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32 회: Part 16. 내 아버지 곁의 고결한 소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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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의자에 앉아 철창 너머 바깥만을 말없이 바라보던 코리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방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글씨연습에 열중하던 라스가 요즘 부쩍 우울해진 이 주인을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폐지를 뒤집어 묶은 그의 노트에는 엉터리로 ‘그린’ 기초적인 고대어들이 그득히 쓰여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코리온은 잠시 현기증이 도는지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난 라스가 물 한 잔을 가져다가 그에게 올렸다.
“주무세요, 제가 잠자리 봐 드릴게요.”
“알았다.”
무표정하게 대답한 코리온은 의자 옆에 쌓여있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이젠 볼 책도 없구나......”
쓴웃음을 지은 코리온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샤드니가 구해온 100여권의 책들은 코리온이 20일 넘게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게 뭐냐?”
코리온은 라스가 한쪽 구석에 폐품들과 함께 따로 쌓아놓은, ‘델루지-플라칼 가 제후군 기병지휘교범’을 가리키며 물었다. 바깥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던 라스가 어쩌다가 주운, 남부제후군에서 흘러들어온 물건이었다. 책을 코리온의 앞에 내놓은 라스는 행여 쓸데없는 물건을 주워왔다고 혼나지나 않을까 잔뜩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 잠깐 들쳐보마.”
예상외로 별 꾸지람을 하지 않은 코리온은 책장을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라스는 낮에 햇빛에 널어놓았던 담요와 시트로 그새 코리온의 잠자리를 펼쳐놓았다.
“주물러드릴까요?”
“......그래.”
코리온의 허락을 받은 라스는 얼른 그의 뒤에 다가가 어깨와 목덜미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코리온은 기분이 한결 풀린 듯 낮은 숨을 내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제가요, 목장에서 일할 때 소하고 말 근육 뭉쳐있는 걸 얼마나 잘 풀어줬던지......”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던 것인지를 깨달은 라스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성난 주인의 불벼락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라스가 입을 꾹 다문 채 눈치만 잔뜩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해봐라.”
코리온은 그다지 화를 내지 않으며 되물었다.
“그......그게......소나 말 근육을 제때 잘 풀어줘야 좋은 고기가......”
“그럼 난 오늘은 도살하면 곤란하겠구나..”
라스의 안마를 받던 코리온이 그답지 않은 농담까지 내놓았다.
“주무르는 거 말고 다른 재주는 배운 것 없고?”
“다른 거요?......음......소몰이 하는 건 자신 있구요......말몰이는 말을 탈 줄 알아야 하는데 전 말을 탈 수가 없어서 못 배웠어요......아참, 말 모는 건 못해도 말 쫓는 건 잘해요.”
“말을 쫓다니?”
“그 뭐냐, 방목장 문을 열어도 마구간에서 안 나가는 게으름뱅이 말들이 있거든요. 근데요, 제가 여기......송곳니 하나가 옛날에 부러졌는데요, 거기다가 손가락 집어넣고 힘껏 휘파람을 불면 되게 희한한 소리가 나거든요. 말들이 그 소릴 들으면 깜짝 놀라서 사방팔방 냅다 튀어나가죠. 말들 싸우고 있는 거 쫓을 때도 쓰구요. 그리구요......”
“정말 별난 재주구나.”
라스의 쉴새없는 수다에 코리온이 마지못해 웃음을 지었다.
수십일 동안 이곳에 갇혀있던 코리온에게 유일한 대화상대라고는 이 나이 어린 노예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대화의 수준이라는 게 기껏 이 정도라는 데 내심 한심해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도 이 상황에 적응하는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넌 어쩌다가 노예가 된 거냐?”
눈을 반쯤 감은 코리온이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을 던졌다.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도적떼에 가담하셨다가 잡혀 참수당하신 것 같아요.......그래서 저 갓난아기 때 가족 모두가 노예로 뿔뿔이 흩어져서 팔려갔다고.....기록부에 그렇게 남아있었어요.”
코리온은 의자 한쪽에 기댄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그의 어깨를 계속 주무르며 라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제 주인님처럼 좋은 분도 만났으니......뭘 더 바라겠어요. 그동안 이런저런 주인님들 만나봤지만 주인님같이 고맙게 대해주신 분은......”
아무 반응이 없는 코리온의 모습에 갑자기 의아해진 라스가 앉아있는 그의 옆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주인님?”
코리온의 굳은 시선은 무슨 이유엔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한 이 심야의 병영을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 큰 사건이 오늘밤 터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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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나스 태후가 독살되었다는 소식에 남부제후연합 대표인 테번 델루지는 심한 혼란에 휩싸여버렸다. 황실 발표로는 태후가 자객의 손에 독살당한 것이라 했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태후의 죽음과 함께 참살되었다는 31명의 대신들 역시 태후가 죽자 근위대가 얼씨구나 하고 죽인 것인지, 아니면 근위대 놈들이 태후와 신하들을 함께 죽인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민하던 테번의 귀에 ‘황제가 알고 보니 멀쩡한 사람이었다’는 소식이 들어온 순간, 그 모든 결론은 확실해진 것이었다.
