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자를 읽는 한의사-138화 (138/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8화

해인동 정비가 된 시장 골목.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롭게 정비된 골목에 한옥으로 된 3층 건물.

200년을 함께 해온 명의 한의원의 한옥 건물은 해인동 주민들과 그동안 먼 곳에서도 해인동 명의 한의원을 찾아온 환자들의 추억 속에 남겨졌다.

서울시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이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을 위해 명의 한의원은 바로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왕이면 명의 한의원의 이미지인 한옥이라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새 건물도 정통방식과 현대방식을 골고루 섞어 한옥으로 지었다.

새롭게 명의 한의원이라는 간판이 올라갔고, 환자들은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2026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 너튜버, 특히 이색한 한의사 너튜버를 원하는 초등학생 늘어

명의 한의원 점심시간.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던 재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후 진료를 앞두고, 잠시 머리나 식힐 겸 켠 인터넷 기사였는데 뜻하지 않게 ‘환자를 읽는 한의사’에 대한 기사를 보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강산이 종종 하루에 검색창에 명의 한의원을 몇 번 검색하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지난 방송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겸 기사도 찾아보고, 한의원 후기도 찾아보는 재마였다.

오늘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어린 학생들의 장래 희망이었다.

어른 학생들이 너튜브를 보고 좋은 영향을 받는다면 분명 그건 순기능이 분명하니 너튜브 활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진료실에는 꽤 종종 찾아오는 어린 환자들이 그에게 선물이라며 건네고 간 인형과 편지, 작은 피규어. 간식들까지 쌓여 있었다.

올 때마다 사인을 받아 가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처음 그에게 팬이라고 찾아오는 어린 환자들의 방문이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어린 환자들을 만나는 것도 꽤 여유로워졌다.

“원장님, 진료 시작할까요?”

“네.”

정 실장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오후 진료를 시작해도 되는지 물었다.

재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려 있던 진료복을 입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첫 환자는 분명 그를 웃음 짓게 하는 환자임이 분명했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명의 한의원 대표원장 이재마’라고 써 있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시하 왔구나!”

어린이집 노란 체육복을 입고 진료실로 들어 온 시하는 진료실이 낯설지 않은 듯 들어왔다.

재마가 예상했던 것처럼 명의 한의원 문을 벌컥 연 시하는 월요병도 이기게 해주는 용한 환자였다.

대기실에 있는 환자들은 아직 6살밖에 되지 않은 시하가 엄마 손도 잡지 않고 앞장서서 진료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작은 환자용 의자에 혼자 올라앉은 시하는 이제는 익숙하게 손을 턱 하니 얹었다.

올 때마다 맥을 짚어주고 자신의 상태를 살펴주는 재마의 패턴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선생님, 저 이제 코도 안 막히고요. 어제는 똥도 두 번이나 쌌어요. 뱀똥.”

그리고 진맥과 더불어 그동안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의사에게 알리는 것은 환자의 의무였다.

“뱀똥?”

“네. 똥 눌 때 배도 많이 안 아팠어요. 쾌변했어요. 쾌변.”

어린아이답지 않은 단어 선택에 재마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이 잘했다는 것을 칭찬받기 위해 재마에게 자랑하듯 이야기를 하는 시하 앞에서 웃을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하의 엄마도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아마 웃음이 터져 버리면 시하가 뒤를 돌아 날카롭게 노려볼 것이 뻔했다.

“시하 쾌변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어?”

웃음을 꾹 참은 재마는 대견하다는 듯 물었다.

쾌변이라는 단어를 쓰며 활짝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뜻을 정확히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그랬어요. 하루를 쾌변으로 시작하면 개운하다고. 근데 진짜였어요. 선생님이 알려주신 마사지도 하고 약도 먹고 하니까 어린이집 가기 전에 쾌변하고 개운하게 가서 뛰어놀 때도 더 신나요.”

시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도 웃음을 참기 조금 힘들었지만, 재마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웃음을 참고는 대답했다.

이미 여러 번 당한 시하의 공격이었지만 매번 웃음 공격을 당할 때마다 당해내기 힘들었다.

시하의 동공을 읽고, 진맥까지 마친 재마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변비로 두통까지 있어서 찾아왔던 시하는 이제 장운동도 활발하고, 그로 인한 가스가 머리까지 올라갔던 것도 말끔해졌다.

“다행이네. 그럼 시하 이제 한의원 안 와도 되겠다.”

“정말요?”

“응.”

재마가 더 이상 일주일에 한 번씩 오던 한의원을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시하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싫은데, 오고 싶은데.”

“응?”

“선생님 얼굴 보면 기분이 좋단 말이에요. 엄마도 모르는 거 알아서 내 맘도 잘 알아주고. 또…….”

책상 위에 있는 캐릭터 그림이 있는 영양제 사탕을 바라보며 시하는 입맛을 다셨다.

“이거 하나 줄까?”

“네.”

시하의 마음을 알아챈 재마가 비타민 사탕을 가리키자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마는 시하가 좋아하는 캐릭터 비타민을 하나 꺼내 건넸다.

“비타민 먹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되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선생님이랑 약속한 것처럼 야채도 많이, 과일도 많이 먹고 엄마가 해주시는 배 마사지 잘 받고.”

“물도 많이 마시고!”

시하는 재마가 하는 이야기를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보고 싶으면요?”

“선생님 보고 싶어도 언제든 오고.”

“저 선생님 보고 싶을 때마다 너튜브에서 선생님 나오는 거 봐요.”

시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 고마워.”

“좋아요. 구독 꾹꾹.”

