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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803화 (798/1,132)

< -- 803 회: [3부] 파트2. 작은 여신의 무지개빛 눈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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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칼리 광산 지대의 도시인 ‘카나트’에는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화물셔틀과 화물차, 광산에 들어가는 많은 물자들과 짐을 다루는 인부들로 정신이 없었다. 몇 분에 한 대 꼴로 셔틀이 드나드는 이착륙장에서누가 타고 있는지, 왜 왔는지 따위를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도 없었다.

주기장 주변 역시 일거리를 찾는 인부들, 비번인 광부들, 무질서하게 쌓인 짐들로 어지간한 조종 실력이 아니면 셔틀을 대는 것도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카렐이 탄 ‘투아렉 상사’ 소속 화물셔틀도 착륙하기가 무섭게 거추장스런 짐짝처럼 구석진 주기장으로 질질 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여전하군.”

카렐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밖을 내다보았다. 다른 여느 북부 전진도시들이 거의 비슷하지만, 광산도시인 카나트 시는 특히 ‘북부 냄새’를 많이 풍기는 곳이었다. 이곳은 험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보석과 금광을 찾아 온 콜로니 초기 개척민들이 세운 오래된 인공 정착지였고, 도시 전체가 낡아빠진 유리 보호벽으로 완전히 감싸여 있었다.

하지만 말이 보호벽이지 안에 기분 좋게 들어앉아 바깥의 이색적인 풍경을 속 편히 내다볼 수 있는 멋진 유리창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리는 세월의 이런저런 흠집과 먼지로 뿌옇게 뒤덮여 바깥은 희미하게만 보이는 정도였고, 군데군데 깨진 곳과 벌어진 틈으로는 외부의 살을 에는 칼바람―때로는 뜨거운 열풍―이 들이쳐 사람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곤 했다.

이 차단벽이 완벽하든 아니든, 제한된 보호벽 안에 꾸역꾸역 건물들을 쑤셔 넣었다보니 도시 내부는 말할 것도 없이 불량한 환경이었다. 건물과 골목은 좁고 지저분했고, 거친 광부, 잡부들과 용역들을 상대하는 지저분하고 땀 냄새나는 술집과 숙박시설, 도박장이 절반은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들이 힘들게 파낸 광물, 혹은 광산에서 소비하는 많은 물품들이 쉴 새 없이 거래되는 알부자 상인들의 돈 냄새나는 공간이었다.

“자네하고 나 같은 사람이 별 주목을 안 받는 지역도 퍽이나 드물지.”

카렐은 함께 셔틀에 탄 루스탐에게 창밖의 이런저런 사람들을 가리켜 보였다. 북부인들이 워낙 덩치가 크지만 이곳에서 광부 혹은 잡부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면 나름대로 덩치나 힘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조건만 갖추었다면 배운 것이 없든, 배경이 깔끔치 못하든 비교적 보수도 괜찮고 숙식까지 제공되는 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북부뿐만이 아니고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거구들을 사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슬슬 영업하러 나가 볼까.”

그는 낡아 모서리가 해진 검은 망토를 얼굴에 확 덮어쓰고는 ‘영업용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폐……아니 사장님, 그런데 볕도 제대로 안 들고 농사도 안 짓는 이런 사막 컴플렉스에서 누가 종자나 소금을 사죠?”

셔틀에서 뒤따라 내려선 루스탐이 고개를 천장을 뒤덮은 차단벽을 가리키며 갸우뚱거렸다. 이 시간 컴플렉스 바깥은 살인적인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소름끼치는 열풍의 사막이지만 뿌옇게 더러운 유리벽 안쪽은 하루 종일 구름 낀 흐린 날처럼 침침했다.

“종자? 그것도 좋지만 이번에 개척 광산에 물하고 식료품, 화공약품 공급하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거든.”

“예?”

“온 김에 새 동료직원 만나보게나.”

카렐은 ‘옮길 짐 없냐?’며 붙드는 잡부들 사이를 거칠게 헤치고 걸어 나갔다. 그리고 물류기지 바깥에 줄줄이 세워져 있는 대형 화물차들 사이에서 잠시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군.”

카렐은 [투아렉 상사]의 낙타 상호가 조잡하게 그려진 한 화물차를 가리켰다. 집채만한 컨테이너가 실린 그 차의 한쪽에서는 한 사람이 기름때, 공구와 혼자 씨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 거구들 사이에서 눈에 띌 정도의 자그마한―바깥세상에서는 보통 수준의― 키였지만 어색할 만큼 넓게 떡 벌어진 어깨와 굵고 긴 팔 때문에 잘 만들어진 작업용 기계를 연상케 하는 체형이었다.

“훗, 잘 어울리는데?”

그제야 고개를 번쩍 치켜든 그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 반은 커 보이는 이 장신의 ‘사장님’을 힐끔 올려보고는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재빨리 확인했다.

“노예인 제 본색이니까요.”

