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328화 (327/1,132)

< -- 328 회: Part 15. 밀집꽃을 짓밟지 말지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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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툴 가 사람들은 종가 주기장에 착륙한 셔틀에서 웬 여자가---누가보기에서 서부인임이 확실한--- 내려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종장 카이두를 꽤나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정한 검은 원피스와 튜닉 차림의 이 여자가 파예드 아카데미의 교수이며 골수 원리주의 유학자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사람은 다행히도 이 자리에 없었다. 셔틀에서 내린 하심은 자신을 당장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이 거인의 시선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을 따름이었다.

뒤로 휙 돌아선 카이두는 이 달갑지 않은 손님을 자신의 겔로 일단 안내했다.

“파예드 아카데미의 하심 예킨터스 교수입니다. 코리온 리쿠 학장님의 보좌관이지만, 지금은 카렐 태자전하 밑에서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심의 소개를 들은 카이두는 얼굴을 더 찡그리고 있었다.

“그 원리주의 정신병자 유학자 말인가?”

“그렇게 오해하고 계신 분들도 있죠.”

하심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녀석 때문에 내 땅이 침공을 당해 이지경이 되었다면 이 정도 막말은 할 자유가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녀석이 서부의 실질적인 수괴라는 걸 내 모를 줄 아는가?”

카이두의 역정에도 하심은 태연한 얼굴로 가져온 말부터 꺼냈다.

“샤자한 공이 남-서부 연합군이 탈라스에서 퇴각할거라고 말했겠죠? 바툴 가의 영지를 지키게 된다고요? 샤자한 공이 그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내가 자네에게 그것까지 말해줄 의무는 없는 듯 하네만.”

카이두의 사뭇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하심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태자전하께서 학장님과 탈라스에서의 정전문제를 비밀리에 상의하려 하셨다는 얘기는 안했겠죠?......”

“무, 어?”

“태자전하께서 학장님을 통해 서부의 지지를 받아내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는 얘기는 들으셨나요? 학장님께선 그 전제조건으로 이곳 탈라스에서의 분쟁종식이 필요함을 먼저 인식하셨고, 서부는 이 전쟁에서 발을 빼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습니다. 밥그릇을 걱정한 샤자한 공이 근위대의 계략에 속아 어젯밤에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기 직전까지 말이죠.”

카렐이 뒤에서 서부와 정전협상을 진행중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카이두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것이 학장님 보좌관인 제가 태자전하의 밑에 와 있는 이유입니다. 태자전하와 학장님 생각대로 모든 것이 풀렸다면.....고질적인 분쟁지역인 탈라스는 영구평화를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이번 사건이 장기적으로 바툴 가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남부제후군이 서부연합군을 대신 몰아내 줄 거라고 그랬어.”

“좋죠. 제위경쟁을 위해서는 어차피 한번쯤 전쟁을 벌릴 거 남의 땅인 탈라스에서 하게 되었으니 남부든 서부든 크게 손해볼 건 없죠. 전쟁터 빌려주는 값은 혹시 받으셨나요?”

하심의 냉소적인 질문에 카이두가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영구평화’라는 말에 얼굴이 굳어진 카이두 경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황제령과의 직통루트까지 있고, 북, 서, 동부를 모두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지난 200년간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가며 제국 최악의 저개발지역으로 전락해버린 탈라스에 있어 전쟁종식은 천만금보다 소중한 그것이었다.

“증거가 있나?”

“전하께서 끼고 계신 페리도트 반지는 전하께서 학장님에게서 소매치기해오신 건 결코 아니죠.”

카이두의 얼굴이 다시 굳어가고 있었다. 하심이 입가에 다시 웃음까지 지으며 말을 이었다.

“또 한가지 아실 게 있죠. 이곳 탈라스는 남부와 워프 루트가 없는 곳입니다. 지금은 서부를 통과해 보급로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인데......남부와 서부가 전쟁이 벌어지면 남부제후군은 본토와의 연결로가 끊어지니 이곳에 영락없이 고립됩니다.”

