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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21화 (21/1,132)

< -- 21 회: Part 1. 디모르포세카, 음지에 피다. -- >

"날 왜 데려온건가?"

상석에 앉은 실리페 황후가 페로를 내려다보며 심술ㅤㄱㅜㅊ게 물었다. 공용터미널에서 다룬을 따라 페로 관으로 온 실리페 황후는 사실 아직까지도 페로를 '밀어줘야' 하는지, 기득권을 쥐고있다고 할 수 있는 베흔 녀석을 지지해야 하는지 저울질을 완전히 끝내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페로 녀석 곁에 선다면 황후 자신에게는 유리하겠지만 다섯 딸들은 한마디로 몹쓸 꼴이 될테고, 그런다고 베흔에게 간다고 해서 딸들이 딱히 신세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로서는 모조리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다섯 딸들은 이제 자기 팔자에 맡기는수밖에 없었다. 권력과 목숨이 오가는 이 와중에 할일없는 서생들이 떠들어대는 '모성애' 따위는 1차로 따질 게재는 틀림없이 아니었다.

"지난번 물려준 떡은 민망하게 내뱉어버리더니, 이제 또 물려달라고?"

황후의 반 쯤 질책섞인 말에도 페로는 고개를 숙인 채 입가에 엷은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어쩌나, 이젠 물려줄 떡이 없는데."

"그건 잘 알고있사옵니다."

"그동안 내가 없어서 속이 시원하던가?"

"천만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페로가 고개를 깊이 숙여보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에 뻔뻔한 페로 자이센 총리답군."

"과찬이시로군요."

페로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황후 앞에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내가 베흔하고 꽤 잘 지냈었다는 걸 잘 알텐데?"

"저나 황후폐하나 옛날 일이나 자식들 따위에 연연할 정도로 속좁은 인물들은 아니죠."

"푸훗,"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페로의 뻔뻔함에 황후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페로가 말을 이었다.

"저도 자식새끼 생각하면 이짓 못하죠. 아예 역성혁명이라면 모를까......제가 제위에 오르면 종친들이 1차 숙청대상으로 제 딸자식을 지목하리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저도 제 자식새끼 목숨 정도는 버릴 각오로 제위에 도전하고 있는 거죠. 황후폐하께서도 일단은 스스로의 몸을 건사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페로가 빙긋 웃으며 자기앞에 놓인 술잔을 조금 들이켰다.

어머니가 맞나 싶게 구는 실리페 황후와, 전혀 아버지답지 못한 모습의 페로가 술상을 두고 마주앉아 죽을 맞춰가고 있었다. 황후의 색기어린 시선이 제국 최고의 미남 중 한명으로 꼽히는 페로의 수려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도 내 자존심을 왕창 상하게했던 총리 곁에 있는게 편해서 이리 온 건 아냐."

"어련하시겠습니까."

페로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려는 자신의 손을 페로가 자연스럽게 쳐내자 황후가 피익 웃으며 술잔을 다시 집어들었다.

"도도한 건 여전하군."

"황후폐하도 여전하시군요."

"하여간, 쌀쌀맞긴......날 대놓고 거절했던 건 총리 뿐이었어. 유부남들까지 다 넘어왔었는데 그때만해도 총각이었던 경이 날 감히 거절했단 말씀이야......뭣때문이었지?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었나?"

"제가 원래 여자들과 잠자리를 꺼린다는 건 잘 아실텐데요."

페로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안믿었어. 후훗, 그러면서 신통하게 결혼도 하고 자식까지 얻었군?"

"필요했으니까."

페로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둘 사이에 잠시동안 눈싸움이 오가고 있었다. 황후의 표정이 갑자기 부드러워지자 페로가 황후의 잔에 술을 채워주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황후폐하께서 제 일을 도와주신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겁니다. 다섯 공주들은 제가 책임지고 무사히 돌려놓겠습니다."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도 여전하군."

