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7 회: Part 8. 떡갈나무 언덕에 홀로 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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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문의 종장으로서 자리를 잡은 페로는 생각외로 난감한 일이 꽤 많음을 깨달았다. 자이센 가는 신흥가문인 만큼 다른 가문과 비교해 그 구성원부터가 얼마 되지 않았다. 페로 역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나마 믿을만한 배다른 형제들을 이런저린 잡다한 일에 맡겨놓기는 했지만 증조부인 제수스 자이센부터 통틀어서 직계라고 할만한 적생자들은 20명 남짓이 고작이었다.
넓은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 지방제후가 아닌, 황제령에 기반을 둔 중앙귀족이라 머릿수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남극성당 부제학으로 있는 작은아버지 헤데론 단 한명뿐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황실에 최대한 발을 뻗쳐야 하는 페로로서는 이래저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페로에게 외종조부 샤자한 공이 '괜찮은 가문'과의 혼인을 권유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페로는 그 문제에 관해서만은 단호했다. 눌레딘 가에서 파혼을 없던 일로 하면 어떻겠냐는 뻔뻔스런 제안이 샤자한 공에게 들어왔었다는 소식도 들어왔지만 그쪽은 페로가 뭐라 하기도 전에 샤자한 공이 먼저 딱지를 놓아버렸다는 소문이었다.
몸값이 올라간 페로에게는 이제 남부 최고제후 델루지 가나 동부 2제후 트라티누스 가, 북부 2제후 펠머슨 가까지, 한단계 높아진 다른 가문들에서 공식적으로 혼담이 들어왔지만 어엿한 종장인 페로는 가문 일이 바쁘다는 핑게로 아직까지는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결혼과 사랑을 따로 놓고 생각하기 시작한 페로가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구질구질한 애정문제따위는 아니었다. 페로 스스로도 하나라도 좋으니 자신을 도와 가문을 이끌어갈 믿음직한 자녀들의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에 덧붙여 이제 종장으로서의 허영심까지 가득찬 페로에게는 기껏해야 각 지역 2제후 종가자녀들이나, 최고제후의 조카나 종손자 정도로도 도무지 성이 차지를 않았다.
결론은 '스스로가 몸값을 좀 더 올리는 것' 뿐이었지만 그건 또 첫번째의 문제와 맞물려 악순환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뒷배경이 절반이상 좌우하는 황실에서 잘나가는 친척하나 없는 '가디언 장사꾼 가문'의 젊은 종장이 혼자 힘으로 한때 제국을 뒤흔들던 할아버지의 위세를 되찾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결국 페로로서는 '편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겐 다른 건 몰라도 황실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 많은, 충성스런 가디언들이 있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나?"
엄청난 뇌물을 바쳐가면서 무려 열흘을 기다려 겨우 얻어낸 황제와의 개인 알현은 그의 어머니가 가디언 수련장 개설허가를 얻어냈을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종장 페로로서는 가문의 사활이 걸린 단 한번의 기회였다. 크지않은 개인 알현실에 실리페 베로 황후와 함께 앉아있던 세나우스 3세 황제는 페로의 뜻밖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꿇어앉은 젊은 페로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소인의 가문에는 천오백여명의 충성스런 가디언이 있사옵니다. 이들을 저리 놀리는 것은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되오니 폐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황제령에서 부쩍 잦아진 도적떼과 노예잔당를 소탕하는 선봉을 맡겠사옵니다."
문득 고개를 든 페로는 황제의 옆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을 한---어린시절, 카렐을 그리도 무자비하게 끌고갔던----근위대장 베흔을 힐끗 바라보았다. 결정권은 황제라기보다는 사실상 저자의 손에 있었다. 그가 페로의 건방진 제안을 근위대 권한침해로 받아들일지, 짐을 더는 조력자로 받아들일지는 페로로서도 확신이 없었다.
베흔이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 천 오백의 가디언들을 시장에 내다팔면 어마어마한 거금이 될 터인데,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황실에 봉사하겠다는 다른 뜻이 있는지 궁금하네. 페로 경."
