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49화
“양약과 한약을 병행해서 치료를 시작하신 만큼 치료 의지를 굳게 잡으셔야 합니다.”
재마는 진료실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들어와 설명을 듣는 성희에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성희의 병환은 모두 남편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인 것 같았다.
“네. 선생님께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데 노력해 보겠습니다.”
성희는 지난 20년간, 자신을 괴롭힌 지병에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해 있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자신의 건강하나만 바라보고 좋은 것만 사다주고, 유명한 의사라면 진료도 보게 해줬지만 매번 기대만 할 뿐 별다른 차도가 없어 희망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이재마’라는 한의사가 진료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희의 마음을 알아챈 남편 재환이 직접 한의사 이재마의 토크 콘서트를 다녀오고는 곧장 한의사의 시간을 맞춰 명의 한의원 예약을 잡아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들어 올 때까지만 해도, 바짝 여윈 몸에 휘어질 대로 휘어진 손가락, 부축 없이는 이제는 오래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힘겹게 재환의 손을 붙잡고 들어왔지만 재마의 진료를 본 이후에는 마음만큼은 단단하게 먹은 성희의 표정이었다.
“선생님의 진료를 받게 된 것만으로도 힘이 나네요.”
“원래 아무리 좋은 약보다 환자 본인의 의지가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처음엔 힘드시겠지만 유산소 운동.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걷기는 꼭 병행해 주시고요.”
재마는 류마티스 환자들에게 꼭 권장하고 있는 걷기 운동을 성희에게도 권했다.
재마의 이야기를 듣고는 성희의 의지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듯, 재환도 새겨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토크 콘서트 이후, 이재마가 직접 전화까지 걸어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해 성희의 진료를 봐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약, 좋은 의사는 수없이 만나 왔던 재환은 이번에도 재마의 치료 방법이 아내인 성희에게 얼마나 좋은 효과를 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내에게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펴준 재마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진료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이재마 원장.”
“네. 안녕하세요. 학장님.”
재마는 자신의 모교인 세중대학교 의대 학장실을 들어서며 자신을 반기는 학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하하. 반갑습니다. 반가워. 지난번 토크 콘서트 할 때는 내가 가보고 싶었는데, 스케줄이 엇갈려서 못 가봤습니다. 내가 참 아쉬워. 다음에 또 그런 기회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재마의 손을 맞잡은 학장은 지난번, 재마의 토크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친 것을 치하하며 또 한 번의 토크 콘서트를 제안했다.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공개된 토크 콘서트였기에 기자들의 이목도 이끌어 세중대학교의 이미지도 올라간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또 좋은 기회만 만들어주신다면 저야 참여할 생각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한의학 후배들이나 해인동까지 찾지 못하는 환자의 가족들까지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생활에 필요한 한의학뿐 아니라, 궁금증까지도 속 시원하게 풀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재마도 알고 있었다.
“하하. 고마워요. 고마워. 그건 그렇고 이렇게 제자로 만나서 몇 년 되지 않아 유명한 한의사로 이름을 날리다니. 내가 다 뿌듯합니다.”
학장은 자신의 기억 속에 또렷했던 과탑 재마가 어느덧 전 국민이 다 아는 한의사가 됐다는 것이 뿌듯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강의했던 학생들 중 한의학계에서 꾸준히 연구와 진료를 봐가며 정평이 난 한의사들도 많았지만, 그중에 재마가 제일이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도 오래간만에 학장님을 뵙는 거라 학교를 들어오는 길이 묘하더라고요.”
재마는 그렇지 않아도 토크 콘서트 때와는 다르게 한의학과 건물로 자신이 걸어 들어오는 길에 의과 시절이 떠올랐다.
매일같이 드나들며, 틈틈이 있는 퀴즈 덕분에 6년이라는 순식간에 지나 보내고 5년 만에 찾아온 한의학과 건물을 처음으로 여유롭게 걷는 기분이었다.
잠시 옛이야기를 사이좋게 한 마디씩 꺼내던 학장은 오늘 재마와 약속을 잡은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에 심호흡을 했다.
“오늘 이렇게 이 원장을 만나자고 한 건 다름 아니라…….”
재마에게 토크 콘서트를 제안했던 학장은 마주 앉은 재마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떼어냈다.
“말씀하세요.”
재마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는 학장에게 편하게 말하라는 듯 대답했다.
“다음 학기에 이 원장이 우리 대학 한의학과에 수업을 하나 맡아 줬으면 하는데.”
“네?”
재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놀란 얼굴이었다.
“자네도 알지? 김 교수. 김 교수가 꽤 오래 우리 학교에 몸담고 있었잖나.”
이제 곧 60을 바라보는 동료이자, 후배 교수인 김 교수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시간 학장과 함께 한의학과의 인재들을 양성한 그는 은퇴를 앞둔 시기였지만 은퇴 전 안식년을 갖고자 희망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희망에 동료로서, 선배로서 거절을 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 자리에 걸맞은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김 교수가 안식년을 갖기를 원해.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서 치료도 좀 필요하고.”
