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1 회: Part 13. 시들어가는 소나무 밑에 연꽃이 피어날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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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진공에 앞장설 플레렌 가와의 구체적인 합의도 모두 끝내고 로노 태자로부터의 최종결정만 기다리고 있던 주페는 형의 '기습불가' 통지에 아연질색하고 있었다. 황궁의 경비가 대폭 강화되어 기습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구차한 변명이 붙어있었지만 주페가 확인한 바로는 근위대의 각 지역 파견군들에게 별다른 이상징후도 없었을 뿐더러 황제령 내의 근위대 배치상황도 평소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전통적으로 서부와의 관계가 유난히 돈독한 타르서스의 3만여 직할군은 근위대의 지원요청을 '묵살'해 주기로 이미 합의를 본 상태였고, 주페가 플레렌 가 병력을 이끌고 황제령에 진입하는 즉시 트라이앵글 지역과 수에니 지역을 점거해 그 지역 지부병력이 프라임 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주기로 이면약속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오르마즈 역시 그 이전에 북부로 돌아가 일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토로 경으로부터 지휘권을 박탈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물론 그에게 충성하는 카파키 가 무장들을 설득해 북부가 황제령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자신에게 가장 충성하는 친위 기병대를 동원해 주페와 함께 선봉에 서는 것 까지도 모두 약속이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근위대가 설사 기습진공을 눈치챘다 해도 이젠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준비를 갖춰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로노는 이런 주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못하겠다'는 억지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로노가 자신의 배반을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한 주페는 공동진격이라는 타협안까지 내놓았지만 로노는 그것에도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안심하시겠습니까?"
풀죽은 표정의 주페가 화면 속의 로노에게 호소하듯 물었다. 뚱한 얼굴로 앉아있던 로노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아무래도 모든 걸 너무 서둘러서 결정한 감이 없지 않아."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빠른 결단과 공격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작전성공 이후의 구체적인 사항을 미리 결정하고 시작하자구."
주페는 혼란기를 하루빨리 끝내는 것보다 그 이후의 밥그릇싸움에 더 열중하고 있는 형의 태도에 내심 분통이 터지고 있었지만 당장은 그에게 모든 걸 양보해주어야 할 상황임을 잘 알고있었다.
"좋습니다. 생각하고 계신 안을 말씀하십시오."
주페가 분을 삭히며 마지못해 묻자 로노가 갑자기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통신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5일 후, 그러니까......21일에 황실묘지 앞에 있는 황궁 북쪽 별관에서 만나자구. 증인이 필요할 테니까 타니토도 데려오도록 해."
"황궁은 근위대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니 부적절한 듯 합니다. 중립적인 곳을 원하신다면 타르서스 별궁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중립적인 곳이야! 타르서스면 사실상 서부 영향권이잖아!"
로노가 갑자기 고함을 버럭 질렀다. 형의 묘한 태도에서 갑자기 불안감을 느낀 주페는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21일 오후 6시에 황궁 북쪽 별관이야!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아! 안 오면 네놈이 딴뜻이 있는 걸로 알 테니까!"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형의 태도에 너무도 황당해진 주페가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코리온을 문득 돌아보았다. 한숨을 내쉰 코리온이 주페를 다시 설득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런 분을 정히 밀어주셔야겠습니까? 저분의 성격으로는......"
"내 저분의 성격을 문제삼아 승계권을 멋대로 부정한다면 앞으로 다른 일에도 승계가 있을 때마다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선례가 될 것이니 어찌 그러하겠느냐.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시는 흠이 있으시지만 뒤탈은 없으신 분이시니 등극 후에 밑에서 보필하는 인재만 있다면 제국을 무리 없이 끌어가시기에는 충분할게다."
"하지만 제가 보긴 장태자전하께 아무래도 다른 속셈이 있으신 듯 합니다."
고개를 숙인 주페는 코리온의 간언에 가타부타 대답도 않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둘 사이에 흐르던 잠시동안의 침묵은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깨져버리고 말았다.
"하심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하심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코리온에게 입을 열었다.
"저어,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그렇지만....."
"뭔가?"
"제네르가 3일째 학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심의 보고에 코리온과 주페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크로딘 생도가?.......그럴 리가 있나? 무단 결석할 사람이 아닌데......"
