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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327화 (326/1,132)

< -- 327 회: Part 15. 밀집꽃을 짓밟지 말지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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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와주었소, 탈란.”

숨을 헐떡거리던 카렐이 자신을 찾아와준 탈란을 향해 괴로우나마 미소를 지어보였다. 탈란을 향해 몇발짝을 나아가던 카렐은 그가 여전히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에 올라 카렐을 바라보고만 있던 탈란이 갑자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해라.”

탈란의 짧은 지시에 그를 호위하던 5기의 궁기병들이 탈란의 왼쪽에 나란히 도열해 섰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카렐은 탈란의 이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퀴버로 손을 뻗은 탈란이 그 안에서 길고 묵직한 자리드 한 발을 천천히 뽑아내는 모습에 이미 피로가 배어있던 카렐의 얼굴에 당혹감과 충격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탈란은 그때까지도 카렐의 어깨를 부축하고 있던 솔의 얼굴을 잠시 매섭게 노려보았다.

“연합군 놈들에게 공을 빼앗기면 안된다. 한 놈이라도 틀린 표적을 맞춘다면.......너의 모두의 목을 쳐버리겠다.”

탈란의 명령에 5명의 궁기병들 역시 각자의 퀴버에서 투창을 뽑아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다, 달아나라......솔......”

뒷걸음질치기 시작한 카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솔은 그의 얼굴을 휙 올려보았다.

“하지만......저, 저 사람은......”

“빨리 달아나.....빨리.....”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든 탈란은 자신의 검은빛 자리드에 크게 X자로 표시를 하고는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뒷걸음질치며 비틀거리던 카렐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허리에 찬 자신의 칼에 손을 가져갔다.

“아니다......내가 쓰러지면......재장전할 동안......”

공포에 질린 솔이 카렐의 허리를 더 힘껏 부둥켜안았다. 조금씩 밝아져오는 푸른빛 아침 하늘을 올려본 카렐은 자기도 모르게 큰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공격!”

탈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말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나온 이 6명의 궁기병들이 동시에 힘껏 팔을 내지르면서 6발의 강력한 투창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정점에 올랐다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 이 6발의 자리드의 표적은 확실했다. 1발은 카렐을, 나머지 5발은 솔을 향해 무서운 가속을 붙여가며 공기를 가르고 날아왔다. 자리드 특유의,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이 두 표적의 예민한 귀청을 때렸다.

솔 역시 엉겁결에 칼을 뽑아들었지만 아직 서투른 그가 저렇게 강력하게 날아오는 무려 6발의 자리드를 막아낼 수는 없음을 카렐은 잘 알고 있었다.

“아악!”

겁에 질린 솔이 눈을 가리며 큰 소리로 비명을 올렸다.

“썅!”

그나마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든 카렐은 솔을 향해 날아오는 5발의 투창을 향해 그 붉은 칼날을 힘껏 내리쳤다. 째지는 소음과 동시에 빗나간 1개를 제외한 4개의 투창이 카렐의 그 위력적인 일격에 맞아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둔한 몸놀림이나마 최대한 몸을 뒤로 빼려 했다.

“아악!”

칼을 쥔 카렐이 거의 튕기듯 뒤로 밀려갔다. 정신을 차린 솔이 고개를 휙 돌렸을 때, 카렐의 공중에서 내리꽂혀 허벅지를 파고든 한 발의 투창이 바닥을 향해 강력한 스핀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손으로라도 잡아 투창을 막아보려던 시도는 그의 시도는 가슴의 급소로 날아오던 투창을 아래로 떨궈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탈란의 예상대로, 솔을 지키기 위해 정작 자신에게 날아오던 한 발의 투창을 포기해야 했던 카렐은 자갈이 잔뜩 섞인 거친 모래바닥 위에 피를 흩뿌리며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카렐 님!”

한참을 밀려가 쓰러진 카렐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X자가 새겨진 그 묵직한 자리드는 카렐의 다리를 거의 한 치 깊이로 도려내고  허벅지 뒤로 빠져나와 있었다.

“가......가......”

온몸을 부르르 떨던 카렐이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이며 쉰 소리를 냈다. 솔이 고개를 거칠게 저으며 카렐의 가슴을 꽉 부둥켜안았다. 탈란이 결과를 확인하려는 듯 말을 몰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

카렐이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솔은 등 뒤의 거대한 바위를 올려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위협적인 절벽 틈새로는 군데군데 바위가 갈라진 길고 깊은 틈새까지 있었다. 뒤를 한 번 돌아본 솔은 칼을 내버리고는 쓰러져있던 카렐을 힘껏 어깨에 둘러멨다.

“뭐야! 저년!”