페로의 도도한 얼굴을 올려보며 황후가 술잔을 훌쩍 들이켰다.

자그룰라 모렌 박사와 함께 대사막을 빠져나온 카렐은 5번 도시의 황무지를 몇시간째 차로 계속 달리고 있었다.

"어디든 좀 쉬었다가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렌 박사가 차창에 얼굴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다 왔습니다."

카렐이 사방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어두운 황무지를 한참 돌고돌아 도착한 곳은 한 호젓한 마을 중간에 위치한 크지않은 펜션이었다. 카렐이 먼저 차에서 내려 커다란 철문을 거칠게 두들기자 늙은 집사가 문을 빠끔히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디언이유? 노예는 안에 들여놓으면 안돼."

카렐은 망토를 푹 뒤집어쓴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내 가디언이요."

뒤따라내린 박사가 냉큼 대답하자 집사는 그제야 문을 열어주었다. 조금 스산했지만 모양에 어울리지 않는 제법 호화스런 분위기가 응접실을 압도했다. 카렐이 페로에게서 받았던 사파이어 목걸이를 끌러 내놓자 집사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주문하지도 않은 구석진 창쪽의 고급 침실을 내주었다.

"완전방음에 방진실입죠. 필요하시면 괜찮은 소년들도 불러줄 수 있는데....."

자그룰라가 카렐을 힐끗 돌아보았지만 카렐은 클록 안에 얼굴을 감춘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결국 그가 대신 대답했다.

"필요없소. 그냥 조용하게 쉬고싶으니까 방 주변에 아무도 얼씬못하게 해 주면 고맙겠네."

"그정도는 기본이지요. 그럼 편하게 쉬십시오."

집사가 고개를 숙여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베일이 쳐진 큰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자그룰라가 방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방에 무슨 이상한 거 같은 건 없겠지?......."

"전에 와 봤던 곳입니다. 시골에 위치한 곳 치고는 시설이나 서비스가 괜찮습니다."

카렐이 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박사가 지저분해지지고 지쳐보이는 자기 몰골을 거울에 비춰보며 말했다.

"좀 씻고나와야겠어. 너무 엉망이잖아."

욕실 안으로 들어갔던 모렌 박사가 꽤 오랜 시간의 목욕을 끝내고 나왔을 때도 카렐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때와 마찬가지로 방 구석에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먼지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카렐의 모습에 그가 약간 미안했던지 자기가 앉아있던 침대 모서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너도 여기 와 좀 쉬어......가서 씻던지.......어?"

카렐이 한쪽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있는 모습에 조금 놀란 박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의 클록을 벗겨내렸다.

"피가나잖아? 맙소사,"

"조금 나중에 치료해도 됩니다."

"미쳤어? 날개죽지에 부러진 칼이 박혔는데"

"대책없이 뽑으면 더 위험합니다."

카렐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모렌 박사가 대뜸 언성을 높였다.

"내가 의사라는거 잊었어?"

"......"

"잠깐 기다려. 나갔다올께."

카렐을 자리에 그대로 놔둔 채 바깥으로 달려나갔던 모렌 박사는 몇분 지나지 않아 큰 구급함을 가지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여긴 정말 별 게 다 있군. 자, 이리 와 누워. 병원에 갈 땐 가더라도 일단 상태만이라도 내가 봐줄테니까."

모렌 박사가 침대를 가리켰다. 그의 눈빛을 바라본 카렐이 눈썹을 내리깔며 조용히 대답했다.

"가디언은 다른사람에게 자신의 무방비상태의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법입니다."

"알아. 너보다 더 잘 알아. 하지만 난 의사라구. 내 가디언들도 내가 직접 치료해줬어."

"당신은 내 주인이 아닙니다."

카렐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리자 모렌 박사가 성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정말 지독하군, 칼이 몸에 박혀있는데, 그걸 뽑아주겠다는데 그런데도 규정을 들먹거려? 내가 널 그따위 벽창호로 합성해놓은거야?"

