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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711화 (706/1,132)

< -- 711 회: 파트 10. 오팔에 핏빛이 드리울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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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세네피스의 외침에 기겁을 하며 달려왔던 카토는 침대 위에서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카렐의 모습에 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며 당장 의사부터 부르리라는 세네피스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카토는 함께 있는 호위가디언들에게 비교적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쇠사슬 가져와라. 의무교육 받은 가디언 불러오고, 빈 주사기 반드시 가져오라고 해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폐쇄해.”

“뭐라고? 감히 황상께 뭐 하는 짓이냐! 당장 의사부터 불러오지 않고!”

세네피스가 카토의 멱살을 잡았지만 그는 도리어 황태후의 팔을 붙들어 함께 온 다른 가디언에게 넘기며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황태후 폐하를 밖으로 모셔라. 절대 보지 못하시도록 하라는 폐하의 명이 있으셨다. 주치의 니사 라말라 박사에게도 절대 알리지 마라.”

가디언에게 질질 끌려 나가던 세네피스는 가디언 한 명이 짐승에게나 씀직한 웬 굵은 쇠사슬 뭉치를 짊어지고 허겁지겁 뛰어드는 모습에 기겁을 했다.

“뭐 하는 거냐! 저걸로 도대체 뭘 하려고!”

세네피스가 버둥거리며 악을 썼지만 그를 붙든 가디언의 힘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상의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가디언의 설득도 반쯤 이성을 잃은 세네피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악을 쓰며 저항하던 세네피스는 황제가 있던 방 쪽에서 들려온 거친 비명과 신음소리, 무언가 부서지는 굉음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 걸걸한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말하나마나였다.

“안 돼, 안 돼.”

세네피스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가디언이 그런 그를 억지로 끌고 나가려 했지만 이 황태후의 눈이 어느새 빨갛게 변해 있다는 것을 아직 미처 모르고 있었다.

“제발, 빨리 오십시오.”

황태후를 힘으로 잡아끌려던 가디언은 이 마르고 약해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꿈쩍도 않고 버티자 순간 당황했다. 그때, 카렐의 비명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이거 놓으라고!”

세네피스가 갑자기 찢어져라 악을 쓰며 손목을 쥐고 있던 가디언의 손을 확 떨쳐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의 괴력에 기겁을 한 가디언은 무시무시한 힘에 밀려 바닥에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되돌아가는 세네피스를 가디언들이 막으려 했지만 그들 역시 마구 밀치며 달려오는 그의 기세를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문을 막은 가디언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급히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놈들! 상께 감히 뭐 하는 짓이냐!”

세네피스가 고개를 저으며 방 안에 뛰쳐들었다. 황제는 이미 부서져 주저앉은 침대에 단단한 쇠사슬로 온몸이 꽁꽁 묶인 채로 맹수처럼 발버둥치는 중이었고. 그 가슴 위에는 카토가 올라타 자해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그의 목과 팔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빨리! 빨리 채취해!”

카토가 발버둥치는 황제의 입에 칼자루를 억지로 물리며 고함을 질렀다. 한편에서는 이 와중에도 다른 가디언이 황제의 곤두선 핏줄에서 주사기로 피를 뽑아내고 있었지만 그곳이 아니어도 쇠사슬에 눌리고 긁힌 황제의 몸 곳곳에서 붉은 선혈이 이미 배어나고 있었다.

“그만 하라고!”

눈이 뒤집어진 세네피스가 방에 뛰어들어 카토를 밀어내고는 그에게 깔려 있던 카렐의 얼굴을 가슴에 꽉 안았다. 땀에 흠뻑 젖은 채 떨리는 몸, 이를 가는 끔찍한 소리가 세네피스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황제는 숨조차 쉬고 있지 못했다.

“너까지 이렇게 되면 어쩌라고! 너까지 날 버려두고 가면 어떻게 살라고!”

세네피스가 이 야속한 황제를 필사적으로 부둥켜안으며 울부짖었다.

“위험합니다! 물러나십시오! 황태후 폐하!”

바닥에서 일어난 카토가 세네피스를 힘으로 떼어내려 했지만 그는 황제의 목을 껴안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켜라! 차라리 함께 죽을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

이성을 잃은 채 황제를 껴안고 있던 세네피스는 쇠사슬 밑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카렐의 손을 꼭 잡았다. 자칫 손이 으스러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박수 분당 350회입니다! 오작동인 걸까요?”

혈관에서 피를 뽑아낸 가디언이 황제의 바이탈사인을 보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350번? 사람이? 이런 맙소사.”

카토가 이마를 짚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황제의 몸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까지 내몰려 있었다.

