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31 회: Part 11. 누가 수국을 좋아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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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칼 가 제후군 제1진입니다. 중장보병 1만 5천과 기사단 2천입니다."
숙영지 공사에 한참인 남부제후군들을 바라보던 코리온에게 샤드니가 말했다. 망원경을 눈에 대고 그들을 바라보던 코리온이 낮게 중얼거렸다.
"생각했던것보다는.....군기가 무척 정연하군......저정도 군대가 패했다니......녀석들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구나."
망원경을 샤드니에게 돌려준 코리온은 옆에 내려놓았던 6현금을 다시 세워들고 어깨에 걸었다. 조금은 가늘고 애절한 현의 떨림을 배경으로 샤드니의 딱딱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페 태자저하께도 지금 서부연합군 정도의 강력한 군대만 있었다면 결코 제위등극에 실패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모두가 무관심했던 네페티 누님 탓입니다."
샤드니의 원망섞인 한마디에 코리온은 가타부타 말도 않은 채 현을 짚은 왼쪽 손가락과, 현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활을 통해 전해져오는 그 섬세한 진동에만 온 감각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듯 닫혀있는 눈꺼풀 위로 긴 갈색 눈썹이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등뒤로 바싹 다가선 샤드니는 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턱을 걸며 날씬한 허리를 꼭 껴안았다.
"이번엔 절대 실패하지 않을겁니다......학장님께선......태자저하같이 갈길을 거역하고 계시지 않으니......"
자신의 귀에 얼굴을 부비는 샤드니의 속삭임에 코리온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50만 유학자들은 기꺼이 학장님을 새 황제로 받아들일겁니다."
'황제'라는 말에 코리온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샤드니를 돌아보았다. 부드럽게 울려퍼지던 6현금 소리도 딱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네 지금 뭐라 그랬느냐?"
"다섯 태자는 제위승계권이 없고, 총리라는 자는 제위를 물려받기에는 너무도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니......S-7세대중에 최연장자이시고 선대황제와 가장 혈연이 가까운 학장님께서 제위를 물려받으시는 것이 당연치 않겠습니까?"
"내 언제 제위에 욕심이 있다 하였느냐?"
"우둔한 선대황제가 현자에게 제위를 선양하지 아니하였으니 방벌로서 포악한 자들을 몰아내고 학장님과 같으신 분이 새로운 군주가 되심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것이 맹자께서 말씀하신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샤드니가 코리온을 껴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활을 움켜쥔 코리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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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합니다. 그자를 과소평가한 제 불찰입니다."
호통을 치는 투르케스크 공에게 고개를 숙이며 당혹해하고 있는 건 그의 맏아들이며 오르마즈의 남동생인 일라드 레즐린 카파키였다.
"7명이나 되는 자객들이 태자 한 명을 못잡을줄은......"
"하여간......"
주페 태자 암살계획에 실패한 큰오빠 일라드를 노려보며 세네피스 태자빈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는 아버지 투르케스크의 최고참모답게 아버지를 대신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 거칠고 잔혹한 오빠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기껏 레곤녀석도 불러내놓았더니 일을 망치시고......주페 태자가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녔다가 잘못되면 우리 계획이 다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아셔야죠. 태자들이 중립을 선언하면 우리 입지만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안그래도 레곤 공주하고 푸아킨 녀석 때문에 신경쓰이고 있는데 주페 태자까지 놓치시다뇨!"
여동생의 배신을 알 턱이 없는 일라드는 그의 핀잔에 말없이 얼굴만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행방불명되어버린 그 믿음직한 적장자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너무도 미덥지않은 이 맏아들을 곱지않은 눈으로 내려다보던 투르케스크 공이 일그러든 얼굴로 중얼거렸다.
"망할 오르마즈 이놈. 도대체 어디 쳐박혀있는건지.....이런 중요한 때에....."
"오르 언니는 이럴 땐 차라리 없으신 게 낫습니다."
넥타 한 모금을 들이키며 세네피스가 여전히 싸늘하게 말했다. 막내딸의 조금은 건방진 한마디에 투르케스크 공이 갑자기 그를 의심어린 눈초리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이 '너무나 똑똑한' 막내딸이 명성이나 영향력에서 자신을 한참 앞서고 있는 거물 맏언니를 내심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투르케스크 공도 잘 알고있었다.
아버지의 시선을 넌즈시 무시하며 세네피스가 말을 이었다.
"오르 언니 성격에 지금 이런 일을 달가워할 리가 없지요."
