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6 회: Part 13. 시들어가는 소나무 밑에 연꽃이 피어날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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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할 서생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바깥의 심상치 않은 기운에 서둘러 골목으로 돌아온 카렐은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둘러보며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시내를 빠져나갈 차 한 대를 훔치느라 조금 늦어졌던 그는 행여 코리온이 그새 잡혀가지 않았는지 머릿속이 아찔해져 있었다. 거미줄같이 얽힌 골목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그는 한쪽에서 조금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는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뭐요? 이게?"
골목 한쪽에 와글와글 모여있는 사람 중 아무나 붙든 카렐이 급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도 말아요, 방금 웬 긴 머리 남자하고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수상하게 돌아다니더니 저 남자를 급소를 후려치고 도망갔지 뭐요."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아직까지 사타구니를 붙들고 끙끙대고 있는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도와주려는 이웃들의 손길도 뿌리친 채 재수 없다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엑? 달아난 사람들은?"
"저 큰길로 도망치다가 방금 치안군들한테 붙들려 갔다는데 쌤통이지 뭐요."
새파래진 얼굴로 허둥지둥 큰길에 달려나온 카렐은 치안군 차 한 대가 북쪽을 향해 출발하는 모습에 아연질색하고 말았다.
"이런 젠장!"
차에 오른 코리온과 하심은 치안군 병사가 내미는 따뜻한 차도 거부한 채 침통함에 이를 갈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이쪽 사정을 모르는 듯 사뭇 밝은 표정의 치안군 여자 장교는 추위에 떨고있는 코리온에게 차를 거듭 권하며 웃음을 지었다.
"다행입니다, 모두 학장님께서 무슨 봉변이나 당하지 않으셨는지 크게 걱정했는데, 이렇게 무사하셔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아, 당국에서 모셔갈 차가 오고있는 중입니다. 저 앞에 기다리고 있군요,"
장교가 막 쿠엘스크 시를 벗어나고 있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문득 고개를 돌린 하심은 빽빽한 침엽수 숲 속에서 조용히 대기중이던, 한쪽이 찌그러든 그 끔찍한 병력수송차의 모습에 순간 비명을 지를 뻔하고 말았다.
"제발, 저들에게 넘기지 말고 바로 두딘카로 가 주시오! 그곳에 대공주저하께서 계시니 바로 그쪽으로 가란 말이요!"
"예?"
"저놈들은 학장님을 죽이려는 악당이란 말이요!"
"무얼 착각하신 모양인데요, 전 이미 명령을 받았고 저들은 저희 가문의......"
"제발! 서면 안된단 말이요!"
하심의 뒤늦은 울부짖음도 아랑곳없이, 앞에 서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누마 피카르 교위와 십여 명의 병사들 모습에 이쪽 차가 조용히 멈춰섰다.
"이 두 분들께서 불안해하시는 듯 하니....."
문을 열고 내려선 이쪽 치안군 장교가 누마에게 경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몹쓸 일을 당하셨으니 그러실 만도 하지."
능청스럽게 대꾸한 누마가 차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지는 하심과 코리온의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귀하신 분들을 저렇게 거칠게......"
누마의 병사들이 코리온의 멱살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에 놀란 치안군 장교가 누마를 휙 돌아보았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고 있는 그의 입술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새 옆구리를 파고 들어온 누마의 단검을 바라보며 잠시 몸을 움찔거리던 그 장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이 침엽수 숲 한중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 끝냈나?"
누마가 휘하 병사들에게 무표정하게 물었다. 차에 함께 타고 온 두 명의 치안군 병사의 목까지 동시에 눈 깜짝할 새 베어버린 병사들이 단검을 닦으며 대답했다.
"다 끝냈습니다."
"알았다."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누마는 눈바닥에 무력하게 팽개쳐져 있는 두 명의 유학자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얼마만인가요?."
누마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코리온에게 다가섰다. 병색까지 완연한 창백한 모습의 코리온에게 얼굴을 바싹 붙인 누마는 들릴 듯 말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정말 신기한 일이군요. 이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건강한 사람이 이틀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도 못 올 거리인데......어떤 놈이 도와줬죠?"