그동안 교활한 황제에게 감쪽같이 속아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테번은 동생 마누엘이 이끄는 10만의 남부연합군에게 즉시 출동명령을 내렸다. 기껏 1만의 근위대와 1천의 X들을 가진 주제에 황제랍시고 남부에 선전포고를 내린 셈이었으니 자칭 황제라는 놈도 완전히 멀쩡한 인간은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보름간의 준비 끝에 수에니 반도에 의기양양하게 상륙한 남부의 10만 대군을 맞아준 건 5백여명의 X들과 3천여 근위대 정규군이었다. 무려 30대 1의 압도적인 우세를 본 근위대들은 변변한 싸움조차 못해본 채 혼비백산해 도망쳤고, 승기를 잡았다고 믿은 마누엘은 10만의 대군을 3개로 분산시켜 수에니의 남쪽의 험준한 바위계곡에 서슴없이 돌진해 들어갔다.
그렇게 계곡 안쪽으로 돌진한 마누엘은 도주하던 근위대 병력이 계곡 안쪽에 미리 대기하던 나머지 7천여 병력과 합류했을 때까지만 해도 도리어 ‘적군을 한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다’며 기뻐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서부의 무기로 잘 무장된 2만의 병력이 황제의 수중에 새로 생겨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 그의 기쁨은 산산조각나 버리고 말았다.
선두열에 보병 3명마다 한 명씩의 X들을 배치시켜 극도로 견고함을 강화시킨 엷은 방진으로 절벽 앞에 배수진을 친 베흔은 무려 4만에 달하는 남부연합군 1진을 상대로 겨우 1만 1천의 병력으로 그 1차 돌진을 막아낼 수 있었고, 계곡에 매복해있던 오르마즈의 나머지 2만군이 뒤따르던 2진, 3진의 좁은 퇴로를 봉쇄해버리면서 10만 대군은 바위계곡 안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제국 역사상 유일한 ‘친정(親征)’이기도 한 이 전투에는 말을 타고 직접 전장까지 나와 병사들을 독려하고 계곡 위에서 전황을 지켜본 세나우스 2세 황제의 묵직한 존재감까지 근위대에 그 힘을 더해주었다.
이번 전투의 총 사령관으로 매복군의 선봉에 서서 남부연합군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던 오르마즈는 몇 안되는 기병을 거느리고 허겁지겁 도망치던 사령관 마누엘 델루지 장군을 악착같이 쫓아가 그의 팔을 자르고 포로로 붙잡아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좁은 계곡에 와글와글 몰린 채 사령관까지 잃고 혼비백산한 남부연합군은 사방에서 조여오는 근위대의 손에 차례차례 도륙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온몸에 악귀처럼 피를 뒤집어쓰고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던 오르마즈는 계곡 위에서 바라보는 황제의 걱정에 찬 시선이 줄곧 자신만을 향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이후 ‘수에니 전투’로 기록될 그 전투에서 10만의 남부연합군은 무려 4만의 병사를 잃었고, 포로가 된 6만과 동생 마누엘을 구해오기 남부 전체의 재정이 휘청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배상금과 몸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리고 황제는 그 아버지도 평생 이루어보지 못했던 대승을 거두면서 황실이 아직 죽지 않고 꿋꿋이 살아있음을 제국 전역에 알리게 되었다.
“아직 각질층이 완벽하지 않으니 약을 꾸준히 발라드리겠습니다. 새로 심은 눈의 시력이나 팔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아직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관없다.”
드레싱을 벗겨주는 시의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천천히 눈을 치켜 뜬 황제는 거울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도리어 어색하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한 황제는 옆에 서 있던 오르마즈 카파키 총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 흉터로 우둘두둘하던 얼굴과 한쪽밖에 없던 눈, 흔적만 남아있던 귀는 물론이었고 물크러졌던 손과 뒤틀린 다리까지 모두 수술한 황제는 사고 전의 그 총명하던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었다.
시종과 시의들을 모두 내보낸 황제는 이번엔 오르마즈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어떤가? 내 모습이?”
“훌륭하십니다. 폐하.”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오르마즈에게 황제가 아직은 불편한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부하고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자네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정말 뜻밖인걸.”
“아니옵니다. 정말로......”
“내가 그다지 매력 있는 여자가 못된다는 건 잘 알아. 아무리 흉터를 없애고 없어졌던 부분을 되살려도 말이지.”
절룩거리며 테라스로 다가간 황제는 옆에 나란히 선 오르마즈의 유난히 큰 키를 문득 올려보았다. 자신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황제의 묘한 시선에 오르마즈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작은 키에, 째져 올라간 눈에, 균형도 안 맞는 길쭉한 얼굴에, 매부리코에 몸매도 형편없지. 솔직히 생도시절에도 내게 접근해오던 놈들의 목적은 내가 ‘황족’이라는 그것 하나 뿐이었어.”
황제의 흐릿한 시선은 골조공사가 한참인 별궁 건설현장에 멎어 있었다. 오르마즈가 그를 위로해주듯 입을 열었다.
“프라임 지역을 되찾으시면 제국 제일의 미남자인 바니샤드 플레렌 공과 혼인하실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겁니다.”
