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370화 (369/1,132)

< -- 370 회: Part 16. 내 아버지 곁의 고결한 소나무 -- >

.

.

.

유학자들을 헤치며 다가오는 카렐을 제일 먼저 발견한 건 코리온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리고 있던 릴라크였다. 통곡하고 있는 유학자들을 거칠게 떠밀며 조금은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는 건 틀림없는 적의 ‘수괴’ 카렐이었다. 입을 쩍 벌린 릴라크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가리키고만 있을 뿐 입밖으로 말조차 뱉어내지 못했다. 그제야 카렐을 발견한 베흔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저놈 뭐야!”

유학자들 중간에 똑바로 선 카렐은 목판에 박혀 신음하는 코리온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그 쇳소리 같은 거칠고 듣기 싫은 목소리로 단상이 떠나가라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질렀다.

“오라버니는 그리되셔 마땅했소! 오라버니가 그리도 믿던 이 잘난 유학자, 아니 입만 살은 서생들의 이 울고 짜는 한심한 꼴을 보시오!”

카렐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린 코리온은 온몸을 비틀며 그 넓은 가슴이 터져라 큰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의 그 부드럽던 목소리는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의 그 강력한 울림에 단하의 유학자들의 순간 전율하고 있었다.

“학장님! 학장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상으로 뛰어오르려던 두겐이 릴라크의 남부기병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두 마리의 말 사이에 끼인 채 거칠게 발버둥치던 두겐이 악을 쓰며 말들을 밀어내려 했지만 꿈쩍을 할 리가 없었다.

“비켜! 비키지 못할까! 감히 제국의 유학자를 가로막다니!”

그 작은 소란의 와중에 1백여명의 가디언을 거느린 쿠베, 아리엘이 그때까지도 유학자들 중앙에 서 있던 카렐을 향해 몰려들어오고 있었다.

“내 학장을 구하러 뛰어들 것이니 내 뒤를 따르던지! 날 그대로 죽게 놔두고 울고 짜고나 있어라! 이 한심한 서생 놈들아!”

큰 소리를 지른 카렐이 허리에서 그 핏빛 카타나를 죽 뽑아들며 단상으로 성큼성큼 내딛기 시작했다. 이런 카렐의 뒤를 제일 먼저 따르기 시작한 건 기병들에게 밀려나 흙바닥에 나뒹굴었던 두겐이었다.

“저 망할 놈!”

칼을 뽑아든 베흔이 수십의 가디언들과 함께 당상에서 뛰쳐 내렸다. 흉흉한 분위기에 놀란 수우가 근위대 가디언들의 보호를 받으며 급히 황궁 안으로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쿠베와 아리엘이 이끄는 1백여의 가디언들은 빼꼭히 찬 군중들과 유학자들에 가로막혀 카렐에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학장을 죽여.”

카렐을 향해 나아가던 베흔이 긴 창을 들고 목판 밑에서 대기하던 병사에게 손짓을 보냈다. 명령을 받은 병사가 목판에 박혀있는 코리온의 목을 향해 즉시 창을 겨누었다. 그 순간, 유학자 무리 속에서 무언가 시커먼 것이 휙 하며 날아올랐다.

“뭐야!”

베흔이 움찔 하는 새, 코리온을 찌르려던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붕 날아가 목판 밑둥에 머리를 부딪치며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병사의 뒤통수에는 짤막한 투척도끼 한 개가 정확히 박혀 있었다. 뒤이어 날아온 또 한개의 도끼는 그 위의 목판에 박힌 채 그 끝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것 봐, 도끼 던지는 솜씨는 네놈보다 내가 한수 위라니까!”

“씨이, 겨우 한번갖고!”

공중으로 확 솟구쳐오른 두 명의 거구의 사내들이 입고있던 거추장스런 무명포를 벗어던지며 앞을 가로막는 3기의 기병들을 바닥에 떨구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신호로, 유학자 무리 속에 섞여있던 1백여명의 페로가디언들이 입고 있던 무명포를 벗어던지며 단상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막아! 유학자, 아니 가디언들을 막아라!”

