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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446화 (445/1,132)

< -- 446 회: 파트3. 유리벽 너머 수선화 한 송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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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대 제일의 암살수로 꼽히던 이 무시무시한 인물이 이렇게 정글 속으로 잠적해버린 건 사실 지도부, 아니 정확히는 강경파의 얼토당토않은 탄핵 때문이었다.

오르마즈는 교단의 최고 지도자이던 ‘피의 제사장’ 야푸르 빈 다하카르를 암살하면서 명성을 날렸지만 그 과정이나 방법은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그는 특무여단 소속 암살팀장이라는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온건파에 속했다. 그렇다보니 슈엘러 쉐너 중장을 우두머리로 한 민병대 내 강경파 인물들이 그를 적과 내통한 이중첩자로 지목하며 탄핵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의심의 저변에는 지금도 그의 이마에 남아있는 다하카르의 문장, 즉 다하카르의 간택자라는 그의 출신에 대한 불신감도 틀림없이 남아있었다.

이 암살수의 친척 또한 의심을 사기에 충분해서, 그의 증조부 타리프 카파키는 TSG의 창설자였고 강경한 혁명가였지만 이미 옛날에 죽은 사람이었다. 반면 아직까지 살아있는 할아버지 빌루이는 아버지의 정치색을 벗고 코윈의 잘 나가는 사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타리프와는 달리 친 교단적인 인물이었고, 돈만 된다면 민병대를 때려잡을 무기도 교단에 기꺼이 팔아먹을 그런 인물이었다.

물론 오르마즈의 아버지 투르케스크는 민병대의 동맹세력인 제니안의 운영위원이었지만 딱히 지명도나 영향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들리는 정보에 따르자면 코윈의 교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오르마즈의 가족들은 다른 죄수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 아지드가 수용소 간부들과 성직자들에게 몸을 팔아 그런 특혜를 받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까지 파다하게 퍼지면서 오르마즈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다.

어쨌든 모든 정황은 오르마즈에게 불리했다. 그를 지켜주려던 새 지도자 에르네스토는 교단 놈들이 잔꾀를 써서 오르마즈를 궁지에 몰려 한다며 애써 변호했지만 민병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강경파들의 의심에서 그를 지켜 줄 수는 없었다.

사실 오르마즈에 대한 강경파의 의심은 조금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런 억지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오르마즈는 공석 사석을 가리지 않고 ‘종교자유를 주장하는 우리가 저들을 사교도라며 쓰러뜨리겠다는 것은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서 교단을 완전히 말살하겠다는 강경파를 기겁하게 만들곤 했다. 강경파들은 그런 위험천만한 오르마즈를 요직에서 쫓아내는 것이 목표였지, 그런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어차피 관심조차 없었다.

오르마즈가 야푸르 대신관의 암살로 영웅에 등극한 직후, 돌연 민병대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소한 베흔이 알고 있기로는 그랬다.

“교단의 사주를 받은 피다이 놈들이 왜 날 죽이지 않는지를 물으면 나도 할 말이 없어. 비슷한 물음을 이미 강경파 놈들한테 숱하게 들었으니까 진절머리도 나고.”

오르마즈는 즈바크의 눈치없는 질문에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럼 한 모금을 다시 꿀꺽 삼켰다.

“지도자 전하께서 이번엔 꼭 대령님, 아니 준장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오호? 승진까지?”

“특무여단장 무라드 준장님께서 암살당하셨습니다. 후임자로 대령님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자네가 해.”

단 한 마디로 간단하게 거절한 오르마즈는 군데군데 해진 낡은 안락의자에 몸을 푹 파묻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실 거면 왜 아직까지 몸을 단련하고 계십니까?”

오르마즈는 감았던 눈을 살짝 치켜뜨며 베흔을 올려보았다. 그의 시선은 단단한 굳은살이 박여 있는 오르마즈의 손을 향하고 있었다. 오르마즈가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가리켰다.

“저 언덕 밑에 보면 큰 구덩이가 하나 있어.”

“.......”

