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93 회: Part 1. 두 그루의 월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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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이나 되는 중장기병들의 일제돌격에 강변의 적 ‘상급부대’ 기지에서도 보병들이 허둥지둥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도하지점에서 문제의 부대까지는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몇 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다. 기병들은 낮은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강변 습지를 가로질러 괴성을 울리며 적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 선두에서 달리던 기병대대장이 움찔했다.
“자, 잠깐, 저거 경보병들이 아니잖아!”
기병대 대대장이 소리를 꽥 질렀다. 기지 안에서 몰려나오는 병사들은 초소를 지키고 있는 경보병이 아닌, 긴 창을 든 중장보병들이었다.
“뭐 이렇게 많아!”
기껏 중대 규모, 4백 정도로 생각했던 기지의 병사들은 언뜻 보기에도 족히 1천은 훨씬 넘어보였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폭 2스타디아 정도의 밀집 방진을 이룬 이들은 2열, 3열을 이어 계속 뒤로 열의 숫자를 불려갔다.
“펜스제거!”
동맹군 보병대 대대장의 명령에 기지를 둘러싼 사방의 펜스가 허무하게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에 치밀하게 세워진 장애물과 목책, 15척 길이의 긴 창이 돌격해오는 기병대의 눈앞에 빽빽하게 그 마수를 드러냈다.
“제기랄! 정지! 정지!”
기병대의 돌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채 3중으로 창을 겨누고 있는 그 모습에 경악한 호지 가 기병대대장이 급히 정지명령을 내렸다.
“저건.......임기응변으로 나올 수 있는 대응이 아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산악도 아닌 평지에서 적들에게 보병들뿐이라면 상대가 제아무리 장창병이어도 기병이 특유의 기동성을 활용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의 치밀한 대응을 보아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의 공포에 질린 시선이 천천히 주변을 돌았다. 조금 전 그가 지나온 강변의 사람 키 만한 무성한 갈대밭과, 그 조금 떨어진 곳의 울창한 버드나무 숲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숲은 족히 수천의 병사들이 몸을 숨기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빽빽했다.
“맙소사, 걸려들었다........”
바람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갈대밭이 가는 마찰음을 울리며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퇴각해라! 빨리!”
지휘관의 입에서 ‘빨리’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그들 중장기병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적의 입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5백의 기병들은 즉시 방향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병들이 적 ‘상급부대’를 공격하다 말고 뜬금없이 후퇴하는 모습에 마누엘이 발끈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 하는 짓인가! 왜 멋대로 후퇴하는 거야!”
“적 매복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병대대장의 대답은 결국 끝까지 가지도 못했다. 기병들이 기지를 향해 돌격한 사이, 강변 갈대밭에 숨어 뒤를 틀어막아버린 동맹군 장창보병 1천이 쩌렁쩌렁한 함성과 함께 퇴각하는 남부기병들의 앞을 막아섰다.
“아악!”
갈대밭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보병들을 미처 피하지 못한 십여기의 기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공중을 붕 날아가 보병들의 창끝에 꼬치처럼 푹 꿰어버렸다.
“진격!”
남부기병들이 매복군에 저지된 사이, 기지의 보병들 역시 그들의 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3천의 창병들 사이에 꼼짝없이 끼어버린 5백여 중장기병들이 순간 우왕좌왕거렸다.
“젠장! 달아나라고!”
강변에 있던 기병들 수십이 당황한 나머지 물에 무작정 뛰쳐들었다. 하지만 이곳의 수심은 그들이 건너온 곳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과 함께 물살에 휩쓸린 기병들이 어처구니없이 쓸려가며 사방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저거 뭐야!”
깜짝 놀란 마누엘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2차 혼란기 당시, 오르마즈에게 지독히도 쓴맛을 보았던 그는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한 저 빌어먹을 장창병들의 모습에 자리를 서성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머지 기병 5백이라도 보내서 퇴로를 뚫어!”
“안됩니다! 자리를 잡고 있는 장창병들 앞에 기병들을 또 대주시다니요!”
깜짝 놀란 참모들이 기병들을 더 투입하라는 마누엘의 명령에 일제히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기랄! 그러면 저걸 어떡하란 말이야! 둔한 중장보병들이 저 물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아!”
“그렇습니다만 더 강을 건넜다가는 모두.......”
“닥쳐!”
마구 신경질을 부리던 마누엘의 눈에 문득 들어온 건 본진 뒤쪽에 있던 세닉 가의 투창병들이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마누엘이 혀를 살짝 깨물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잘난 부마님 키워놓으신 병력 솜씨한번 볼까?”
“예르마크 경께서 저들은 공성전 이전에는 실전에 투입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적에게 우리 투창병의 존재가 드러나면 틀림없이.......”
세닉 가에서 온 참모가 정색을 하며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마누엘에 뒤이어 언성을 높인 건 케세크 플라칼 경이었다.