릴라크가 투구를 급히 눌러쓰며 휘하 기병들에게 찢어지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곳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5천의 근위대 병사들이 즉시 창을 치켜들며 군중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기병들도 창을 앞세우고 다시 술렁이기 시작한 유학자들을 단상 멀리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유학자 2만 명이 기병 100명보다도 못난 것들이었다니! 정말로 한심하구나!”

자신을 향해 내질러오는 세 개의 창을 거세게 내리쳐 부수어버리며 카렐이 악을 썼다. 단신으로 단상을 향해 걸어가는 카렐의 뒤를 두겐이 무작정 따라붙었다.

“안 따라오고 뭐하냐! 이 못난 것들아!”

두겐의 호통에 대여섯의 젊은 학자들이 급히 두겐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사실 카렐이 미리 심어두었던 전사단 사람이었지만---그들의 모습을 본 유학자들은 지난번 재판정에서 두겐과 함께 난동을 피우다가 쫓겨났던 원리주의 유학자들을 시작으로 앞다투어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한 무명포 차림의 유학자들이 마치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듯 기병들의 벽을 뚫고 우루루 몰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맙소사,”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 말았음을 깨달은 릴라크가 조금씩 뒷걸음치고 있었다. 지금껏 억눌러온 분노와, 군중심리가 어우러지면서 무려 2만이 넘는 유학자들이 갑자기 미친 듯 함성을 지르며 단상으로 쳐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막으려던 기병들은 바로 옆에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수십의 사람들에게 밀려나거나 손, 발이 잡히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폭동.......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릴라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전대미문의 ‘유학자 폭동’에 1백여의 기병들은 진압 따위는 시도조차 못해본 채 몰려드는 광기서린 유학자들에게 휩쓸려 맥없이 밟혀죽고 있었다. 카렐과, 그가 이끄는 1백의 가디언의 뒤를 따라 새카맣게 단상으로 몰려올라오는 그들 유학자들의 모습에 릴라크의 머릿속이 아찔해왔다.

방금전까지 처형대였던 단상에서는 페로가디언들과 근위대와의 피튀기는 난전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어디가 전선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이 페로 가디언들과 유학자들, 근위대 병사들과 가디언들이 뒤엉켜 사방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엉망진창의 와중에서 한손에 칼을 뽑아든 베흔이 부하들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유학자 놈들하고 군중들을 분리시켜! 최대한 빨리! 안 그러면......”

명령을 내리다말고 측면에서 네피의 돌격을 받은 베흔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그로서는 한가롭게 네피와 싸움을 벌이고있을 여유가 없었다. 베흔의 명령을 받은 근위대 병사들이 유학자들과 군중들 사이에 뛰어들며 인의 장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학자들의 난동과 함께 20만여명에 달하는 군중들까지 술렁이고 있었다. 저들까지 가담한다면 황궁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고 말 터였다.

집요하게 쫓아오는 네피를 가까스로 떨쳐낸 베흔이 할룩스에 대고 악을 썼다.

“쿠베! 황궁 경비병력 5천 불러내서 방어벽을 쌓아! 셈! 외곽의 너희 병력 중에 2천 불러와!”

“대장! 북극에서 연락입니다! 아메샤 스펜타에서 크샤트라 연대와 아샤 연대까지 도합 1만 병력이 20분쯤 전에 남쪽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수송선 3대가 남동쪽에서 이곳으로 접근중입니다! 트라이앵글지역에 주둔하던 전사단 보병대 3만명도 사라진 것 같다는 연락입니다! 적들이 이미 1번 도시권역 내에 진입했으니 격벽방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황궁을 직접 노리고 오는 것 같습니다! 도시성벽의 에너지장벽을 작동시킬까요?”

안팎에서 난관에 빠졌음을 깨달은 베흔이 이마를 싸쥐었다. 적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기습을, 그것도 대담하게 제국의 심장부인 황궁에 1차로 타격을 가해 온 것이었다. 보통의 전시 같았으면 프라임 지역을 드나드는 수송선을 통제했을 ‘격벽식 방어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을 정확히 골라 타격한 것이었다. 그것도 황궁이 혼미상태에 빠져버린 바로 그 순간에 맞춰서.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린 이곳 광장에 거의 2만의 황궁주둔 근위대들이 발이 묶여있었다. 외곽을 지키고 있는 셈 휘하 1만 명의 정규군병력을 불러들여 성벽을 지키게 해도 이곳에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수비조차 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더 큰 문제는 카렐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껏 1백여명의 가디언들만을 믿고 이 도시 안으로 잠입해 들어왔을 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걱정은 20만여 군중들 사이에서 갑자기 들리기 시작한 ‘비명소리’에서 조금씩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다.

