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2화 (12/1,132)

< -- 12 회: Part 1. 디모르포세카, 음지에 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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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디언 유전정보 데이터가 또 도난 당했습니다."

"무어?"

매일 아침 있는 보안보고시간 첫머리에 근위대 보안국 간부 한 명이 베흔에게 풀이 죽은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

"씨발, 이번엔 또 어디야?"

"......옛날에 추출한 X 기본 수정란 관련 정보입니다."

보안국 간부가 또 한번 베흔의 눈치를 살폈다.

"망할, 가져가 봤자 쓰레기 정보인 것도 모르나? 제에길. 다음부터 잡히는 놈들은 무조건 즉결처분해버려."

보고서류를 살펴본 베흔이 서류를 대뜸 바닥에 동댕이쳤다. '잡히는 즉시 즉결처분'이라며 베흔이 신경질을 부리기는 했지만 사실 그 데이터베이스의 내용을 몇 달째 야금야금 도둑질해 가는 녀석이 누군지는 아직 그 단서조차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하던 보안국 간부가 흩어진 서류들을 도로 주섬주섬 긁어모으며 조심스런 말투로 보고를 계속했다.

"사설 수련장의 사주를 받은 전문 데이터 도둑들이 분담해 하는 짓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이센 수련장을 빼면 아무래도 열등한 수정란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

"이번엔 어떤 지역에서 침투했지?"

"3번 도시입니다. 차량에 원거리 접속이어서 잡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베흔이 또 한번 짜증을 부렸다. 매번 장소와 방법을 바꾸어가며 그 데이터베이스를 파고드는 그 '도둑놈'은 보안국에서 방화벽을 바꿀 때마다 그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그에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를 빼내 가는 도둑놈은 컴퓨터에는 도통한 놈인지 모르겠지만 가디언을 만드는데는 그다지 밝지 못한 놈에 틀림없었다. 녀석이 훔쳐 가는 내용은 이젠 창고에서 곰팡내나 풀풀 풍기고있을, 무려 500여년 전의 유전자 개량사업 초기데이터들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보야 어쨌건 간에 근위대에서도 가장 은밀한 부서인 보안국에 자꾸 드나드는 '뒷구멍 손님'이 있다는 건 베흔을 속터지게 만드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보안국 간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은 저희 보안국 체계와 운영방식도 잘 알고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생각보다 적은 코드밖에 뽑아내지 못한 카렐은 조금은 실망스런 얼굴로 운전석의 컴퓨터 전원을 껐다.

"잘 돼가고 있었는데......"

카렐의 무릎 위에는 그 동안 보안국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조금씩 빼낸 유전자 중요 코드표가 장황하게 흩어져 있었고 그 많은 데이터가 담긴 칩도 함께 놓여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코드표들과 카렐 자신의 지놈을 연결시켜 줄 억세스코드---카렐이 이 많은 것들 중 어떤 수정란을 사용해 합성된 가디언인지를 담고있는---만은 아직까지 손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가디언'이라 불리고 있는 X혈통은 지금은 폐쇄 조치된 먼 옛날 제국민들의 '고향 행성'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생겨난 돌연변이들을 '선별교배'시킨 결과물이었다. 처음 26명의 돌연변이들로 시작된 이 개량작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약 만여 가지의 경우의 생식세포가 만들어졌고, 이들을 결합시킨 각각의 기본 수정란에 '가디언 유전자'라고 불리는 일부 형질을 삽입시키면 한 명의 가디언이 완성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기본 수정란의 데이터를 구할 수 있다면 이들 26명의 초기 돌연변이 중 누구를 부모로 두고 있는지---물론 지금은 다 죽어 없어진 사람들이지만---를 알 수 있었다.

