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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562화 (561/1,132)

< -- 562 회: 파트 6. 신께서 쥐신 검은 튜울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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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크마가 ‘너무 일찍’ 발각되면서 낭패를 겪게 된 것은 단순히 그의 부대에서 끝나지는 않았다. 연합군이 가진 10척의 수송선을 모두 털어 근위대 1차 상륙부대 1천을 이끌고 온 드루그는 포구의 불이 꺼지고 도크가 폐쇄되었다는 보고에 이를 빠드득 갈았다.

“타크마 그 병신새끼.”

정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드루그로서는 일단 타크마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뱃머리까지 나와 있던 그는 조금씩 거세어지는 거친 빗물을 신경질적으로 털어냈다.

함께 있던 근위대 참모가 그를 달래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대장께선 이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굳이 포구 안쪽이 아니더라도 남쪽 방파제에 바로 상륙.......”

“누가 그걸 모르나. 일단 늦어지고 있으니 문제지. 게다가 날씨가 이 정도로 나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잖아.”

드루그는 허리에 찬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짜증스레 대꾸했다.

“그럼 직할군들이 수비탑을 접수하고 도크를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릴까요?”

“어느 세월에.”

드루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빗속을 뚫고 오느라 이미 일정에서 몇 분이 늦어진 상황이었다.

“남부연합군이 이미 공성전을 개시했어. 베흔 대장도 이미 내부에 잠입했는데 우리만 늦을 수는 없지. 시간이 없으니 포구 남쪽 방파제 외곽에 상륙한다. 물살이 거세니 배를 최대한 가까이 대도록 해.”

드루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풍이 몰아닥치면서 배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놀란 정규군 병사들의 비명소리, 배멀미로 구토하는 병사들의 신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자 드루그가 다시금 얼굴을 찡그렸다.

“날씨가 고약스럽지만 않아도.......”

드루그가 다시 이를 갈았다. 누가 보기에도 상륙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날씨였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이제와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상륙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닙니다. 바다도 아니고 호수니 제가 거칠어 봤자죠. 다행히 뱃바닥이 낮은 바지선이라 방파제 가까이까지 댈 수 있을 겁니다. 선발대에는 다행히 중장비가 없으니 일단 내려 수비탑을 장악하고 도크를 열면 됩니다.”

참모가 애써 상황을 긍정적으로 알리며 웃음을 지었다.

“아직 물이 찬데.......저체온증이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드루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비가 내리는, 비교적 따뜻한 날이기는 했지만 물에 몸을 적신다는 것 자체가 이 겨울에는 어쨌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 모두가 도크에 배를 직접 댈 수 없게 된 덕분이었다.

“5분 남았습니다!”

1천여의 근위대 상륙군을 태운 선단은 포구 도크로의 직접 접안을 포기하고 아케메니아 포구 남쪽 방파제로 바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수심이 조금씩 낮아지면서 배가 거칠게 흔들렸다. 거추장스런 무기를 등에 두른 드루그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난간을 쥐고 전방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준비! 2대대가 제일 먼저 상륙해 남북 방파제를 확보하고 행여 적 지원군이 수로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 1대대는 포구 안쪽으로 진입해서 적 수비탑을 공격하는 직할군을 돕는다! 3대대는 황궁 남서문 앞을 막아서 육상으로 접근하는 적의 지원군을 차단한다! 알겠나!”

“예!”

우렁찬 대답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왔다. 타르서스 직할군들은 포구의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모든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심지어 가디언들까지 포함된 근위대였다.

그때, 배가 크게 흔들리면서 브리지 쪽에서 선장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은 접근 못 합니다!”

“수심은?”

드루그가 눈에 힘을 주며 전방을 주시했다. 출렁이는 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육지가 있는 방파제까지는 적어도 1스타디아는 되어 보였다.

“4척(1.5m)에서 9척(2.7m) 정도 됩니다!”

“됐어, 그 정도면. 상륙! 상륙!”

지휘관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앞다투어 물로 뛰어들었다. 물에 뛰어든 병사들 중 몇은 깊은 수심에 놀라 자리에서 잠시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잘 훈련된 근위대답게 거침없이 물살을 헤치며 육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체온증을 조심해라! 분대장 가디언들은 병사들의 신체 상태를 계속 체크해!”