"오르마즈는 우리 가문의 적장자고 후계자다. 네 또다시 그런 소리를 하면 그냥 놔두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세네피스가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오르마즈의 자유분망함과 개혁파적인 성향은 물론이고 방종에 가까운 자유분망함에 얼핏 불만 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였지만 그런 골칫덩이 맏이에 대한 믿음만은 세네피스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세네피스의 한마디의 댓가는 아버지의 핀잔 뿐이었다.
투르케스크가 세네피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레곤 공주하고 푸아킨을 네가 다시 만나보도록 해라. 레곤 공주가 제위경쟁에 겁나서 안뛰어들겠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최소한 친오빠 오넬론을 지지한다는 의사 정도는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주페 태자 꼬임에 넘어가서 타니토하고 모디아크 공주가 중립 선언을 하는 도미노를 막을 수 있을게다."
"이번에 원리주의 유학자놈들이 주페를 지지하겠다고 나섰으니 그 두 공주도 신용을 잃은 주페 태자에게 쉽사리 설복되지는 않을겁니다."
세네피스가 얼핏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투르케스크 공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서부제후놈들이 안움직이는 게 이상하단 말이야. 일이 이쯤 됐으면 주페 태자녀석한테 계속 바람을 넣고있어야 하는데......"
종가에 들렀다가 파예드 아카데미로 돌아온 샤드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일이 이쯤 됐으면 당연히 주페 태자를 밀어주리라 믿었던 누나 네페티 부인에게서 샤드니가 받은 선물은 따귀 한 대 뿐이었다. 또다시 종장인 자신의 지시를 어기면 가문에서 파문시켜버리겠다며 그답지않게 화를 머리끝까지 낸 네페티 부인은 샤드니의 설명 따위는 듣지도 않은 채 그를 집 밖으로 쫓아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교수실에서 샤드니를 맞아준 코리온은 그의 볼멘소리를 줄곧 무표정하게 듣고있었다.
"네페티 부인이 보자마자 자네와 나를 배후로 지목했다고?"
"예. 뭐라 설명드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보자마자 호통부터 치시는데......"
씩씩거리는 샤드니에게 차 한잔을 부어준 코리온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거 이상하군......방금 주페 태자저하와 통화했는데......그분은 나를 의심하고 계신 기색을 전혀 비치지 않으셨어. 물론 속으로야 어느정도 의심은 하셨겠지만.....확신컨대 날 지목하지는 않으실걸세. 그런데 그 겁많고 신중한 네페티 부인이 대놓고 자넬 지목했다?.....태자저하와 네페티 부인이 약간의 친분은 있으신 건 사실이지만......그래도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지난번 자네 종가에서의 모임에는 딱 다섯사람만으로 비밀리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코리온의 말을 들은 샤드니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조심조심 중얼거렸다.
"두겐 형님이나 누님은 그렇게 눈치가 빠르신 분은 아닙니다. 태자저하께서 말씀해주신 것이 아니라면......누님이 절 따로 감시했던지......아니면 누군가 눈치빠른 녀석이 누님을 사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찻잔을 손에 쥔 코리온은 굳은 얼굴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샤드니는 코리온의 한쪽 귀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그의 연두색 귀걸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코리온이 당장은 태자의 뜻을 거스르고 있지만 그것이 그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던가, 아니면 그를 이용해 세속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수작이 아니라는 것쯤은 샤드니 스스로도 잘 알고있었다. 아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주페 태자에 관한 생각 뿐이었다. 태자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코리온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는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반짝였고, 가만히 있다가도 뜬금없이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웃음짓는 때도 있었다.
어쨌든 제3자인 샤드니로서는 이 아름다운 남자를 이렇게 곁에서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정도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코리온이 샤드니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힘 좀 써주어야겠군. 부인이 자넬 미행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부인의 곁에서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있는 기생충같은 작자가 있는 건지 알아봐주겠나?"
"알겠습니다. 밝혀내면 어쩌죠?"
"천하의 순리를 거스르려는 도당이니.......어찌 그대로 용서하겠나. 자네 손으로 죽음을 선사해주게."
코리온의 너무나 단호한 한마디에 샤드니가 흠칫 놀랐지만 곧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코리온이 샤드니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나약한 네페티 부인에게는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으니.....멀지않은 시일 내에 자네가 플레렌 가를 장악해줬으면 좋겠네. 자네 양아버지가 원로회 의장이니, 지지를 얻으내는 건 어렵지 않을걸세."
"제게 맡겨주십시오."
코리온의 그 명쾌한 결정이 너무나 마음에 든 샤드니가 입가 가득 미소를 품으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순간, 가문 내에서 최고제후인 누나를 누르고 샤드니 플레렌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수도 있었다. 덧붙여 자신이 그리도 선망하는 코리온의 믿음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임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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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히 사람 잡겠군."
