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1 회: Part 5. 흰 국화 한송이 -- >
40.
파예드 아카데미 주변은 큰 행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조용했다. 행사 자체가 비교적 아침 일찍 계획되어있는 것도 있었지만 극도로 대화를 절제하고 품위를 중요시하는 이곳의 분위기 탓이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했다.
행사준비로 바쁜 이곳 생도들의 분주하지만 조용한 모습이 새벽부터 눈에 띄고 있었다. 가까스로 서너시간 눈을 붙였던 제네르가 피곤한 얼굴로 학교 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보고계신다니 염려놓으십시오."
제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어깨를 다정하게 주물러주는 시로의 거친 손을 조용히 맞쥐었다.
검은 수트차림의 카렐은 얼굴에 복면을 한 채 잽싸게 아카데미 '사단의 탑'에 접근해갔다. 날이 밝아지기 전에 잠입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날이 채 밝기 전의 이른 새벽부터 교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생도들 때문에 잠입이 예정보다 10분이 넘게 늦어지고 있었다.
"휴우,"
탑의 우둘두둘한 벽돌벽을 잽싸게 기어올라 5층 정도의 창 안으로 뛰어든 카렐은 윗층으로 향하는 어두컴컴한 계단실에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40층 높이의 탑이니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이 계단은 거의 이용할 리가 없었다.
문제라면 이곳에 오기 전에 대공주의 행방을 찾아 들렀던 학장 관사가 텅 비어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코리온 리쿠 학장이 어쩌면 이 꼭두새벽부터 맨 윗층의 학장실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렐은 발소리를 죽이고는 회전계단을 타고 최대한 빨리 윗층으로 달려올라갔다.
"이크,"
윗쪽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카렐이 잽싸게 공중으로 뛰어 천장에 매달렸다. 여차하면 창밖으로 뛰쳐나갈 참이었지만 다행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천장에 거미처럼 달라붙은 채 소리없이 윗쪽으로 움직이던 카렐의 눈에 검은 무명포 차림의 두 사람이 들어왔다. 금줄이 새겨진 머플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학교 교수들인 모양이었다.
"학장님 일어나셨습니까? 아침식사 들여야 할 텐데."
"일어나시긴요, 어젯밤 한숨도 안주무셨는데."
다른 교수의 질문에 학장실 문 앞을 지키던 예킨터스 교수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이 교수 역시 그 학장과 함께 밤을 샜는지 얼굴이 데데해진 모습이었다.
"지금 목욕재개하시는 중이십니다. 밤새 격문을 작성하신 줄 압니다."
"휴, 많이 힘드실텐데......오늘 행사를 주관하실 수 있으실까요?"
학장의 건강을 묻는 다른 교수의 질문에 예킨터스 교수가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뭘, 새삼스럽게.....학장님 스타일 잘 아시지않습니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시는 성격이시잖습니까."
걱정대로 코리온 리쿠 학장이 학장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대공주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올라온 길이 수포가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대화에새 대공주 이야기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대공주는 학장실에도 없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젠장할."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카렐은 벽을 붙들고 계단실 창밖으로 빠져나갔다. 40층 높이의 탑 아래 까마득한 밑으로는 아직 사람들은 거의 다니지 않고 있었다. 돌출한 벽돌을 단단히 움켜쥐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벽을 타고 옆으로 움직인 카렐은 벽에 달라붙어 몸을 거꾸로 한 채 열려있는 학장실 창 안을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이크"
카렐이 급히 몸을 감추며 눈만 삐끔히 들이밀었다. 단촐한 학장실 맨 안쪽에서 큰 목욕통 안에 몸을 담근 긴 머리의 남자 뒷모습이 보였다. 카렐은 가디언으로서의 예민한 감각을 최대한 동원해 방 안을 살폈지만 목욕통의 남자 외의 사람의 기척은 전혀 오지 않았다. 대공주는 이곳에도 없는것이 확실했다.
