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60 회: 파트 6. 신께서 쥐신 검은 튜울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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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세닉 가 보병대입니다.”
지난번 무너졌던 동북벽 위에 다시 선 카렐은 빗속을 울리는 우렁찬 북소리 속에서 전의를 다지고 있는 대규모 남부보병대를 지켜보며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공격을 앞두고 모든 조명을 꺼 버린 성벽 밖은 가디언의 눈, 혹은 야시장치가 아니면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암흑 속에 그 팽팽한 긴장감을 깊이 감춰두고 있었다.
새 부임지로 떠난 친구 타슈카 라코타를 대신해 이곳 동북벽 방어를 총괄하게 된 에키트 보병대 신임 부단장 베레트라 알부르즈 중랑장이 적진을 가리키며 보고를 이었다.
“세닉 가는 전통적으로 보병보다는 중장기병이 강하지만 이번에는 투창병단이 함께하고 있어서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아나콘다’로 무장한 근위대 사역병들이 돕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난번 근위대만 하겠는가.”
카렐의 대답에 베레트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일단 수긍했다.
“최소한 적의 공격력만 보면 지난번보다 약합니다. 근위대가 없으니.......”
“성벽이 이 꼴만 아니라면 우리한테는 훨씬 나았을 거야.”
카렐은 중간이 끊긴 채 가설벽으로 얼기설기 가려놓은 동북벽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전투에서 동북쪽 성벽 위의 배치는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천 정도의 북부보병, 그리고 1천의 에키트 보병대와 역시 1천의 동부 투창병들이 사뭇 긴장된 얼굴로 전방을 말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다만 무너진 성벽 안쪽에는 1천의 아메샤 스펜타와 5백의 가디언부대가 무너진 성벽을 넘어 들어올 적들을 기다리며 그 특유의 사기충천한 분위기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이번 비가 어느 쪽에 더 이득이 되겠나?”
“근위대의 아나콘다는 어차피 불을 쓰지 않으니 날씨에는 크게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군 서부 사역병단의 발리스타는 화력에도 상당부분 의존하기 때문에 저지력이 떨어질 겁니다. 그리고 적 후방에는 적 2군 소속 남부기병 4만과 동부기병 2만이 대기 중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지난번처럼 적 후방을 기습 공격할 수도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게. 막아낼 수 있겠나? 자네가 맡은 여기 말이야.”
카렐의 너무도 간단명료한 물음에 베레트라가 부동자세를 잡으며 또렷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역습도 어렵습니다. 최소한 지금과 같은 배치에서는.”
“그건 바라지도 않아. 버티기만 하면 된다.”
카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라말라 박사.”
베레트라에게 확답을 들은 카렐은 이번엔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곁에는 간단한 경갑주로 몸을 보호한 니사가 마찬가지로 걱정스런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아직 아무 연락 없나?”
“상황이 결정되는 대로 연락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카렐은 굳은 얼굴로 망원경을 들어 멀리 어둠 속에서 홀로 휘황한 불빛을 번쩍이고 있는 플라칼 가 숙영지를 바라보았다. 저곳 어딘가에서 플라칼 종장인 카나르 경과 예르마크 경, 그리고 수나 마구스까지, 세 사람이 뒤엉킨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응?”
성벽 위에 말없이 서 있던 카렐은 허리춤의 할룩스를 들쳐보았다. 어지간히 급한 보고가 아니라면 비서관 우베, 혹은 카토를 통하는 것이 보통이었지, 황제의 할룩스가 이렇게 직접 울릴 일은 거의 없었다.
“루토?”
주변의 분위기를 급히 확인한 카렐은 스코프와 연결된 할룩스를 급히 작동시켰다. 그의 스크린에 나타난 건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창백해진 얼굴의 보안국장 루토였다.
“무슨 일인가? 루토.”
“타르서스 직할군의 반란입니다, 폐하.”
별 생각 없이 황제를 올려보던 베레트라는 이 대담한 전사 황제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지는 놀라운 광경에 순간 당황했다. 카렐의 입술이 잠시 가늘게 떨렸지만 그는 아랫사람 앞에서 더 이상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히 어디, 어느 가문 출신 직할군인가? 유시프 장군은?”