“여긴 3군이지 2군이 아냐. 부마님 타령은 너희 고향에 돌아가서나 해.”
“나머지 중장기병 5백 다 투입하고! 투창병단도 함께 전원 도하해!”
참모의 의견을 무시해버린 마누엘은 세닉 가 투창병단장 장군에게 무조건 진격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강변 버드나무숲에 빽빽한 목책을 두르고 매복한 2천의 기병대 선두에는 검은 망토와 경갑주, 긴 자리드를 한손에 든 검은 피부의 궁기병 전사가 서 있었다. 크지 않은 붉고 날렵한 말 등에 올라있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대장군을 뜻하는 3개의 금빛 가로줄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고 왼손의 반투명한 방패에는 슬레이프니르를 뜻하는 백마 문양이 또렷했다.
“볼만하군.”
스코프로 전송되는 영상을 보며 베아트릭스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강 건너편에 본대와 함께 남아있던 5백의 적 중장기병들이 아군 중장보병들에게 포위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허겁지겁 강을 건너 달려오고 있었다.
“경보병도 함께 건너고 있습니다. 1만 정도 됩니다.”
“그 잘난 중장보병들 안 들여보내는 거 보니 마누엘 그놈도 소문만큼 또라이는 아닌가보군.”
베아트릭스의 평소답지 않은 농담에 함께 있던 달리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금 아군 보병들에게 포위되어있는 저 5백의 남부기병은 나머지 적들을 강 이편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이제 밀어붙여. 건너오고 있는 놈들 똥줄이 타게 말이야.”
이번 기습작전의 총지휘를 맡은 베아트릭스는 기지 쪽에서 남부기병들을 포위하고 있는 중장보병대 대대장에게 즉시 명령을 내렸다. 갈대밭에 있던 3천의 동맹군 장창병들이 적들을 강 쪽으로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제기랄! 빨리 가! 빨리!”
동맹군 보병들에게 마치 토끼몰이 당하듯 밀려나는 전우들의 모습에 놀란 남부 ‘지원군’ 기병들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베아트릭스는 척후병들이 보고해 올리는 화면에 의지해 그들 기병들과, 함께 전진해오는 적 경보병들의 수를 세심하게 헤아리며 기습 타이밍을 계산했다.
“숲 때문에 시야가 영 거슬리는군요.”
함께 선 달리가 베아트릭스에게 불평처럼 입을 열었다.
“숲이 없으면 다 드러내놓고 기습이란 걸 하려고 그랬나? 적 스캐너는 또 어쩌고?”
타이밍이 가까워지면서 바싹 긴장한 표정의 베아트릭스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기병은 아군보다 수가 적으니 다 건넜을 때, 수가 많은 보병은 절반 정도 건넜을 때 타격한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거의 강을 모두 건너온 5백여 남부기병들이 동맹군 보병들에게 토끼몰이당하고 있는 전우들을 향해 일제히 돌아섰다. 베아트릭스가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기사단부터 돌격.”
‘돌격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짧게 입을 열었다.
“예! 모두 진격!”
버드나무숲 후방에 숨어있던 슈로 기사단 1천이 막 강을 건너온 남부기병 5백을 향해 큰 함성을 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또 뭐야!”
2배에 가까운 압도적인 기병들의 돌격에 막 강을 건넌 남부기병들이 순간 놀라 주춤거렸다. 장창을 앞세우고 돌진해오는 중장기병들의 말굽소리에 땅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남부 중장기병대 대대장이 부하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젠장! 적 기사단이다! 최대한 밀집해서 저지해!”
적들이 밀집하는 것을 확인한 베아트릭스가 함께 온 슬레이프니르 궁기병들에게 투창을 번쩍 치켜들어 보였다. 그의 눈짓에 궁기병대 지휘관 달리가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궁기병대 돌격!”
목책을 무너뜨리며 숲을 박차고 나온 1천여 슬레이프니르 궁기병들은 먼저 돌격한 슈로 기사단의 후미로 재빨리 합류했다. 그리고 막 밀집대오를 갖추던 5백여 남부기병들을 향해 투창을 일제히 쏘아 올렸다.
“젠장! 저거야?”
난생 처음 당해보는 장거리 사격에 남부기병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일단 훈련받은 대로 방패를 치켜들며 조금씩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단장님! 저 뒤의 경보병들 모습이 조금 이상합니다.”
달리의 보고에 베아트릭스가 말의 속도를 조금 늦추며 스코프의 배율을 높였다.
“이런!”
슬레이프니르의 궁기병들이 막 투창을 쏘아올린 순간, 남부 중장기병대 후미에 어느새 도열한 투창병단 쪽에서도 무려 4천여발의 투창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남부 중장기병들만을 노리고 돌진하던 슈로 기사단 기병들이 순간 움찔 했다.
“투창보병? 저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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