카이두 경의 표정이 순간 창백해지고 있었다. 침착한 표정의 하심이 여전히 톤없는 차갑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배신을 진행시킨 베흔 그자의 생각은 동부 샤레이를 경유해 탈라스로 오는 새로운 보급로를 생각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전하 편인 트라티누스 가가 길을 내주지 않는 이상, 이곳의 플라칼 가 군대는....이곳에 완전히 고립되는 겁니다. 그런 남부가 서부를 몰아내 준다고요?”

카이두는 할말도 잊은 채 넋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곳 탈라스와 함께 동부-북부 사이의 또 다른 관문인 킨자이는 역시 이번에 전하를 따르기로 결정한 4제후 눌레딘 가의 영역입니다. 결국 전하께서는 결국 동부의 알짜배기 지역 2곳을 여전히 확보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요동에 있던 제네르 경과 황후 예정자인 아메스 역시 슈트란 종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샤자한 공의 이번 반역사건은.....결과적으로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하께서 살아만 계시다면, 지금 상황은 그분께 도리어 더 유리합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어가자 하심이 씽긋 웃음을 지었다. 그 때, 겔 밖에서 달려들어온 전사 한 명이 카이두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여주었다. 순간 창백해진 카이두 경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뼛속 깊은 후회가 솟구쳤지만 그로서는 이제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말씀은 잘 들었소만......이제 다 틀렸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으니......”

거의 울먹이는 듯한 카이두의 목소리에 지금까지 득의양양하던 하심의 표정에서 조금씩 핏기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카이두가 겔에 함께 있던 가문 병사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교수를 체포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해주시오.”

절벽 꼭대기에 도착한 탈란은 무릎 위의 카렐을 품에 단단히 끌어안은 채 꼼짝도 않고 있는 솔을 발견하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 자리드가 박힌 채 솔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카렐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카렐의 긴 팔 역시 땅바닥에 힘없이 드리워 있었다.

“이미 죽었나?”

딴에는 잔뜩 긴장하고 올라왔던 탈란은 조금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넌 가만히만 있으면 살려줄 테니까 빨리 시체나 내놔.”

탈란은 솔에게 차마 다가서지는 못한 채 칼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솔이 살기어린 눈으로 탈란을 쏘아보았다.

“살아 계시니까 날 죽이고 모셔가, 이 걸레만도 못한 갈보년아.”

“뭐? 뭐?”

평소 순해터지기만 하던 솔의 입에서 터져나온 욕에 깜짝 놀란 탈란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칼을 고쳐 쥐었다. 카렐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눕혀놓은 솔은 그의 허리에 달려있던 붉은빛 와키자시를 죽 뽑아들었다. 엔간한 사람이면 가까스로 드는 정도로 만족할 그 무거운 칼을 두 손에 움켜쥔 솔은 큰 함성을 지르며 탈란을 향해 미친 듯 내달려왔다. 좁은 바위 꼭대기에서 투창을 쓸 수조차 없는 탈란은 그 무서운 기세에 놀라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썅!”

솔의 일격을 가까스로 받아낸 탈란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옆으로 몇 걸음을 밀려나 뒹굴고 말았다. 거의 절벽 모퉁이까지 밀려났던 그는 하마터면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뻔하고 말았다. 그 매서운 일격을 막아낸 그의 칼 중간이 볼썽사납게 꺾여 있었다.

“저년 잡아!”

다섯 명의 기병들이 실성한 사람처럼 칼을 휘둘러대고 있는 솔을 둘러싸고 공격할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솔은 탐색 따위를 할 생각은 전혀 없는지 그 중 제일 먼저 다가온 한 명에게 덤벼들며 무작정 칼을 내리쳤다.

“너희 놈들도 다 죽어!”