'근데 도대체 어떤 인간이야?'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카렐은 사전탐색 차원에서 기회가 있을 때 초면인 코리온 리쿠 학장을 계속 살피기로 했다. 코리온이 목욕을 끝내고 몸을 일으키자 카렐이 몸을 조금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훗, 나쁘진않군."
목욕통 밖으로 드러난 그의 날씬한 몸은 엔간한 여자들도 울고 갈 정도로 '잘 빠졌다'는 것이 제일 적당한 표현이었다. 유학자답지않은 큰 키에, 건장한 근육질은 아니지만 넓은 어깨와 역삼각형의 탄탄한 등, 잘록한 허리와 큰 키에 어울리는 길고 곧은 다리가 두드러지고 있었다. 별다른 단련을 할 리가 없는데도 저정도인 것을 보면 물려받은 형질이 꽤 우수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주인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명한 연두색의 페리도트 반지가 왼쪽 손가락에서 빛을 뿜고있었다. 제네르로부터 '제국 제일의 꼴통 사이코'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카렐은 그 성격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외모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하고 말았다.
"엉?"
그의 어깨와 등에서 꽤 오래된듯한 흉터를 발견한 카렐은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줄로 그은 듯한 무수한 찢긴 자국들은 틀림없이 '채찍질당한' 후에 남는 그것이었다. 채찍자국이 온통 널려있는 저 어깨는 티끌하나 없이 매끈한 나머지 부분들과 비교하면 참이나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상한 건 저정도의 흉터라면 약 한두번으로 쉽사리 지울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저인간도 자해하나?'
몇몇 원리주의 유학자들이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치며 수도를 한다는, 언젠가 들었던 황당한 말을 머리에 떠올린 카렐은 저 사이코 인간도 혹시 밤마다 자신의 어깨를 채찍으로 치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 저 흉터들은 너무 오래되어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모르겠다. 제네르한테나 물어보지 뭐.'
몸에 큰 무명수건을 두른 코리온이 약간 옆으로 돌아서자 그의 얼굴이 조금 드러났다. 카렐은 몸을 다시 오그리며 그의 인상을 조심스레 살폈다.
"밉상은 아니군,"
카렐이 약간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지만 사실 코리온 리쿠 학장은 매력없기로는 천하에 소문난 보통의 유학자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상당히 잘생긴, 그것도 여성스럽기까지 한 미청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강인하고 남성적인 인상의 페로와는 또다른, 어딘지 우수에 찬 듯 하면서도 상대를 위압하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간직한 저정도 얼굴이면---물론 그의 해괴한 '전적'을 모른다는 전제하에서---여자도 꽤나 따를 외모였다.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여성스러운 긴 장발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험상ㅤㄱㅜㅊ은 친어머니 레곤 대공주의 인상과도 어쨌든 영 딴판이었다. 약간 마르고 긴 얼굴은 할머니인 세나우스 2세 황제와도 꽤 닮아보였고, 그다지 강하지 않은 이목구비와 째진 눈매만 보아도 그가 이곳 '서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쯤 풀린 것인지 아니면 그 정반대인지 알 도리가 없어보이는 기괴한 빛을 뿜는 눈빛이 얼굴 전체의 인상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벽돌조 외벽에 도마뱀처럼 찰삭 달라붙어있던 카렐은 급히 벽을 타고 다시 계단실로 내려와 오늘의 행사가 열릴 지하의 대강당으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흰 무명포에 두건을 눌러쓰고 머플러를 두른 제네르는 손에 대나무로 만든 홀을 들고 행사장인 지하 대강당에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대강당 천장에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깊은 천창이 몇개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였다.
