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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48화 (148/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48화

세중대학교 100주년 기념 소공연장.

1층까지 꽉 메워진 사람들 사이에 무대 위의 사회자와 오늘 토크 콘서트의 주인공인 이재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90분의 토크 콘서트였지만, 시간이 더 해질수록 참석자들은 때로 웃을 때도,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다.

토크 콘서트 막바지에 다다르자, 사회자와 재마가 준비한 이야기가 끝을 맺어가고 빼놓을 수 없는 코너 이야기를 꺼냈다.

“이재마 원장님과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요. 원장님 이쯤 해서 오늘 참석해 주신 참석자분들과 Q &A 시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Q&A요?”

“네. 방송은 많이 해보셨지만, 이렇게 원장님이 나오시는 프로그램이나 너튜브 채널을 애청하시는 시청자분들을 가까이서 뵙는 건 처음이시잖아요? 정해지지 않는 질문에 즉흥적인 원장님의 대답을 듣는 것도 토크 콘서트의 묘미거든요.”

Q&A에 조금은 당황해하는 재마의 표정을 읽은 사회자가 재마에게 Q&A의 재미를 이야기하자 참석자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로 반응을 보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죠.”

잠시 뜸을 들인 재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한번 환호를 보냈다.

“그럼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이재마 원장님을 만나면 꼭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시는 분들도 좋고, 질문을 준비해 오신 분들도 좋습니다.”

사회자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손을 든 많은 질문자들 중에 사회자가 신중하게 한 명을 선택했다.

“세 번째 줄, 검은 맨투맨 입으신 분.”

사회자가 선택을 하자, 질문자는 자신이 선택된 것이 반가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표정이 활짝 폈다.

마이크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을 가다듬고, 재마에게 질문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는 세중대학교 한의대학에 다니고 있는 윤태풍이라고 합니다.”

세중대학교 한의대학 학생이라는 이야기에 사회자는 소개를 거들었다.

“이재마 원장님의 후배시네요. 원장님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모교에서 후배의 질문을 받으시네요.”

재마가 사회자의 말에 싱긋 웃었다.

“이 원장님께서 재학 중에 항상 과탑을 놓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한의대학 학우들 모두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데 과탑을 놓치지 않으셨던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

한의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교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태풍이 이야기하자, 다른 참석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또 졸업을 하시고 곧장 명의 한의원의 원장님이 되셨는데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태풍의 질문에 재마는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의대학에서 과탑을 놓치지 않았던 것은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하는 상황과 졸업을 하자마자 유명 한방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때는 그 목표를 위해서 달린 것밖에 없고요.”

담담히 이야기를 하는 재마의 대답에 사회자가 거들었다.

“원장님, 그런 이야기는 교과서만 봤습니다. 라는 이야기랑 같은 이야기 아닌가요?”

사회자의 이야기에 관객석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탑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뻔한 대답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재마도 자신이 과탑을 유지할 수 있었던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자신이 명의 한의원의 원장이 되리라는 것도 알 수 없었고, 환자의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란 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었다.

“명의 한의원 원장이 되고 나서 힘들었던 점이라는 건…… 아무래도 처음 임상으로 나와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고,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닥친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초임 한의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었지만, 경험 없이 원장이라는 임무까지 모두 해내야 했던 재마였다.

그뿐 아니라 능력을 받게 되고 거기에 따르는 미션까지 해내야 했으니, 얼떨결에 하루하루가 도장 깨기 같은 일상이 되었었다.

“저는 한의사는 다른 의사들보다 더욱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단번에 나타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수술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환자들과 신뢰를 두텁게 쌓았다는 전제하에 꾸준한 관계 유지가 한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중요합니다.”

재마는 지난 시간 자신이 쌓아 온 환자들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어진 관계를 떠올렸다.

처음에 마음을 열지 않았던 노인정 어르신들, 하지만 굽히지 않는 재마의 노력으로 이제는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때가 되면 고향에서 올라오는 농산물을 한의원 식구들과 나눠 드시라며 두 손 가득 들고 걸어오시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부담감보다는 감사함이 앞섰다.

처음에는 거절도 해보았지만, 이제는 맛있게 잘 먹겠다며 인사를 깍듯이 드리고 맛있게 먹는 것이 그분들에게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을 마친 태풍이 자리에 앉자, 다시 다른 질문자들이 손을 들었다.

“왼쪽 사이드, 초록색 카라티 입은 분.”

“네!”

이번에 선택이 된 남성은 손을 번쩍 들며 대답을 우렁차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력 2년 차, 한의사 박정민입니다.”

아무래도 너튜브나 방송을 통해 인지도를 얻은 재마의 토크 콘서트여서 그런지, 한의대학생이나 한의사들이 참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어느덧 5년 차 한의사인 재마보다는 적은 경력의 정민이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한의원을 개원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당찬 한의사였다.