그는 인사 따위는 모두 생략한 채 바로 질문에 대답부터 했다.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이토록 당당하게, 아니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은 제국에 이 사람 뿐이었다. 그의 옛날 악행과 원래 이름, 타고난 얼굴은 제국민이라면 거의 알고 있을 정도지만 지금은 몇 번의 성형수술을 거쳐 최소한 외모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절대 남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한 사람만은 제외하고― 특유의 눈빛과 습관만은 여전했다.

““다녀온 일은 괜찮았나?”

카렐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 코나 시디크는 삐딱하게 썼던 기름때 묻은 모자를 똑바로 고쳐 쓰고는 혹시라도 다른 감시의 눈길이 없는지 신중하게 주변을 다시 확인했다.

“어제 6군데, 오늘 7군데 들르고 2시간 전에 돌아왔습니다.”

“벌써? 일은 좀 따냈고?”

“전 영업 쪽은 소질이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황제의 엉뚱한 물음에 코나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카렐이 화물차의 짐칸을 탕탕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한두 군데라도 일을 따야 여길 돌아다닐 명분이 생기지. 적당히 덤핑도 좀 쳐 봐. 든든한 물주가 있으니 회사가 망하지는 않아.”

카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던 루스탐이 얼른 입을 가렸다.

“신생 군소 광산에서 덤핑으로 일을 따냈습니다. 매일 물과 식료품을 날라주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회사도 여기 운송 조합에 정식 조합원으로 가입했고요.”

코나가 [운송조합 정회원 투아렉 상사] 스탬프가 큼직하게 찍힌 등록증을 불쑥 내밀었다.

“받으시죠, 사장님. 가입 보증금 3천 골드는 오늘 중으로 내셔야 합니다.”

“이것 봐, 자네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장님’이라는 말이 나와야지.”

카렐은 그가 내민 등록증을 받아 챙기며 루스탐에게 피식 웃음을 보였다.

“그래, 어쨌든 영업차 광산들에 들러 보기는 했을 것 아냐? 가 본 곳들 분위기는 어떻던가.”

“모두 특별히 달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한 군데만 빼고는 말입니다.”

황제의 물음에 코나는 촬영 필름과 큼직한 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카렐은 그가 내민 것들을 받아들며 슬쩍 눈을 흘겼다.

“지난번 말했던 57번 컴플렉스?”

“이전까지는 운송조합 차량이 생필품을 배송했는데 이젠 외부 업체를 안 쓰고 자체 화물차량을 투입해 조달하겠다고 밝힌 모양입니다. 그래서 조합에서 그 광산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이콧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운송조합의 압박에 유통업자들도 담합해서 판매거부를 결정했고요.”

“대규모 광산이 직접 조달을 시작하면 지역 유통업자나 운송업자들 밥줄이 끊어지게 생겼으니 결국 업자들이 집단행동으로 본때를 보이겠다 이거죠?”

옆에 있던 루스탐이 거들었다.

“이런 바닥이 다 그렇지, 뭐.”

코나가 더러워진 장갑을 차에 대고 툭툭 털었다. 카렐이 턱을 똑똑 두드리며 물었다.

“갑작스레 그런 이유가 뭔가 있지 않겠나?”

“바하칼리의 업자들이 한패가 되어서 판매와 유통거부에 나섰으니 난감할 법도 한데 아직까지는 별 반응이 없습니다. 거긴 가족까지 함께 사는 특이한 컴플렉스라서 필요한 물자도 어마어마할 텐데 말입니다.”

“가족까지 함께 산다고?”

“소문으로는 그곳 종사자는 이곳 현지인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고용해 가족 단위로 온 외지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분규에 토박이 조합원들의 지역감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광산 소유관계하고 거래처는 조사 했나?”

카렐은 방금 받은 서류를 꼼꼼히 챙기며 계속 물었다.

“모(母)회사는 하임달에 적을 둔 마사게타이 사(社)입니다.”

“하임달? 설마 9번 행성에 주소가 있는 유령기업은 아니겠지?”

카렐이 농담처럼 물었다. 북부의 하임달은 오르마즈의 최후를 장식한 유명한 전투 덕에 이름값을 얻기는 했지만 그 전장이었던 ‘하임달 9번 행성’은 사실 환경이 열악해 거주민조차 전혀 없는 유령 같은 황무지 행성이었다. 그렇다보니 ‘주소가 하임달 9번 행성’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우스갯소리일 뿐이었다.

코나는 황제의 이런 우습지도 않는 농담을 들은 척 만 척 보고를 이었다.

“마사게타이 사는 5번 행성에 정식 등록되어 있고, 교단 시대에 설립된 오래된 광업 기업입니다. 300년 이후로 화학과 농업, 생명공학에도 영역을 넓혀서 서부 아켐에는 의약 연구소를, 남부에는 농학 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사람도 없는 허허벌판이 아니고 말입니다.”