"무단결석은 아닌 듯 합니다. 이틀동안 기숙사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며칠 전 작성해두었던 오늘치 과제물도 그대로 책상에 있습니다. 연락도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동기생들 말에 따르면 전날 저녁에 종이를 사러 간다며 나간 이후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주페가 하심에게 말했다.
"당장 치안군에 신고하도록 하고, 교내 치안대에도 알리도록 해. 말도 없이 학교를 나갈 사람이 아니니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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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눈을 뜨며 의식을 되찾은 하심은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던 제네르와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심, 이게 뭐냐구. 샤드니 그놈이 널 공격했다며?"
멍 한 머릿속을 잠시 다잡은 하심은 그제서야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에 떠올렸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던 샤드니의 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제네르 일행과 헤어졌던 마을에 차를 세운 것까지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 말에 따르자면 반쯤 이성을 잃고 날뛰던 하심이 엉뚱한 라스의 멱살을 잡고 할룩스를 내놓으라며 어거지를 쓰다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저 친구가 지나가는 행인 할룩스 잠깐 빌려서 연락했어."
제네르가 구석에 앉아있는 라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전사단 일행들을 둘러보며 안도하고 있던 하심은 적과 아군이 온통 뒤엉켜버린 이 황당한 상황에서 이질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당장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네르가 하심에게 물병을 내밀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봐."
"나도......몰라."
하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엔 대공주저하께 데려다주겠다고 했는데......가다가.......카렐 님 정체에 관해 얘기하다가......그분이 태자이시라는 말에 갑자기 내 멱살을 잡으시더니......몰라, 이유도 설명 안했어. 그냥 기사 먼저 죽이고......나까지......"
"전하에 관해 얘기했다고?"
제네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없어? 너 정도면 학장 심복 중에 심복인데, 널 입막음하려고 죽이려는 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뭐야?"
제네르가 하심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물었지만 하심 역시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몰라, 나도 몰라."
하심이 머리를 싸쥐었다. 피가 흐르던 그의 왼쪽 팔에는 누가 이미 손봤는지 붕대가 정성스럽게 감겨 있었다.
"이거야 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네르가 난감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일단은 하심 너도 위험한 것 같으니 우리하고 함께 있어야겠다."
믿었던 샤드니에게도 공격당한 하심은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그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던 제네르에게 시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샤드니 경이 리쿠 학장을 배신한 것이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 절대 그럴 리는 없어. 두 분이 어떤 사이인데....."
하심이 정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머릿속이 온통 엉망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샤드니가 자신이, 아니, 어쩌면 코리온조차도 모르는 무언가를 더 알고있는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예감밖에는.
목욕을 하고 나온 코리온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카렐의 모습에 낯을 일그러뜨렸다. 지난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았었지만 밝은 곳에서 제대로 본 카렐의 몸은 코리온의 눈에도 꽤나 괴상한 것이었다. 두 개의 거울로 등을 비추며 작은 막대기로 낑낑대며 상처에 약을 바르던 카렐은 얼굴을 찡그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코리온의 곱지 않은 시선을 넌즈시 무시해버렸다.
"모렌 박사의 악취미 덕택에 몸이 이지경이 되고 말았죠. 기왕 괴물을 만들 것 같았으면 아예 등에도 닿는 고무팔이나 만들어주지.....지난 며칠동안 몸이 약해져서 안곪던 상처까지 곪고있지 뭐요. 아윽,"
막대 끝이 상처를 긁자 카렐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코리온은 무표정하게 침대에 다가가 카렐에게서 돌아누워 버렸다.
"오라버니 섹시한 몸매가 정말 부럽군요. 어깨하고 등에 흉터만 지운다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텐데."
카렐의 얼토당토않은 농담에도 코리온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까 그 지배인 여자 능글능글하게 쳐다보는 것 보셨소? 솔직히 가짜든 아니든 남편이 끝내주는 미남이라는데 싫지만은 않더군요? 후훗, 근데 앞으론 남편행세 좀 자연스럽게 하셔야겠수. 제가 뭐 침실에서까지 남편노릇 하라는 것도 아닌데."
카렐의 황당한 농담에 코리온이 기가막힌 표정으로 카렐을 한 번 째려보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엉터리로나마 약을 바른 카렐은 상처를 다시 동여매고는 웃옷을 챙겨입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잠자리 구했으니 오늘밤은 편하게 주무시죠. 제가 옆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창을 닫고 불을 끈 카렐이 침대 옆에 알량한 담요 한 장을 깔고는 싸늘한 마루바닥에 웅크리고 누웠다. 얼떨결에 카렐과 얼굴이 마주보게 되어버린 코리온이 다시 뒤로 휙 돌아누웠다.
