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364화 (363/1,132)

< -- 364 회: Part 16. 내 아버지 곁의 고결한 소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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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표정을 지은 제롬은 가슴을 쭉 펴고 앉으며 믿음직한 새 지휘부를 둘러보았다. 이미 그 능력이 확실히 검증된 백전노장들로만 구성된 남부의 지휘부는 한심해보이기만 하는 카렐의 코아 전사단 지휘부와는 그 신분과 나이, 경륜부터 차이가 확실했다.

“그놈들하곤 수준이 달라.”

제롬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번에 카렐 편에 붙은 아메샤 스펜타 군단과 가디언들을 제외하면 카렐 휘하에서 그나마 가장 베테랑이라고 꼽을 수 있는 지휘관이 300살이 채 안된 카이두 경이나 고작 250살의 풋내 나는 ‘교수님’ 제네르 정도였다.

유일한 노장이던 토로 경마저도 동부의 손에 목숨을 잃으면서 카렐의 휘하에서 군의 중책이라고 맡고있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지난 큰 전쟁들에는 참전해 본 일도 없는 젊은 풋내기들이었다. 심지어 제후조차도 200살이 채 안된 동부 2제후 제르베 경이나 4제후 나람 부인 정도가 고작이었다.

카렐 휘하 무장들의 목록을 힐끔 살펴본 제롬이 두 팔을 벌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적들에겐 감히 여러분들을 상대할 무장은 없으니 마음껏 전장을 누비셔도 될 것이요.”

제롬의 지나친 오만에 잠시 얼굴을 찡그리던 베흔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오르마즈 그놈이 전장을 누비던 2차 혼란기 때 나이가 160살 정도였습니다. 지금 카렐과 페로 녀석 비슷한 나이였으니......섣불리 무시하심은 위험할 것입니다.”

“지금 근위대장은 오르마즈 놈과 카렐 그놈을 비교하는 거요?”

오르마즈 이야기에 마누엘 경이 대뜸 불쾌한 얼굴로 따져 묻자 베흔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더 나을 수도 있죠,”

씁쓸한 얼굴로 대답한 베흔은 예르마크 경이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처형제단에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와는 다른, 묘한 아쉬움이 담긴 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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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중 제국의 제후들이 가장 싫어하는 날인 11월 11일 ‘피의 날’은 어머니에 대한 주페의 저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날 이후 ‘황궁 처형장’으로 더 유명해질 황궁 앞 광장에는 이 역사적인 날을 구경하기 위한 10만이 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발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한쪽에 죽 늘어선 철창들 안에는 오늘의 제물이 될 한때 제후였던, 혹은 그 밑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단상에 안내된 세나우스 2세 황제는 반쯤 공포어린, 혹은 경외의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보는 이 많은 제국민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쟁취해낸 황제로서의 이 막강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60여 년 전, 못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던 붕괴직전의 콜로니는 이제 그의 발밑에 굴복한 강력한 ‘제국’이 되어 있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황제가 이루어낸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난 기원 97년처럼 황궁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프라임 지역을 총 10개의 독립된 도시권역과 4개 직할권역으로 나누고 제국 유일의 ‘격벽식 방어시스템’을 완비시킨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베흔의 아이디어이기도 한 이 시스템은 ‘대륙을 뒤덮는 거대한 자기 와이어’라는 그 표현 그대로, 피아를 가리지 않고 일체의 항공운송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극단적인 방어수단이었다. 그 특성상 평소에는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고 없는 기습에는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일단 황제령 어느 곳이든 전투상황이 벌어지면 그 순간부터 해당 권역의 수송선, 셔틀을 이용한 병력이동과 보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공격측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각 도시권역의 중심지인 도시, 특히나 1번 도시의 경우는 황궁을 점령하지 않는 이상 그 시스템을 해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황궁 방어’라는 명제에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강박증을 가진 황제의 작품은 이뿐이 아니었다. ‘격벽식 방어시스템’에 의해 항로가 차단된 적이 육로를 통해 황궁에 접근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소요소에 소위 ‘황룡의 여섯 이빨’이라는 이암성, 주류성, 탄현성, 신성, 건무성, 백암성까지, 무려 6개의 성을 쌓아 황궁을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버린 것도 그 황제의 업적이었다. 황궁에 유달리 집착하는 황제는 그 성 중 하나가 행여 적의 손에 성이 넘어갈 경우 황궁에서 그 주된 방어기능들을 자동으로 해제시켜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꼼꼼함까지도 잊지 않았다.