"......"

식은땀을 흘리는 카렐의 칼이 박힌 왼쪽어깨를 가볍게 떨며 모렌 박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절 합성하신 분이 맞기는 하시나보죠? 제 합성코드가 뭐그리 대단한 기밀사항이라고 그걸 안알려주시고 근위대에 팔아넘기신 분이?"

꽉 악문 카렐의 턱에서 푸른 힘줄이 불끈 돋아나고 있었다. 그의 일갈에 순간 할 말이 없어진 모렌 박사는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꽤 한참동안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좋아,"

꽤 긴 시간이 지난 후, 모렌 박사가 내려놓았던 붕대뭉치를 다시 집어들었다.

"나도 조건을 걸겠어......오늘밤만 내 말을 무조건 따라주면......네 유전자코드를 알려주겠어,"

카렐이 '스스로의 몸'을 인질로 자신과 흥정을 하려는 생각임을 깨달은 모렌 박사는 저 가디언의 집요함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비밀과, 자신이 창조해낸 저 피조물에 대한 보호본능 사이에서 갈등을 오가던 박사는 결국 감정에 굴복할수밖에 없었다. 순간 카렐이 감고있던 눈을 번쩍 뜨며 박사를 휙 돌아보았다.

"자, 받아들이면 여기 엎드려. 아니면 그대로 있던가."

조금 긴장한 듯 깊은 숨을 내쉰 카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렌 박사가 일어나 부들부들 떨고있는 카렐의 어깨를 부축해 침대위에 엎드리게 하고는 입고잇던 가죽 수트를 조심스레 벗겨내렸다.

"지독하네."

생각없이 한마디를 했던 모렌 박사는 순간 자신의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찢겨나갔던 카렐의 등 피부는 아직 다 낫지않은 붉은 상태 그대로였다. 바로 자신이 이녀석을 배신하고 팔아넘겼던 그 끔찍한 흔적이었다.

박사의 손끝은 카렐의 어깨에 나타난 묘한 검은 돌기를 어루만지며 조금 떨리고 있었다.

잠시 조용하던 모렌 박사가 약간 목멘 소리로 중얼거렸다.

"상처주변이 검게 멍들었어......내출혈도 있긴하지만 혈관을 건드린 것 같지는 않아. 칼날을 뽑아내도 될 것 같아. 괜찮지?"

카렐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박사는 집게로 부러진 칼끝을 단단히 물었다.

"하나, 두울, 셋,"

박사가 근육에 물려있는 칼날을 힘껏 뽑아내자 검붉은 피가 솟구쳐 미리 대놓은 흰 헝겊을 적셔들어갔다. 침대에 엎드린 카렐은 이를 단단히 악물고 있을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조금만 참아. 지혈만 되고나면 약 뿌리고 드레싱 해줄테니까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제대로 봉합하자. 응?"

카렐은 고개를 약간 끄덕일 뿐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피가 멎을 때까지 상처를 힘껏 누르고 있던 박사는 칼이 꿰뚫고들어간 그 깊은 상처에 약을 바르고 정성껏 드레싱까지 해 주었다.

"휴우,"

모렌 박사가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지자 카렐은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에게 뭐라 말하려던 모렌 박사는 엎드린 채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는 카렐을 바라보고는 큰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카렐 역시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음이 틀림없었다.

가만히 있던 카렐이 망연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에게 손을 뻗은 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의 손에 이끌려 침대 위에 드러누운 박사의 귀에 꽤 따뜻한 카렐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피곤하니 좀 주무시죠."

졸린 눈을 반 쯤 뜬 카렐은 자신의 옆에 누운 모렌 박사의 어깨까지 담요를 푹 덮어주었다. 먼 옛날, 이 괴물아닌 괴물을 창조해낸 이래 작으나마 처음으로 보람이라는 것을 느낀 그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이 피조물에게 몸을 바싹 붙인 채 눈을 감았다.

