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41화
“오, 오늘 영상이 다음 내용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끝이 났어요.”
“어우…….”
닥터 군단이 요양원과 시골 마을로 의료 봉사를 간 영상을 공감하며 보던 송 MC와 방청객들은 끊긴 영상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정말 이대로 끝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감상하던 송 MC의 얼굴에도 방청객들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비뇨기과 의사인 장근수가 이장을 찾아서 조금 전 마을 회관을 떠난 어르신을 찾을 모양이었다.
근수는 자신이 나오는 장면에서 송 MC도 방청객들의 반응도 기대에 찬 반응에서 아쉬워하는 반응을 나타내자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영상의 맨 마지막을 근수가 장식했으니, 분량 확보는 확실히 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궁금하게만 해두고 영상을 끊으시는 겁니까? 장 원장님, 다음 이야기 힌트라도 주세요.”
송 MC는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근수를 바라보며 다음 내용을 추궁할 기세였다.
클로징을 장식한 만큼 근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집으로 저희가 먼 곳까지 내려갔으니, 다음 주까지 본방사수 해주십사, 하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힌트를 드리면 재미가 없죠.”
근수는 다음 주 DR.트루 201화의 시청을 권장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며 피식 웃었다.
근수의 이야기에 다른 닥터 군단들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200화까지 사랑을 받았으니, 201화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그대로 이끌고 가고 싶은 마음들이었다.
“자, 그럼 200화를 알차게 꾸며주신 닥터 군단의 뜻이 그렇다고 하니까, 저희는 201회에 더욱 알차고 시청자 여러분들의 건강에 도움 되는 내용으로만 꽉꽉 눌러 담아 다시 오겠습니다.”
송 MC는 아쉽지만 다음 201화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담에 클로징을 찍었다.
송 MC는 닥터 군단에게 인사를 한 번, 시청자들을 바라보듯 카메라에 한 번 인사했다.
“컷.”
CP는 송 MC의 클로징이 끝나자, 컷을 외쳤다.
컷이 외쳐지자마자 송 MC는 의사 군단 쪽으로 다가왔다.
보다만 듯한 영상에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DR.트루의 편집 감독이 감칠맛이 나는 곳에서 끊기로 유명했는데 200화라고 순순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아니, 어떻게 거기서 끊을 수가 있어요.”
“우리가 끊었나. 편집은 감독님이 하셨는데?”
장근수는 아쉬움이 자신의 탓은 아니라는 듯 양어깨를 으쓱였다.
익숙하지 않냐는 뜻이었다.
“어르신들 영상에 나오시는데, 우리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송 MC는 준비했던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영상시청을 하더니, 돌아가신 조부모님이 생각난다며 지금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요양원에서 4년이나 계셨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지 7년이나 지났지만, 마음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데, 저는 닥터 군단이 아니라고 두고 가신 거예요?”
이번 의료봉사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입술을 삐죽였다.
아마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면, 당연히 나섰을 송 MC였다.
“송 MC 스케줄이 바쁘니까 그랬지.”
촬영을 마치고 CP가 스튜디오로 올라오며 이야기를 했다.
닥터 군단의 스케줄을 맞추기도 힘들었는데, 국민 MC인 송 MC와 스케줄을 맞추려면 의료봉사를 하러 가기 아예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일주일에 방송을 6개를 소화해 내는 송 MC에게는 의료봉사의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 않았던 스탭들이었다.
“자자, 한 시간 쉬고 갑니다. 쉬었다 가실 분 쉬었다가 오시고, 식사하실 분들은 식사하시고요.”
CP는 닥터 군단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보통 2화씩 촬영을 하는데, 한 화를 찍고 한 시간 정도 쉬어갔다.
보통 쉬는 시간에 식사도 하고 쉬기도 하는데 이번 화는 특집화였어서 그런지 모두들 여운이 남아 쉽게 스튜디오를 떠나지 못했다.
“스케줄이야 조정하면 되죠. 다음에 또 이런 기회 있으면 저한테 꼬옥. 연락 주세요. 제가 의사는 아니어도 국민 MC 아닙니까. 어르신들이 좋아하세요. 가서 노래 한 곡씩 부르고 저는 MC 보고.”
송 MC는 CP의 우려와 달리 꽤 적극적이었다.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스케줄을 뺄 모양이었다.
“의료봉사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하란 말이야?”
근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봉사도 쉽지 않았는데, 장기자랑까지 하기에는 자신의 체력은 무리라는 듯한 뜻이었다.
“왜요. 원장님 지난번 회식 때 트로트 잘 부르시던데.”
“그거야 회식이니까 그렇지. 나는 해 떨어지지 않으면 마이크를 안 잡아요.”
근수는 장기자랑은 생각도 못 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근수의 이야기를 들은 최 선생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장근수를 바라봤다.
지난 회식 때 마이크를 놓지 않던 근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의외로 노래방 분위기를 주도하던 근수의 새로운 모습을 봤던 닥터 군단들이었다.
“원장님, 저렇게 말씀하시면서 막상 하실 땐 제일 잘하시더라.”
정연은 의료봉사 때도 가장 열정적이었던 근수를 바라보며 아마 다음 봉사 때는 노래를 부를 것을 장담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정연 쌤. 선생님은 정말 한 달 동안 요양원에 다녀오신 거예요?”
지난 영상에서 요양원장에게 한 달 동안 매주,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내려올 테니 치료를 진행하기를 강행했던 정연의 손을 와락 잡는 송 MC였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개원하고 강남에서 피부과 운영하면서 미용적인 부분만 진료해 왔지, 정말 제가 필요한 분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거였거든요.”