“정황상 아크반 가문이 연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란을 시작한 폭도는 4백 정도로 추정됩니다만 몇몇 타르서스인 불순분자들이 가담해서 현재는 6백에서 7백 정도로 늘어난 상태로 현재 2번 도크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유시프 장군의 빠른 임기응변 덕분에 조기에 적의 잠입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토가 가까스로 알아들을 정도의 빠른 발음으로 상황을 정신없이 설명하는 동안, 카렐은 아무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지원군은 보냈나?”
“남서문에 북부보병대와 보안국 헌병대 3백이 있습니다만 진압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수비군이 수성전에 투입되었는지라 현재 성 내에는 예비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굳이 진압하려면 황궁을 경비하는 아메샤 스펜타 병력을 빼야만 합니다.”
“알았다. 그런데.......얼마나 많은 근위대 가디언들이 황성 내로 잠입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인가.”
“유시프 장군께서 사로잡은 근위대 가디언들을 심문해서 최대한 빨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수비탑에 원래 있는 우리 병력은?”
“1백 남짓입니다만 반란군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놈들이 남서문과 통하는 포구 출입문을 모두 봉쇄한 상태라.......”
“누가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바보짓을 하라고 했나? 수비탑도 아직 우리가 장악하고 있으니 수로로 보내면 될 것 아냐. 이대로 놔둔다면 근위대가 포구에 상륙할 텐데 그냥 두고 볼 텐가!”
신경이 곤두선 카렐이 짜증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한 루토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황궁에서라도 지원군을 내보내라. 숫자가 적어도 좋으니 황궁 지하에서 보트에 태워서 포구에 바로 상륙시켜. 제일 가까운 외부 부대가 건무성에 있는 시로니까 아메샤 스펜타를 모조리 이끌고 당장 포구로 진입하라고 해. 늦어도 1시간 이내로 반란군을 진압하고 적의 후속부대 상륙을 차단해라. 알겠나.”
통신을 끊은 카렐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베레트라는 후방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황제가 먼저 말해주지 않는 것을 굳이 알려 들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적진 쪽에서 울려온 낮고 묵직한 진격나팔 소리가 성벽 위의 동맹군 장병들의 긴장감을 바싹 뒤흔들었다.
“이제야 오는군요.”
베레트라가 한 손에 망치를, 한 손에는 카렐에게서 받은 단검을 쥐고 입술을 야무지게 깨물었다. 하지만 같은 순간, 카렐의 입가에서는 한참 전의에 불타오른 그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한 마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건 여기가 아닐 지도 모르겠군.”
“적 발리스타입니다!”
성벽 뒤를 돌아보며 이를 갈던 카렐은 관측병이 외친 큰 고함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예민한 감각기에는 부서진 성벽 자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아나콘다가 바로 느껴졌지만 지금 그의 관심사는 성벽을 공격하는 적이 아니었다.
수비탑으로 일단 퇴각한 유시프 장군이 첫 번째로 한 일은 폭동에 가담하지 않은 직할군 병력들을 모두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직할군 사령관의 신분이었지만 그로서는 자신의 휘하 부대에서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빼앗은 무기와 갑주는 이곳 수비탑에 주둔하는 보안국의 기간요원과 헌병들에게 지급했지만 그들을 모조리 합쳐 봤자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만으로는 어느새 1천에 육박해가는 반란군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당초 중립 입장이었던 직할군들까지 놈들의 선동에 속속 반란군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수비탑 꼭대기 관제실로 돌아온 유시프 장군에게 페나페 오난 중랑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알렸다. 유시프 장군이 입가를 씰룩거리며 경멸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이상할 것도 없지. 별난 집단의식 하나는 대단한 놈들이니. 1번 도크는? 놈들이 억류중인 민간선박을 풀어주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다.”
“도크를 단단히 폐쇄해 놓았고 우리가 수중보를 통제하고 있으니 놈들이 배를 점거해도 당장은 나갈 수 없습니다. 멋대로 달려들었다가는 도크와 수중보에 걸려서 좌초할 겁니다.”
