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43화
홍성의 꿈속 요양원.
보름에 한 번, 구 원장을 대신해서 4년째 재마가 진료를 보러 내려오고 있었다.
바쁜 스케줄에는 강산이 대신해서 내려오고는 했지만, 진료를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년 만에 재마와 강산이 아닌, 구 원장이 요양원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직원들과 환자들은 그를 맞이하기 위해 요양원 입구로 모두 나와 있었다.
“아이고. 원장님을 이렇게 다시 뵈니 참말로 좋구만요.”
구 원장이 차에서 내리자, 그를 기다리던 김 여사가 손을 와락 잡으며 반가워했다.
꿈속 요양원을 다시 오기는커녕 그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몸 상태였던 구 원장이었다.
“저도 오래간만에 찾아올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거기에다 생각지도 못했던 환대를 받자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구 원장이었다.
“그라믄요. 잘 지냈습니다. 저희 새롭게 돌봐주시는 젊은 원장님이 얼마나 실력이 있으신지, 그뿐 아니라 원장님이 바쁘실 때는 다른 선상님들을 보내주시니까…….”
꿈속 요양원의 터줏대감인 김 여사는 오래간만에 요양원을 찾은 구 원장의 모습에 눈물을 한껏 쏟았다.
반가움과 그간 한적한 시골에 있는 작은 요양원의 자신들까지 잊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구 원장을 반가워하는 건 김 여사 뿐 아니라 요양원장과 자원봉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 여사가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직원들도 눈에서 눈물을 찍어냈다.
재마가 봉사팀을 꾸려 정기적으로 요양원을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시작은 명의 한의원의 구 원장과의 인연이었기에 구 원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오래간만에 내려오니 참 좋네요.”
벌써 환자들을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몸속의 암덩어리를 치료한 지, 4년이나 된 구 원장은 이곳에서의 인연이 아득하기만 했다.
꼭 한번 내려오고 싶었는데 손주인 재마가 이번 주에는 꿈속 요양원을 간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함께 오기로 한 것이었다.
장거리 여행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 만류하는 재마였지만, 이제는 손주인 재마도 방송 활동에 한의원 경영으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모양이라 그와 시간을 맞춰 함께 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완치 판정은 받지 못한 그였지만, 그는 재마의 눈에서 걱정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자신의 건강이 꽤 호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이었지만, 구 원장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고스란히 손주인 재마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해인동의 명의 한의원은 몇 번 찾아갈 수 있었지만, 꿈속 요양원은 오고 싶은 마음만 컸지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구 원장이었다.
해인동을 찾아갈 때마다 그곳 주민들과 환자들이 구 원장을 반겼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찾는 이가 드문 꿈속 요양원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꿈속 요양원을 함께 오기로 하고, 전날 저녁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 꿈속 요양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환대하는 환자들과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눈시울을 함께 붉힐 수밖에 없었던 구 원장이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기대했던 꿈속 요양원은 그가 침을 손에서 내려놓았던 4년 전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여전히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요양원 안에는 언제나 구 원장을 반기던 직원들과 환자들이 있었다.
제아무리 미세먼지가 전국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는 했지만, 꿈속 요양원의 공기만큼은 공기 청정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맑았다.
“이렇게 원장님이 다시 찾아주시다니, 환자분들만큼이나 저도 참 반갑습니다.”
환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산책을 하며 구 원장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는 요양원장이 넌지시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전달했다.
지금까지 꿈속 요양원에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구 원장의 배려 덕분이었다.
“꿈속 요양원을 다시 올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한의원 일을 내려놓을 때 다시는 못 올 줄 알았거든요.”
구 원장은 처음 치료를 시작하고는 환자만 돌볼 뿐,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암 덩어리가 4기까지 자랄 때까지 병원 한번 찾아가지 않고, 환자들만 생각했던 그였다.
주위에 그를 돌봐줄 가족 한 명 없었으며, 평생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한 명의 한의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는데, 4년이 흐른 지금은 정말 그가 꿈꾸던 일을 그의 외손자인 재마가 이루고 있었다.
“손자분이 원장님께도 잘하시죠?”
요양원장은 처음 재마가 구 원장을 대신해서 꿈속 요양원을 찾아왔을 때, 경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민망해지도록 승승장구하는 재마를 떠올렸다.
“그럼요. 잘할 뿐입니까. 제가 하던 그 이상을 하지 않습니까.”
구 원장은 평생 자식 자랑 한번 하지 않고 겸손하게 지내왔지만, 요즘은 자신 그 이상을 하고 있는 재마를 자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희 선생님들, 환자분들도 이재마 원장님이 나오는 방송은 꼬박꼬박 챙겨보고 계신답니다.”
“하하. 진짜요?”
예전의 구 원장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손주의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 요양원장은 재마의 방송을 잘 보고 있다며 구 원장의 이야기를 맞춰 주었다.