"이 동생이 그리도 꼴 보기 싫으시오?"
"네놈과 한방에 누워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뭐, 그건 저로서도 어찌 해 줄 도리가 없군요. 그냥 참고 주무시구려."
천연덕스럽게 웃음지은 카렐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등의 상처에서 오는 통증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일단 눈을 붙였다.
문득 고개를 돌리고 카렐의 곪은 상처를 힐끔 돌아본 코리온이 무표정하게 다시 돌아누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며칠 넘기기 어렵겠군. 그래, 아무렴 어떤가. 어차피 죽을걸."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다짐을 주면서도 코리온은 당연하게 솟구치는 양심의 가책과 계속 씨름하고 있었다. 돌아누우며 몸을 조금 웅크린 코리온은 자신의 가슴에 느껴지는 실밥을 느끼고는 새삼스레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의학박사이기도 한, 카렐의 곪아가는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코리온이었지만 토막내도 시원치 않을 저 철천지원수의 몸을 자신의 손으로 치료해준다는 상황은 상상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오늘밤 여기서 뒈져라."
진심인지 아닌지 자신도 알 도리없는 혼잣말을 계속 되뇌이며 코리온이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 상처는 뭐요?"
"눈길에 자빠져서."
베흔의 질문에 샤드니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삽에 얻어맞아 찢어진 뒤통수에 드레싱을 댄 샤드니는 차가 도난당한 마을 부근에서 한참 증거물을 뒤지던 베흔 일행에게 찾아와 있었다.
"훗, 잘생긴 얼굴 다 망가지셨구려. 아참, 대공주저하께선 결국 앓아 누우신 모양이요. 쿠엘스크 시내 호텔에 부군과 함께 머물러 계시오."
"여기서 뭐 증거라도 찾으셨소?"
샤드니의 질문에 베흔이 어깨를 으쓱 하며 대꾸했다.
"글쎄, 아무 것도. 제일 흔한 차종에, 충전도 완벽하게 되어있고, 상태도 가장 우수하고, 특별한 사고흔적이나 치장도 없는 그냥 '보통' 차라오. 도난즉시 추적장치 해제되었고 차량 인식표도 변조한 듯 하고. 누군지 솜씨가 장난이 아니군."
"카토라는 놈 솜씨가 그렇게 좋소?"
샤드니가 짐짓 딴청을 피며 묻자 베흔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흠, 잘못짚은 거더군. 카토 그놈 지금 우베놈하고 같이 대공주저하 곁에 있던데?"
"어허, 그럼 도대체 누구죠?"
"글쎄, 전사단에 워낙 잘난 가디언 놈들이 많으니......페로가디언일수도 있고......어쨌든 키 크고 건장한 남자와 동행하고 있는 머리 길고 잘생긴 미남자를 행성 전역에 수배해놨으니 머잖아 신고가 들어올 거요."
베흔의 '헛다리'에 샤드니가 내심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베흔과의 대화를 접고 뒤로 돌아선 샤드니에게 옆 행성 델루지 가 영지로 보냈던 비서가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샤드니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찾았습니다. 하심 예킨터스 교수 차에 남아있던 녀석의 혈흔에서 완벽한 유전자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잘했다. 내 집무실에 가져다놓고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해."
"그런데 그건 어디 쓰시려구요?"
"알 필요 없어."
퉁명스럽게 대꾸한 샤드니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코리온과 카렐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분통이 터져 오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카렐과.
새벽에 눈을 뜬 카렐은 누군가 옷을 들치는 느낌에 멈칫 하고 있었다.
"화농은 절개해야겠다."
코리온의 쌀쌀맞은 목소리에 카렐이 큰 숨을 내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셔츠 벗어."
카렐의 얼굴 옆에 큰 응급함이 놓여지고 있었다. 호텔 마크가 붙어있는 것을 보아 의무실에서 임시로 빌려온 모양이었다.
"제대로 치료하는 건 기대하지 마라."
"이런 상황에 뭘 기대하겠수."
카렐이 키득거리며 대꾸하자 코리온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서북 콜로니 아카데미에서 받은 정식 의사면허가 있으니 최소한 무면허는 아니겠지. 외과의사는 아니지만 봉합 정도는......"