“놈들이 여기에 더 악착같이 달려들 거라는 뜻이기도 하군.”
유시프 장군은 비가 쏟아지는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수비탑은 포구 중앙, 호수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작은 반도 끄트머리에 등대를 겸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라고는 배로 접근하는 것, 혹은 병목같이 좁고 긴 연결로를 지나는 것뿐이다 보니 반란군들도 섣불리 공격해 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역부족 같습니다. 빨리 지원군이 와 주지 않으면......”
함께 얼굴을 내밀었던 페나페가 육지 쪽을 쳐다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갑주와 창칼, 석궁으로 무장한 보안국 헌병들이 연결로 위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지만 정작 유시프 장군은 그 반대편, 파란기스 호수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포구에 있는 반란군 잡놈들이 문제가 아냐. 저 반란군들로 끝날 것 같나?”
“.......적이 여기로 상륙할까요?”
페나페가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베흔 그놈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 순간을 놓칠 리가 없겠지. 다만 문제라면.......”
“문제라면요?”
페나페가 눈썹에 힘을 주었다.
“적군이 가진 배가 지난 욱리하 도하 도중에 대부분 박살난 덕에 이곳에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에 한계가 있다는 거지.”
유시프 장군이 망원경을 그제야 도크 쪽으로 돌리며 무겁게 대답했다.
“그래서 반란군들한테는 이 탑을 빼앗는 것도 급하지만 1도크에 정박된 배를 탈취하는 것도 급하다는 거야. 그 배들을 보내서 자기네를 도와줄 병력을 대대적으로 실어 와야 자기들이 살 수 있으니.”
유시프 장군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포구의 숙소, 술집 등지에 있던 선원들이 반란군들에게 거의 체포되다시피 끌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중 저항하려 하는 몇몇 선원들이 반란군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하는 모습도 군데군데 보였다.
“저네들이 선원들을 데려다가 뭘 하겠나.”
“하지만 이 탑을 못 빼앗으면 배를 탈취해도 어차피 도크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 잡놈들을 도와줄 지원군이 도크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지.”
망원경으로 다시 도크 밖을 내다보던 유시프 장군이 순간 움찔했다. 남쪽, 파란기스 호를 타고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선단 십여 척이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오고 있었다. 유시프 장군이 관제실의 운영요원들을 돌아보며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등대를 꺼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저 선단의 도크 진입을 막아!”
“적군입니까?”
기간요원의 물음에 유시프 장군이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연락이 없었으니 적군이겠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그런데 북쪽에서 또 다른 배가 접근중입니다.”
“그건 또 뭐야?”
보고와 동시에 유시프 장군의 할룩스가 지직거리며 울렸다.
“아메샤 스펜타입니다. 상의 명을 받아 폭동을 진압하러 오는 길입니다! 북쪽에서 남하하는 중이니 포구를 열어 주십시오!”
당황한 유시프 장군은 남쪽과 북쪽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양쪽의 지원부대가 남북에서 동시에 도착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지원군을 받기 위해 도크를 연다면 그곳으로 적군 역시 쏟아져 들어올 테고, 열지 않는다면 지원병을 받을 수가 없었다.
“침착해라, 침착해. 급할 것 없어.”
유시프 장군은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자신의 가장 강점인 침착함을 되찾으려 최대한 애썼다. 그리고는 반란군이 점거하고 있는 포구, 남쪽에서 접근중인 적 선단을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금 머릿속을 깨끗이 정리했다. 그는 마치 옆에서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 양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물었다.
“아군 선단은 몇 척이냐?”
“황궁에서 1진으로 온 아메샤 스펜타 아샤 연대 경보병 1개 제대 120명이고 배는 1척입니다.”
“겨우 경보병 120명? 반란군이 도대체 몇인데 그것만.......”
유시프 장군이 버럭 화를 냈다. 생각보다 적은 지원군 숫자에 보안국 기간요원들 역시 실망스런 표정이었다. 지원부대장이 민망한 표정으로 둘러댔다.