특히 DR.트루를 본방 사수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온 얼굴이 활짝 필 정도였다.
“할아버지!”
함께 봉사를 온 한의사들과 팀을 이뤄 진료를 보던 재마가 함께 요양원을 찾은 구 원장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어. 그래. 재마야.”
“여기 계셨어요?”
요양원 둘레를 한참 찾은 건지 재마는 숨을 가삐 쉬며 구 원장을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빠른 걸음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손주를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손짓을 하며 구 원장이 물었다.
“아뇨. 진료 보고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안 보여서요. 저는 안쪽에 계시는 줄 알았거든요.”
-동공을 인식합니다.
이제는 구 원장의 동공을 바라보고 인식을 해도 그의 몸 안에 있는 암 덩어리들이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음을 재마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의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눈을 볼 때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할아버지의 건강을 체크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한 재마였다.
이렇게나마 확인을 하고 안심을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유용하고 감사한 능력일 수 없었다.
“제가 너무 멀리까지 산책을 모시고 나왔나 보군요. 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손주분과 좋은 시간 보내시죠.”
요양원장은 재마가 오자, 눈짓을 하며 자리를 비켜 먼저 요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쁜 재마이니 할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적을 것 같아 자리를 비켜주는 요양원장이었다.
“내려오시니 어때요?”
“내려오기를 참 잘했구나. 내가 병원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그대로 있는 곳은 이곳뿐이야.”
꿈속 요양원을 한번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서도 들어왔던 재마라 할아버지에게 꿈속 요양원이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재마였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구 원장은 이곳이 의미가 큰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해인동 한의원이 옮겨서 서운하세요?”
이제는 한의원을 찾아가려면 한옥 건물이 아닌, 바로 옆 새로운 건물의 한의원으로 찾아가야 명의 한의원을 갈 수 있으니 어쩌면 할아버지에게 서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재마였다.
명의 한의원은 구 원장에게는 인생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아이고. 아니다. 그런 뜻은 아니야.”
괜히 죄송하다는 듯 물어오는 재마의 물음에 구 원장은 손사래를 쳤다.
한옥 한의원이라는 것이 관리도 힘들고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앞날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은 구 원장도 현업에 있을 때 충분히 느꼈던 상황이었다.
아마 자신이 그대로 명의 한의원을 운영해 왔다면, 문화재 지정은커녕 그냥 폐업을 하고 기억 속에만 자리하는 한의원으로 잊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이어 명의 한의원을 맡은 재마가 문화재 지정을 시켰고, 그 이후 시청에서 문화재 관리를 하며 명의 한의원은 과거부터 해인동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그 자리에서 지금보다 더 오래도록 자리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구 원장이었다.
“환자분들도 한옥 한의원을 더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는 해요.”
재마도 구 원장과 단둘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특히 할머님들요. 새 건물보다는 역시 옛 건물이 치료를 받아도 치료 빨이 쫙쫙 받는 기분이래셔요.”
재마는 눈을 찡긋거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던 환자의 의견을 구 원장에게 건넸다.
“그래도 바뀔 것은 바뀌어야지. 좋은 것은 남기고.”
구 원장도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현업에 있을 때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니 더 느끼는 그였다.
명의 한의원 안의 자신은 한옥 한의원 담장을 넘지 못하는 우물 속 개구리 같았던 한의사였다.
하지만 그 담장을 뛰어넘은 자신의 후계자, 재마를 보니 자신이 못한 것까지 해내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자신이 느꼈던 그 능력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재마라는 것을 구 원장은 잘 알고 있었다.
“재마야.”
“네. 할아버지.”
서울에서는 밟을 수 없는 흙 땅을 밟으며 걷는 재마와 구 원장.
구 원장은 넌지시 자신의 손자인 재마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는 돈으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단다. 너도 이제는 알지?”
“네. 하지만 아직 멀었죠.”
명의 한의원을 이어받으며 4년 동안 성장한 재마는 돈 그 이상의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었다.
“그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깨달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하지만 그걸 다 깨닫는 순간, 네 옆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을 거란다. 당장의 돈을 좇지 말고 네 소신을 지켜 나가렴.”
“네. 할아버지.”
재마는 이제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구 원장을 내려다보았다.
병으로 인해 작고 노쇠해진 노인에 불과한 구 원장이었지만, 한평생 돈을 좇지 않고 그 이상을 이뤄낸 그의 성정은 자신의 체구를 뛰어넘어 누구보다도 넓고 커 보였다.
“그리고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능력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우리에게 축복과도 같은 능력이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단다. 능력이 사라지더라도 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어야 해. 너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환자들이 있을 테니까.”
구 원장은 한평생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마음을 재마에게 고스란히 건네는 마음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재마는 할아버지와의 이 시간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