“대장! 페로 가디언들이......”

뒤쪽에서 달려온 아리엘이 숨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무어?”

“군중들에 묻어 들어온 모양입니다! 몇 명인지 파악도 되지 않습니다!”

고개를 번쩍 든 베흔의 눈에 난동을 피우고 있는 유학자들과 군중들 사이의 ‘인의 장벽’에 뛰어들어 병사들을 도륙하는 건장한 가디언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수한 가디언들인 그들은 병사들을 그대로 돌파해 유학자들과 합류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군의 입 안에 알아서 뛰어든 저 바보들이라며 비웃어주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흥분한 유학자들은 이미 단상 주변을 새카맣게 점거했고 거대한 무리를 지어 황궁을 향해 밀어닥치고 있었다. 황궁 주변은 이미 통제 불능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프레일을 굳게 움켜쥔 아리엘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어쩌죠? 유학자라도 죽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상령을 주십시오!”

베흔의 숨이 탁 막혀왔다. 20만의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군중들 앞에서 무기도 들지 않은 2만의 유학자들을 도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는 그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 잔혹하던 ‘철의 대제’ 세나우스 2세조차도 겨우 40명의 유학자를 살해했던 1차 학란으로 계급제를 거부하던 자신의 의지를 결국 꺾을 수밖에 없었던 전례가 있었다.

“유학자들은 죽이지 마라. 체포해서 포박만 해. 황궁 정문을 일단 폐쇄하고 여기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어. 황궁 내부를 지킬 가디언 1천 명만 빼고 나머지 2천명 모두 밖으로 불러내라. 페로 가디언들을 씨를 말려버려.”

고개를 문득 돌린 베흔은 코리온 쪽을 돌아보았다. 사방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목판 밑을 지키던 십여명의 병사들이 네피에게 쫓겨 달아나면서 결국 그곳을 점거해버린 20여명의 유학자들이 힘을 모아 목판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죽여야 돼.”

유학자들과 근위대, 가디언들이 온통 사방에서 뒤엉킨 이 혼란의 와중에 목판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3명의 가디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샤자한 공으로부터 ‘혹 무슨 일이 생길 때는 직접이라도 코리온을 죽여라’는 특명을 받고 온 동부 3제후 플로브 하크로딘 경이 칼을 쥐고 서 있었다.

“저기다!”

목판 주변에 아직 유생 몇 명뿐인 것을 발견한 플로브 경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나. 플로브 하크로딘 경.”

목판에 거의 다다랐던 플로브 경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벌써 몇 명의 병사들을 벤 듯, 얼굴과 손에 온통 피를 뒤집어 쓴 ‘검은 마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공포에 휩싸인 가디언들이 얼떨결에 칼을 겨누었지만 그들의 앞을 이번엔 자이납이 히죽거리며 막아섰다.

“귀찮다. 네놈들은 꺼져라.”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카렐이 정면의 가디언을 단칼에 베어버리며 플로브 경에게 돌진했다. 다른 가디언이 카렐의 앞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발길질에 배를 차이며 단상 밑으로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을 뿐이었다. 또 다른 가디언이 앞을 막는 새 플로브 경이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 으악!”

플로브 경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잡은 카렐은 그를 바닥에 동댕이치며 한 발로 꾹 밟아버렸다.

“나머지는 네가 처리해라. 자이납.”

카렐이 히죽거리고 웃음까지 지으며 플로브 경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내 지난번 슈카른 계곡에서 도망칠 때는 네놈들 살을 저며서 씹어먹어 주고 싶었지만 이젠 맘이 변했어. 최소한 법대로 처리해줘야 하지 않겠나.”

