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47화
“아휴, 몰러. 나는 우리 아들이 한의원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혔어.”
“환자분 그래도 한의원까지 오셔서 진료 보시고 하셨으니까 침도 맞고 부항도 뜨시고 찜질도 하시면 좋잖아요.”
“아휴, 됐다니께.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약만 지어주세요.”
강산과 정 실장이 김천으로 내려간 이후 명의 한의원 데스크를 맡은 지선은 처치실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환자의 상황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처치실로 들어가야 하는 환자가 데스크 앞에서 결제나 해달라는 통에 대기를 하고 있던 환자들의 시선도 한곳으로 쏠렸다.
“이 선생님. 무슨 일이예요?”
진료를 보던 중, 소란을 느낀 재마가 대기실로 나왔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실랑이에 자신이 중재를 해야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이지오 원장님이 보신 환자분이신데요. 침 치료 받으시고 귀가하셔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왔는데 침은 안 맞겠다고 하셔서요.”
재마가 나오자, 데스크 앞에서 결제를 하겠다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던 황옥녀 환자는 괜스레 민망해진 탓인지 꺼냈던 지갑을 다시 자신의 크로스 백 안으로 집어넣었다.
해인동 명의 한의원 4번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이지오 선생이 담당인 환자인 모양이었다.
이지오 선생의 진료실 앞에 환자들이 쭉 늘어서 대기를 하는 것 보니, 이지오 선생은 이미 처치실 안에서 다른 환자를 처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재마는 침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그냥 귀가를 하겠다는 이야기에 옥녀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명의 한의원 대표 원장 이재마 입니다.”
재마는 자신의 환자가 아닌 이 선생의 담당 환자인 옥녀에게 예의 바르게 자신을 소개했다.
재마는 첫 대면을 하는 환자였지만, 옥녀는 이미 익숙한 얼굴에 반색을 했다.
“알다마다요. 매주 목요일에 테레비에 나오는 그 원장님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내가 원장님 얼굴 보려고 이짝 병원까지 멀어도 다니고 있는데 이제야 얼굴을 보는구먼요.”
“괜찮으시면 제 진료실로 가셔서 이야기 좀 하실까요? 침 치료를 받지 않고 가신다고 하니 제가 마음이 쓰여서요.”
옥녀는 마치 연예인을 눈앞에서 대면하기라도 한 것처럼 조금 상기된 얼굴로 재마를 바라봤다.
함께 진료실로 가자는 재마의 손짓에 옥녀는 움직일 것 같지 않았던 발을 떼었다.
데스크 앞에서 진땀을 흘리던 지선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원장님 스케줄이 있으셔서 첫날 다른 선생님한테 진료 받고 그 뒤로도 쭉 진료 받고 있었는디…… 이렇게 뵐 줄 알았으면 바꿔달라 그럴 걸 그랬어요.”
아무래도 재마가 꽤 오랫동안 방송에 나오자, 종종 옥녀처럼 재마를 콕 집어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재마가 볼 수 없는 만큼 이럴 경우에는 최대한 환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설득을 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TV에 얼굴을 알리고, 안 알리고의 유무로 한의사의 실력을 평가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방송을 하고 있는 재마였지만, 이 부분은 항상 신경 쓰고 바로 잡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지오 선생님도 참 능력 있으신 명의입니다. 아시죠?”
재마는 자신의 진료실로 함께 들어온 옥녀가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믹스 커피를 준비했다.
“아이고. 커피네요.”
“쌍화차는 아까 드셨을 것 같아서요.”
한옥 한의원을 떠나 새 건물을 신축해서 넘어온 명의 한의원이었지만, 쌍화차를 서비스로 구비해 두는 것은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명의 한의원을 찾은 환자들은 준비되어 있는 쌍화차를 맛보며 대기를 하고는 했다.
“침 치료를 안받고 가신다고 하셨다면서요.”
“네. 아휴. 아들이 그런 치료는 효과 없다고 자기 카드로 약이나 지어오라고 해서요.”
옥녀는 아들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조금 전 집어넣었던 지갑에서 아들의 카드를 재마가 보란 듯이 꺼내놓았다.
소중하게 지갑에 넣어뒀던 아들의 카드가 반짝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옥녀의 눈도 빛이 났다.
“아드님이 효자시네요.”
“제가 아들 서이를 혼자 키웠어요.”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의사가 있는 곳은 분기별로 아들들이 데려가는 데 이번에는 막내아들이 카드 주면서 한의원 가서 약 지어오라고 해서.”
“그러셨군요.”
재마는 그사이 자신의 컴퓨터로 넘어온 옥녀의 차트를 확인했다.
재마가 예상한 것처럼 지오의 처방에는 문제가 없었다.
꼼꼼한 성격에 아직 옥녀의 상황을 살피지 않았지만 그녀의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차트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83세인 노령의 나이이기는 했지만, 아들들이 나서서 어머니의 건강을 크게 신경 쓰고 있다고 해서인지 건강관리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지오 선생은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옥녀에게 침과 뜸치료를 처방을 내린 상태였다.
재마는 옥녀를 향해 몸을 틀고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황옥녀 환자, 제가 진맥을 한번 봐도 괜찮으시겠어요?”
“아유. 그러믄요.”