“한 열 놈쯤 묻혀 있겠지. 내가 여기 온 이후로도 말이야.”

“누.......굽니까?”

“몰라, X도 있고 그냥 암살수도 있었어. 제법 솜씨 좋은 놈도 있었고. 일부는 교단에서 보냈고, 일부는 강경파 놈들이 보낸 것 같아.”

오르마즈가 목에 남은 큰 칼자국을 가리켰다.

“양쪽에서 모두 두들겨 맞는데 나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자네들이 날 죽이러 왔는지, 살리러 왔는지도 모르겠어.”

베흔은 기다렸다는 듯, 에르네스토의 친필 서명이 담긴 편지를 내놓았다.

“지도자 전하의 셋째 부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피다이의 소행이었습니다.”

순간 오르마즈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바로 얼마 전, 에르네스토의 첫째 부인 파란기스가 암살당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베흔의 굳은 표정을 잠시 올려보았던 오르마즈는 단단히 봉인이 되어 있는 그 편지를 조심스레 뜯었다.

“흐음.......”

잠시 후, 물담배를 끈 오르마즈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남은 술병을 노부부에게 넘겨주었다.

“내일 셔틀을 몰고 다시 오게. 내 짐을 싸 놓고 기다리지.”

오르마즈는 술집 한쪽의 작은 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 문 건너편에는 이곳 원주민들이 사는 곳과 별다를 바 없는 작은 살림집이 보였다.

“내용이 도대체 뭔데 저런 인간이 갑자기 맘을 바꾼 거야?”

즈바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지도자 에르네스토가 손수 적어 준 그 친서의 내용이 도대체 무언지는 베흔 역시 알지 못했다.

“정말로 가실 겁니까?”

이곳 작은 시골병원의 구석진 단칸방에서 짐을 싸고 있던 오르마즈는 한쪽에서 들려 온 여자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 유난히 자그만 키, 앳된 인상의 그 여자는 짐을 꾸리는 오르마즈의 모습을 걱정스레 쳐다보며 두 번이나 같은 물음을 던졌다. 그다지 눈에 띄는 외모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곳의 더운 날씨 속에서 모자를 눈썹까지 깊숙이 쓰고 있는 건 좀 희한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오르마즈가 여자에게서 다시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환자도 없을 텐데, 자지 않고 뭐 하고 있지?”

“......”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여자의 이마 중간에는 교단의 제2서열인 빛과 용기의 신 트라카를 상징하는 노란빛 토파즈가 ‘간택자’ 출신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뜨거운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린 거친 얼굴과 손은 제국의 ‘특권층’이라는 간택자답지 않은 힘든 삶을 살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왜 여기 상주하고 있는지.......”

오르마즈는 그 여의사의 까맣고 작은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니사 자네도 나 때문에 이런 위험한 데 있지 말고 이젠 쿠트라스의 교단본부로 돌아가게나. 임무도 좋지만 목숨이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이런 데서 내 뒷바라지하는 게 쉬운 일인가.”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요.”

니사라 불린 그 여자는 단념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에 쓴 모자를 벗었다. 핏줄이 보일 정도로 완전히 삭발한 머리, 그리고 귀 뒤에 새겨진 트라카 신의 혜성 문장은 이 여자가 ‘침묵의 자매들’ 12교단에서 두 번째로 큰 트라카 교단의 정식 성직자 '모간' 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니사의 이마에 박힌 노란 토파즈와 오르마즈의 이마에 박힌 파란빛 사파이어가 이 둘의 조금은 어색한 관계를 나타내듯 전혀 다른 빛깔을 뿜고 있었다.