눈을 크게 부릅뜬 카렐이 몸을 파르르 떨며 세네피스의 옷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의 이에 물어뜯긴 세네피스의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카렐의 얼굴에 묻었지만 세네피스도 이를 악물고 그를 꽉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제발 숨이라도 좀 쉬라고!”

“우, 우우우욱.”

몸을 세우려 마구 발버둥을 치던 황제도 세네피스의 힘에 눌렸는지, 아니면 이제야 한 고비를 넘긴 것인지 가끔 움찔거리기만 할 뿐 조금 전 카토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친 듯 날뛰지는 못했다.

“심박수가 조금씩 떨어집니다!”

카토와 세네피스의 고개가 동시에 바이탈사인을 읽는 기계 쪽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세네피스의 옷자락을 악을 쓰며 물어뜯던 황제의 눈빛도 천천히 흐려져갔다.

“카렐?”

세네피스는 맥이 풀리며 조금씩 뒤로 기우는 그의 머리를 한 손으로 얼른 받쳐주었다. 힘겹게 내뱉는 황제의 첫 숨결이 찢긴 옷자락 사이로 느껴지자 동시에 세네피스의 눈에 번지고 있던 붉은 핏빛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휴우.”

몇 분이나 진땀을 뺐던 카토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도 야수처럼 날뛰어대던 황제는 부서져 주저앉아버린 침대 위에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가늘고 느린 숨소리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방 안에 옅게 깔렸다.

카토가 피를 뽑은 가디언에게 얼른 손짓을 보냈다.

“쇠사슬을 풀어내라. 채취한 샘플은 최대한 빨리 냉동해서 본궁에 있는 자그룰라 모렌 박사에게 보내고. 병명을 밝혀낼 중요한 자료니 보안 유지하는 거 잊지 마라.”

“병명이라고?”

세네피스가 이를 드러내며 카토를 쏘아보았다.

“이게 처음이 아닌 거냐?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셨던 거야!”

세네피스의 격한 추궁에 머뭇거리던 카토가 결국 실토를 했다.

“이미 작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건강하실 때는 하룻밤 몸살 정도로 지나가지만 상태가 안 좋으실 때는 이렇게 발작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상께서도 알고 계시고, 자그룰라 모렌 박사께서 이미 조사하고 계십니다. 상께서는 혹시라도 발작이 있으면 무조건 쇠사슬로 묶고 혈액샘플부터 채취하라 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는 알리지도…….”

걱정이 분노로 변해버린 세네피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황태후에게 카토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눈치 채셨겠지만……오르마즈 경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겪으셨던 병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께서는 황태후 폐하께서 크게 심려하실 것이니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설마설마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세네피스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아 있던 그는 탈진한 모습으로 가슴에 기대어 있는 황제의 땀에 젖은 얼굴을 문득 내려다보았다.

“황상, 이제 괜찮으십니까?”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에서 황제의 혼탁해진 그레이오팔 눈동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붉은 빛이 사라진 세네피스의 똑같은 무지개빛 눈에서도 눈물 두 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황상과 단 둘이 있고 싶구나.”

가디언들이 방을 비워준 후, 다시 카렐과 남은 세네피스는 여전히 식은땀을 쏟고 있는 그의 얼굴을 옷자락으로 조심조심 닦아내 주었다.

“다 듣고 계신 거 압니다. 힘이 빠져 못 움직이시는 것 뿐이죠.”

카렐의 눈동자가 세네피스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세네피스는 마치 어린 자식에게 젖을 주듯 그를 무릎 위에 눕히고 품에 꼭 안았다. 찢긴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따뜻하고 포근한 젖가슴이 뺨에 와 닿자 카렐이 다시금 힘없이 눈을 감았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분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카렐을 품에 꼭 당겨 안은 세네피스는 힘없이 늘어진 그의 팔과 어깨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분께선 가문의 멸망을 보시느니 차라리 그 전에 전장에서 스러지길 원하셨습니다. 어차피 몇 년밖에 더 못 살 운명이셨지만 상께선 그럴 일이 없지 않습니까. 황제로서 자리만 잡으시면 어떡해서든 방책을 찾아낼 수 있지 않으십니까.”

그의 가슴에 기댄 황제의 지친 표정에는 틀림없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비치고 있었다.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세네피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니 날 놔두고는 어디도 못 가십니다.”

몸을 웅크린 세네피스는 품에 안고 있던 카렐의 얼굴을 더 바싹 잡아당기고는 그의 눈가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이렇게 어렵게 되찾은 내 사람을 또 저승에 내줄 수는 없단 말입니다.”