공격을 막으려던 녀석의 칼이 일격에 두조각나버리며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팔과 어깨까지 잘려나간 병사는 한쪽 바위로 밀려가 세차게 부딪히며 절명하고 말았다.

“너도!”

뒤로 휙 돌아선 솔은 등뒤로 달려들던 다른 병사의 가슴을 향해 칼을 거칠게 휘둘렀다. 방패 한쪽을 조각내며 밀고 들어온 칼은 병사의 어깨부터 가슴을 갈라내며 엄청난 피와 함께 밑으로 빠져나왔다.

“이, 이 여자.....도대체 뭐야.....”

나머지 세 명의 병사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솔의 주변을 맴돌았다.

“난 가디언 네피의 딸이란 말이다! 알겠냐! 난 가디언 핏줄이란 말이다!”

쉰 목소리를 내지른 솔이 병사 한 명의 가슴을 힘껏 걷어차며 곧바로 몸을 돌려 뒤의 병사를 향해 칼을 내질렀다.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배를 찔린 병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저 망할 년이!”

쓰러져있는 카렐에게 몰래 다가가고 있는 탈란을 발견한 솔은 몸을 휙 돌려 그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 마지막 남아있던 한 병사가 큰 소리를 지르며 방패를 앞세우고 방어가 약한 솔의 왼쪽 측면을 힘껏 들이받아버렸다. 생각 없이 앞으로만 돌진하던 솔은 그 충격에 바닥을 몇 바퀴 굴러 거의 절벽 경계까지 밀려가고 말았다.

“아, 악,”

버둥거리며 다시 일어나려던 솔은 병사가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내리찍은 칼에 기겁을 하며 몸을 돌렸지만 날카로운 칼끝은 몸을 돌리던 솔의 날갯죽지를 꿰뚫었다.

“아윽!”

등을 찔린 솔이 째지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기회를 잡은 병사가 연속해 내리치는 칼끝을 가까스로 피하며 물러나던 솔의 옆으로 절벽 밑에서 누군가가 확 튀어올랐다.

“탈란!”

솔을 내리치려는 병사를 힘껏 걷어차 쓰러뜨린 베아트릭스는 탈란에게 맨몸으로 무작정 돌진해 들어갔다. 기회를 잡은 솔은 쓰러진 적병에게 달려들며 그 목을 꽉 움켜쥐었다.

“썅! 넌 뭐야!”

깜짝 놀란 탈란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단검에 어깨를 베인 베아트릭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무기는 고사하고 몸을 가려줄 갑주 하나 입고있지 않은 베아트릭스는 카렐의 허리에 달려있던 투척용 작은 단검 중 한 개를 휙 낚아채 손에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다.

“움직이면 던질 겁니다,”

한 손에 시미터를, 한 손에 단검을 움켜쥔 베아트릭스가 숨을 헐떡이며 탈란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단검 끝을 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쓰러진 카렐을 사이에 두고 탈란과 베아트릭스가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금속제 케이블을 맨손으로 붙들고 기어올라온 베아트릭스의 손바닥은 이미 허물이 모두 벗겨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네가 북부놈이냐? 단검을 던지게?”

저 정도 단검으로는 자신이 입고있는 갑주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을 탈란은 잘 알고있었다. 그는 단검은 던질 줄도 모르는 베아트릭스의 얼토당토않은 협박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네가 감히 가문을 배신해? 이번에 또?”

이를 드러내 보인 탈란은 카렐의 목을 향해 다시 칼을 치켜들었다. 베아트릭스의 머릿속에는 결국 또다시 가문을 배신하느냐의 기로에 처한 자신의 한심한 현실과, 그다지 길지는 않았던 전사단에서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한줄기 빛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씨!”