코나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하임달의 핵심 5번 행성은 북부 4제후 이쟈크 가의 통치를 받는 광업, 중공업 지역이었다.

“보안국 시켜서 회사 뒷조사 좀 시켜야겠군.”

카렐이 서류를 확인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이건 뭔가?”

카렐은 방금 코나가 건네준 봉투 안을 들쳐보았다. 그 안에는 먹고 난 물컵과 피 묻은 휴지 같은 쓰레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코나가 더러워진 작업복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57번 컴플렉스 앞에서 운송조합원들의 시위가 계속 이어지는 중입니다. 조합원들이 난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용역이나 광부들하고 몸싸움이 벌어졌길래 막판에 말리는 척 하면서 끼어들어 봤습니다. 컵은 제가 경비원하고 광부들한테 선심 쓰는 것처럼 접근해서 마시게 한 거고, 휴지는 그놈들 흘리던 피 닦아낸 겁니다.”

“푸훗.”

이 전직 헌병장교의 기가 막힌 임기응변에 카렐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런 말 여러 번 안 하는 사람이지만 자네 정말 맘에 들어.”

카렐은 그곳 용역과 광부들의 혈흔, 타액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소중한 자료들을 꽁꽁 쟁여 루스탐에게 넘겨주었다.

“시라즈로 보내라. 여기서 어떤 놈들 유전자가 나오는지 한 번 보자.”

그때, 시내 쪽에서 웬 키 큰 여자가 양 손에 뜨거운 코코아를 한 잔씩 들고 건들거리며 나타났다.

“이거 최대한 진하게 타 달라고 했는데…… 앗!”

코나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키와 몸매의 그 여자는 카렐과 루스탐의 모습에 정색을 하며 후다닥 뛰어왔다. 그리고는 코코아를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 코나의 앞을 무안할 정도로 휙 지나쳐서는 카렐과 루스탐에게 불쑥 내밀었다.

“흐, 흠.”

마지못해 코코아를 받아들고 난처해진 루스탐이 얼른 코나의 눈치부터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코나가 이 무심한 조수에게 눈을 부릅뜨며 흘겼지만 이 주책맞은 반쪽 가디언 아가씨에게는 별 소용도 없었다.

“어머, 같이 올 거면 미리 연락 좀 하지. 세상에나, 몸 더 좋아졌네?”

그는 기름때 묻은 손을 얼른 손수건으로 닦아내고는 인사를 하는 척 루스탐의 불룩하고 탄탄한 가슴과 어깨를 슬쩍 더듬었다.

“이놈아.”

카렐은 이 크고 잘생긴 청년에게 슬금슬금 다가서려던 능글맞은 아가씨의 귀를 덥석 붙들고는 휙 떼어내 놓았다.

“나한테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네 신분은 망각하지 말아야지 어딜 먼저 봐? 자이나브 카메네이 중랑장?”

“아야야, 왜 맨날 내 귀만 갖고 그러셔.”

자이납은 벌겋게 되어버린 귀를 만지작거리며 이전처럼 방정맞은 말투로 투덜거렸다.

“생각 좀 해 보시라고요, 이 재미없는 무정부주의자님하고 수다쟁이 꼬맹이 놈하고 좁다란 화물차에서 부대끼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여긴 도시라고 와 봤자 쩐내 풀풀 풍기는 무식한 사내들 뿐이라고요. 모처럼 잘생긴 미남 눈요기 좀 하겠다는데 뭐 그 정도로…….”

“왜? ‘수다쟁이 꼬맹이놈’은 남자 아니냐? 너 때문에 잘나가는 비서실 인턴까지 때려치고 이 일 자원한 거 몰라? 그놈은 어디 갔어?”

카렐의 대꾸에 웃음을 터뜨린 건 자이납이 아니고 옆에 있던 루스탐이었다.

“맙소사, 그놈이요? 남자도 남자 나름이지…….”

자이납의 주책에 입을 씰룩거리던 코나가 그를 가로막고는 원래 주제로 말을 돌려놓았다.

“그나저나, 그 광산에서 미심쩍은 것이 나온다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오든 안 나오든 안에는 들어가 봐야지.”

카렐이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고 웃으며 방금 자이납에게서 받은 진한 코코아를 코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도 한때는 이 동네에서 암살수로 활동해 봤으니 황궁 촌뜨기 취급 말게나.”

“57번 컴플렉스는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경비 상태는 거의 군사시설 수준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있다면 세상 누가 가도 안전치 못합니다.”

“걱정 말게, 나도 이젠 암살수가 아니니까. 거기가 지금 시위중이라고 했나?”

카렐이 갑자기 할룩스를 빼들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멍청이들이 황제와 공권력의 관심을 애타게 원하니 내 자비롭게 관심을 쏟아 줘야지 어찌 그냥 넘어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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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부터는 3부 두 번째 파트 [작은 여신의 무지개빛 눈물] 입니다.

계속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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