그 모든 계획들을 본 군사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황궁에만 집중된 모든 방어시스템을 은근히 비꼬며 ‘그럼 황궁이 넘어가면?’이라는 당연한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에 대한 황제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황궁이 다시 무너지면 제국은 끝이다.’

그리고 한때 1만에 불과했던 황실 근위대는 이제 선발된 용사들로만 구성된 18만의 최정예 군단으로 변모해 있었고 1천의 X들로 이루어진 GOE기병부대와 6세대 이후의 X인 ‘보병 가디언’ 3천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한때 모든 제후들에게 만만한 먹잇감에 불과했던 황실은 이제 그들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의 인민들이여!”

한 팔을 번쩍 치켜든 황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감히 제국을 농락해온 이 무도한 자들의 씨를 말려버리는 역사적인 하루이니 이들의 피와 함께 찾아올 평화를 기뻐할 지어다!”

떠나갈 듯한 함성에 휩싸인 광장을 바라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은 황제는 옆에 선 베흔에게 시작하라 눈짓을 보냈다. 첫번째 열린 철창 안에서 허름한 흰 셔츠 차림의 큰 키의 갈색머리 여자가 제 발로 걷지도 못한 채 질질 끌려나왔다.

“죄인 오르마즈 레즐린 카파키! 감히 황상께서 선언하신 이 정의로운 전쟁에 정면으로 맞서고 나왔으니 그 죄를 어찌 용서할 것인가! 황상의 명으로 죄인에게 언도된 태형 100대를 지금 집행한다!”

‘태형 100대’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60대 정도를 ‘치사치’로 보는 태형을 무려 100대나, 그것도 하메스타와 주페와의 대결에서 이미 중상을 입고 며칠간 근위대 지하감옥에서 고문에까지 시달렸던 오르마즈에게 가한다면 사실상 ‘타살’을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탁해져있는 오르마즈의 회색빛 시선이 상석의 황제를 천천히 올려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황제의 턱에 힘줄이 곤두서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오르마즈를 형틀에 사정없이 묶은 형리는 그의 셔츠를 거칠게 찢어냈다. 감옥에서의 고문에 시달렸던 그의 몸은 이미 상처와 멍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저자는 한때 짐을 위해 충성한 바도 있으니 내 특별한 은사를 내리마.”

황제가 옆에 있던 은술잔을 근위병에게 내밀었다. 술잔을 받아든 근위병은 급히 밑으로 달려 내려가 형들에 묶여있던 오르마즈의 앞에 내놓았다. 붉은 빛의 역한 냄새가 나는 액체가 그 안에 가득히 담겨있었다. 다시 한번 상석을 올려본 오르마즈의 눈꼬리에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젯밤 지하 11층의 감옥에 조용히 찾아왔던 황제의 모습을,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자신을 껴안고 말없이 흐느끼던 황제의 익숙한 체취를 오르마즈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약간의 마약, 혹은 일찍 절명시켜줄 극약이 섞였을 이 독한 술은 그에게 주어질 황제의 마지막 은총이었다. 근위병은 흐느적거리는 오르마즈의 입에 술을 억지로 부어넣었다.

“집행해라!”

형구(刑具)를 직접 하사하는 그 관례대로, 황제가 형리에게 채찍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채찍을 받아든 형리는 맥없이 묶여있는 오르마즈를 향해 곧바로 그 잔혹한 매질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울림과 함께 살이 찢겨진 오르마즈가 이를 악물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숙적’을 제거하게 된 베흔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응?”