베흔의 반짝이는 거만한 눈빛을 본 페로는 그에게 '속뜻'을 내보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페로는 머리를 조아리며 짐짓 흥분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인의 어머님과 누님이 그 무도한 무리들의 손에 돌아가셨사옵니다. 그리고 소인의 할아버님이신 투모카프 경께서도 노예잔당들에게 돌아가셨으니 저희 가문에서 그들에게 어찌 오랜 원한이 있지 아니하겠습니까. 이제 가문의 전권이 새로이 소인의 손에 주어졌으니 어릴때부터 꿈꿔왔던 도적떼 소탕에 소인의 자그만 힘이나마 보태고 싶사옵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젊은 종장 페로의 '철없는' 대답에 베흔이 하마터면 큭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페로는 짐짓 눈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제발 소인에게 그들을 무찌르고 원수를 갚을 기회를 주시옵소서. 원하신다면 3번 도시 동쪽 인근의 큰 패거리를 5일 내로 몰아내고 제 가치를 보이겠사옵니다."
베흔은 황당한 소리만 늘어놓는 이 젊고 철없는 귀족을 내려다보며 미간에 조금 힘을 주었다. 게릴라식 저항을 하는 도적떼를 5일 이내에 소탕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헛소리에 가깝다는 것을 베흔은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눈앞의 낯선 젊은이가 동부에서 20년이 넘게 직접 도적소탕에 앞장섰던 베테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페로에게는 자신이 아직 황실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젊은이라는 것을 차라리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페로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대신,"
"대신?"
"성공하고 돌아오면 앞으로도 저희가문 가디언들이 계속 도적과 노예 소탕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옵소서."
황제가 베흔을 돌아보았다. 자력보호가 아닌, 공격적인 도적소탕은 상당수가 일반 시민인 그들에 대한 대량사살을 필연적으로 동반할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260년을 전후해 비교적 안정상태에 접어들었던 황제령의 치안은 291년에 있었던 강력한 카파키 가 군대와의 대대적인 전쟁 이후로 많이 악화되어있는 상황이었고, 당시 수치스러울 정도로 최악의 타격을 입은 근위대는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이전같은 상태를 회복하고 있지 못한것이 사실이었다. 페로가 노린 것도 바로 그점이었다.
베흔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젊은 종장의 기개가 대단하구려......폐하. 저 용기가 가상하오니 한번쯤 기회를 주어보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페로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머리를 더 조아렸다. 그는 전쟁을 통틀어 근위대 정규군 7만과 근위대가 보유한 총 가디언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디언 5천을 저세상으로 보내주고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흔을 허덕거리게 만들어놓은 전설적인 명장 오르마즈 경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황제는 페로의 예상대로 근위대장의 대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근위대장의 뜻이 그렇다면 내 한번 믿어보지. 5일 후에 자넬 다시 기다리고 있겠네."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무슨 다른 볼일이 있는지 서둘러 알현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선 페로는 그때까지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실리페 베로 황후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급귀족에 시녀장 출신인 황제의 두번째 정실 실리페 황후는 황실 종친들로부터 제대로된 황후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는 페로 역시도 동감이었다.
남극성당 학부과정 졸업식에서 처음 본 세네피스 카파키 전 황후는 누가보아도 흠잡을데없는 품위와 총명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때 자신들의 부제학이기도 했다는 세네피스 황후에 대한 남극성당 생도들의 흠모는 가히 도가 지나칠 정도였고 페로 역시도 그와 별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수석 생도로서 연단에 올랐던 자신을 가볍게 안아주던 세네피스 황후의 그 짜릿한 포옹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왔던 기억이 페로의 뇌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다른 생도들의 '흠모'가 황후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면 페로의 그것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황후의 얼굴은 틀림없이 옛날 '괴상한 여자아이'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했다. 황후의 얼굴을 마주하던 페로는 카렐이 자랐다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는 황후의 포옹을 카렐의 그것으로 순간적으로 착각하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바로 1년 전 황제와 결혼한 이 새 황후는 그 품위는 어딘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황후에게는 품위넘치던 전 황후가 가지지 못했던 능력이 있었다.
페로는 황후의 만삭이 된 불룩한 배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황제가 그리도 고대하던, 고귀한 '첫 태자'가 들어있었다.
"페로 자이센이라고 그랬나?"
실리페 황후가 웃음띤 얼굴로 물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정말 남자답게 잘생겼구나......키도 크고......몸매도 좋고......나이가 몇살이지?"
"45살이옵니다."
페로의 대답에 실리페 황후의 눈이 꽤나 커져 있었다.
"그럼 결혼은......"
"아직 미혼이옵니다."