“글쎄......”
두리뭉실한 대답과 함께 뒤로 돌아선 황제는 다시 집무실에 발을 들여놓으며 술 약간을 잔에 담아 오르마즈에게 내놓았다. 그의 확실치 않은 태도에 오르마즈가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바니샤드 공에게 그다지 호감이 없다는 건 오르마즈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기이한 태도를 보인 일 역시 처음이었다.
“그렇게 보면 자네와 결혼할 행운아는 얼마나 부러움을 받을까?”
황제의 뜻밖의 한마디에 오르마즈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러움은 고사하고 동정의 대상이 되겠죠.”
오르마즈의 반쯤 농담 섞인 대답에 피식 웃음지은 황제는 옥좌에 돌아가 앉으며 오르마즈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그 부러움인지......동정인지의 주인공이 짐이 될 수 있겠는가?”
“예에?”
순간 황제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오르마즈는 그답지 않게 되묻기까지 했다.
“내 묻지 않는가. 나와 결혼해줄 수 있겠냐고.”
“폐......하, 저, 전.......”
옥좌에 단정히 앉은 황제는 단하에서 벌벌 떨고있는 오르마즈의 대답을 기다리듯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폐하께선 바니샤드 플레렌과 이미 약조를......”
“그 녀석과만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건 아냐. 자네도 눈치 챘겠지만 짐은 솔직히 그자에게 관심 없네. 짐의 관심은......”
“폐하, 제발 거두어주십시오, 소인은.......폐하의 충신으로 만족하고 있사옵니다!”
황제의 앞에 넙죽 엎드린 오르마즈가 바닥에 이마를 댄 채 호소하기 시작했다. 황제 역시 자신의 청혼에 오르마즈가 저렇듯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보이자 순간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네, 네놈이 감히......날 능멸하고 청혼을 거절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황제가 당하로 뛰쳐 내려오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래, 네놈도 아부나 해대는 저 망할 신하놈들과 똑같은 놈이었구나! 방금 전까지 훌륭하다느니 어쩌느니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니, 이제 와서 뭐가 어째? 내가 누구 때문에 이리 서둘러 수술을 하였는데......”
“제발, 폐하, 소인이 이러는 것은 폐하의 외모 때문이 아니옵니다. 소인은......”
오르마즈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완전히 구겨져 버린 황제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다시 목에 핏대를 올렸다.
“내 외모가 추해 그런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이냐! 오호라, 네 따로 눈맞은 놈이라도 있는 것이냐? 누군지 말해봐라, 내 그놈 사지를 갈갈이 찢어 죽여버리겠다.”
“그것이 아니옵니다.......폐하.......”
“지금 이곳에서 그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네놈을 잡아다가 강제로라도 혼약을 맺을테니 빨리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말해봐라. 빨리!”
격분한 황제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서 있었다. 엎드려있는 오르마즈의 두 눈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인은......이미 한 분께 제 모든 정을 바쳤사옵니다.....”
“무어라고? 한 분? 그게 도대체 누구냐! 누구냐고! 실토하지 않으면 이곳을 나가지 못할 줄 알아라!”
오르마즈의 대답에 순간 질투심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황제는 두 주먹을 꽉 악쥔 채 그를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오르마즈가 마지못해 대답을 꺼냈다.
“돌아가신......샤미르 리쿠 님이십니다......”
“무, 무어?”
순간,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은 듯 비틀거리기 시작한 황제는 멍 한 얼굴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소인.......그분과 이미 깊은 연을 맺었사오니.......그분의 조카 되시오는 폐하와 어찌.......”
황제는 그제서야 숙부 샤미르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슬픈 표정을 짓던 오르마즈의 옛 모습을 머리에 떠올렸다. 하지만 그 샤미르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심지어 외모조차도 철저한 베일 속에 감춰져있던 그런 인물이었다. 오죽했으면 보기에도 끔찍한 ‘결함개체’라서 차마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확인못할 소문까지도 떠돌았던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보니 그의 입과 손이 되어 모든 명령을 외부에 전하던 오르마즈와 그 ‘정체불명의 인물’과의 근거 없는 스캔들이 퍼진 것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음산한 기운을 간직한 피의 독재자 샤미르와, 밝고 쾌활한 성격에 제국 최고의 절륜아로 손꼽히던 오르마즈 사이의 ‘스캔들’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 그대로 ‘오르마즈가 미치지 않았다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황당무계한 헛소문’ 그 이상으로 여겨졌던 일은 없었다.
오르마즈 주변에는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항상 미남미녀들이 넘쳐났고, ‘핏빛 비수’라고까지 불리며 그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던 그와 오르마즈가 가까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네, 네가....샤미르 숙부와.....”
오르마즈의 고백에 충격을 받은 황제는 비틀거리며 옥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둘 사이에는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한참 동안이나 흘렀다.
어둑어둑해진 하늘 너머 핏빛 저녁노을이 이 작고 누추한 황제 집무실의 창을 뚫고 새어 들어왔다.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황제가 턱을 악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뭐래도 상관없다. 내 죽은 자에게 널 빼앗기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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