학장은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편하게 이야기를 해달라는 재마의 말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은퇴까지 버텨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들어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그 자리에 아무나 앉히자니 25년이나 세중대에서 노력한 김 교수의 노고가 있는데 먹칠이라도 할까 봐.”
재마는 학장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네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 말 알아요.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왕이면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인물에는 딱 이재마 원장인걸.”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것을 강조라도 하듯 학장은 재마를 향해 바라보며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그의 반응을 살폈다.
“제가 감히 그 자리에 가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히라니. 아마 허락만 한다면 김 교수도 적극 찬성할 걸세. 자네만 한 인물이 없어요. 없어. 그뿐인가. 우리 한의대학 역사상 최연소 교수가 될 겁니다.”
한창 한의원을 확장하고 있고,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재마에게 교수 제안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꼭 좋은 대답 부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간곡히 부탁하는 학장의 말에 재마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
“대박.”
오래간만에 다 함께 모인 명의 한의원의 강산과 정우 그리고 이제 막 개원을 한 동기 재원까지.
치킨집에 둘러앉아 첫 잔인 맥주 500㏄ 잔을 들고서 입으로 맥주를 마시려다 모두 얼음이 되었다.
“교수직 제안이 왔다고.”
“이야. 이 자식 뭔가 되도 될 줄 알았다.”
“내가 매번 말했잖아. 이 자식은 우리랑 시작부터가 달랐다니까.”
동기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재마라면 가능한 일이라는 듯 건배를 외치고는 맥주를 쭉 들이켰다.
“크. 시원하다.”
“반응이 이게 끝이냐?”
동기들에게 교수직 제안 받은 것을 이야기하고, 어떤 의견이 나올지 궁금했던 재마는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에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기울이는 동기들을 쭉 훑었다.
“그럼 어떤 반응을 하냐. 기절이라도 해줄까?”
“강산이 네가 제안받았으면 기절초풍할 일은 맞는데, 재마가 받은 제안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 오히려 이제 온 게 나는 이상한데. 진작에 올 줄 알았더니.”
정우는 기절이라도 하냐는 강산의 잔에 술잔을 다시 한번 부딪쳤다.
“나라면 교수 제안이 들어오면 옳다구나. 받아들이지. 아마 우리 아버지는 경사라고 마을 잔치라도 열 걸?”
재원은 어렵게 한의대학을 끝마치게 도와준 아버지가 개원을 했으니, 승승장구해서 교수를 하는 것을 보면 이제 여한이 없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는 어림도 없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동기인 재마가 교수가 되었다고 하니 부러움과 동시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야, 근데 재원아. 우리 원장님이 워낙 바쁘셔서 학교에 몸담으시면 우리 한의원은 어쩌냐. 방송도 더 하고 좀 더 키워야 하는데.”
강산은 재마가 더 바빠지면 한의원 운영에 차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서울에 있던 자신이 김천까지 내려가 있는 상황이라 그 몫은 정우가 하고 있었다.
“방송 이제 늘리지 말라고 했더니, 이제는 아주 교수까지 하신다고 하고.”
정우는 오징어를 입에 넣더니 잘근잘근 씹었다.
“야, 잘 됐지 뭐. 너도 원장으로 승진 좀 시켜달라고 해.”
재원이 자신들은 모두 원장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정우만 서울에서 재마와 함께 있어 원장이 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난 아직 부담스럽다. 김천에서 너무 고생했어.”
“왜. 우리 지역이 뭐.”
김천을 3년간 맡아서 고생을 한 정우의 노고를 잘 알고 있었지만, 강산은 제 고향 편이라도 들듯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재마나 강산이처럼 원장 달고 바쁜 것보다 속 편하게 환자들 만나고, 봉사나 하련다. 너 내가 말했다. 방송은 늘리지 말라고. 방송 늘리면 환자 늘어서 내 환자도 늘어서 안 돼.”
“그럼 교수직은?”
재마는 자신과 함께 해인동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정우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듯 물었다.
“교수직은…… 뭐. 그런다고 환자들이 더 늘지는 않을 테니까. 괜찮지 않나?”
정우는 재마의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나는 원장은 못 해도 봉사팀 팀장은 할 수 있다. 이번에 한 팀 더 꾸려라. 그렇지 않아도 진천에서도 연락 왔어. 조금 더 자주 와줄 수 없냐고. 그래서 너튜브에 공고 하나 올리려고. 괜찮지?”
환자가 늘어서 자신의 환자에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은 안 된다던 정우는 주말에 짬을 내 봉사 활동 가는 것은 괜찮다는 듯 대표원장인 재마에게 새로운 봉사팀 공고를 허락을 구했다.
“네네. 그렇게 하시죠. 이정우 팀장님.”
강산은 못 말린다는 듯 정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말고. 원장님한테 여쭌 거야.”
“너네는 웃기더라. 꼭 부탁할 때만 재마한테 원장님이래.”
재원은 자신 앞에 있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며 못 말린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당연하지. 대표 원장님이신데.”
정우와 강산은 동시에 이야기를 하며, 자신들이 하는 부탁은 꼭 들어주라며 재마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재마는 이번에도 자신을 도와주는 동기들 덕에 걱정 없이 교수직을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