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9 회: 파트 7. 질풍도 주목에 찢기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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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 사이, 목이 잘린 적이 아직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깨달은 카토는 마구 칼을 휘둘러 이 적을 토막토막 난도질해놓은 후에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하시시?”
어렵게 적의 저지한 카토는 죽어서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 지독한 괴물에게서 짙은 ‘하시시’ 마약의 냄새를 느끼고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헌병들에게 ‘피다이들이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일단 꾹 눌러 참았다. 적들이 피다이라는 것을 안다면 헌병들 또한 혼란에 사로잡힐 것이 뻔했다.
“설마 이놈들이 다……아냐, 아냐.”
카토가 헌병들과 어울려 싸우고 있는 정체불명의 ‘호족 경호원들’을 응시했다. 몸값 비싼 피다이가 한 전투에 10명 이상 동원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호족 경호원들 역시 보통 사람의 몸놀림은 절대 아니었다.
“맙소사. 저놈들은…….”
순간, 그는 저 경호원들의 눈빛이 왜 그리 익숙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바로 수나 마구스 일행의 대화를 엿듣다가 도망치던 바로 그 괴한의 눈빛, 그리고 그를 쏘아 맞추던 ‘헤네티’의 눈빛까지, 죽은 자의 눈빛은 그들과 놀랄 만큼 흡사했다. 그는 그제야 니사가 죽은 자의 신분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저놈들도 헤네티?”
카토의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헤네티들이라면 수나 마구스의 편이어야 했지만 저들은 지금 호족들의 편이 되어 코리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카토가 칼을 치켜들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지만 이미 싸움은 절망적이었다. 보안국 헌병들의 사격은 호족들, 그리고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무고한 경호원들 사이에서 고양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헤네티들을 맞출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근접전은 더더욱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지금 누가 헤네티인지, 누가 피다이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할룩스로 들어온 연락을 확인했다. 수나 마구스와 함께 있는 사에나의 연락이었다.
-곧 헤네티 20명이 지원하러 들어갈 테니 기다려라.-
사에나에게 ‘이곳에 있는 적들도 헤네티 같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급히 답변을 보낸 카토는 헤네티들에게 목표물을 지정해주고 있던 조금 전의 그 ‘구부정한 경호원’을 발견했다. 저자가 지휘자임에 틀림없었다.
“저놈을 잡아!”
칼을 들고 돌진하려던 카토는 귀 옆을 2발의 볼트가 스친 순간, 가디언으로 태어나 처음 경험해보는 지독한 공포에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헤네티, 피다이들과 한 번도 맞서본 일 없는 그로서는 저들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니고 헤네티들에게 익숙한 베흔이 있었다면 무언가 해결책이 나왔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젠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학장님과 샤드니 섭정공 각하만이라도 지켜! 곧 원군이 온다!”
카토는 테이블 하나를 쓰러뜨려 엄폐물을 만들며 살아있는 다른 헌병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명령을 받은 헌병들 중 3명이 쓰러져 있는 코리온과 샤드니에게 급히 몰려들었지만 그 중 2명은 미처 테이블에 닿아보지도 못한 채 급소에 볼트를 맞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도 다리에 볼트를 맞고 바닥에 비명과 함께 뒹굴었다.
“제기랄!”
카토가 쓰러져 있는 샤드니와 코리온, 그리고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싸움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샤드니와 코리온이 적의 앞에 고스란히 노출될 판이었다.
“섭정공 각하! 학장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가실 수 있겠습니까! 곧 원군이 올 테니 그때까지는 제가 이곳을 막겠습니다!”
“알았다.”
샤드니가 얼굴에 묻은 피를 급히 닦아내고 코리온을 억지로 일으켰다. 왼쪽 겨드랑이에 볼트가 박힌 코리온은 현기증 때문에 잠시 비틀거렸지만 샤드니의 어깨에 기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코리온의 가슴에 박힌 볼트 때문에 샤드니로서는 그를 업을 수도, 어깨에 짊어질 수도 없었다.
“괜찮아, 걸을 수 있다.”
“안됩니다, 제게 기대십시오. 잠깐만 여길 피하시면 됩니다.”
테라스에서 호족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 반대편의 출구는 처음 들어왔던 문 하나뿐이었다. 문 밖으로는 수직 절벽 모퉁이를 깎아서 낸 긴 통로가 타르서스 별궁의 지하와 이어져 있었다.