소리를 버럭 지른 탈란이 말에 박차를 가해 쫓아오며 또 한발의 자리드를 뽑아 쥐었다. 하지만 카렐을 짊어지고 갈라진 틈새로 몸을 재빨리 감춰버린 솔은 그 아슬아슬해 보이는 수직의 절벽을 한 손과, 두 다리만으로 기를 쓰고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솔의 어깨에 걸쳐있던 카렐이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냈다. 튀어나온 돌조각을 이로 깨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솔이 위로 팔을 뻗어 바위틈새에 손을 단단히 끼워넣고는 거의 세 사람분에 달하는 무게를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선명한 핏줄과 힘줄이 솟구쳐 오른 그의 굵지 않은 팔과 곱던 손은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가디언 혈통다운 솔의 괴력에 놀라고 있는 건 어깨에 들려있는 카렐 뿐만이 아닌,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올려보고 있는 탈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십발의 투창이 솔을 향해 날아올랐지만 바위의 길게 갈라진 좁은 틈새를 타고 오르고 있는 그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기랄!”

말에서 뛰어내린 탈란이 자신도 바위를 기어올라보려 시도했지만 시작부터 앞으로 기울어있는 그 소름끼치는 경사는 장비 하나 없이 오르려는 무모하다못해 멍청한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당장 케이블 공수해오라고 해!”

얼마 오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버린 탈란이 부하에게 큰 소리로 지시했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저 가디언 혼혈계집은 이 무시무시한 바위를 아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그것도 두사람분 체중에 달하는 무거운 사람 하나를 짊어진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계속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탈란은 다시 자리드를 뽑아들어 이 수직절벽의 윗쪽을 향해 던졌지만 우둘두둘하고 사방으로 기울기가 가 있는 절벽 모퉁이에 생채기만 낸 채 다시 떨어져버렸을 뿐이었다.

“이, 이거 박힌 거 뽑아내야 돼요? 예?”

셔츠를 벗어던진 솔이 피가 솟구치는 카렐의 상처를 꾹 누르며 물었다. 바위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카렐을 눕혀준 솔은 고통스러워하는 카렐의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허벅지를 베어내고 지나간 투창은 너덜너덜해진 근육과 피부에 물린 채 흉한 모양으로 매달려 있었다.

사방으로 깎아지른 절벽뿐인 이곳에 도착한 둘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는 완전한 고립상태였다. 아침의 뜨거운 햇살이 이 둘의 얼굴 위로 내리쪼이고 있었다.

“제발, 말 좀 해주세요, 제발.”

흐려진 눈을 반쯤 뜬 채 온몸을 떨고있는 카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박힌 투창을 뽑아내려 손을 가져갔던 솔은 카렐이 고개를 가로젓자 다시 손을 떼어버리고 말았다. 바위에 걸터앉은 솔은 카렐을 잡아당겨 무릎 위에 눕히고는 그의 더러워진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필사적으로 바위를 기어올라온 솔의 손톱과 손끝 역시 거의 뭉개져서 온통 피얼룩이 져 있었다.

카렐의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동안 울먹이던 솔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하.......아니, 카렐 님이 그냥 평범한 도망가디언이었다면......그랬었다면.....아무도 안 오는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겠죠?......누구 방해도 받지 않고.....아메스 언니도 당신을 탐내지 않았을 테고......그냥 단 둘이요.....지금처럼.....이제 아무도 없잖아요? 저밖엔......”

솔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희미한 호흡을 이어가고 있던 카렐이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이 나이어린 연인을 올려보았다. 솔이 그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갈 이유도 없을 테고......”

눈을 힘겹게 껌뻑거리던 카렐이 턱으로 자신의 단검을 연신 가리켰지만 솔은 본 척도 않으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만 있었다. 말없이 껴안고 있던 이 둘의 귀에 바위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밑에서 쏘아올린 케이블 리프트가 이곳 꼭대기 부근에 꽂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시간도.....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카렐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조심스레 빗겨내린 솔은 그의 마르고 갈라진 입술에 자신의 붉은 입술을 조심스레 가져갔다. 그리고 희미해진 그의 숨소리, 입술과 혀를 부드럽게 느끼며 솔이 눈가에 애써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곧 닥칠 무언가를 기다리며.

미친듯이 말을 재촉해 달려온 베아트릭스는 슈카른 계곡 북쪽 끝에 우뚝 서 있는 높은 바위 밑에 서 있던 탈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높이만도 거의 1스타디아는 됨직한 까마득한 바위 꼭대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탈란의 희한한 모습에 베아트릭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기병들이 꼭대기를 향해 리프트를 쏘아대고 있는 모양이 저 위에 무언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탈란 이모! 탈란 이모!”

