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40화
전담 간호사 윤희의 뜻밖의 물음에 치료를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던 정연의 손이 멈췄다.
“무슨 소리입니까?”
정난은 의아함을 넘어 굳어진 표정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물리적인 치료를 시작하시기에는 사실 저희 요양원에 욕창 환자인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신경을 쓴다고 해도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분들의 욕창은 막을 수가 없어요.”
윤희의 말대로 시간을 정해 두어 어르신들의 자세를 부지런히 옮겨 드린다 해도 한번 번지는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나마 재마의 봉사팀이 봉사를 다니면서 한 달에 한 번 한방 약재를 처방 받으면서 물리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도 꽤 호전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빠르고 확실한 치료 방법이라고 물리적인 치료로 상처를 건드린다면 새살이 돋는 데는 빠르게 반응을 낼 수는 있어도 그 고통은 온전히 아이가 되어버린 중증환자의 몫이 된다.
또 그 아물고 있는 상처를 돌봐야 하는 것은 남은 봉사자들과 간호사들이었다.
“또 물리적인 방법으로 상처를 건드린다면 어르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보호자들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어렵지 않은 치료 방법이었지만, 보호자의 동의 없이 환자의 몸에 작은 메스라도 댄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정연은 정난의 상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치료는 멈춰두시고 요양원장님과 면담을 하시죠.”
좀처럼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은 윤희의 모습에 재마가 중재를 나섰다.
“그렇게 하죠. 아무리 처음 온 의료봉사지만 의사로서 환자의 상처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정연은 재마의 중재에 고개를 끄덕였고, 요양원 입구에서 만났던 인상 좋던 요양원장과 면담을 위해 원장실로 향한 정연은 심호흡을 하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이 선생님”
평소 DR.트루의 팬이었던 요양원장은 정연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네. 요양원장 다름 아니라…….”
“네. 선생님이 오시는 동안 김윤희 간호사한테 연락 받았습니다. 참 능력 있고, 환자 생각을 많이 하는 간호사죠. 저희 요양원의 인재예요. 인재. 어르신들도 보호자들도 참 좋아하죠.”
정연의 치료에 반대 의견을 낸 김윤희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요양원장에는 그녀에 대한 신뢰도가 꽤 높아 보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무슨 뜻이신지는 잘 알지만,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뜻도 따라 주시죠. 그렇다고 저희가 어르신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장은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듯 정연을 설득했다.
“그럼 혹시 제가 다른 환자들까지 본 후, 심각한 상태인 환자들의 치료를 진행하고 한 달간 매주 요양원을 방문한다면 치료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예?”
요양원장은 자신이 방금 들은 정연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정연은 서울 강남 피부과를 운영하며, SNS에서는 젊고 예쁜 외모로 수많은 팔로워들을 소유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인플루언서인 그녀가 매주 요양원 환자들의 욕창을 관리하기 위해 편도 3시간 거리인 요양원을 오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제가 직접 내려와서 치료하겠다고요. 상처가 잘 아물고 있는지, 추가적인 처방이 필요할지.”
“그야…… 저희야 이 선생님이 해주신다면…… 거절할 이유가…….”
“참, 그리고 물리적인 시술을 하려면 메스도 사용해야 해요. 이 부분은 원장님이 보호자의 동의를 유선상으로라도 받아주세요. 그럼 올라가서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정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한시가 급한 듯, 빠른 걸음으로 213호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윤희 간호사님.”
“네. 선생님.”
“원장님이 김윤희 간호사님 칭찬이 자자하시던데, 치료하는 데 어시 해주실 수 있으시죠?”
“네. 그럼요.”
이미 원장에게 연락을 받은 김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의료용 장갑을 끼고 정연의 옆으로 붙어 섰다.
정연이 진행하는 김정난 환자의 욕창 치료를 시작으로 213호의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 * *
“우리 마을이 좋아졌어. 이렇게 의사 선생님들이 찾아오고 말이야.”
총 40가구가 채 되지 않는 외진 시골 마을.
마을 회관이 평소 모이는 주민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마을 주민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닥터 군단, 거기에다 그들을 촬영하는 스태프들까지.
마을 회관 앞마당이 꽉 차니, 마치 잔치라도 벌인 기분이었다.
대도시로 자식들을 키워 다 내보낸 이후에 때마다 서울로 올라가거나 지역 큰 병원으로 가서 건강검진을 하고는 했지만, 막상 몸이 편치 않을 때는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시골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다 좋은데, 우리 할매 쓰러졌을 때 119가 30분이나 걸려서 온 이후로는 항상 마음속이 편치 않더라고. 어디가 아파도, 다쳐도 연락해 봤자 소용이 읍써.”
한 할아버지는 지난봄 쓰러졌던 할머니를 제시간에 병원으로 옮기지 못해 놀랐던 생각이 다시 떠오르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한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다른 곳에서 터를 잡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가 쓰러져서 마음을 졸인 후에는 이곳에서만 지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자식들도 서울로 올라오시라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후회만 할 뿐 선뜻 서울로 터를 옮기지도 못했다.