이를 악문 베아트릭스는 몇 달 전 카렐에게 직접 배운 그대로, 팔꿈치와 손목에 최대한의 힘을 가해 그 작은 단검을 내던졌다. 강력한 회전을 받아 공중을 돌며 날아간 그 크지 않은 단검은 탈란의 오른쪽 손---갑주가 그나마 가장 얇은---에 정확히 명중하며 라멜라갑옷의 그 치밀한 섬유질을 꿰뚫었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단검을 떨어뜨린 탈란이 뒷걸음질쳤다. 그 작은 단검은 탈란의 손바닥을 관통해 반대편까지 빠져나와 있었다.

“물러나라구!”

카렐의 몸을 훌쩍 뛰어넘어 탈란에게 다시 달려든 베아트릭스가 탈란의 칼을 힘껏 내리찍었다. 하지만 그 충격에 떨어뜨린 단검 대신, 그는 바닥을 뒹굴던 다른 기병의 칼을 재빨리 쥐어들며 베아트릭스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썅!”

바툴 가의 두 전사의 칼이 맞부딪히며 노란 불꽃이 튀어올랐다. 베아트릭스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찬 탈란이 주춤거리는 그의 가슴을 견갑으로 힘껏 들이받았다. 변변한 갑주도 챙겨입지 못한 베아트릭스는 그의 단단한 견갑에 가슴을 받히며 거친 숨소리와 함께 몇 발짝을 밀려나고 말았다.

“죽어! 이 배신자야!”

돌진해오는 탈란을 향해 고개를 번쩍 치켜든 베아트릭스는 그의 일격을 칼로 미끄러뜨리며 아직 단검이 박혀있는 탈란의 오른손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순간 손에 박힌 칼이 밀리면서 움찔거리는 탈란의 머리를 베아트릭스가 팔꿈치로 온 힘을 다해 내리찍었다.

“말 좀 들으라구!”

앞으로 넘어지는 탈란의 뒤통수에 칼 손잡이 끄트머리의 단단한 폼멜이 두 번째의 강력한 일격을 꽂아 넣었다.

“아악!”

머리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탈란의 등을 무릎으로 내리찍은 베아트릭스가 그의 팔을 뒤로 힘껏 비틀었다. 등뒤를 눌리며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탈란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탈란의 허리에서 할룩스를 빼앗아든 베아트릭스는 즉시 갈라크 도비치 부단장의 코드를 입력했다.

나지크에서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갈라크는 할룩스에서 갑자기 나타난 베아트릭스의 모습에 지레 놀라며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 베아트릭스 플라칼 단장이다, 헉, 헉, 여기 슈카른 계곡 북쪽 끝, 사막 경계지역이다. 전하께서 여기 바위 위에 계시다. 위중한 상태시니 당장 의료셔틀을 보내. 탈란 바툴 대장과 휘하의 바툴 가 궁기병 5백 역시 전사단에 투항하기로 합의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가말라 카잔 중랑장의 트라티누스 가 기병대를 당장 보내드리겠습니다!”

베아트릭스의 무릎 밑에 깔려있던 탈란은 베아트릭스가 멋대로 꺼낸 ‘투항’ 얘기에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휙 돌아보고 있었다.

“제기랄! 너 뭐 하는 짓이야!”

할룩스를 끊으며 피식 웃음지은 베아트릭스가 이 이모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방금 저분이 곯아떨어졌다고 그러셨소?”

이를 악문 탈란이 베아트릭스의 검은 눈동자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어떡하오?......저분께서는 조카와 이모를 모두 침실에 들이실 생각은 없으셨던 듯 한데?”

베아트릭스가 전혀 그답지 않은 능글맞기까지 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탈란의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네가......네가......”

탈란의 손목을 벨트로 단단히 동여맨 베아트릭스는 쓰러져있는 카렐에게 급히 다가갔다. 가늘게 뜬 카렐의 눈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준 베아트릭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렐의 목뒤를 짚어보는 베아트릭스에게 피투성이가 된 솔이 엉금엉금 기어 다가왔다.

“수고했다. 솔.”