데이터가 든 칩을 차 한구석에 깊이 감춘 카렐은 차 밖으로 나서며 큰 심호흡을 들이켰다. 그가 차를 세운 언덕 밑에는 그의 눈에 익숙한 페로 관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오랜만에 수련장에 직접 나온 페로는 안 보이는 곳에 몸을 감춘 채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아직 어린 가디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껏 열 살 겨우 넘은 저 꼬마녀석들은 2, 30년 정도 후에는 다른 부호들에게 팔려가 주인 페로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거나, 아니면 페로의 가디언부대에 남아 그의 세력의 근간을 이루어줄 소중한 종자들이었다.

"이 바보새끼!"

교관 가디언이 훈련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한 어린 소년을 사정없이 발로 짓밟았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교관의 발은 한마디로 무자비하게 소년의 귀를 짓이기고 있었다. 피가 터지며 소년의 귀가 반쯤 떨어져 나가버리자 교관은 그제야 발을 떼었다.

자이센 가 가디언 수련장의 훈련은 원래부터 가혹하기로 소문나 있었지만 이제 갓 무기를 잡기 시작한 꼬마들을 저렇게 다룰 정도는 아니었다. 페로는 교관들의 저런 과잉처벌이 왜 나오는지를 이미 잘 알고있었다.

한때 활기가 넘치던 수련장은 카렐의 이탈과 함께 그 분위기가 조금씩 무거워져가고 있었고, 교관들의 저런 과잉처벌은 그런 내부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궁여지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귀 다시 붙여."

교관이 소년을 훈련장 밖으로 차내자 노예들이 즉시 소년을 안아들고 사라졌다. 자리에 도열해 선 소년의 동기생 친구들은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보고있을 따름이었다.

"그전엔 저렇지는 않았는데...."

훈련 광경을 구경하던 노예 두 명이 저희들끼리 귀엣말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카렐 님은 딴 건 몰라도 사리는 분명했어. 저렇게 심심풀이로 흉측스럽게 어린애들을 다루진 않았거든. 한방 후려쳐서 까무러쳐 끝나던가 잘 타이르던가 둘 중에 하나였잖아."

아랫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던 페로가 얼굴을 찌푸렸다. 수석가디언이던 카렐이 사라지고 난 흔적은 선명했다. 페로 관 보안점검에서도 전에 없던 허점이 발견되기도 했고 엄격했지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카렐을 그리는 상당수의 어린 가디언들의 사기저하도 문제였다. 카렐은 현역 가디언들보다는 아직 어린 견습 가디언들이나 초급 가디언들에게 잘 대해주었고 그들의 카렐에 대한 두터운 신망은 그가 없어진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했다.

게다가 카렐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이 근위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카렐을 가짜로 내보냈다는 출처 모를 소문이 가디언들 사이에 거의 정설처럼 떠돌고 있었다.

새 수석가디언 다룬은 용감하기로는 비할 바가 없었지만 화를 쉽게 내고 단순한 것이 흠이었고, 그 후순위인 킵은 비교적 침착하고 머리도 쓸만했지만 다룬에 비해 칼솜씨가 약간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카렐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구멍난 가디언 부대에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뻥 뚫린 듯 묘하게 허전한 가슴을 새삼스레 깨달은 페로는 맑고 청명한 하늘을 올려보며 꺼질듯 큰 한숨을 내쉬었다.

페로는 조용히 수련장을 빠져나와 전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여러 명의 특급들이 탄 차가 그 옆을 호위하고 있었다. 서문 앞에 먼저 차를 세운 다룬과 킵이 문 양옆에 도열해서서는 차를 타고 안에 들어서는 페로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군요."

킵의 뒤에 서 있던 카인이 갑자기 눈동자를 크게 뜨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시민'인 페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들의 예민한 청각이 발동했는지 그들이 일제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이군,"

다룬 역시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킵을 바라보았다.

"서쪽 같은데."

킵이 즉시 칼을 쥐고 서쪽의 떡갈나무 언덕 쪽으로 몇 발짝을 달려나갔다. 언덕 위를 유심히 살펴보던 킵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카렐......누님이 언덕 위에 있습니다!"

가디언들의 시선이 일제히 차안의 페로에게 쏟아졌다. 카렐이 출현했다는 말에 잠시 멍해진 표정으로 앉아있던 페로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섰다.