제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과 함께 들어온 참석자들의 얼굴을 죽 둘러보았다. 200명이 조금 못되는 참석자 중 90명 정도는 이곳 파예드 아카데미를 뜻하는 검정색 무명포를 입고 있었고, 약 40여명만이 남극성당을 뜻하는 흰색의 무명포를 입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 주관하는 큰 행사에 자존심때문에, 혹은 다른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한 남극성당 출신이 많은것도 한 이유였지만, 실제로도 학계에서 '인정받는' 유학자의 수는 이곳 출신이 더 많은것도 사실이었다. 남극성당은 학자보다는 주로 명문가 출신의 정치가를 배출하는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이곳은 원리주의를 교육하는 학자들의 산실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어서오십시오."
먼저 와 있던 개혁파 유학자들이 제네르에게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흰 무명포 차림의 다른 유학자들과 함께 입장한 제네르는 전혀 거리낌없이 단상 왼쪽---개혁파 학자들이 항상 자리잡곤 하던---에 자리잡고 섰다. 하지만 이곳 출신들을 비롯한 백여명의 원리주의 학자들과 50여명의 중도파 학자들은 반대편에 일제히 줄을 맞춰 서고 있었다.
"분위기가 왜이러죠? 좀 썰렁한 것 같죠?"
제네르와 함께 선 40여명의 개혁파 학자들이 약간은 불안한 표정으로 리더격인 그를 바라보았다. 남극성당 출신중에서도 절반정도 되는 20여명의 원리주의와 중도파 학자들은 비록 반대편에 서 있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학장님께서 드십니다."
예킨터스 교수의 가는 목소리와 함께 검은 무명포에 용이 수놓인 보라색 긴 머플러를 목에 건 코리온 세닉 리쿠 학장이 긴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개혁파 학자들의 선두에 서 있던 제네르도 막 입장하는 그의 옆에서 허리를 굽이며 최대한의 예의를 표했다.
"오실 줄 알았소. 제네르 딜라코프 하크로딘 교수. 11년 7개월 29일만인가?"
제네르의 앞에 우뚝 멈춰선 코리온이 그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코리온의 이 기분나쁠 정도의 정확함은 어차피 제네르에게도 어느정도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제네르가 허리를 굽힌 채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리 오래 지났는데도 제대로 기억해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천박스런 자칭 개혁파들 중간에서 그나마 말다운 말 비슷하게 하는 인물이었거늘. 쯧쯧......아까운 인물이군."
"독설은 여전하시옵니다."
제네르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꾸하자 코리온이 보일듯말듯 미소를 지었다. 그의 놀랄만큼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뒤이어졌다.
"그대의 주군께선 안녕하시오? 꽤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많이 좋아지셨사옵니다. 그런데.....대공주저하께선 안녕하시옵니까?"
결국 제네르가 역공을 개시했지만 코리온은 아무렇지않게 대답했다.
"아주 자알 계신다오. 아주 잘 말이요. 자식으로서 그 부모를 편히 섬김은 만고의 도리 아니겠소."
코리온이 할 말을 끝낸 듯 다시 가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쿵당거리는 가슴을 아까스로 감추고 있던 제네르는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하크로딘 교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린 코리온의 시선과 막 고개를 들던 제네르와 눈동자가 그대로 맞부딪혀버리고 말았다. 파르르 떨리는 코리온의 갈색눈동자를 마주한 제네르의 몸이 뭐랄 새도 없이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차,"
뒤늦게 눈치를 챈 제네르가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앞에서 코리온이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도 있으신가......왜그리 산만하신지......"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코리온은 별다른 반응 없이 중앙의 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켜보아준다던 카렐이 어쩌면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네르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걸......어쩌지......"
주관자인 코리온이 자리를 잡자 참석한 2백여명의 학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그에게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단상에 선 코리온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허리를 굽힌 학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여러 학자분들을 모이시라 한 것은, 작금의 혼란스런 정세에 관해 우리 유학자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함을 절감했기 때문이요."