남부제후군 1진을 이끌고 동부 탈라스의 키타이 사막에 도착한 릴라크가 뜨거운 태양을 올려보며 연신 투덜거렸다. 1년 내내 온화한 날씨의 남부에서 사막이라고는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병사들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물부터 찾고 있었다. 게다가 '춥거나 따뜻한' 정도가 고작이던 샤레이 행성계에 비해 이곳은 그냥 서 있는것도 버거울 정도로 바싹바싹 말리는 한낮 아니면 샤레이에 못지않은 강추위가 몰아치는 밤시간이 번갈아 반복되면서 벌써부터 탈진해나가는 병사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게다가 틈틈히 몰아치는 모래바람 덕택에 사역병들은 긴 천으로 얼굴을 둘둘 말은 채 작업하거나 에어필터가 달린 투구까지 쓰고 작업해야 하는 이중고를 감당하고 있었다.
"제기랄, 서부새끼들만 신났겠군."
조금 떨어진 맞은편의 서부제후군 숙영지를 바라보며 릴라크가 또한번 투덜거렸다. 사막기후에 익숙한 체질 자체는 말할것도 없고 서부제후군 갑주 대부분은 이런 사막의 극단적인 날씨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물건이었다. 돈칠한 서부 장갑보병들의 최고급 장갑은 말할것도 없고, 기병이나 낙타병들의 중장갑 역시 환기와 보온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특수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에 비하면 플라칼 가 제후군들의 장갑은 누구 말마따나 깡통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폐쇄적인 구조였고, 차라리 추운 때라면 모르지만 낮시간의 살인적인 더위에 쓸만한 물건이 결코 아니었다.
"코리온인가 그새끼는 그 좋은 남부 놔두고 사막 따위가 뭐좋다고 서부에 꼴아박고 살까 몰라. 엑,"
생각없이 씹어대던 릴라크는 서부 숙영지 쪽에서 다가오는 일군의 무리들에 깜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눈처럼 흰 백마에 오른 큰 키의 유학자 한 명과 녹색빛 갑주 차림의 샤드니, 호위하는 십여명의 근위기병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저놈도 양반되긴 틀렸군."
혼잣말로 중얼거린 릴라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리온에게 다가가 머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
"플라칼 가 제후군 제2기사단장이며 중앙의 상급귀족인 릴라크 라자루스 예리노프입니다."
서부인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는 '구체적인 신분과 계급'을 반드시 덧붙여야 한다는 것을 베흔으로부터 못이 박히도록 듣고 이자리에 서 있는 릴라크는 배운대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예드 아카데미 학장으로 리 리쿠의 7대손이며 세나우스 2세 폐하와 데오도스 호지 사이에서 난 제6태자인 레곤과 예르마크 세닉 사이에서 난 대군 코리온 세닉 리쿠일세."
'제길, 더럽게 기네. 적당히 좀 해라.'
무심코 고개를 든 릴라크는 그 빨려들어가는듯한 코리온의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릴라크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본 코리온이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길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게나. 원래 황족 소개는 그렇다네."
덜컥 놀라버린 릴라크는 무안한 기색을 가까스로 감추며 어색하나마 웃음으로 땜질하고 있었다. 코리온과 샤드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 릴라크는 내심 '여자로서' 솟구치는 묘한 관심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생긴 거 하나는 끝내주는걸. 키도 크고......휴우.'
남부 숙영지를 시찰하러 나온 코리온의 눈부신 백마 옆에 바싹 달라붙으며 릴라크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고 있었다.
"히야아, 리쿠 학장님이시다,"
모래 속에 몸을 파묻은 채 멀리서 망원경으로 연합군 새 숙영지를 정탐하러 나온 자이납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정신 좀 차려. 잘생긴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차려."
근위대 서부 파견군 출신의 카토가 쓸데없는 데 넋나가있는 자이납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정신이 나가 있는 자이납에게는 그다지 소용도 없었다.
"우와, 샤드니 님도 같이있다니......역시 여길 오길 잘했어......어떡해서든 두 분 중 한분을.......아니, 둘 다면 훨씬 좋겠지......사로잡아서 내 옆에서 주무시게 해야지, 킥킥."
"옆에서 '주무시게'만 하시려구요?"
시로의 농담에 자이납은 여전히 눈에서 망원경을 떼지 않은 채 태연하게 대꾸했다.
"내가 미쳤어요?"