환하게 밝아진 아침햇살이 얇은 커텐을 뚫고들어와 둘이 누운 침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먼저 눈을 뜬 박사는 옆에서 엎드려 잠든 카렐의 상처부터 얼른 살폈다. 피도 완전히 멎었고 감염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헝겊에 약을 발라 상처위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따끔한 자극에 카렐이 움찔 하며 눈을 떴다.

"아직 움직이지 마. 오늘만이라도 좀 쉬어."

카렐의 어깨를 한팔로 가볍게 품어안은 박사는 그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카렐은 그런 모렌 박사를 한 번 힐끗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카렐은 그답지않은 완전 무방비상태로 꽤 한참동안 누워만 있었다. 모렌 박사는 그런 카렐의 등을 계속 매만져주었지만 카렐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일어난 카렐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옷을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전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시지요."

"앞으로도......나하고 같이 있을거지?"

"......"

"제발, 부탁이야."

박사의 애원도 들은척만척하며 침대에 걸터앉은 카렐은 아무 대꾸없이 칼을 뽑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의 뻣뻣한 태도에 실망한 박사는 한숨을 내쉬며 겉옷을 챙겨입었다. 칼을 손질하던 카렐은 그제서야 짐짓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당신은 어쨌든 내겐 소중한 사람입니다....."

모렌 박사의 입가에 그제서야 약간의 미소가 감돌았다. 처음으로 속마음을 드러낸 카렐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최소한 겉으로는 칼 닦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네 유전자코드를 알려주겠어."

칼을 손질하는 카렐의 옆에 엉덩이를 바싹 대고 앉은 모렌 박사가 결국 입을 열었다. 카렐은 손질하던 칼을 무릎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유전자코드는......"

박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카렐의 회색 눈동자가 약간의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없어."

"뭐라구요?"

"네겐 코드가 없어."

박사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던 카렐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가디언에겐 추출해낸 기본 유전자 풀을 나타내는 5자리 고유코드가 있습니다. 전 X-11-1이지만 그 뒷코드는 모릅니다."

"X-11-1은 널 만들기 바로 전 해에 ㅤㅋㅞㄹ크에서 사살된 돌연변이 식인악어 표본에 내 연구원들이 붙인 식별번호였어."

순간 쿵 소리와 함께 카렐의 무릎에서 떨어진 칼이 바닥에 나딩굴렀다.

충격을 받은 카렐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린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황제가 최강의 가디언을 만들라고 명령했을 때......그런 방식으론 제대로 발생도 못하고 죽을 수정란이 만들어지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멍청한 황제는 실험이 성공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들까지 모두 처형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지."

두 손으로 감싸쥔 박사의 눈에 어느새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가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실패할 거라는 상소를 용감하게 제출했지. 이 망할놈의 성깔 같으니......그래서 돌아온 댓가가 뭐였는지 알아? 그날 저녁에 근위대들이 들이닥치더니 남편하고 아들을 잡아가더니 불에 태워죽여버리더군. 바로 내 앞에서 말이야. 난 포박당한채로 그 꼴을 다 봐야 했어. 울부짖는 남편하고 아들의 살점이 불이 타서 녹아내리는 걸 말이야......차라리 날 그랬다면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텐데....."

박사의 흐느낌은 어느새 울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카렐은 호흡도 멎은 채 멍 하니 앉아있었다.

"나는 그 빌어먹을 황제놈, 아니 황실을 철저하게 엿먹여주기로 각오했지......그래서 세포은행에 보관되었던 보통 난자하고 정자로 만든 수정란에 5세대 X유전자를 섞어 장난을 친 것 뿐이야. 그래......넌 추출해낸 기본 유전자풀이 없어. 기본조합은 보통 시민의 수정란이었으니까."

잠시 혼란스러워진 머리를 가다듬은 카렐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전 그럼.....5세대 가디언인 겁니까?"