"카렐......이라고 했나?"

"예!"

"뭘 하고있지?"

"꼭대기 큰 떡갈나무 아래에서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에서 내린 페로는 가디언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며 천천히 문 밖으로 다시 나섰다. 멀리 보이는 푸른 언덕 위 떡갈나무 그늘에 검은 망토를 쓴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뻔뻔스럽게 이곳에 다시 나타난 카렐의 모습에 페로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떡할까요?"

기다리다못한 다룬이 주인에게 물었다. 소문으로 알려진, 아니, 이젠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로, 페로가 카렐을 일부러 조직에서 내보내 연극을 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진짜 수석가디언인 그를 감히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게 할말이 있어서 온 모양이군."

페로가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말했다.

"혼자 가겠다. 너흰 여기 있도록 해라."

페로는 혼자 성큼성큼 걸어 멀리 보이는 떡갈나무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페로의 무모하기까지 해 보이는 모습에 여섯 가디언들은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라며 저마다 확신 없는 말로 쑥덕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싸움에서는 카렐의 한줌 거리도 되지 못할 페로가 그와 독대 하겠다며 저렇게 나서는 바보짓을 할 턱이 없다는, 나름대로 꽤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혼자 나무등걸에 앉아 풀잎을 들고 소리를 내보고 있던 카렐이 페로를 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 보였다. 그의 허리에는 아무 무기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무슨 낯으로 여길 왔나? 날 망신 주려고?"

페로가 카렐을 보자마자 대뜸 언성을 높였다.

"아직까지도 솜씨가 형편없는 것 보니까 풀피리는 확실히 소질이 없나봅니다......각하와의 옛 약속은 지키기 어렵겠군요."

웃음까지 머금은 카렐의 엉뚱한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페로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으라고 명령했을 텐데."

"하지만 절 버리셨으니 제161번째 생일선물로 내리신 할복명령은 무효였죠."

카렐이 웃음까지 띤 얼굴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이......"

페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붉으락푸르락 하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애써 침착한 태도로 카렐에게 다시 물었다.

"왜왔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뭐지?"

"근위대가 제 뒤를 쫓은 건 제가 아직 총리각하의 소유라고 믿기 때문입니까?"

"......"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각하 소유의 가디언인 것처럼 행동하겠습니다. 그러면.....근위대가 감히 각하께 선제공격을 못하겠죠? 각하 휘하 가디언들의 떨어진 사기도 회복될 테고."

"나와 흥정을 하자는 건가!"

페로의 언성이 다시 높아졌다.

"그렇습니다."

카렐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대답하자 페로가 흥분을 애써 감추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곁을 떠난 저 가디언의 당돌한 요구에 이젠 그도 뭐라 할 입장이 되지를 못했다.

"......요구조건이 뭔가?"

"제 완전한 유전자코드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페로의 독설에도 카렐은 거의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 말을 이었다.

"그것을 절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어서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궁금증이었습니다."

"궁금증?"

페로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묻자 카렐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가디언은 조상이 한정되어있어서 형질이 그다지 다양하지 못합니다. 제가 알기로......가디언 중에 회색 눈동자를 지닌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도 북부에서만 나타나는 돌연변이인 무지개톤 오팔 눈동자가 왜 제게 나타난 것인지, 아무리 따져봐도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카렐의 질문에 페로가 표정을 애써 가다듬으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고......저를 만들어낸 과정 모두가 어딘지 어색합니다. 버려진 캡슐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도 그렇고,.....마치 누군가 억지로 끼워 맞춘 각본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 돌연변이는 언제든 생길 수 있어. 40만개나 되는 수정란을 만들다보니 별의별 희한한 놈들이 다 만들어졌겠지. 모든 건 그저 확률일 뿐이야."

"그렇게 보면 총리각하께서 슈막 자이센 경과 네베드 슈트란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신 것도 확률의 장난일 뿐이겠군요."