갈색의 눈빛을 번득이던 실리페 황후의 입꼬리가 가볍게 치켜올라가고 있었다. 기묘한 눈빛을 남긴 실리페 황후는 당혹스러워하는 페로를 뒤에 남긴 채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페로는 황후의 눈빛이 영 신경이 쓰이는것이 사실이었지만 지금 그런 곳에 정신을 팔고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공언한대로 5일 이내에 도시 동쪽의 패거리를 박살내야 할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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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총 인원의 절반도 모이지 않은 페로의 '용병대' 숙영지는 저녁부터 꽤나 요란스럽기가 짝이없었다. 황제령에서 카렐이 급파해준 슈로 기사단원들과 바툴 가 용사들, 탈라스 계 유목민들은 제네르 경과 카이두 경의 통제하에 정규군다운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2천여명의 요동계 유목민들과 천여명의 샤레이 유목민들은 벌써부터 주도권 다툼을 벌이느라 몇번이나 심한 패싸움을 벌이고 난 후였다.
보다못한 페로가 자신의 영지에서 불러온 5백여명의 가디언들에게 '싸우는 놈들은 무조건 목을 베어버려라'는 엄명을 내려 숙영지 곳곳에 풀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나운 녀석들의 싸움은 도무지 그치지를 않고 있었다. 안그래도 저녁내내 그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페로는 8개의 부족 대표들을 자신의 천막 앞에 불러다가 앉혀놓고는 이를 드러낸 채 잔뜩 화난 얼굴로 상석에 앉아있었다.
"잘들 모였다."
떨떠름한 표정의 페로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좌우에는 제네르와 아메스, 라손 등의 전사단 소속 간부들과 가디언들이 칼을 쥐고 단정하게 서 있었고 그의 등뒤에는 거구의 카이두 경이 도끼눈을 뜬 채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다. 억지로 끌려나오다시피 한 3천여 유목민들이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 광경을 내려보고 있었다.
"너희 8놈들이 싸움을 사주하고 있다는 걸 내 모르는 줄 아나본데,"
부족장들이 이 와중에도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너희 비겁한 새끼들은 감히 부족 용사라고 불릴 자격도 없어."
뜻밖의 말에 그들이 일제히 페로를 올려보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페로가 그들 8명의 뒤를 지키고 서 있던 자신의 가디언들에게 물러나라는 눈짓을 보냈다.
"치사하게 똘마니들 동원해서 싸우지 말고 여기서 너희들이 싸워라. 제일 센 한놈 남을때까지."
"예에?"
"내말 못알아들었나? 지금 여기서 싸우라고 했다. 그럴 용기도 없어서 밑의놈들 대신 싸우게 한 건가?"
"아닙니다......그건......."
"당장 싸우지않고 뭐해!"
페로의 고함소리가 쩌렁 하며 주변을 울렸다. 쭈삣거리며 일어난 그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제일 센 놈에겐 그 부족에서 참수대를 짤 수 있게 해 주겠다. 너희식으로 싸워 봐. 정정당당하게 주먹으로!"
페로의 뜻밖의 명령에 듣고있던 부족장들은 물론이고 아메스와 제네르, 카이두 경까지 기겁을 하고 놀라고 말았다. 규율대인 참수대는 최고지휘관을 대신해 전선에서 도망하거나 규율을 어기는 병사들을 그자리에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특수부대였다. 주도권 쟁탈을 노리는 유목민 족장이라면 족히 노리고도 남음직한 자리였다. 페로의 '상품'에 부족장들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저으기 당황한 아메스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버님, 일개 부족에서 참수대를 짜심은 자칫....."
딸의 입을 틀어막은 페로는 그들에게 빨리 싸우라 재촉했다. 몇몇 부족들에서 자신들의 족장에게 응원의 함성을 올려주고 있었다. 결국 그들 중 한 부족장이 거칠게 웃옷을 벗어던지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흉터가 그득한 그의 건장한 체구에 한쪽에서 큰 소리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치겠군. 저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얼굴을 살짝 찡그린 유학자 제네르가 친구 라손에게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뒤이어 옷을 벗어던진 다른 부족장들 역시 기이한 표정으로 함성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제히 서로를 향해 돌진하더니 3천여 유목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 부족대표들 8명의 난투극이 개시되었다. 저런 황당한 싸움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아메스는 입까지 떡 벌린 채 서로 짓이기고 밟고 두들겨가며 벌이는 처절하기까지 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강자와 약자가 드러나고 있었다. 검은 피부를 한 샤레이 출신의 한 족장은 이미 두 명째의 다른 족장을 '집어던지고' 세 명째의 사람을 공중으로 치켜들고 있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상대를 거칠게 구경꾼무리 쪽으로 내던져버렸다. 이미 두 명을 쓰러뜨린 요동계 유목민 족장 하나가 그의 허리를 거칠게 들이받았지만 그는 끄떡도 않은 채 그의 등을 거의 나무통만한 굵은 팔꿈치로 여지없이 내리찍어버렸다. 결국 그 마지막 족장이 고개를 들었을 때 큰 원형의 모래밭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승리를 직감한 그 족장이 큰 소리로 포효하며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웃통을 벗어던지며 모래밭에 훌쩍 뛰어들었다.