코리온이 팔을 들어 보이자 4명의 이곳 교수가 키보다도 더 큰 두루마리를 힘을 합쳐 들고와 펼치기 시작했다. 큰 붓으로 휘갈겨 쓴, 힘이 넘치는 코리온의 친필 격문이었다.
"헉,"
격문의 내용을 읽은 제네르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 했다. 코리온이 모두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든 유학자들에게 고하노니,"
코리온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천박한 황실의 무리들이나, 역모를 노리는 그 신하였던 작자들 모두 세상의 이치와는 어긋나가고 있으니 그들 모두를 어찌 용서할 수 있으리오. 나, 리 리쿠의 7대손인 코리온 세닉 리쿠는 옛 제니안의 뜻을 받들어 오늘부로 이 제국은 우리 유학자들이 이끌어갈 것임을 선언하오."
제네르의 눈앞이 아찔해왔다. 코리온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사고'를 치려고 하는 것이 확실했다. 코리온이 목소리를 더 높였다.
"우리 유학자들이 앞장서 옛 주페 태자께서 주장하셨던 진정한 왕도국가, 이상국가를 이룰 것이요. 이제 우리에겐 무도한 황제도, 나라를 좀먹는 황실도 필요없고 오직 엄격한 교리와 그를 집행할 유학자들만이 있으면 될 뿐이요! 이것이 새 시대의 교리정치가 될 것이요!"
코리온은 예킨터스가 들고있던 팔뚝만한 큰 붓을 받아들고 격문 끄트머리의 빈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거칠게 써 넣었다. 신들린 듯 붓을 놀리는 그의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 흩날렸다. 검은 무명포 차림의 이곳 출신 유학자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코리온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제네르는 자기도모르게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행여 코리온이 스스로 칭제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 고작이었던 제네르는 저 사이코가 한술 더 떠 아예 황권 자체마저 부정하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주페 태자께서 언제 그런 주장을 하셨단 말이요......"
제네르의 떨리는 목소리는 주페 태자와 코리온의 이름을 연호하는 원리주의 학자들의 연호에 파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거의 집단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원리주의 유학자들이 모습에 그의 등줄기로 어느새 차가운 땀 한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두들....나가시오, 빨리,"
코리온의 눈에서 번지기 시작한 살기를 직감한 제네르가 자신을 둘러싼 개혁파 학자들에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글을 다 쓰고 난 코리온이 붓을 내던지며 홱 돌아섰다.
"하지만 그 전에 할일이 있소이다!"
그의 무서운 기세에 움찔 한 제네르가 동지들을 또다시 뒤로 떠밀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슷한 분위기를 반대편에 선 원리주의 유학자들도 느꼈는지 그들 사이에서도 갑자기 긴장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코리온은 갑자기 제네르를 비롯한 개혁파 학자들 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자칭 유학자 중에도 강력한 황권통치 운운하며 교리에 의한 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작자들이 있으니 우리 역시 어쩔 수 없이 저들을 벌해야 할 것이로다!"
방금전의 맑은 목소리가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강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코리온의 힘있는 고함소리와 함께 대강장 주변 회랑에 숨어있던 백여명의 무장한 경보병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왔다. 바로 제네르가 어젯밤에 본 바 있던 그들이었다. 가벼운 갑주와 시미터로 무장한 그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집회장을 포위하자 장내는 일시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미리 치밀하게 지시를 받은 듯 그들은 150여명의 원리주의와 중도파 학자들을 한쪽구석으로 떠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 오십여명이 개혁파 학자들을 거칠게 중간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싸움이라고는 전혀 해본일도 없는 이들 유학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거친 병사들에게 밀려 나동그라지며 밟히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중앙에 몰린 40여명의 개혁파 유학자들의 처절한 시선이 단상의 코리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기묘한 웃음을 지어보인 코리온이 소름끼칠만큼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다 처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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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공지]에 설정사항 업데이트가 있었습니다. 이번엔 제국의 군제와 각 제후별 군사력 개요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