서부연합군과 플라칼 가 제후군이 합류하는 이 혼란통을 틈타 적 기지를 정찰하기 위해 나와있는 이 셋에게는 이 기지의 구조는 물론이고 남부제후군의 사막전 준비상황과 그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엑, 저 망할 년은 뭐야? 감히 학장님한테 바싹 붙어서....."
"릴라크 예리노프. 플라칼 가 2기사단장이로군."
시로의 대답에 자이납이 입을 있는대로 삐죽거리며 무어라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저런 중장갑을 입고있다니......고초가 이만저만 아니겠소. 내 알기로 남부에서도 사막전을 대비한 개량형이 있다 들었소만."
자신의 고민거리를 첫마디에서 찍어내는 코리온의 모습에 릴라크가 또한번 놀라고 있었다.
"학장님께서도 경험이 있으신가보군요. 갑주만 보시고 저희 고초를 그리 빨리 생각해내시다니."
"내 태어나 칼을 써본 건 종이를 자르는 손칼 외에는 없었다오."
코리온의 황당한 대답에 릴라크가 또한번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넓은 어깨와 가슴, 길고 균형잡인 몸매나 능숙한 승마솜씨를 보아서는 얼핏 제대로 단련을 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개량형은 지금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공급이 충분하지 못해 사관급 이상에만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들 셋의 옆으로 덩치 꽤나 좋은 3명의 남부 사역병들이 물탱크를 지고 달려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에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만 코리온만이 잠시 그들에게 시선을 주었을 따름이었다.
"내 물 한모금 마시고싶군."
코리온의 한마디에 근위기병이 급히 그들 사역병들을 불러세웠다.
"엑,"
화들짝 놀란 자이납이 물탱크를 지고 급히 자리에 멈춰섰다.
"것봐, 멀리 돌아가자니까."
시로가 코리온과 샤드니 구경을 하겠다며 이곳으로 일행을 끌고온 자이납에게 대뜸 이를 드러내며 투덜거렸다. 20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부른 근위기병이 빨리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자이납이 일행 둘을 놔둔 채 혼자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됐어요. 됐어. 내가 책임질테니까. 가고있어요."
얼굴에 둘둘 말은 천조각을 단단히 여민 자이납은 물탱크를 지고 천연덕스럽게 코리온 일행에게 다가섰다.
"학장님께 물 한잔만 올려라."
기병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자이납은 지고있던 탱크에 달려있던 컵들 중에 제일 깨끗한것을 골라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아 말에 올라있던 코리온에게 두손으로 공손하게 바쳤다. 무표정하게 손을 내민 코리온은 자이납이 내민 물잔을 받아 그다운 조심스런 태도로 들이키고 있었다. 물론 이 '천박한' 사역병 따위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량형 갑주 보급은 언제쯤이면 마무리될 것 같소? 릴라크 경?"
물을 마시며 던진 코리온의 질문에 릴라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솔직히 라마단 기간 끝나기 전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긴, 라마단이라고 이틀밖에 안남았으니....."
별것도 아닌 코리온의 말에 릴라크가 괜히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물에 조금 젖은 긴 생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는 코리온의 수려한 얼굴에 줄곧 멎어있었다.
물을 다 마신 코리온이 잔을 자이납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코리온에게 또한번 고개를 꾸벅 숙인 자이납은 마치 도망치듯 후다닥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고녀석 발 되게 빠르네. 물통도 진 주제에."
기병 한 명이 정신없이 달려가는 자이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응?"
생각없이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코리온이 푸르스름한 면도자국이 남아있는 턱과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며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차가운 물잔에 맺혔던 물방울이 떨어졌는지 그의 턱과 보라색 비단머플러가 조금 젖어있었다. 결벽증에 가까울정도로 깔끔쟁이인 코리온이 물방울 정도라고 그냥 넘어갈 턱이 없었다.
"어디갔지?"
말 어깨에 손을 내밀었던 코리온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였다. 땀과 먼지를 닦기 위해 말 안장고리에 걸어두었던 수건이 어디로 갔는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코리온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샤드니 경, 내 수건 봤는가?"
"글쎄요, 모래바람에 떨어진 모양입니다."
샤드니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기 위해 뒤적거리는 새 코리온의 눈 앞으로 누군가가 꽃무늬 작은 비단 손수건을 불쑥 내밀었다. 릴라크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며 코리온이 그답지않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푸헤헤, 또 한건 올렸다!"
아직도 뒤적거리며 수건을 찾고있는 코리온을 뒤로하고 그의 땀냄새가 밴 면수건에 코를 파묻으며 자이납이 먼저가는 시로와 카토를 쫓아 신나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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