"으엑,"
라손이 자기도모르게 손가락을 꽉 깨물고 말았다. 검은빛이 감도는 역삼각형의 탄탄한 근육질 체구를 자랑하는 페로가 당혹스러워하는 상대의 팔을 나꿔채 모래밭 한쪽 구석으로 거칠게 패댕이쳐버리고 있었다.
"뭐하나! 빨리 안덤비고!"
페로가 모래밭이 날아갈 듯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제일 센 놈에게 참수대를 짜게 해 준다고 했으니 날 꺾어보란 말이다!"
눈에서 살기가 돋아난 그 족장이 째지는 포효소리와 함께 페로의 가슴을 어마어마한 힘으로 들이받아버렸다. 힘에서 밀린 페로가 뒤로 몇 바퀴를 굴러 나동그라지자 라손과 아메스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허, 날 받았어?"
페로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로 범벅이 된 몸 그대로 족장에게 돌진했다. 페로를 받아치려고 몸을 낮추던 상대는 느닷없이 날아온 페로의 발차기에 코를 얻어맞으며 그 충격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썅!"
거의 이성을 잃은 족장이 몸을 날려 머리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페로의 턱을 들이받아버렸다. 충격을 받은 페로 역시 비틀거리며 물러나다가 다시 뒤로 벌렁 뻗어버리고 말았다. 족장은 중심을 잃고 쓰러진 페로를 다른 사람들처럼 들어올려 패댕이칠 작정인지 넘어져있던 페로의 어깨를 우왁스럽게 붙들고 있었다. 페로가 막 들어올려지려는 순간, 놀라운 유연성으로 허리를 한바퀴 감아돌린 페로가 족장의 다리 사이를 정확히 무릎으로 올려찼다.
"악!"
급소를 차인 족장이 페로를 떨어뜨리며 그자리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페로는 낭심을 붙들고 끙끙대던 족장의 얼굴을 다시한번 사정없이 걷어찼다.
"네놈이 참수대를 이끌겠다고? 젖이나 더 쳐먹고 와! 썅! 참수대는 내가 만든다!"
페로가 이미 쓰러진 족장의 얼굴을 몇번이나 더 걷어차며 그 특유의 욕지거리를 계속 내뱉었다.
"또 덤빌 놈 있냐! 있으면 당장 나와! 지금 안나오고 나중에 딴소리하는 개새끼는 모가지를 짤라줄테다! 씨발! 안나와!"
페로가 3천여 유목민들에게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그의 무서운 기세에 완전히 눌려버린 유목민들이 어느새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그 중간에서 유일하게 특이한 모습은 페로의 탄탄한 몸과 터프함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며 혼자서 황홀지경에 빠져있는 라손 뿐이었다.
지친 숨을 고르며 자리로 돌아간 페로가 자신의 칼을 뽑아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슈로 기사단 천오백과 샤레이 행성계에서 온 4천여 중기병은 여기있는 제네르 하크로딘 경이 통제한다! 바툴 가 용사 2천명과 탈라스출신 궁기병대 6천여명은 카이두 경이 맡는다! 일반 경기병대 만 오천은 라손 바얀 경이 관리한다! 내 가디언 다룬이 이끄는 5백여 가디언들은 참수대가 되어 전장에서 달아나거나 명을 어기는 쓰레기같은 개새끼들을 그자리에서 처단할 것이다!"
페로의 서릿발같은 고함에 완전히 기세가 눌려버린 그들은 방금전까지 웅성대며 난리를 피우던 자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고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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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참.......이유없음. (독자들의 분노를 피하기 위한 수작이 '절대로' 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