베아트릭스는 지금껏 카렐을 지켜준 기특한 솔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긴장이 풀린 솔은 베아트릭스의 품에 얼굴을 기댄 채 결국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이두 경과 잠시 눈싸움을 벌이던 하심은 바툴 가를 설득하기 위한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두의 딸인 탈란이 카렐을 쏘아 죽였다면 바툴 가와는 이제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카렐의 행방불명 소식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었던 하심은 그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 말에 북받치는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두 명의 가문 근위병을 이끌고 막 들어온 건 보벤 경의 여동생인 이바카 슈트란 경이었다. 그는 카이두의 앞에 망연한 얼굴로 앉아있는 하심을 바라보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경의 충성에 할아버님께서 감복하고 계십니다.”

고개를 떨군 카이두는 이바카의 칭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바카와 함께  온 근위병들이 하심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이를 악문 하심을 멍 하니 바라보던 카이두는 갑자기 울린 할룩스에 순간 움찔 하며 놀랐다.

“난 그럼 가보겠소.”

돌처럼 굳어있는 카이두에게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넨 이바카가 하심을 쓸고 겔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의 같은 시각, 할룩스에서 흘러나오는 베아트릭스의 목소리에 카이두의 거친 얼굴에는 희망과 안도감, 혹은 걱정이 조금씩 뒤엉켜들고 있었다.

“잠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카이두가 이바카를 불러 세웠다.

“뭐요?”

그 말에 별 생각 없이 돌아섰던 이바카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히는 바윗덩이만한 거대한 주먹에 순간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채 공포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카이두의 자비로운 주먹은 이 상급귀족의 얼굴을 단 한방에 짓뭉개버렸다.

“뭐야!”

고함을 지르며 창을 내지른 근위병 역시 그의 큰 손에 순식간에 목을 붙들리며 공중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종장을 따라 칼을 뽑아든 바툴 가 전사들에게 사방이 둘러싸여 버린 나머지 근위병은 그대로 창을 내던지며 자리에 꿇어앉을 수밖에 없었다.

“전하께서 우릴 용서하셨다.”

카이두가 피떡이 되어 까무러진 이바카 슈트란을 한발로 짓밟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킨터스 교수의 수갑을 풀어줘라. 이 여자를 묶어. 전하께 바치는 사죄선물이다.”

목이 부러진 슈트란 가 근위병을 그대로 바닥에 동댕이치고 겔 밖으로 나선 카이두는 그 거대한 몸에서 뿜어나오는 그 굵고 육중한 목소리로 아침의 고요함에 빠져있던 바툴 가 종가를 쩌렁 울렸다.

“종가와 소속부대 전체가 나지크로 이동한다! 당장 실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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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15 후기>

이제 대망의 1부 엔딩 '내 아버지 곁의 고결한 소나무' 한 파트만이 남았군요. ^^

1부 엔딩을 앞에 두고 이번에 팬카페 개설도 축하할 겸 작은 이벤트를 하나 열려 합니다. ^^

1. 참가방법은 제 글에 관해 써주신 팬픽이나 패러디, 그림을 혈맥 팬카페 (http://cafe.daum.net/TheIronVein)  의 해당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제게 이미 팬픽이나 그림을 보내주신 분들은 그냥 '기존 작품으로 응모합니다' 라고 글 남겨주시면 되구요. 여러 개의 작품으로 복수응모도 가능합니다.

2. 응모기간은 파트 16 연재중(약 40여회가 될 듯 합니다.)에는 항상 가능하구요, 수상작은 엔딩 후 공지와 함께 발표하겠습니다. 수상작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제멋대로;;; 결정합니다.

3. 수상작 4명은 순위 없이 결정하며, 작가 사인본 1권씩을 (이미 구매하신 분께는 예약시 가격할인)을 상품으로 드릴 예정입니다. ^^

응모작들은 1부 마지막 출판본에 부록으로 수록될 예정입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

<설문 리뉴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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