눈치 빠른 베흔의 어깨가 순간 들썩 했다. 채찍 끝에 맞으며 한 움큼씩 찢겨 나가야할 피부는 어찌된 일인지 그냥 빨갛게 베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멀찍이서 피만 보며 경악하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 턱이 없겠지만 이건 평소에 가해지던 태형은 틀림없이 아니었다. 긴장한 듯 떨리고 있는 황제의 시선을 힐끔 쳐다본 베흔이 입가를 조금 일그러뜨렸다. 황제는 자신이 던져준 저 채찍에 무언가 장난을 친 것임에 틀림없었다.

40대를 넘긴 오르마즈가 내쉰 거친 신음소리에 황제의 표정은 이미 사색이 다 되어 있었다. 베흔이 손톱을 물어뜯는 황제의 모습을 본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통에 겨운 오르마즈가 이를 빠드득 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황제는 그 모습을 차마 더 볼 수 없는지 결국 시선을 떨구어 버리고 말았다.

‘제길.’

강력한 마약 혹은 극약을 먹은 죄수라면 저 정도까지, 그것도 저 질기고 강인한 오르마즈가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할 턱이 없었다. 걸음을 급히 옮긴 베흔은 한쪽에 말없이 서 있는 황제 시의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아까 그 술, 네놈이 만들었나?”

“아, 예.......”

“은사로 내리는 술이라면 독한 술에 극약 약간을 섞은 것이 맞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본 시의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이번엔 아닙니다.”

“아니라니?”

“지혈용 호르몬제하고 항생제하고.......”

순간 고개를 휙 돌린 베흔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황제를 올려보았다. 황제는 오르마즈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저놈을 죽여야 돼,”

무언가 광기에 홀린 듯, 형틀이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 내려간 베흔은 형틀 부근에 서 있는 경비병 두 명을 불러 군중들, 그것도 한쪽에 몰려 서 있는 ‘서부 사람들’을 가리키며 무어라 지시를 내렸다.

100대나 되는 태형을 죽지 않고 버티어낸 오르마즈의 모습에 사람들이 크게 술렁대고 있었다. 제국 최고의 무장다운 그 지독한 생존력에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놈 더럽게 질기기도 하다’며 투덜대는 남, 서부 사람들도 있었지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오르마즈는 지독한 고통에 거의 정신을 잃어가고는 있었지만 틀림없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오르마즈를 형틀에서 풀어낸 형리들은 집행이 끝난 죄수의 처리법대로 그를 당하에 몰려있는 군중들 사이로 힘껏 집어던졌다. 공식적인 형벌을 이겨낸 죄수의 처리를 ‘군중들’의 손에 맡긴다는 의미였고, 사실 이 단계에서 군중들에게 몰매를 맞거나 짓밟혀 죽는 죄수도 꽤 많았다. 베흔의 사전지시를 받은 경비병들은 이미 정신을 잃은 오르마즈를 그의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서부 사람들 한중간에 힘껏 내던졌다.

“잘 걸렸다!”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사람들이 거친 고함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맥없이 바닥에 늘어진 오르마즈의 모습에 순간 이성을 잃은 서부 군중들은 너나할것없이 달려들어 그를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그 광기어린 사람들 틈새로 무명포를 입은 누군가가 무작정 몸으로 뛰어들었다. 유학자의 호통에 그들 서부인들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입고 있던 회색 망토를 벗어던진 그 여자 유학자의 금빛 머플러에는 무려 5개나 되는 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무엄한 놈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도리를 숭상한다는 작자들이 기껏 죽어가는 사람이나 구타하다니!”

온몸으로 오르마즈를 막아선 세네피스 카파키 직제학의 부릅뜬 두 눈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자의 호통에 우물거리며 물러나는 서부 사람들을 끝까지 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세네피스는 그 시선을 발밑에 쓰러져있는 오르마즈에게 급히 돌렸다.