“빨리요!”
샤드니는 카토가 문을 차단하고 있는 새 부상을 입은 코리온을 급히 테라스 밖으로 끌어냈다.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었지만 샤드니로서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낭떠러지를 깎아 만든 이 복도의 왼쪽은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반대편 오른쪽은 단단한 돌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때, 무언가 등을 딱 하며 치는 느낌에 샤드니는 다시 중심을 잃고 앞으로 벌렁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넘어지는 와중에도 코리온이 먼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품에 와락 껴안고 몸을 트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젠장!”
샤드니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을 때, 문 부근에는 카토와 그를 쫓으려는 헤네티들과의 싸움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헤네티들 중 한 명이 쏜 볼트가 그의 등에 명중했지만 이번에도 단단한 갑옷에 박혀 치명상까지 입히지 못했다.
“이이익!”
샤드니가 힘겹게 몸을 틀어 등에 박힌 볼트를 힘껏 뽑아냈다. 갑옷을 가까스로 뚫은 볼트는 끝부분에만 약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사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코리온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쥐고는 자신의 겨드랑이에 박힌 볼트 끝을 힘껏 잘라냈다.
“빨리 오세요!”
걸음에 속도를 붙이려던 샤드니가 멈칫했다. 웬 검은 그림자 2개가 왼쪽 절벽 밑에서 슬금슬금 기어올라 난간을 넘어와 그의 앞을 막았다. 검은 옷차림의 그 괴한들은 특별히 힘들어 보이지도, 헐떡이지도 않고 있었다. 이 절벽을 도대체 어떻게 올랐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마치 곤충처럼 흐물흐물 절벽을 기어올라온 그들은 코리온과 샤드니를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뭐, 뭡니까, 저놈들은.”
“피다이…….”
코리온이 고개를 치켜들며 이를 악물었다. 앞이 가로막히면서 본능적인 공포감에 사로잡힌 샤드니가 코리온을 품에 꽉 안았다. 한때 누나 네페티를 죽이기 위해 자신이 고용하기도 했던 자들이었지만 이젠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샤드니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테라스는 이미 호족 경호원들이 거의 점거해서 이젠 돌아갈 수도 없었다. 출구를 지키고 있는 카토까지 쓰러지기 전에 어떡해서든 저 2명의 피다이를 뚫어야만 했다.
코리온은 샤드니의 팔을 떨쳐내고는 손에 뽑아들었던 단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가만히 있어라, 샤드니.”
비무장이 된 코리온은 비틀비틀 피다이를 향해 걸었다. 물론 그는 저들과 맞서 싸울 강인한 근육도, 칼을 휘두를 기술도 전혀 없었다. 그에게 진짜 무기는 힘도, 기술도 아니었다.
“안됩니다.”
샤드니가 그를 붙들려 했지만 코리온은 이를 드러내며 약혼자를 뿌리쳤다. 이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저 마약중독자를 제어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자신이, 아니 약혼자 샤드니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는 출혈로 조금씩 흐려져가는 눈을 최대한 부릅뜨고 피다이를 똑바로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날 죽이고 싶으냐.”
잠시 휘청거렸던 코리온이 최대한 정신을 다잡으며 그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코리온의 바램대로는 움직여주지 않았다. 코리온의 뒤에 선 샤드니는 자신이 끼어들어 선제공격을 해야 할지, 코리온의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를 일단 지켜보아야할지 머릿속이 막막했다.
그 사이에도 코리온은 피다이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희가 어떻게 행동한들…….”
비틀비틀 걸어가던 코리온이 2명의 피다이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하지만 피다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히죽거리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위험합니다, 제발.”
놀란 샤드니가 칼을 뽑으며 뒤쫓아 다가오려는 것을 코리온이 다시 손으로 저지했다. 그가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내딛는 걸음에 방울방울 피가 맺혔다.
“그 흐린 눈빛 속에서 울고 있는 솜털처럼 약한 영혼이 내게는 보이니…….”
피다이들에게 다가서는 코리온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두 명의 피다이들을 뚫어지게 응시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 자리에서 마음을 읽히고 굴복하지도, 쓰러져 버둥대지도 않았다.
물론 샤드니는 이미 충분히 공격거리 안에 들어왔음에도 피다이들이 달려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정말로 코리온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 발로 다가오는 손쉬운 목표물을 침착하게 기다리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너희나 나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이나…….”