눈을 부릅뜬 코리온은 아무 대답도 않은 채 누마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순간 압도당한 누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코리온의 턱을 거칠게 붙들었다.
"이봐, 나도 내 부하들이 미신이나 믿는 미친놈 취급받아서 기분이 지랄 같거든? 네놈 도와준 그 털북숭이 괴물놈 누군지 밝혀낼 수만 있다면 저 여기서 무슨 짓이든 할거야. 매력적인 유학자선생님."
갑자기 씨익 웃음을 지은 코리온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럼, 날 고문이라도 할 텐가?"
"내가 못할 거라고 믿나?"
누마가 코리온의 얼굴에 칼날을 들이대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이것보다 더하게 말인가?"
태연한 표정의 코리온이 자신의 맨 어깨를 드러내 보였다.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참혹한 고문의 흔적에 누마가 멈칫 하고 말았다. 앞을 가로막는 하심을 거칠게 밀어낸 누마는 코리온의 멱살을 붙들고 거칠게 일으켜세우며 다시 한번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말해. 그 털북숭이 괴물이 누구냐?"
"선비는 한번 한 말을 뒤집지 않는 법이라네. 젊은이."
"썅!"
코리온의 상처 입은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친 누마는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진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을 벌거벗기고 짓이겨서 이놈들 앞에 던져줄 거다. 그러니까 당장 말해. 널 도와준 놈이 누구야?"
"어딜 무엄하게!"
소스라치게 놀란 하심이 누마의 발목을 붙들었다가 그의 발길질에 채이며 다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누마는 두 명의 병사들에게 양 손목을 밟힌 코리온의 웃옷을 거칠게 벗겨 내렸다.
"내가, 내가 말하겠소!"
보다못한 하심이 누마의 발목을 다시 붙들며 호소했다. 병사들에게 사지를 붙들린 채 이를 악물고있던 코리온이 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명령이네, 말하지 말게. 예킨터스 교수."
"하지만 학장님을......"
"이보다 더한 일도 겪어봤으니......"
침통한 표정의 코리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새끼가!"
누마가 코리온에게 다시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옷이 풀어헤쳐진 코리온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눈을 헤치며 달려오는 요란스런 차 소리에 뒤를 휙 돌아보았던 누마와 병사들은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침엽수 숲 사이를 뚫고 들어온 차 한 대가 도망치는 병사들 몇을 짓뭉개며 누마를 향해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거 뭐야!"
코리온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던 누마는 비명과 함께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의 옆을 지키던 두 명의 병사를 공중으로 날려버린 그 차는 바로 옆에 있던 병력수송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요란스레 들이받은 후에야 그 정신나간 폭주를 멈추었다. 후진해서 빠져나가려 시도하던 그 차는 차 앞쪽이 거대한 병력수송차 밑에 박혀 빠지지 않자 잠시 요란스런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아이! 썅! 재섭게 걸려버렸네!"
문을 확 열고 튀어나온 자이납은 병사 두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며 달려나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엑! 학장님이다!"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눈밭에 쓰러져있던 코리온을 어깨에 번쩍 둘러멘 자이납은 앞을 가로막는 병사의 코를 박살내며 방향을 휙 돌려 숲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놈 잡아!"
누마의 명령에 차를 출발시키려던 병사들은 자이납이 타고 온 차와 엉켜 꼼짝도 못하게 되어버린 자신들의 병력수송차에서 신경질을 내며 도로 뛰어내렸다. 그새 자이납은 숲의 바위와 쓰러진 나무들을 귀신같이 피해 뛰어넘으며 그들의 시야에서 잽싸게 도망치고 있었다.
"뭔 놈이 저렇게 빨라!"
큰 키의 남자 한 명을 어깨에 지고도 엔간한 사람보다 빨리 내달리는 그의 모습에 경악한 병사들이 헐떡이며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세 명의 병사들은 방금 자신들이 잡아죽인 플라칼 가 치안군의 차에 뛰어올라 자이납을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자이납과 학장이 달아난 방향을 바라보며 이를 갈고있던 누마는 여전히 눈밭에 쓰러진 채 미소를 짓고있는 하심의 멱살을 확 붙들었다.