아동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귀엽게 양 볼을 꾹꾹 누르면서 시하는 애교를 부렸다.

“얘도 참,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하의 갑작스러운 애교가 부끄러운지, 시하의 엄마는 시하의 어깨를 감싸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건강해져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뿌듯했지만 선생님이 보고 싶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재마도 공감했다.

며칠은 시하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른거릴 것 같았다.

“원장님, 최진혁 환자이십니다.”

시하가 나가고 다음 차례 환자를 안내했다.

* * *

“아 글씨, 시방 지금 그것이 중헌 것이 아니랑께.”

연하마을 입구가 떠나가도록 목소리가 큰 건택의 목소리가 시내를 흔들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말벌에 쏘였다고 된장 바르고 집에만 처박혀 있어. 일로 따라와. 얼른.”

건택은 자신의 친구이자, 고향으로 귀농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은천을 잡아끌고 명의 한의원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은행을 십수 년을 다닌 똑똑하고 부족함이 없는 친구였지만, 농사와 시골 생활은 건택이 우위였다.

“너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그렇게 오래혔다는 놈이, 무식허게 그러고 있냐.”

“서울 생활이랑 말벌 쏘인 거랑 무슨 상관이여. 서울에는 말벌 구경도 못 해.”

“티브이도 안 봐? 그 뭐여. 명절쯤이면 캠페인도 허잖냐. 말벌 쏘이면 응급실로 가라고.”

“응급실까지 먼께…….”

말벌 쏘인 것보다 더 세게 쏘듯이 말하는 건택의 말에 은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응급실을 왜 가. 우리 마을에 명의 한의원이 있는디.”

건택은 친구의 손을 잡아끌고는 명의 한의원 문을 두드렸다.

“자, 오늘이 무슨 날이지.”

“오늘 화요일이지.”

“그럼 오늘은 이 원장님은 안 계시겄구만.”

건택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친구의 접수를 도왔다.

“원장님, 저 왔슈.”

건택은 마치 친구를 만나기라도 하듯 진료실로 친구를 끌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중기가 연하마을의 가장 목소리가 건택이 밖에서 쩌렁쩌렁 울리게 이야기를 하는 통에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벌에 쏘이셨다고요.”

“예?”

“어이구. 이것 봐. 여기 오면 원장님은 앉기도 전에 상태를 훤히 아신다니께.”

건택은 자랑스럽게 은천에게 이게 다 중기의 능력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해독 침을 놓을 준비를 하는 중기의 뒤에 대고 은천은 의아한 듯 물었다.

“매번 말하지만 저는 환자를 읽는 능력은 없습니다. 아버님.”

매번 올 때마다 환자를 정말 읽는 것이 아니냐며 용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택에게 그런 일은 없다며 중기가 이야기를 했다.

“저희 대표원장님이라면 모를까 저는 아직 그런 실력은 없어요.”

명의 한의원이라고 찾아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이 재마의 능력을 기대하고 찾아오지만 그런 실력은 없다고 말을 하는 다른 원장들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고는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환자들을 대하고 집중해서 진료를 보고 때때로는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진료를 보다 보니 정말 환자들이 하지 않은 환자의 상태까지도 파악이 되는 정도까지 실력이 올라 있었다.

“그런데 말벌 물리고 된장 바르셨어요?”

중기는 상처 부위가 더욱 열감을 내는 은천의 팔뚝을 바라봤다.

“어릴 적 어무니가 그렇게 하시길래…….”

“민간요법 중에 벌에 쏘이면 된장을 바르고는 했지만, 위험한 일이에요. 특히나 체질에 따라 다른데…….”

상처 부위가 유독 열감을 내는 모습에 중기는 소독약을 바르고 침을 놓았다.

“저희도 약을 드리기는 할 텐데 오늘 저녁까지도 붓기가 내리지 않고 열감이 있으면 조금 큰 병원 응급실이라도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응급실이요?”

“네. 평소에 꿀 드세요?”

“아뇨. 꿀만 먹으면 열이 올라서…….”

“아무래도 알레르기가 있으신 것 같아요.”

상처 부위뿐 아니라 약한 살갗 쪽으로 반점이 나타난 것까지 중기는 확인했다.

“이 정도로는 당장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단계는 아니라 한방으로 치료를 하지만 혹시 몰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호흡곤란이 온다거나 열감이 계속 지속되면 꼭 가보셔야 해요.”

“이것 봐. 이 사람아. 서울에서 직장생활 오래혀도 소용없당께.”

건택은 자신의 말을 듣고 한의원이라도 찾아오기를 얼마나 다행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은천은 건택과 함께 진료실을 나오며, 입을 열었다.

“젊은 원장님이 용허시네.”

“여기 유명하잖어. 너튜브도 하고 이 원장님 말고, 대표원장님은 티브이에도 많이 나오고.”

재마가 나오는 DR.트루의 3년째 애청자인 건택은 휴대전화에 재마가 나오는 장면을 찍어둔 것을 자랑스럽게 은천에게 보였다.

“여기 원장님들이 전국에 있는 한의원들에서 근무를 돌아가면서 허는디, 다 대학 동기래.”

“그런데 왜 이렇게 시골 마을에 한의원을 차렸댜.”

“시골에는 환자가 안 살어? 더 필요하지. 한의원을 차릴 수 있는 곳들에는 한의원을 차려서 근무허고, 한의원을 못 차린 곳은 의료봉사 허고. 이 시대의 허준들이다. 이 말이여.”

건택은 자랑스럽게 마치 명의 한의원의 홍보대사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