이미 이지오에게 진료를 보고 나온 후였지만, TV에서 나오는 유명한 한의사가 직접 자신의 상태를 봐준다는 데 거절할 일이 전혀 없는 옥녀는 손목을 올려 재마가 진맥을 보기 쉽게 했다.
재마는 진맥을 보는 것과 동시에 옥녀의 동공을 읽어냈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이름 : 황옥녀
나이 : 83세
노령의 나이와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 오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좁아진 혈관 탓에 심장으로 향하는 혈류들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재마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 탓에 머리까지 산소공급이 힘들었는데, 목디스크까지 있으니 두통이 잦을 것으로 보이는 재마였다.
목디스크를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통이 잦으시죠?”
“네. 저 짝방 선생님도 그러셨는 데…….”
“맞습니다. 이지오 선생님도 잘 보시죠. 아마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은데…….”
재마는 지오가 정리해 둔 차트를 다시 확인하며 이야기를 했다.
더욱이 심각해지면 시야도 흐릿해 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고령의 환자들이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노환으로 착각하지만 치료를 하자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약해진 혈관으로 산소 공급이 쉽게 되지 않고 목디스크로 인한 두통도 동반되면서 두통이 끊임없이 생기신 모양이에요.”
“두통약은 아들들이 내성 생긴다고 조금만 먹으래서 아주 죽겠어요.”
작고 여윈 몸으로 아들 셋을 키운 옥녀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아들들의 이야기 또한 빼먹지 않았다.
몸은 상했지만 아들들이 자신을 챙길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자랐으니 그만큼 자랑스러운 일이 없었다.
“저희 한의원에서 지어드리는 약 드시면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오장육부가 건강해야 만사형통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기항지부에 속하는 혈관 건강이거든요.”
“기항지부요?”
재마의 말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듯 옥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혈관이 깨끗하고 튼튼해야 영양분도 공급하기 쉽고 산소도 공급하기 쉽습니다. 혈관이 튼튼해지는 처방이 들어갔으니 좋아지실 거예요.”
침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옥녀였지만, 차분하게 자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하는 재마의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다만, 혈관 건강도 건강이지만, 지금 목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이 부분도 치료를 병행하시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목디스크가 있으시네요.”
“목디스크 있은 지는 오래됐어요. 아들 서이 키우려니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아들 셋을 키우느라 자신의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는 듯, 옥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디스크는 한약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침 치료도 중요합니다.”
재마는 침치료를 거부한 옥녀에게 조심스럽게 침치료를 권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나도 침 치료가 효과 적인 건 알지. 무서워서 그렇지.’
옥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침치료가 겁이나 덜컥 처치실로 들어가지 못한 속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들들이 침 치료는 효과가 없댔어요. 돈이 얼마라도 좋으니 약 지어 먹으라고…….”
“목디스크 전문 병원은 가보셨어요?”
아들들이 유명한 병원은 수소문 해서 데리고 다닌다던 옥녀는 목디스크 전문 병원이라는 말에 입을 쏙 닫았다.
진작에 서너군데는 다녀왔던 옥녀였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목디스크 수술을 권장했지만, 어디서 듣기로 목과 허리는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며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강하게 거절을 하고는 다시는 발도 디디지 않았다.
“침 치료보다 빠른 방법이 수술일 것 같기는 한데…….”
“아휴. 수술은 무서워서 못 받아요.”
재마의 입에서 수술 이야기가 나오자 옥녀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의학에서도 분명히 방법은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수술보다 오랜 시간 병원에 오셔야 하지만 수술이라는 위험부담은 확실히 줄어들죠.”
재마는 수술의 위험성에 겁을 덜컥 먹고 한의원을 찾은 옥녀를 설득했다.
“침 잘못 맞고 마비 오고 이러는 건 아니에요?”
옥녀는 혹시라도 있을 의료사고를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이지오 선생님 제가 2년 동안 지켜보고 저희 한의원에서 근무하신 베테랑 선생님이십니다. 저희 한의원 오시기 전에 큰 한방병원에도 계셨었구요. 걱정 말고 치료 받으시면 됩니다.”
“흠.”
TV를 통해 얼굴이 익숙한 한의사가 설득을 하자, 옥녀는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다.
“오늘 내키지 않으시면 오늘은 침 치료 받지 않고 가셔도 됩니다. 제가 처치실에 연락해 둘게요. 침 치료 없이 부항치료, 물리치료, 찜질만 받고 가보세요. 그리고 침 치료 하고 싶으신 마음이 생기시면 그때 다시 침 치료 들어가도 됩니다.”
재마는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옥녀에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는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재마였다.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아이처럼 변해가는 환자의 마음도 이해해야 하는 재마였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그 들의 마음을 읽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했다.
재마의 차분하고 진실된 설득에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옥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치료 받아볼게요. 다음에도 또 침 치료 받을지는 아들들하고 상의를 해보고요.”
그 어떤 설득보다도 강하게 작용할 아들들의 의견을 존중할 생각이라는 듯, 아들들의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 옥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감사합니다. 처치실로 들어가세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재마는 자신의 진료실을 들어올 때보다는 한시름 안심을 한 옥녀를 배웅하고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환자들을 대하는 것이 하루하루 결코 쉬워지지 않았지만, 매번 쌓이는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오늘도 명의 한의원의 진료를 마친 재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