셔츠를 벗은 카렐이 조금 놀란 눈으로 코리온을 돌아보았다. 카렐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무시해버린 코리온은 간단한 봉합도구들과 몇 가지 약품들, 드레싱 재료 등등, 기껏해야 응급치료에 쓰이는 것이 고작일 물건들을 꺼내놓으며 투덜거렸다.
"이따위 것들로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니."
"그나마도 없어서 들소 힘줄 뽑아서 상처 꿰매던 야만인도 여기 있다오."
카렐의 넉살을 들었는지 아닌지 코리온이 화농을 째고 상처를 닦으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내가 네놈을 용서해서 이런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러시겠죠."
카렐이 건성 대꾸하며 코리온에게 띄지 않게 혼자 키득거리고 있었다. 코리온이 여전히 곱지 않은 말투로 쏘아붙였다.
"네놈 때문에 시끄러워 잘 수가 없어서 이러는 것뿐이다."
"이젠 조용해지죠."
"네놈은 내 손에 결국은 죽을거다."
"예에이."
카렐이 약을 바르는 코리온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처가 깊어서 옛날식으로 2중 봉합해야 할 것 같다. 거부반응 우려가 있으니 접착제는 사용 않겠다."
"후우, 역시 알아서 챙겨주시는구려, 접착제 부작용 있는 걸 이미 알고 계셨다니."
"혈액성분으로 만든 거니까. 우리가 쓸 물건은 못되지."
코리온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카렐은 같은 S발현자인 코리온이 처음으로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을 잘 알고있었다. 상처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손보는 코리온의 낮은 숨결이 카렐의 등에 전해져오고 있었다.
"손이 정말 부드러우시구려. 내 통나무 손에 비하면 완전히 비단결이요?"
"......"
"아참, 상처도 꿰매줘서 고맙고 하니 내 쓸만한 정보 하나 알려드리죠. 세호 가에서 주페 태자저하 유해를 사막에 내다버렸을 때 그걸 오라버니가 직접 수습하셨다죠?"
"그래."
코리온이 여전히 쌀쌀맞게 대꾸했다.
"혹시 늑골 중 한 개가 빠져있지 않았소?"
카렐의 질문에 상처를 꿰매가던 코리온의 손길이 딱 멈춰섰다. 잠시 움직이지 않던 코리온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어디 있지?"
"지금 근위대 보안국 자료보관실에 있죠."
코리온이 잠시 꼼짝도 않은 채 조금 흥분한 듯한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카렐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세호 가에서 그 분 묘소를 훼손해 시신을 내버리면서 부패한 살점이 조금 남아있는 늑골 한 개를 근위대에 보낸 것으로 되어있더군요. 태자의 유골 일부가 왜 거기 있는지 근위대장한테 물었더니 그 인간도 세호 가에서 자기한테 왜 그걸 보냈는지 어처구니없어하고 있더군요. 꽤 양호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으니 베흔을 잘 설득하면 되찾을 수도 있을 거요."
"알았다."
코리온이 약간 목멘 소리로 말하고는 상처를 다시 꿰매기 시작했다.
"알려줘서 고맙다."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카렐은 엷은 웃음을 지으며 코리온을 다시 올려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카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상처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꿰매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솜씨가 꽤 괜찮으시구려. 역시 진짜 의사가 뭐가 달라도 다른 건가?"
봉합을 마무리하고 상처에 드레싱을 하고있는 코리온에게 카렐이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여전히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고 있었다. 베개에 턱을 고이고있던 카렐이 다시 물었다.
"대문회 사건이 뭔지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는데......그 한번으로 천하의 콧대높은 어머님이 자존심도 접고 주페 태자저하 뒤만 쫓아다니셨다니, 태자저하가 꽤 매력 있기는 했던 모양이죠? 지금 오라버니처럼?"
"......"
"그런 분께 자손 하나 없다니 정말 안타깝군요. 그러면 오라버니 적적함도 한결 덜해졌을 것을....."
질문을 했던 카렐은 코리온의 눈꼬리에 갑자기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은지 그는 그대로 뒤로 휙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드레싱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선 코리온이 구급상자를 다시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내놓았다. 다시 불을 끈 코리온은 여전히 카렐에게 등을 보이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너무 접근하지만 않으면 올라와 자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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