코리온은 어느새 피다이들의 독한 하시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까지 바싹 다가서 있었다.
“너희의 나약한 영혼은 내세를 더 두려워하고, 나는 뒤에 남을 혼탁한 현세를 더 두려워함이 다를 뿐인지라.”
피다이 앞에 다가선 코리온이 두 손을 조심스레 뻗었다. 작고 날쌔 보이는 남자 한 명, 그리고 큰 키에 호리호리한 여자 한 명까지, 이 두 명의 피다이들은 이 ‘만만한 적’을 향해 칼을 쥔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여전히 공격을 하지 않았다.
“내세가 그리도 두렵다면 어이하여…….”
코리온이 그들의 칼에 손바닥을 가져가 조심스레 아래로 내리려 했다.
“듣기 싫다.”
순간, 자그만 키의 남자 피다이가 입을 쩍 벌리며 바로 코앞의 코리온에게 맹수처럼 확 달려들었다.
“읍!”
순식간에 피다이와 가슴을 부딪힌 코리온이 자리에서 움찔거렸다. 자그만 체구의 피다이는 유달리 높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코리온은 거칠어지는 신음소리를 이를 악물고 참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네 선택이냐?”
피다이가 내지른 단검이 그의 방검복에 박혀 있었지만 그다지 깊지는 않았다.
코리온은 칼날이 얕게 파고들어온 배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그 남자 피다이의 목 뒤를 짚었다.
“그러면 네 영혼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거라.”
코리온이 낮게 속삭이며 이 무시무시한 살인마의 창백해진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갔다. 피다이의 손은 코리온의 배에 박힌 칼자루를 여전히 쥐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엔지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이 괴력의 살인마는 마음만 먹으면 방검복 따위는 그의 살점과 함께 갈가리 찢어놓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네 진짜 영혼이 그리 명령한다면 그것이 너와 나의 운명이니…….”
코리온은 자신을 찌르고 있는 이 마약중독자를 살며시 품에 안으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에도 배를 찌른 칼끝에서 조금씩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학, 학…….”
얼떨결에 코리온의 품에 안긴 피다이가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코리온의 까만 눈동자를 자진해 올려보았다. 둘의 눈동자가 똑바로 마주친 순간, 뒤에 있던 또 다른 피다이가 단검을 치켜들며 소리를 꽥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코리온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그제야 휙 돌아보았지만 이번의 그 여자 피다이는 속도를 늦추지도, 지금 품에 안겨 있는 먼저의 피다이처럼 막판에 힘을 빼지도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죽음을 직감한 코리온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년이!”
코리온의 옆을 무언가가 번쩍 하며 스쳤다. 샤드니가 힘껏 휘두른 큰 시미터가 칼을 쥔 피다이의 팔을 단숨에 두 동강냈다. 하지만 팔이 잘린 그 피다이는 전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비명은 고사하고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샤드니를 힐끔 돌아보았다.
“아앗!”
무장인 샤드니조차도 팔이 잘린 상대의 다음 동작이 그토록 빠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피다이는 칼날을 다시 휘두르려던 샤드니의 가슴 흉갑을 왼손으로 힘껏 후려쳤다.
“읍!”
꽝 소리를 내며 박살난 샤드니의 흉갑 파편이 공중에 조각조각 날아올랐다. 그리고 가슴이 짓이겨진 샤드니는 피를 토하며 공중을 붕 날아 벽에 세차게 부딪혔다.
“하, 하, 학장님…….”
바닥에 떨어진 샤드니는 처참하게 뭉개어진 자신의 몸 대신 위기에 처한 코리온을 먼저 올려보았다. 그를 짓이겨놓은 피다이는 코리온을 향해 두 번째 단검을 번개처럼 뽑아들었다.
“응?”
당장이라도 코리온의 목을 끊을 듯 칼을 휘두르던 그 여자 피다이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며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그는 고통을 느끼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죽음보다도 더 큰 충격에 잠시 멍해진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단검과, 배신한 동료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냐. 영감님의 명령을…….”
“시끄러.”
조금 전까지도 코리온에게 안겨 있던 자그만 키의 남자 피다이는 동료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던 단검을 힘껏 뽑아 이번엔 그의 목젖을 서슴없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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