"5세대는 GOE부대 주력이었던 덕에 유전자 개랑사업 명목으로 베흔 손에 멸종당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나온 놈들중에 두말할나위없이 최강이었지."

모렌 박사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는지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욕심이란 게 끝이없다고......기왕 저질러놓은 거 더 장난을 치고 싶더라고......그래서 실험실에 보관되었던 X-11-1 돌연변이 악어 표본하고 킹스네이크에서 또 유전자 표본을 떠서 섞었지. 황제 소원대로 완전히 괴물을 만들어주려고 말이야. 재미있어 미칠지경이겠더군.....얼마나 황당한 괴물이 튀어나올까 잔뜩 기대하면서 말이야."

창밖을 바라보는 모렌 박사의 눈은 이미 완전히 젖어들어가 있었다. 그는 멍 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카렐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고개를 깊이 떨구어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얼마나 황당했는줄 알아? 난 남자로 만들었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여자였던거야. 가디언 합성에선 모두 남자만 만들어지지만 수정에선 여자가 만들어질수도 있다는 걸 깜박 했거든. 세상에, 그런 한심한 실수가.....망할, 어떡하겠어, 들통나면 죽게 생겼는데. 쇼라도 부려야지.....그래서 기계오작동으로 XX가 됐다고 거짓보고하고 폐기물로 내던졌다가 나중에 호들갑을 떨고 '기적적 생존' 운운하면서 다시 데리고들어온거지."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박사가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카렐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매섭게 부릅뜬 카렐은 검은 돌기가 있는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소름끼칠만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내 부모는 누굽니까?"

카렐의 당연한 질문에 박사가 무슨 이유엔지 조금 겁먹은듯한 목소리로 뒤늦게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무작위로 뽑아낸거니까."

"전 바보가 아닙니다!"

카렐이 갑자기 홱 돌아서며 모렌 박사의 어깨를 거칠게 붙들었다. 놀라 비명을 지른 박사가 버둥거리며 카렐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의 큰 손은 박사의 어깨를 피멍들만큼 단단히 붙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실험 실패가 선언되고 그 변종 파충류 아기가 자이센 가로 떠넘겨지기 전에 그 짐 속에 이상한 목걸이를 넣어준 게 바로 당신이셨죠?"

"나, 난......."

"10살때 그 목걸이를 베흔에게 뺏겼죠. 하지만 그 문양만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몸을 꼬고 있는 두 마리의 검은 용이었죠. 제 짐 속에 왜 황족의 문장의 새겨진 목걸이를 넣어주셨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마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겠죠?"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모렌 박사의 양 어깨를 카렐이 다시한번 꽉 붙들었다. 그는 박사의 얼굴을 억지로 자신에게 돌리며 특유의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복수를 하신거겠죠? 황실을 위해 최악의 잔혹한 방법으로 훈련되기로 예정되어있던 '특별한' 가디언을, 바로 황제와 황후의 세포로, 그것도 흉칙한 파충류의 형질을 섞어서 만든 것 아닙니까! 제 어깨의 이 돌기도 태자의 황족문이 남은 흔적이겠죠!"

카렐의 목소리가 쩌렁 하며 방 안을 울렸다.

잠시 호흡까지 멎었던 모렌 박사가 극도의 분노와 회한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카렐의 표정에 결국 자리에 꿇어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 눈이 왜 북부에서만 나타나는 회색빛 오팔 눈동자인지, 제 모습이 몰락한 세네피스 카파키 전 황후 일가와 왜그리 닮았는지......항상 궁금해했죠......그렇죠?"

어느새 절망감에 빠져버린 카렐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모렌 박사의 어깨를 천천히 놓아준 카렐이 눈을 감으며 마치 미친사람처럼 자신의 머리를 싸쥐었다. 자리에 꿇어앉았던 모렌 박사가 카렐의 발에 울며 입을 맞추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카렐 카파키 리쿠 장태자전하......제발 죽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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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제야 글이 본궤도에 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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