도 속지 않을 거짓말이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기는 어차피 피장파장일 터였다.
“쏘지 마세요. 이그나토 본가 근위병입니다!”
‘50명’이라는 말에 놀랐는지, 검은 형체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쳐들었다.
“네피 장군님과 윌더 이그나토 경을 모시고 있습니다! 두 분께서 시내에서 공격을 당해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뿌연 잿빛 대기 너머로 5개의 형체가 점점 또렷해졌다. 말에 탄 한 남자가 민간복 옷깃을 풀어헤치고 속에 입은 이그나토 가 근위병 정복을 내보였다. 엉뚱한 사람을 쏠 뻔했던 자말의 병사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무기를 일단 치웠다.
“그런데 지금 뭐라 했나? 윌더 경하고 네피 장군님까지?”
“네놈은 누구냐?”
굵고 거친 목소리와 함께 상대방 일행의 뒤쪽에 있던 육중한 실루엣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곳에는 한 손에 도끼를 쥔 거구의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 팔을 크게 다친 듯 무언가로 돌돌 말고 있었지만 제국 제일의 맹장을 못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자말, 자말 하크로딘 비장입니다. 이곳 황실군 분견대장입니다.”
자말이 무기를 내려놓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네르 양자 자말?”
네피가 그제야 맘을 놓으며 도끼를 도로 허리춤에 걸었다.
“빌어먹을, 사방에 믿을 놈이 있어야 말이지. 후우, 이제야 맘이 놓이네.”
“시내에서 공격을 당하셨다고요? 거기도 폭도들이 날뛰고 있습니까?”
“거기‘도’ 라니? 여기선 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말이 제네르를 곁눈질로 힐끔 돌아보았지만 그는 오랜만에 만난 옛 전우에게 반가움을 표할 정도의 여유도 없는지 여전히 넋이 나간 채 안장에 앉아있었다.
“일단 초소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짙은 잿빛 안개 속에서 어색하게 만난 두 일행은 다시 초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네르? 무슨 일 있는 거야?”
초소에 먼저 들어선 네피는 시체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자말의 부축을 받으며 뒤따라 들어온 제네르에게 걸걸한 소리로 물었다. 뒤이어 중상을 입은 윌더와 마야도 들것에 실려 들어오면서 자그만 초소 안은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 버렸다. 초소에 상주하는 의무병은 윌더와 화상을 입은 네피에게 응급처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마야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공포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자말이 중상을 입은 윌더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시내에는 무슨 일이 난 겁니까? 상태가 저런데 시내 병원으로 가시지요?”
“시내? 말도 마.”
네피가 제네르와 자말에게 손을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거긴 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폭동이라고. 지난번 몸에 불 붙이던 그 미친놈들도 있는 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몸에 불을 붙이는 놈들이라뇨?”
네피의 말을 이해 못 한 듯 자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 불을 붙이고 다시 엉뚱한 곳에서 부활하는 그 괴물 같은 부대의 존재는 ‘사교도에 대한 공분(公憤)’을 자아낼까 하는 우려 때문에 아직까지 철저히 기밀로 기려져 있었다.
“차도 안 움직이고 통신도 안 돼. 기계라는 기계는 죄 먹통이라고. 윌더, 윌더는 좀 어때? 말 좀 해 봐!”
네피는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는 윌더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의무병에게 괜스레 고함을 질러댔다. 조금 전까지 어렵사리 말도 하던 그 청년은 지금은 흐려진 눈만 여기저기 굴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하는 의무병의 잔뜩 굳은 표정에서 사람들 모두 무언가 나쁜 기운을 직감했지만 누구도 입방정을 떨지는 않았다.
“대체 이게…….”
자말이 유선 통신기에 달라붙어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별궁하고는 연락 됐나?”
“자꾸 끊겨서 반복해서 시도 중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내용으로는 그쪽엔 아직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황실 손님들이 모두 돌아오시는 대로 프리깃이 이곳을 떠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때까지도 문가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제네르는 수레에 실린 채 초소 밖에서 검은 재를 그대로 맞고 있는 가족들의 시체를 힘없이 돌아보았다. 조금이나마 판단력을 되찾은 그가 자말에게 힘없이 입을 열었다.
“여기 남아 있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다. 대대적인 폭동이라면 보병 20명으로는 아무 것도 못 한다. 일단은 별궁이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아니 상장군님께선 다른 분들과 함께 프리깃을 타야 하지 않습니까. 보병들까지 가면 너무 늦어지니 환자들만 추슬러서 말을 타고 빨리 별궁에 가십시오.”
양자가 아닌, 휘하 무장의 신분으로 돌아간 자말이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호위병 넷으로는 위험하니 제 기병들과 함께 가십시오. 전 이곳 상황을 대강 정리하고 보병들을 모아 행궁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시신은 병사들 시켜 가져가겠습니다.”
“군사학교에서 우선순위가 뭔지도 안 가르쳤더냐.”
“예?”
제네르는 더 이상 귀한 시간을 끌지 않고 눈물을 감추며 문을 향해 휙 돌아섰다.
“유목민은 남은 몸에 연연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제네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흐느낌이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차도 못 쓰는 상황에서 보병들의 두 다리만으로 10구가 넘는 시체를 산꼭대기 행궁까지 가져가는 건 분명 바보짓이었다.
“고향인 흙과 바람으로 돌아가면 그걸로 됐어.”
“하지만…….”
자말은 뒤돌아선 제네르의 어깨가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문을 막 나서려던 제네르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혹시라도, 만약에 혹시라도, 우리가 별궁에서 무사히 떠나지 못했다는 말을 듣거든 분화구 반대편의 지진관측소로 와라.”
자말은 제네르가 별 의미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타르에 다가가던 제네르는 자말에게 주려고 이곳까지 끌고 온 붉은 준마를 그제야 생각해 냈다. 그는 이 새 말의 고삐를 추슬러 자말에게 불쑥 내밀었다.
“이걸 받으면서 네가 웃는 얼굴을 상상했었는데.”
“예에? 이 말이요?”
자말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붉은 털로 덮인 근육질 건장한 체구에 검은빛이 감도는 갈기, 굵고 튼튼한 다리를 지닌 대단한 준마였다. 수려한 외모도 외모지만 크기도 웬만한 덩치의 주인은 왜소해 보이게 만들 정도였고, 안장을 매는 끈에는 ‘황제가 탔던 말’을 뜻하는 황금 브로치까지 달려 있었다.
“이 말을 주신다고요? 이것도요?”
자말이 말의 뺨과 마구를 어루만졌다. 안장 옆에는 전(前) 주인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단순하지만 예리한 창날이 깨끗한 새 자루에 꽂혀 있었다. 군데군데 마모된 창날 밑둥에는 먼 옛날 슈로 기사단 문장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황상처럼 큰 분을 태우고 전력으로 달릴 정도로 힘 좋은 말은 흔치 않을 거다. 내겐 아타르가 있으니 이건 이제 네가 타라.”
“이 말은 어머니께서 지난 전쟁 때 전리품으로…….”
“어차피 너한테 줄 참이었어. ……네가 어릴 때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보며 꺼질 듯 한숨을 내쉰 제네르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 채 자신의 정든 얼룩무늬 말에 훌쩍 올라탔다.
“이 말의 전 주인만큼 용맹해지되, 부디 그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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