조금 아픈 것은 평소처럼 참고, 정 아프면 한 시간 거리의 병원을 찾아가야 했는데 자식들은 이제는 그렇게 지냈다가는 병만 키우는 꼴이라며 두 양친을 설득하기 바빴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는 이들이 있으니, 자식들에게 걱정 말라고 말하는 핑계가 되기도 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TV에서 볼 수 있었던 의사들이 직접 마을까지 찾아와 진료를 본다는 것에 기대감에 차 있었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의사 양반. 의사 양반은 거, 뭐시여. 비뇨…….”
“비뇨기과요.”
장근수 앞에 마주 앉은 어르신이 돋보기를 찾아 끼며 근수를 바라봤다.
“그려. 그려. 비뇨기과. 그곳에서 무슨 치료를 하는 감?”
“쉽게 말씀드려서 소변을 보시는 데 불편함이 있으시거나 할 때 찾아오는 과예요.”
“그려? 근데 늙으면 다 힘든 거 아녀? 소변을 보는 것도 힘들고 대변을 보는 것도 힘들고. 그것만 힘든가. 숟가락 들기도 힘든디.”
어르신은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듯,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러니까 저희가 왔죠. 소변 보시기 힘드신 것도 관리하시면 조금은 편해지실 겁니다.”
“죽는 게 나은 거 아녀?”
근수는 직설적인 어르신의 대답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지만, 허허 웃음으로 무마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배출입니다. 가볍게 여기시지 마시고 불편하신 데가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꼭 비뇨기과 쪽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근수는 어르신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실 수 있도록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다.
사실 비뇨기과를 찾아오는 환자들도 찾아오기는 했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쉽게 마음을 안 열기도 했다.
배출이라는 것에 부끄러움이 담겨 있는 것은 나이가 드나 젊으나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구……. 좀 시원하게나 봤으면 좋겠는디.”
어르신은 바로 앞에 있는 근수에게도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처방해 드리는 약 드셔보시고 효과가 없으면 다른 약으로 처방해서 드셔야 해요.”
“그럼 효과가 없으믄 내가 직접 병원까지 찾아가야 된다는 거여?”
“꼭 비뇨기과가 아니어도 내과 가셔서 불편하신 점 말씀하시고, 제가 처방해 드린 약 들고 가시면 다른 약으로 변경해서 처방해 주실 겁니다.”
서울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장 원장의 병원까지 시골 어르신을 오시라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치료를 연장해서 자신이 직접 돌봐드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에휴. 여기에서 가까운 의원까지 나가는데 한 시간이요. 버스 기다리려면 하루 죙일 버스 시간 맞춰서 움직여야 하고.”
어르신은 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소변 보시는 데 불편하시다면…….”
“화장실까지 누가 와서 내 소변빨 어떤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어르신은 약도 필요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래도 그럼 검사라도 진행하시면…….”
노환으로 시작된 요도의 문제가 큰 병으로 번질 수도 있어서 근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의사 양반 온다고 좋아는 혔지만……. 막상 약을 먹기 시작하면 쉽게 끊을 수도 없고. 늙으면 죽어야지 뭐.”
혀를 끌끌 내차며 자리에서 일어난 어르신은 근수가 안타까움에 옷자락까지 잡아보았지만 괜찮다고 묵례를 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원장님, 왜 그러세요?”
근수답지 않게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금 전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떠난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CP는 직접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사실 이렇게 우리가 일회성으로 봉사활동을 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네?”
CP는 좋은 뜻을 가지고 이번 봉사활동을 특집으로 꾸린 것이었는 데, 그것이 다 소용없다는 근수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들은 기대에 차서 오셨다가 일시적인 처방을 받아서 약을 드시고는 상태가 호전돼도 우리를 서울까지 찾아올 수가 없으니 우리도 안타깝고. 그렇다고 시내까지 약을 처방 받으러 가자니 병원이 너무 멀고……. 결국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자신들의 행동이 변화를 당장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희망을 쥐여 드렸다가 금세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일이 되어버릴까 안타까워하는 근수의 마음이 CP에게 전달되었다.
“그렇네요.”
“감독님이 무슨 뜻으로 이번 봉사를 진행했는지,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이렇게 와서 보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답답해.”
근수는 오늘 자신도 설레는 마음으로 내려왔는데, 의료봉사를 기다리며 몇 날 며칠 기다렸을 환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 오셨던 어르신 댁 찾아가려면 성함만 알면 이장님이 안내해 주시겠죠?”
“직접 찾아가시게요?”
CP는 조금 전 진료를 봤던 어르신의 서류를 확인하는 근수에게 물었다.
“제대로 진료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제가 가야죠. 환자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막내랑 같이 가시죠.”
조금 전까지 근수를 담당해서 찍고 있던 막내 PD를 손짓한 CP가 근수를 따라가라는 눈짓을 했다.
“감독님 하여간, 방송 잘해. 잘하시네.”
근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내 PD와 함께 이장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