사람 같지 않은 기괴한 광택이 번득이는 카렐의 눈빛에 플로브 경이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포고령 원문 제2편 제1장. 황실의 전복, 황제 및 그 직계존비속의 살해, 후계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자는 책형, 사지절단형, 화형, 생리박피형에 처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정도와 방법은 황제 혹은 그 대리인의 임의로 가감할 수 있다. 어떤가? 직접 고르겠나?”

“저, 전 그저 최고제후님이 시키는 대로.......”

“그럼 내가 고르지. 거열형은 어떻겠나?”

카렐의 그 큰 손이 플로브 경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잡았다. 그 무시무시한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의 온몸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카렐의 손가락 끝이 살 속을 아주 천천히 파고들면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카렐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내 적군은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 못한다네. 플로브 하크로딘 경.”

순간 우드득 소리와 함께 그의 목에 쥐인 불쌍한 희생물의 목이 산산히 부서졌다. 그리고 뒤이어 근육과 인대가 차례로 끊겨나갔다. 카렐의 손은 이미 그의 살을 찢고 목을 완전히 꿰뚫어버린 후였다. 찢긴 경동맥에서 솟구쳐 오른 피로 카렐의 팔은 소매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퉤.”

벌떡 일어난 카렐은 목이 찢겨나간 플로브 경의 시체를 단하로 내던져버렸다. 덩어리피와 살점이 엉겨붙은 손을 털어낸 카렐은 목판 쪽을 휙 돌아보았다. 이번 사건의 핵인 목판으로 몰려드는 무리는 지금 한둘이 아니었다.

“젠장!”

카렐은 아직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그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조심! 조심해! 천천히!”

두겐이 기울어지는 목판 밑을 받치며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이미 피로 범벅이 되어버린 목판 위에는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코리온이 의미없는 희미한 시선을 사방에 던지고 있었다.

“학장님! 학장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곧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차갑게 식어가는 코리온의 손을 연신 주물러주며 두겐이 애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코리온이 피에 젖은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내가 죽더라도......”

“그럼 지금 죽어라!”

사방을 쩌렁 울리는 고함소리와 함께 달려온 건 제롬이었다. 제발 안으로 피해 있으라는 베흔의 권고도 무시하고 무작정 달려나온 그는 앞을 막는 유학자 둘을 주먹과 칼집으로 후려쳐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바로 코리온에게 돌진해 칼을 치켜들었다. 두겐과 유학자들이 아직 목판에 박혀있는 코리온을 몸으로 가로막으며 필사의 비명을 내질렀다.

“아씨! 이 인간은 또 뭐야!”

두겐과 코리온을 향해 내리꽂히는 제롬의 칼을 서부 억양의 욕지거리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날아온 검은빛 시미터가 힘껏 옆으로 쳐냈다.

“뭐냐!”

반사적으로 돌려 친 제롬의 칼날이 자이납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잽싸게 치켜든 자이납의 칼이 다시 그의 칼과 충돌하면서 귀를 찢는 충격음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구사일생한 자이납의 잘린 머리칼 몇 가닥이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눈치챈 제롬이 얼른 칼을 고쳐쥐었다.

“으엑,”

자이납은 이곳 목판을 향해 베흔과 아리엘, 쿠베까지 무려 3명의 특등급 가디언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함께 온 네피와 시로는 유학자, 가디언들과 함께 황궁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고, 페로 가디언들은 군중들 사이에서 근위대 진압군들을 막고 있어 당장은 이곳으로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리를 지켜라. 자이나브 카메네이 비장.”

엇박이 놓인,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카렐이 피와 살점이 뒤엉킨 오른손에 카타나를 단단히 움켜쥐며 목판 다른 쪽을 지키고 섰다. 자이납이 그제야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존명하겠습니다. 전하. 아니 폐하.”

“제 발로 저승에 뛰쳐들었구나, 이 멍청한 놈!”

베흔의 칼이 카렐의 코끝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리고 뒤따라온 쿠베와 아리엘이 그의 양쪽을 각각 지키고 섰다. 이 셋을 대적하는 카렐과, 제롬과 마주선 자이납, 그리고 그 중간에서 희미한 숨을 잇고 있는 코리온까지, 이 셋이 모인 단상에서는 아주 짧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