정연은 대단하다는 듯, 자신의 손을 꽉 잡은 송 MC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것도 힘든 데 욕창이 진행되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앉지도 서지도, 그렇다고 돌아눕기도 힘들거든요. 물론 이재마 원장님의 연고가 잘 들어서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치료할 때 뿌리를 뽑아야 해서…….”
정연은 그렇게까지 자신이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했다.
정연은 자신보다 한 달에 한 번 요양원 봉사를 다니는 재마가 대단하다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3기라고 하셨죠?”
“대부분의 환자가 3기에서 2기 정도로 많이 호전된 상태였어요. 아마 이 원장님 아니었으면 4기로 가는 건 순식간일 거예요. 자원봉사자분들이 보살펴 주시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라…….”
정연은 욕창에 생기는 것이 누구의 탓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어휴. 그런데 문제는 욕창 뿐은 아니잖아요. 거기에 계시면 제때 건강검진 받기도 힘드실 텐데…….”
송 MC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재마 원장이 꾸준히 방문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환자들 상태도 양호했어. 요양원장님도 환자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근수는 관리가 잘되어 있던 요양원을 떠올렸다.
“이번에 이재마 원장한테 정말 리스펙 했다니까.”
“이제서요?”
정연은 이재마 원장의 성품을 진작 알았다는 듯 되물었다.
“알고 있었는데 더 느꼈다는 거지. 이제는 진짜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것 같다니까. 아마 내 눈만 보고도 내 상태를 스캔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근수는 이재마를 바라보며, 혹시 자신의 건강상태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듯 바라봤다.
재마는 아니라고도 말은 하지 않았다.
제 능력으로 정말 눈만 보고도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그러면 얼마나 무서워요. 아픈 환자들이 어디가 아픈지 다 아는 데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정연은 만약에 그런 능력이 있더래도 좋지는 않을 거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 이 원장이 좀처럼 환자들을 그대로 못 넘기는 거지.”
근수는 꽤 설득력 있지 않냐는 듯 이야기했다.
“아무튼 다음에는 꼭 저 데려가세요!”
송 MC는 근수와 CP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 갈 때 송 MC를 정말 데려가야겠네. 여기서 영상으로만 보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느껴져서.”
“저 진짜 가서 고생할 마음가짐 되어 있어요. 꼭 불러주세요.”
“그럼 다음 주에 갈 때, 같이 갈래요?”
CP는 잘되었다는 듯, 송 MC를 바라봤다.
“다음 주요?”
송 MC는 갑자기 다음 주에 또 의료봉사를 가냐는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 * *
마을 회관에서 나와 이장을 찾아 나선 근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장을 찾았다.
한창 농번기라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일하고 있었다.
“이장님이시죠?”
이장을 찾는 근수의 목소리에 이장은 그제야 허리를 쭉 폈다.
“네, 제가 이장인데요.”
이장이 고개를 들어 논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근수와 그의 옆에 있는 카메라를 바라봤다.
“아, 의사 선상님이시구나.”
“네. 서울에서 내려온 장근수라고 합니다.”
근수는 자신이 이장을 찾아온 이야기를 하려고 제 소개부터 했다.
“의료봉사 시작하신다고 한 것 같은데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아, 다름 아니라…….”
근수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기봉 할아버지의 서류를 이장에게 건넸다.
“황기봉 할아버지 댁이 어딥니까?”
“황기봉 할아버지요?”
“네.”
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이장은 생각하는 듯싶더니 손을 쭉 뻗어 빨간색 지붕의 집을 가리켰다.
작은 마을이라 역시 논에서 고개만 들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마을의 집들이 한눈에 보였다.
“저짝으로 가면 빨간색 지붕 집 보이죠? 여기서 보이는 네 번째 집.”
“예예.”
“거기가 황기봉 할아버지 집이에요. 그런데 왜요?”
이장은 혹시 황기봉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 물었다.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라 이장도 신경을 쓰고 있는 어르신이었다.
아침마다 집을 지나치며 인사도 드렸고, 집에서 힘쓸 일이 있어 보이면 제힘이라도 빌려 도와드리고는 했던 상황이었다.
“다른 일은 아니고…….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 약을 먹고 떨어지면 시내까지 다시 나가 약 타는 게 번거로워서 약을 안 드시겠다고 해서요.”
“에휴. 마을 어르신들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이장은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보다는 조금 젊은 나이인 이장이었지만, 그도 차가 없으면 시내에 나가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오셨다가 약도 받아가시지 않으면 제 마음이 불편하죠.”
근수는 황기봉 어르신을 설득할 마음이라는 듯, 이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럼 같이 갑시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는 황기봉이 마음을 쉽게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이장은 논에서 나와 장화를 벗었다.
직접 같이 가서 어르신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근수는 혼자 기봉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그를 잘 알고 있는 이장과 함께라면 조금은 수월할 것이라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저희 마을까지 와서 노력해 주시는 데 제가 이 정도는 해야죠.”
이장은 근수를 앞장서서 기봉의 집으로 향했다.
“어르신 저 왔습니다. 종수요.”
이장은 익숙한 듯 기봉의 집 앞에 가서 기봉을 찾았다.
마을 회관에 다녀와서 집으로 돌아와 방에 잠시 앉았던 기봉은 익숙한 목소리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노쇠해진 몸을 일으켜 나오느라 방 안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