"저놈이냐!"
"난.......학장님 명을 따르네."
"썅!"
누마는 이번엔 하심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하심에게 화풀이를 하던 누마는 뒤에서 또다시 들려온 차 소리에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휙 돌렸다.
"저건 또 뭐야!"
기겁을 하며 도망치던 누마는 뒷덜미로 날아온 무언가에 호되게 얻어맞으며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또다시 병사들을 뭉개며 돌진해온 차는 이번에는 하심의 옆에 정확히 멈춰 섰다. 그리고 문이 홱 열린 그 안에서는 지난번 눈밭에서 누마를 당혹하게 했던 그 '회색털 괴물' 확 튀어나왔다.
"학장은?"
"모, 몰라요, 누가 데리고 저쪽으로 달아났는데....."
자신을 번쩍 안아주는 카렐의 가슴에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묻으며 하심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숲 한쪽을 가리켰다.
"젠장, 그건 또 누구야!"
앞을 가로막는 두 병사를 주먹을 내질러 짓뭉개버린 카렐은 차에 다시 훌쩍 뛰어올라 숲을 향해 몰아가기 시작했다. 하심의 말대로 코리온을 어깨에 짊어진 한 녀석이 쫓아오는 차를 피해 눈밭을 정신없이 지그재그로 내달리고 있었다.
"자이납?"
차에 최대한의 속도를 붙인 카렐은 창을 열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여기! 여기다!"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달아나던 자이납의 예민한 청각은 멀리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바로 반응을 나타냈다. 뒤를 휙 돌아본 자이납의 얼굴에 갑자기 희색이 감돌았다.
"계속 가! 내가 따라붙을 테니까!"
자이납을 뒤쫓던 차의 꽁무니를 거칠게 들이받아버린 카렐은 그 힘에 밀린 차가 나무 둥치를 들이받고 잠시 허우적거리는 새 급히 방향을 틀어 자이납을 쫓아 달렸다.
"빨리 타!"
달리는 차문을 확 열어 젖히며 카렐이 옆에 달리는 자이납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요! 좀 받아요!"
지고있던 코리온을 먼저 차안에 확 밀어 넣은 자이납이 카렐의 차에 훌쩍 올라탔다.
"저 개새끼들!"
뒤따라오는 추격병들의 차를 향해 혀를 쑥 내민 자이납은 엉덩이를 한 번 흔들어 보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카렐과 코리온 일행, 그리고 얼떨결에 합류한 자이납까지 4명이 탄 차는 쫓아오는 남부 병사들을 따돌리며 거친 눈밭을 가로질러 시내 쪽으로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쿠엘스크 외곽에 도착한 샤드니는 자신이 이미 한발 늦었음을 직감했다. 도시 일대를 완전히 포위한 5천 여명의 치안군들이 드나드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차량들까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도로의 검문소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던 샤드니에게 셔틀을 타고 이곳에 도착한 베흔이 사뭇 굳은 얼굴로 말을 건넸다.
"연락 드리려 했더니 벌써 오셨구려?"
"어딘지 변명같이 들리는군요."
샤드니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대공주저하께 아드님이 살아 계시다고 알려드리기는 했지만......그 뒷소식이 영....."
베흔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북쪽에서 차 몇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검문소 앞에서 멈춰선 차안에서는 파랗게 질린 대공주와 남편 예르마크 경, 푸아킨과 우베가 허둥지둥 내려서고 있었다. 대공주가 얼핏 보기에도 음산해 보이는 거대한 공단도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명처럼 외쳤다.
"코리온이 저 도시 안에 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대공주저하."
"그런데 여기서 뭣들하고 있는 거야?"
"불손한 세력이 리쿠 학장님을 납치해 데리고있는 듯 합니다. 학장님을 발견해 모셔오려던 저희 치안군들이 놈들에게 당해서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베흔이 뒤에 서 있는 누마와 그 부하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대공주가 순간 이를 빠드득 갈았다.