그는 카렐의 얇고 파리해진 입술을 살짝 벌리고 그 누구보다 진하고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혀끝을 느끼고 번쩍 뜬 카렐의 눈 위로, 세네피스의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침에 일어난 니사는 황제에게 밤새 무언가 일이 터진 것을 눈치 챘지만 아무도 제대로 말을 해 주지 않았다. 황제에 대한 아침 진단도 모두 취소되었고, 황제의 처소는 세네피스 황태후와 황빈 베아트릭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가디언들 몇 외에는 드나들 수도 없이 완전히 폐쇄되어 버렸다.

출정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새 항독소도 오늘 아침에 놓아줄 참이었지만 카토는 ‘상께서 피곤해 늦게까지 주무시니 점심때 놓아드리는 게 낫겠다’며 일방적으로 알리고 갔을 뿐이었다. 니사는 자신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려 하는 황제가 내심 야속했지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웬일로 늦잠을 다 주무셨습니까?”

니사는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침소 밖으로 모습을 나타낸 수나 마구스에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평소 새벽같이 일어나 시계같이 정확한 일과를 지키는 그가 이렇게 늦게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퍽이나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수나의 얼굴에는 아직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늦게까지 작업이라도 하셨는지요?”

니사가 그의 세수를 하러 나온 그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상께선 안녕하시냐.”

수나의 동문서답에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던 니사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지금에야 알현 허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주사 놓아드리러 가는 길입니다.”

수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세숫물로 얼굴을 한 번 씻어냈다.

“그럼 내 예상이 맞은 건가보군.”

“그걸……느끼셨습니까?

“지척에서 며칠을 같이 지냈는데 그 정도의 발작도 알아채지 못했다면 내 R은 내다 버려야지.”

수나는 자신의 느낌을 애써 평가절하하며 얼굴의 물기를 털어냈다. 니사는 이번에도 그답지 않게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하는 상급자의 모습을 또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 험한 전장에서 수나 마구스는 북부의 부설병원 관사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던 이전보다 도리어 밝아진 모습이었다.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주무셨군요.”

“내 몸이 다 쑤실 지경이더군. 아주 불쾌한 기분인 것이 빨리 그 양반 곁을 떠야 하겠어.”

니사는 끔찍한 밤을 보냈을 황제에 대한 걱정은 털끝만큼도 않는 듯 보이는 수나 마구스에게 내심 섭섭함이 들기도 했지만 워낙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새벽 무렵이었을 테니 아직 후유증으로 앓아누워 계시겠군. 근육통이 적어도 하루는 더 갈 텐데 저녁에 예정대로 출항을 강행하실 것이 뻔하지. 항독소 놓아드릴 때 진통제도 몰래 함께 놔 드려라.”

“알겠습니다.”

수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던 니사는 막 이곳 막사로 올라오고 있는 낯익은 얼굴 하나와 마주쳤다. 구릿빛 피부의 이 남자는 딱 보기에도 군인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다부진 체구에 부리부리한 검정색 눈이 시선을 확 잡아끄는 매서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니사는 얼른 수나의 눈치부터 살폈다.

“오랜만입니다. 라말라 박사님.”

서부 7제후 아샤드 레즐린 경은 수나 마구스에게 먼저 인사를 하려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니사에 대한 인사로 대신했다. 니사 역시 그에게 얼른 인사를 했지만 사실 많이 어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교단 내부에서야 니사가 고위급 신관이지만 세간의 지위로만 따진다면 그의 평민 사교도 신분은 한 지역의 제후이고 귀족인 아샤드보다 아래여도 훨씬 아래였다.

“크바르나가 모두 출동했다면서 우리 하마타에 먼저 알리지 않은 이유가 무언가?”

수나 마구스가 아샤드를 보자마자 대번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수나에게 아샤드 경은 공손하지만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으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충성하는 건 오직 한 분입니다. 하마타에 알리고 말고는 제가 결정합니다.”

수나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여느 다른 열성 헤네티들처럼, 그 역시 자신의 신념에 철저히 충실할 뿐이었다.

“마구스님께선 이전의 힘을 찾으시는 것이 목표이시지만, 제 목표는 그 한 분께서 신의 존재를 깨닫고 원래 위치에 당당히 서시도록 지켜드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 양반에게 설마 다 알려주려는 건 아니겠지? 저 양반은 아직 심판을 통과하지 못했어. 알 자격이 없으시고, 아셔서도 안 되는 것이 많다.”

“언제까지 저분의 눈과 귀를 막고 하마타의 이익만 따지실 참이십니까?”

수나에게 무어라 따지려던 아샤드 경은 황제 경호대장 카토가 다가오는 소리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샤드 경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카토는 함께 있는 니사에게도 아는 척을 했다.

“상께서 알현을 받으실 준비가 되셨습니다. 들어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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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업데이트했습니다. 주제는 두둥! 모두 궁금해 하시는....

-카렐에게 가장 어울리는 짝은??-

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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