제일 먼저 물에 뛰어들었던 드루그가 뒤따르는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앞장서는 가디언 분대장들을 뒤따라 시민병들이 계속해 거친 물속에 뛰어들었다. 비록 날씨가 험악했지만 바다가 아닌, 호수라는 한계 덕분에 풍랑이 생각만큼 극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거운 갑주와 장비, 깊은 수심은 육지에 필사적으로 다가가려는 근위대 가디언과 병사들의 발목을 계속해서 붙들었다.

“빌어먹을, 육지에 적군이라도 있었다면 모조리 몰살당했겠군.”

비교적 얕은 강바닥을 비로소 디딘 드루그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이를 갈았다. 방파제 위에서 미리 기다리던 반란군 백여 명이 막 상륙하는 근위대의 모습에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드루그는 별 관심이 없었다. 허우적거리며 방파제를 기어오른 그는 반란군 병사가 내민 큰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시계부터 보았다.

“10분이나 걸렸어. 제기랄.”

그를 따라 물에서 머리를 내민 지휘부 가디언들의 몸에서 공기 속으로 뿌연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겨우 1스타디아의 거리였지만 거센 바람, 빗발이 몰아치는 물을 헤치고 다가오는 것은 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 모이려면......”

호수 위를 둘러본 드루그가 입가를 찡그렸다. 후미 선단에서는 이제야 장병들이 뛰어내리고 있었고, 대부분의 장병들은 아직 중간에서 물과 씨름하고 있었다.

방파제를 기어오른 참모가 그에게 말했다.

“물에 떠 있는 병사들이 이곳까지 다 상륙하려면 적어도 20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때 수비탑을 일제히 공격.......”

“직할군들이 이미 포구를 장악했으니 굳이 다 집결해서 공격할 필요는 없다. 직할군은 당장 수비탑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고, 우리도 먼저 상륙한 놈들부터 일단 포구로 들어가서 직할군을 도와. 시간이 없다.”

명령을 내린 드루그는 병사들을 모두 내려놓고 2진 본대를 실어오기 위해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10척의 선단을 다시 돌아보았다. 바로 그때, 그의 할룩스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대장! 북쪽에서 정체불명의 선박입니다!”

“선박? 무슨 선박?”

드루그가 사나운 빗속으로 시선을 보내며 얼른 되물었다.

“모르겠습니다! 1척이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황궁에서 내려오는 적 지원 병력이 아닌가 합니다! 10여분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지금 2번 도크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아서 도크로 바로 들어가 수비탑의 적군에 합류할 것 같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드루그는 아직까지 굳건히 저항하고 있는 포구의 수비탑을 급히 돌아보았다. 수비탑을 저대로 놔둔다면, 물을 헤치고 악전고투하며 상륙한 자신들과는 달리 적 지원병은 포구의 도크로 당당하게 ‘입성’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그는 당초 내렸던 대대별로 따로 명령을 급히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수비탑부터 빼앗으라니까! 모두! 상륙한 모든 부대는 모조리 수비탑으로 가서 탑부터 장악해! 직할군들도 당장 공격하라고 해! 시간이 없다!”

그는 젖은 몸을 채 말릴 새도 없이 몇 안 되는 병력만을 거느린 채 급히 포구 수비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보안국에 연락은 했나?”

“물론입니다.”

유시프 장군의 물음에 그 얼음장 같은 쉐너 가 출신의 보안국 중랑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냉큼 대꾸했다. 육지와 연결된 좁은 협로에 기물들을 잔뜩 쌓아놓고 급조한 바리케이드 너머 공격준비를 한참 서두르는 반란군들의 모습이 빤히 보였다. 하지만 이 괴상한 여자는 한 손에 석궁을, 다른 손에 짧은 검을 쥔 채 말없이 적진만을 응시할 뿐, 긴장했는지, 아닌지조차 얼굴에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갑주를 안 입었군? 안에 남는 게 있을 텐데?”

유시프 장군은 검은 코트 한 장만 걸친 채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사에나에게 처음으로 ‘개인적인’ 내용을 건넸다.