의사를 겸하고 있는 성직자의 모습은 콜로니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신학교를 마친 후, ‘신성한 학문’인 의학교에 다시 입학해 의사 면허를 따는 것은 교단 내에서는 일종의 ‘엘리트코스’였다. 콜로니에서의 모든 의료 행위는 교단에서 시행하는 무료 공공사업이었고, 니사와 같은 성직자 출신의 의사들은 특유의 자부심과 열성으로 사람들에게 각별한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침묵의 자매들’을 이루는 12개의 교단에는 적게는 3천에서 많게는 7천명까지의 모간들이 봉직하고 있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이렇게 외진 곳에서 의료봉사와 포교활동을 겸하고 있었다. 민병대 역시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성직자들에게는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강경파에 속한 일부 민병대들은 이런 ‘손쉬운 상대’만을 골라 살해하는 비겁한 짓을 종종 저지르곤 했다.

이들 중 교단별로 서열 2위에서 20위에 해당하는 고위급 성직자, 흔히 신관 혹은 마스모간이라고 불리는 교단의 지배세력들 중 상당수도 이런 봉사의(醫) 출신 성직자들이었다. 특히나 온건한 성향의 트라카 교단은 이런 의사 출신 마스모간들이 많기로 유명했고, 교단 지도자인 현 마구스 수나 빈트 트라카도 마구스에 선임되기 전까지는 이런 봉사의로 있던 사람이었다.

12개 각 교단의 세습 지도자인 다른 ‘마구스’는 물론이고, 콜로니 최고지배자인 대신관 ‘바즈라마구스’까지도 이런 교단의 분위기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그들 중 상당수가 젊은 시절에 의학교를 졸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참, 자네 이번에 돌아가면 승격한다 했지?”

짐을 싸던 오르마즈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서열 50위 내로 오를 것 같습니다.”

니사가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허, 잘하면 나중엔 마스모간 신분으로 나하고 회담장에서 마주앉을지도 모르겠는데? 미리 축하해 줘야지.”

오르마즈는 짐 한쪽에 놓아두었던 보랏빛 작은 상자를 니사에게 내밀었다.

“마스모간들 입는 로브에도 잘 어울릴 거야. 솔직히 트라카 교단의 로브는 허여멀건하니 좀 밋밋하거든. 명색이 빛의 신인데 그렇게 때깔이 안 나서야 쓰나?”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투명한 다이아몬드 브로치였다. 니사가 브로치를 더듬거리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 사람들이 오르마즈님과 함께 있는 제 모습을 본다면 또 난처해지시겠군요.”

“이젠 별 상관없어. ‘능력 좋은 오르마즈, 적대세력인 교단의 여자 성직자까지 홀리다’라고 멋대로 넘겨짚겠지. 아아, 불쾌했다면 미안하네. 자네 약혼자가 화낼지도 모르겠군.”

오르마즈는 꽉 찬 가방을 꾹꾹 눌러 잠그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니사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줘서 정말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난 이미 몇 번은 죽었을 거야.......아참,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있네.”

“예?”

오르마즈는 자신의 이마 중간에 박힌 다하카르의 파란빛 보석을 가리켰다.

“이걸 좀 없애주게나. 자넨 원래 신경외과 의사 아닌가. 뭐 여기서야 갖은 병을 다 보지만.”

“하지만.......”

니사가 난감한 듯 고개를 저었다.

“내 전에 듣기로 민병대에 있는 간택자 출신 몇몇 전사들이 이걸 없앴다고 들었는데.”

“하지만.......오르마즈 님의 것은 좀 다릅니다. 그건 소속된 교단의 최고위급 의사만이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니사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나도 알아. 이게 두개골을 뚫고 내 간뇌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오르마즈님의 조각 안쪽에는 신경계를 제어하는 회로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무단으로 제거하면 신경계 전체가 파괴되면서 즉사하게 됩니다. 전 할 수 없습니다.”

오르마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드러난 부분이라도 없애 줘. 최소한 내가 간택자 출신이라는 걸 사방에 광고하고 다닐 일은 없게 말이야. 언제 떼어내도 떼어낼 물건 아닌가.”

“......”

방 문을 열고 성큼 나선 오르마즈는 한쪽에 있는 작은 간이수술실에 서슴없이 몸을 뉘였다.

“떼어낸 다하카르 조각은 자네가 기념품으로 보관하고 있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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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 7월 현재 오픈기념 이벤트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화면 오른쪽 혹은 메인화면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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