대공주는 눈앞의 저 뻔뻔스런 근위대장이 무슨 뜻으로 말을 하려는 것인지 모를 바보는 아니었다. 근위대와 남부의 완벽한 조작극을 빤히 알면서도 무력하게 속아주고 있을 수밖에 없는 대공주는 대꾸한마디 못한 채 뒤로 휙 돌아서며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푸아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가 이번엔 전하를 납치범으로 몰려 할 것입니다. 발견 즉시 대군마마를 해치고 모든 죄를 그분께 씌우려 할겁니다. 녀석이 함께 있는 게 태자전하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별히 조심해서 대하십시오. 녀석이 뭐라 하건 무조건 오냐오냐하시고 그냥 따라주십시오."
"으, 응,"
대공주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대공주에게 무어라 더 말하려던 푸아킨은 갑자기 옆에 착륙하는 작은 셔틀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있었다. 근위대 마크가 새겨진 셔틀에서는 쿠베와 카인, 십여 명의 근위대 가디언들이 중무장을 한 채 내려서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뭡니까? 근위대장!"
창백해진 대공주가 대뜸 베흔에게 언성을 높였다.
"지금 학장님을 잡고있는 건 두 놈입니다. 태도나 행동거지를 보아 가디언이 틀림없습니다. 녀석이 행여 학장님을 해치기 전에 필살하려면 이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울고있는 대공주에게서 떨어져 선 베흔은 목에 붕대를 한 누마와 쿠베, 카인을 옆에 불러들였다. 카렐이 던진 돌멩이에 뒷덜미를 제대로 얻어맞은 누마는 목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베흔이 누마를 돌아보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널 처음 덮친 놈이 여자같다고 했나?"
"예. 키는 저와 비슷했고 몸이 엄청나게 날랬습니다. 큰 어른 남자를 어깨에 메고 병사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정도였습니다. 눈 아래를 가려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검은 눈동자에 검은 머리칼, 갈색피부였습니다."
"말투는?"
"목소리는 조금 탁하고......서부 억양 같았습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린 베흔은 대공주 곁에 서서 무언가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던 우베를 휙 돌아보았다. 녀석과 함께 온 두 명이 어젯밤부터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베흔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두 번째 놈은?"
"키가 꽤 컸고.......털망토를 머리끝까지 써서 생김새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놈보다 더 크고 빨랐고 힘도 더 센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정신을 잃어서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베 놈과 함께 온 그 두 녀석인 게 확실해. 하여간 귀찮은 전사단 놈들."
50점 짜리 결론을 내린 베흔이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마가 눈을 번득이며 덧붙였다.
"지금 도시 일대에 정밀 감청체계를 가동했으니 녀석이 통신을 시도하는 즉시 그 위치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천명이 넘는 치안군이 일대를 구석구석 수색하고 있으니 이제 잡히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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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 묘지에 자리잡은 모디아크 공주의 묘는 2년 반 전 죽은 어머니 세나우스 2세의 묘소 바로 밑에 만들어져 있었다. 공주의 장례식을 위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다시 모인 5명의 태자들 사이에는 사뭇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각각의 부인 혹은 남편과 나란히 서 있는 중앙에서 주페 혼자만이 넋 나간 표정으로 코리온과 함께 서 있었다.
남편 오넬론과 함께 서 있던 세네피스 태자빈이 주페를 안고있는 코리온을 한 번 매섭게 째려보았다.
죽은 동생의 시신을 한참이나 껴안고있던 주페는 코리온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후에도 그의 가슴에 기댄 채 뜨거운 눈물을 혼자 삼키고 있었다. 형제들 중 동생들에 정이 가장 많았던 주페는 사뭇 냉랭한 분위기의 이 장례식장에서도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전혀 감추지 않은 채 눈물로 그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상주가 되어야 할 모디아크의 남편과 친아버지는 살기등등한 다른 태자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장례식 공식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리고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두 명의 나이 어린 대군들만이 숙부인 주페에게 안긴 채 철없이 칭얼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에게 흰 꽃 한 송이씩을 쥐여준 주페는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코리온, 나 좀 보자."
막내 레곤 공주가 오빠와 함께 있던 아들을 억지로 끌어내더니 인기척이 없는 한쪽으로 끌고 들어왔다.