“40여분 후에 건무성에 있던 시로 대장군이 아메샤 스펜타 크샤트라 연대 3천을 이끌고 북상해 올 겁니다. 저희 부대는 선발대입니다.”
“.......알았다.”
유시프 장군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압은 못 해도 일단 시간을 끌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시프 장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기간요원들이 경악할만한 한 마디로 말을 이었다.
“그럼 너희는 지금 입항하지 말고 북쪽 1도크 외곽에 숨어있어라.”
“예?”
당혹스러워하는 지원군 지휘관, 그리고 기간요원들의 눈치를 무시하며 유시프 장군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남쪽에서 오는 적 부대의 숫자는 선단의 숫자로 봐서 적어도 1천 이상이다. 정황으로 보아서 아마도 근위대겠지. 너희 부대가 와 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우리가 도크 진입을 차단하면 놈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포구 외곽 방파제 밖에 바로 상륙하는 험한 길을 택해야 한다.”
“하지만......”
부사령관 페나페 역시 자꾸 조여오는 반란군의 기세에 초조해 졌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유시프 장군은 그런 그를 막으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이봐, 페나페. 이런 상황에서 도크가 닫혀 있고, 등대의 인도도 없어. 자네가 적군을 싣고 오는 배의 선장이라면 병사들을 어떻게 상륙시키겠나?”
‘셔틀조종사 겸 항해사’ 출신인 페나페는 그제야 자신의 옛 보직을 떠올리며 잠시 억지웃음을 지었다.
“도크 진입로 주변에는 수중 장애물들이 온통 널려 있을 테니 우리의 인도가 없이 접근하는 건 자살행위지요. 수심이 적당히 깊은 곳에 배를 세우고 일단 병사들을 내보내야 하겠죠. 하지만 지금 날씨가.......”
“그래. 그렇게 상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고 지금 날씨도 최악이다. 놈들은 상륙이 급하니 도크가 닫혀있으면 포구 외곽 방파제 밖에라도 일단 병사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물살이 거세고 날씨가 험하니 물에 내린 후에 실제 땅을 밟고 부대를 정비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거다. 우리는 그 중간의 시차를 낚아채면 돼.”
“그럼.......”
“우리 지원군은 그때까지는 숨어 있다가 적 배가 돌아가고 난 후에 도크로 당당하게 입성하면 돼. 아직은 도크가 우리 통제 하에 있지 않나. 잘만 하면 시로 대장군이 올 때까지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반란군을 계속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도 위험한데......”
“해 봐야지.”
유시프 장군이 허리에 찬 무기벨트를 조이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반란군 놈들은 스코프도 없으니.......훗, 내 부대가 부실하게 무장했던 게 다행스럽게 여겨지다니.”
유시프 장군의 자조 섞인 넋두리대로, ‘저예산 부대’인 타르서스 직할군은 고작해야 할룩스 정도만 있을 뿐 분대장급 외에는 전투통제장치가 부착된 스코프조차 갖추고 있지 못했다. 실제로 그들의 주된 활동무대인 너른 사막에서의 작전, 혹은 치안업무에서 각개 병사들에게까지 그런 장비를 모두 갖추어 줄 필요가 없었다는 편이 더 정확했지만.
“소등! 포구의 모든 불을 다 꺼!”
유시프 장군이 관제실의 요원들에게 손을 저으며 외쳤다. 수비탑 정상의 등대 조명은 물론이고 포구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지면서 황도의 남서문 밖 일대가 온통 암흑에 휩싸였다.
“놈들이 당황했군요.”
페나페가 포구 쪽에 집결하던 반란군 무리를 가리켰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폭우까지 쏟아지는 이런 악천후는 익숙지 않은 그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자네는 여기를 계속 지키고 있어. 난 밑에 내려가 볼 테니.”
“또 직접 싸우시게요?”
“여기가 자네의 공간 아니었나? 내 공간은 피가 튀기는 전쟁터고 말이야.”
유시프 장군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페나페의 어깨를 힘있게 짚었다. 이번에도 관제탑을 페나페에게 맡긴 유시프 장군은 무장을 갖추고 탑 아래로 급히 달려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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