“오르 언니, 제발 정신차려요, 제발,”

바닥에 꿇어앉은 세네피스는 처참한 몰골로 흙바닥에 팽개쳐진 오르마즈를 꽉 껴안았다. 입고 있던 회색 망토로 엉망이 된 몸을 따뜻하게 감싸준 세네피스는 피와 흙이 뒤엉켜 범벅이 된 그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추며 말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어린 시선은 당상의 황제를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저......은혜도 모르는 년은......이 대가를 언젠가 치를 겁니다. 꼭이요......”

오르마즈의 태형 뒤에는 대대적인 참수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북부에서는 빌루이 공과 그 아들을 제외한 제2제후부터 10제후까지, 그리고 동부에서도 최고제후 암바카이부터 10제후까지 각 가문의 종장과 그 적장자를 비롯한 후손들이 오늘의 제물이었다. 이미 전사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북부는 7명, 동부 역시 8명의 제후와 그 자식들이 죽음을 맞는 셈이었다. 자진해 항복을 했던 동부 최고제후 암바카이 부자에게 주어진 건 참수형이라는 그나마의 ‘은총’이었다.

동부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황제를 야속하게 올려보던 동부 최고제후 암바카이 슈트란과 그 맏아들 쿠툴라는 황실에 대한 무서운 저주를 퍼부으며 큰 도끼에 차례대로 그 목이 잘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미성년인 쿠툴라의 어린 딸 네베드 슈트란---훗날 페로의 어머니가 될---을 제외한 그 적생 후손 전원이 차례대로 끌려나와 그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북부 역시 카파키 가 적장자 일란 하비브 카파키 계보의 적생자 전원이 끌려나와 참수형을 당했고, 무려 10제후까지가 그 적장자와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거의 백여명의 목이 잘려나가는 끔찍한 광경을 말없이 내려다보며 무심한 황제는 그 시선을 단 한번도 떼지 않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에 남은 건 빌루이 카파키와 그 맏아들 일란이었다. 그 손녀딸이 태형을 당했던 형틀에 묶인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떨고 있던 빌루이의 시선은 한쪽 구석에 꿇어앉아 처절하게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둘째아들 투르케스크를 향했다. 맏아들의 후손들까지 목이 모조리 잘려버린 상황에서 이제 북부와 카파키 가는 한때 자신의 속을 그리도 썩였던 저 다혈질 둘째아들과 그 후손들의 손에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오, 오르마즈가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차남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는 빌루이의 목소리가 거의 주체 못할 듯 떨리고 있었다.

“네 독단적인 면이 있어 항상 걱정했으니......무슨 일이든 그 애 의견을 묻고.......북부를 꼭 다시 일으키도록 해라.”

“아버님!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아버님! 이건 아니란 말입니다!”

형틀로 뛰어오르겠다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투르케스크를 아들 일라드가 가까스로 뜯어말렸다. 자신과 맏아들이 당할 끔찍한 죽음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빌루이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 죽을 이 노인은 다른 죽을 방법이라도 찾는지 형틀에 머리를 들이받아 보기도 했지만 모두 의미 없는 짓이었다. ‘도구’를 든 형리가 그의 등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투르케스크 저놈도 죽였어야 해.”

상석에 앉은 황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며칠 전 ‘투르케스크에게 씌울 죄를 찾아봐라’며 특명까지 내렸던 황제는 ‘가문의 적장자와 차자를 함께 죽인 예는 역사에 없다’며 극구 만류하는 신하들 때문에 일단 그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황제의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 죽어가는 형과 아버지를 바라보며 터지는 울분을 참지 못한 투르케스크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몰락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카파키 가와 오르마즈는 이제 막내 세네피스가 새 주역이 될 ‘4차 혼란기’라는 중흥을 기다리며 한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이 치욕적인 날을 응징하기 위한 복수의 칼날을 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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