“거친 정규군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사에나는 유시프 장군의 나름대로 인간적인 물음에 여전히 사무적으로 짧게 대답했다. 유시프 장군은 조금 전, 이 여자 휘하의 헌병들이 자기들의 대장을 가리키며 주고받던 ‘북극여왕님’이라는 별명을 떠올리며 긴장 속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쉐너 가면 제2개국공신 슈엘러 경을 낸 영광스런 군인가문 아닌가. 중랑이 싸우는 걸 보니 역시 피는 못 속이겠던데.”

“업무적인 칭찬이십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호기심이십니까?”

“난 그저.......”

“상급귀족 남자손님 코 꿰어보려던 매춘부에게 난 사생아라면 그런 말이 썩 듣기 좋지만도 않죠. ‘고결하신’ 서부 출신이시니 잘 아실 텐데요.”

“.......”

사에나의 냉소적인 대꾸에 유시프 장군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지만 다행히 그가 그런 고민에 오래 빠져있을 필요는 없었다.

“적이 접근합니다!”

육지 쪽, 어둠 속에서 와아 하는 큰 함성이 들려왔지만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인지 그다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도리어 지원군이 들어올 1번 도크의 출입문을 열기 위해 시동을 거는 거대한 엔진의 굉음이 더 크게 공기를 울렸다.

“아샤 연대는 언제쯤 도착합니까.”

“도크 문을 열고 여기 상륙까지 하려면 10분쯤은 기다려야 될 걸.”

“지원군보다 적군이 먼저 오겠군요.”

사에나는 석궁의 통에 짧은 볼트를 채우며 여전히 표정없이 중얼거렸다. 스코프로 확대시켜 본 포구 남동쪽에는 방파제에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근위대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물에서 나오자마자 달려오는 길인지, 그들 몸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솟는 모습 덕택에 멀리서도 더 또렷하게 보였다.

유시프 장군이 사에나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석궁의 운용에 관해서는 내 잘 모르니 헌병대 지휘는 그대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사에나가 석궁의 줄을 힘껏 잡아당겨 철크덕 소리와 함께 걸쇠에 걸며 톤이 전혀 없는 어투로 대답했다.

“사격 준비!”

사에나가 석궁을 번쩍 치켜들어 위로 향하며 휘하의 보안국 헌병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병력은 보안국 헌병 70여명에 유시프 장군의 호위병들, 비교적 믿을만한 타르서스 직할군 사관, 포구의 보안요원까지 모두 합쳐 150여명이 전부였다. 비록 이쪽에 가디언 십여 명이 있기는 했지만 공격해오는 반란군들은 적어도 그 2배인 3백명은 넘어 보였다.

“공격!”

타르서스인 반란군들 역시 무기를 앞으로 겨누며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수비탑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타르서스인을 무시하는 저 프라임 놈들을 쓰러뜨려!”

“머리를 겨냥해라! 놈들 대부분은 투구가 없고, 오합지졸들이다! 머리로 날아오면 치명적이건 아니건 본능적으로 겁을 내게 되어 있다!”

사에나가 오른손에 든 석궁을 앞으로 똑바로 겨누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비록 무장은 빈약했지만 직할군 역시 갑주를 갖춘 정규군이다 보니 평상시라면 석궁으로 명중시켜 봐야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포구의 직할군 반란병의 상당수는 하역작업에 동원되었던 사역병이다 보니 거추장스런 갑주 대신 몸통만 가린 갑주에 작업용 모자만을 쓴 것이 고작이었다.

“발사!”

사에나가 첫 번째로 쏜 볼트가 선두에서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던 건장한 사역병의 뺨을 정통으로 뚫었다. 그 거구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좁은 협로를 꽉 채우고 달려오던 병사들 두셋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지만 나머지 반란군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계속 돌진해왔다.

“계속 쏴!”

사에나가 2, 3발을 연발 사격으로 계속 날리며 악 소리를 질렀다. 70여명의 보안국 정예 헌병들의 숨 쉴 틈 없는 연발 사격이 반란군 병사들의 얼굴에 직사로 꽂혔다. 겁먹은 병사들 몇이 주춤거렸고, 일부는 두려움에 무기로 얼굴을 가리고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다가 중심을 잃거나 쓰러진 동료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비록 죽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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