카렐의 말대꾸에 페로의 이마에서 핏줄이 불끈 솟구치고 있었다. 조금 흥분한 페로가 대뜸 신경질을 부리며 언성을 높였다.

"미쳤군, 합성코드를 알아내려 드는 가디언은 처단대상이라는 것을 모르나?"

"총리각하께서 소유 가디언들에게 규정하신 내용이시죠. 지금은 총리께서 제 주인이 아니시니 제게는 해당 없습니다."

바람이 조금 불어 카렐의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과 회색빛이 도는 눈동자가 펄럭거리는 클록 밖으로 드러났다. 크고 오래된 떡갈나무는 어릴 때처럼 여전히 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카렐이 자신보다 키가 작은 페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카렐보다 작기는 했지만 페로는 보통의 시민으로서는 보기 드문 크고 다부진 훌륭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카렐의 한결 부드러워진 시선이 그런 페로를 평화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페로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왜 무장을 안하고 왔지?"

"......이곳에선 필요 없다 생각했습니다."

카렐은 피리를 불던 긴 풀 잎사귀를 바람에 날려보냈다. 풀잎은 언덕의 산들바람을 타고 꽤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그런 카렐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페로가 방금 전보다는 한결 풀린 표정으로 말했다.

"얼굴에 상처가 있군."

"빈털터리 떠돌이 가디언 신세에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라고 마다하겠습니까."

카렐이 빙긋 웃음 지으며 린치당했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의 대답에 페로가 조금 놀란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고급스럽던 카렐의 옷도 이제 많이 낡아져서 검은 망토는 이미 군데군데 꿰맨 자국이 널려있었고 가죽수트도 마찬가지였다. 브레이서와 벨트에 달려있던 보석장식도 이미 어딘가 팔아버렸는지 흔적만 남아있었다.

"많이 달라졌군. 카렐."

"그 얘기는 제가 근위대에서 이곳으로 돌아왔던 40년 전에도 하셨습니다."

카렐의 대답에 페로가 약간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때 일은......"

페로가 무어라 더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완전한 유전자코드는 나도 모른다."

"......"

"네 기본수정란은 황실 유전자은행의 것을 썼으니 우리에겐 그 데이터가 없어."

"황실측 코드에 접속해 두 달 동안 데이터코드의 70%를 파악했습니다. 나머지도 조만간 얻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억세스 코드엔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누가 알고있습니까?"

페로가 문득 카렐을 돌아보았다. 카렐의 표정은 여전히 순수한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걸 꼭 알아야겠나?"

카렐이 고개를 조금 끄덕이자 한숨을 내쉰 페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그룰라 모렌 박사다."

"모렌 수련장의 주인 말씀입니까?"

"당시엔 황제 수련장의 유전자은행 총책임자였고 널 직접 합성한 사람이다. 황제 수련장 외부에서 그걸 알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알겠습니다."

카렐이 클록을 다시 깊이 눌러썼다.

"전 명목상.....다시 각하의 가디언이군요......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엷은 미소를 지은 카렐이 휙 돌아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페로가 카렐을 부르자 카렐이 문득 그를 돌아보았다.

"조심해야 된다."

평소의 페로답지 않은, 뜻밖의 말에 카렐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페로가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모렌 박사는......"

"......"

"옛날 네가 죽인 시아푸의 주인이었던 여자다."

카렐의 긴 속눈썹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페로는 걸고있던 사파이어 목걸이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팔찌를 끌러 내밀었다. 페로가 내민 패물들을 잠시 내려다보던 카렐이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린 페로가 사뭇 쌀쌀맞은 표정으로 패물들을 옆의 나무둥치에 얹어놓으며 쏘아붙였다.

"내 가디언은 이런 형편없는 꼴로 다니지 않아. 하려면 완벽하게 해."

페로는 뒤로 홱 돌아 자기 집으로 향했다. 카렐은 집 쪽으로 혼자 멀어져 가는 페로의 뒷모습을 서글픈 표정으로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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