베아트릭스는 절벽 밑에서 리프트 설치를 지휘하고 있던 탈란에게 달려가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돌린 탈란은 이곳까지 쫓아온 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의 모습에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네가 웬일이냐? 베아트릭스?”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베아트릭스의 온몸과 얼굴은 누런 사막모래로 온통 범벅이 되어 그의 검은빛 피부색조차 제대로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먼지를 툭툭 털어 낸 베아트릭스는 절벽 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분 발견했다더니......설마 저 위에 계시다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내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있겠냐.”

입을 삐죽거린 탈란은 설치된 리프트줄이 튼튼한지 한번 힘껏 잡아당겨 보았다.

절벽을 다시 올려본 베아트릭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에, 중상 입으셨다더니, 여길 기어올라가셨을 정도로 기운 좋으시면 별 걱정 안해도 되겠네요?”

“넌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탈란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이 조카를 흘겨보았다.

“솔인가 그 가디언 혼혈년 때문에 잘못하면 올라갔다가 떼죽음당하게 생겼는데.”

“에......예?”

베아트릭스는 탈란의 이해되지 않는 대답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생각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베아트릭스는 절벽 아래 한쪽 바닥에 꽂혀있는 검은빛 자리드와 그 주변에 흩어진 자리드 파편들, 그리고 땅바닥에 쏟아져있는 혈흔에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그 혈흔의 바로 옆에는 카렐의 붉은빛 카타나가 뒹굴고 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베아트릭스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준비에 한참인 탈란을 멍 하니 바라보았다.

“그분을......공격......하셨나요?”

“내 참, 세상에 그렇게 독한 놈은 처음 봤어. 솔인가 그년이 이 절벽을 메고 올라갔는데 생기긴 뭣같이 생긴 년이 뭐 그리 기운은 좋은지. 그놈이야 이제 거의 골골하니까 그냥 죽여버리면 되지만 솔 그년이 싸움도 잘하면 어쩌지?”

자신의 예상이 철저하게 빗나갔음을 깨달은 베아트릭스는 그만 자리에 꿇어앉아버리고 말았다. 이미 가문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가 버린 후였다.

“아버지가 꼭 내 손으로 죽이라 하셨으니 내가 올라가긴 해야하는데 큰일이네.”

“어떻게......그럴 수 있죠?”

“뭘 말이야?”

리프트에 벨트를 걸고있던 탈란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베아트릭스의 양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분을 연모한다고 그랬잖아요......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너 나이 헛먹었구나? 베아트릭스. 너 그럼 지금 날 말리러 온 거였어?”

베아트릭스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려는 탈란의 다리를 거칠게 움켜잡으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제발,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시면 지금이라도 가서 용서를 비세요, 속이 넓으신 분이시니 충분히 용서해주실 거예요, 제가 같이 용서를 빌어볼게요, 제발, 이건 잘못된 거라구요. 저분을 모시고 같이 나지크로 가자구요, 그럼 할아버님도 따라올 수밖에 없으실 거예요.”

혀를 끌끌 찬 탈란이 꿇어앉아 있던 베아트릭스의 멱살을 움켜잡아 거칠게 일으키며 말했다.

“정신 차려. 저놈 곁에서 되든, 수우인지 하는 남부녀석 곁에서 되든 황빈이 되기는 마찬가지야. 기왕이면 신분상승해서 상급귀족으로 되면 더더욱 좋은거고, 4억 골드나 되는 거금까지 챙길 수 있으면 말할 나위가 없는 거지.”

“저분을 사랑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잠자리까지 하셨잖냐구요!”

베아트릭스가 탈란의 멱살을 맞잡아 쥐며 차마 인정하고싶지 않은 말을 거칠게 뱉어냈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탈란이 베아트릭스의 코앞에 대고 쌀쌀맞게 대꾸했다.

“어차피 내 몸엔 손도 안 댔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예에?”

“저놈 술 쳐먹고 곯아떨어져서 꿈쩍도 않더라구.”

잠시 능글맞게 키득거려보인 탈란은 얼이 빠져있는 베아트릭스를 거칠게 바닥에 동댕이치며 리프트를 타고 절벽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에서 내린 다섯 명의 궁기병들 역시 탈란과 함께 리프트를 작동시키며 빠른 속도로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제기랄! 내 인생은 왜 항상 이모양이냐구!”

바닥에 꿇어앉은 베아트릭스가 야속한 하늘을 올려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땅바닥에 이마를 댄 채 잠시 흐느끼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늘어져있는 케이블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솔이 떨어뜨리고 간 시미터를 집어 입에 물고는 대뜸 케이블을 붙들더니 아무 장비도 없이 무작정 절벽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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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 15도 이제 딱 한편 남았군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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