“원장님의 채널도 초창기부터 팬이라서 쭉 따라가고 있는데요. 저도 언젠가 개원을 하고 분원까지 낼 수 있는 한의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정민의 질문에 재마도 사회자도 활짝 웃었다.

“처음 봉사 활동지를 횡성 시골 마을의 요양원으로 잡으시고 컨셉을 시골 요양원 쪽으로 잡으셨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분점도 꼭 소도시보다도 더 들어가는 시골 마을의 한의원들을 인수 하시더라고요. 이유가 있으십니까?”

재마가 인터뷰를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당황하지 않았다.

“저도 이 부분은 궁금했어요. 한의원을 사업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어떤 사업이든 번창을 하면 더 좋은 곳, 땅값 비싼 곳으로 2호점 3호점을 열고 손님이나 환자들을 모집하는데 원장님은 특이하시게도 시골 마을의 한의원이더라고요.”

재마처럼 언젠가는 분원까지 내는 한의원의 대표원장이 되고 싶은 정민이었지만, 재마의 의도는 파악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부분은 사회자도 궁금했다는 듯 되물었다.

“사실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사회자님 말씀처럼 번창하는 한의원이나 의원들은 대도시, 인구가 많은 곳에도 충분합니다. 저희는 그런 경쟁에서 벗어나 한의사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재마는 자신이 처음 명의 한의원을 물려받았을 때부터 갖게 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찾아가겠다는 소신을 잊지 않았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럼 다소 실례가 되는 질문이지만, 이게 토크 콘서트의 묘미니까요. 시골의 명의 한의원 분점 운영에는 경제적인 문제는 없나요?”

사회자는 받았던 질문에 자신의 사심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경제적인 문제는 모두들 걱정은 했지만, 선뜻 묻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시골 마을의 한의원은 원장 한 명, 간호사 한 명만 근무하더라도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명의 한의원은 원장 한 명, 간호사 한 명, 물리치료사까지 서울의 명의 한의원 본점과 다르지 않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더구나 해인동의 명의 한의원보다 한약 조제 횟수는 훨씬 적었다.

그야말로 돈 되는 처방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었다.

“아무래도 본점인 해인동의 명의 한의원보다는 환자분들이 적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곳의 인구 자체가 적으니까요. 또 솔직하게 한약의 조제 양도 대도시에 비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너튜브도 계속 진행하시고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시는 이유가, 혹시…….”

“하하.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재마의 솔직한 대답에 사회자뿐 아니라 참석자들도 소리 내어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부수적인 수입으로 재마가 메꾸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사회자가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의 관객석을 향해 질문을 받겠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맨 앞줄에서 토크 콘서트를 집중해서 지켜보던 흰머리가 성성한 어르신의 질문이었다.

맨 앞자리에 있는 어르신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맨 앞에 계신 백발이 멋있으신 어르신 질문 받겠습니다.”

사회자가 호명하자, 백발이 부끄러운 지 한 번 쓸어 넘긴 노인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안사람이 오래도록 류마티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양약 치료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이제 나이도 있고 점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용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지만 양약 치료를 하며 병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흰머리가 성성한 어르신은 차분한 목소리로 재마를 향해 질문을 했다.

사실 너튜브를 잘 알지 못하는 그였지만, 병환으로 오래도록 고생을 하는 어머니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아들들의 추천으로 함께 재마의 채널을 구독한 그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재마의 진심이 담긴 너튜브를 보며 아내가 진료를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도 멀었고 재마의 스케줄을 따라 예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선뜻 찾지 못했던 그였다.

“저희 채널에도 류마티스 환자분 치료 영상이 있는 데요.”

재마는 마이크를 들고 어르신이 질문한 답변을 시작했다.

가장 처음 마주했던 류마티스 환자인 영원을 떠올렸다.

아직 30대 중반이었던 영원은 류마티스로 일상생활도 힘들었던 환자였다.

하지만 양약과 함께 한의학을 접목시켜 꽤 많은 호전 반응을 보였다.

그뿐아니라, 자신은 힘들고 약한 몸이라 생각했던 영원이었지만 재마를 만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산소 운동도 힘들어했지만, 유산소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 올리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근력을 키웠다.

아무래도 근력이 잘 붙지 않는 병이다 보니 쉽지 않았지만, 재마를 믿고 따르며 호전 반응을 보인 건강 덕에 영원은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했고 이젠 나이대의 그 어떤 청년들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양약과 함께 한의학을 접목하지 않더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운동을 하셨으면 합니다. 토크 콘서트까지 직접 찾아와주시는 남편분이 계시니 두 분이 함께 산책만 꾸준히 하셔도 병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겁니다.”

재마는 환자의 상태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자세한 처방은 내릴 수 없었지만, 아내를 향한 남편의 마음이라면 충분히 병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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