"너 언제까지 거기 계속 있을 거냐?"
어머니의 느닷없는 추궁에 코리온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음 번 황제가 결정날 때까지 잠시 학교 쉬고 내 곁에 있도록 해."
"곤란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지시에 코리온이 딱 잘라 거절했다.
"뭐?"
"주페 숙부께는 제가 필요합니다."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때인지도 모르고 그러는거냐! 네가 보좌관인지 뭔지 한다고 근위대에서 널 보는 눈이 곱지않아!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황제가 결정나면 나머지 태자들이라고 무사할 것 같냐? 주페 오라버니도 나처럼 중립이라고 말은 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야지!"
"압니다."
코리온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전 숙부님과 기꺼이 운명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너 미쳤구나!"
흥분한 레곤 공주의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코리온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제게 새로운 삶을 주신 분이시니 제가 그분을 위해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망연해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주페에게 돌아가려던 코리온은 순간 움찔 하고 있었다. 슬픔에 젖어있던 주페가 로노 장태자에게 다가서며 굳은 얼굴로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었다.
"모두 형님의 책임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음모가 숨어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동생의 말에 로노가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넬론 쪽을 잠시 돌아보았던 주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디아크가 그 정도 패전으로 자진할 약한 아이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정보통을 통해 입수한 바로는 오넬론 측 소행인 듯 합니다."
주페가 말한 '정보통'이라는 말에 코리온은 바로 얼마 전, 자신마저도 배제한 채 있었던 주페와 오르마즈와의 독대를 바로 머리에 떠올렸다. 코리온이 이를 빠드득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망할 작자가 감히......'
자살이 아닌 것 같다는 주페의 말에 로노 장태자 역시 많이 놀란 듯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사뭇 비장한 표정의 주페가 말을 이었다.
"오넬론은 모디아크의 9만 군대 자체에 처음부터 큰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겁니다. 이번 일로 남부가 형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하는 게 하고 형님의 명분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을 겁니다. 오넬론은 근위대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도울 것이라 믿고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근위대는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왔는데......"
로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페가 목소리에 더 힘을 주어 말했다.
"절대 근위대를 믿지 마십시오. 근위대를 등지고 제위에 오른다는 헛된 욕망에 빠지셔도 안됩니다. 제가 서부를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면?"
긴장한 표정의 로노 장태자가 동생에게 다시 물었다. 모디아크의 죽음으로 도덕성과 명분에 치명타를 입은 그로서는 그 동안 괜한 심통에 거리를 두어온 이 동생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부연합군이 출범하면 오넬론도 따돌리고 근위대도 무시하시면서 당당하게 황궁에 기습입성 하십시오. 저와 타니토, 동부와 서부가 공개 지지할 테고, 레곤은 어차피 중립을 선언했으니 태자 4명 중 3명의 힘을 받는 셈입니다. 설사 근위대가 막더라도 압도적인 힘으로 돌파해 끝내버리십시오."
황궁을 무력으로 공격하자는, 평소의 주페답지 않은 제안에 로노 장태자가 많이 놀란 듯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부가.......그 무서운 오르마즈가 있는데......"
로노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지 계속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항상 싸움만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던 동생의 느닷없는 '기습진공계획'에 로노 장태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주페가 눈동자를 번득이며 힘주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오르마즈 경은 지금 가문과 별도노선을 걷고있습니다. 북부가 짐짓 오르마즈 경이 있는 척 뽐내고 있지만 다 허세입니다."
"정말?"
갑자기 눈에서 빛을 내기 시작한 로노가 오넬론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물었다. 주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르마즈 경이 곧 귀환해 투르케스크 공을 강제로 하야시키고 북부를 장악할 겁니다. 새 북부 최고제후가 될 오르마즈 경과 제가 제후연합군을 함께 이끌겠습니다."
주페가 직접 군대를 이끌겠다는 말에 순간 경악한 코리온은 하마터면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고 말았다. 주페가 한숨을 내쉬며 맑고 청명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피해야 하겠지만......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면.......제가 다시 무기를 잡고 군을 지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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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vein.zio.to/에서 오늘(3월 1일)부로 본예약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