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37화
서울의 한 카페, DR.트루의 촬영장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촬영장이었다.
스탭들은 매번 다른 게스트들을 만나며 게스트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을 섭외한다고 말했다. 오늘은 재마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방차를 파는 카페를 섭외한 모양이었다.
조금 전, 오늘의 게스트인 재마와 짧은 인사를 마친 두 MC가 재마의 자리를 두고 양옆으로 앉아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에 들린 대본은 아무래도 재마의 이력과 명의 한의원에 대한 정보인 모양인지 두 MC 모두 촬영 직전까지도 손에 놓지 않고 쉼 없이 보고 있었다.
감독의 컷 소리가 나자, 카메라가 돌아가고 두 MC가 차례대로 오프닝을 시작했다.
“환자를 마치 눈으로만 스캔하는 것 같지만 그의 진료는 언제나 완벽하다.”
“그는 한의원의 문턱을 넘는 환자보다 밖에서 더 많은 환자들을 만난다.”
한 문장씩 차례대로 대본에 나온 문구를 읽기 시작했다.
“한국이 낳은 슈바이처.”
“한의학의 새역사.”
“이재마 원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두 MC의 오프닝을 듣고 있자니,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는 재마였지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촬영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촬영 전, 미팅에서 작가가 이런 오프닝이 어떻겠냐며 미리 말은 했지만,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표현한 문장을 듣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고 부끄러운 재마였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인터뷰는 해봤지만, 나퀴즈처럼 단독 인터뷰는 처음인지라 두근거리는 심장을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그였다.
특히나 나퀴즈는 동 시간대 가장 많은 시청률을 내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더구나 국민 MC인 나재성과 방송을 한다는 이야기에 명의 한의원 직원들이 잔뜩 사인을 부탁한 터라 더더욱이 떨리는 마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재마 원장님.”
“안녕하세요.”
“와, 근데 실례가 될까 모르겠는데, 상당히 젊으시네요.”
MC인 조세민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렇지 않냐는 듯, 반문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마는 익히 듣는 이야기이기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세 사람을 마주 보고 있는 스탭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세민의 이야기에 동조했지만, MC 나재성은 무릎을 탁 치며, 이야기를 했다.
“아니, 작은 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원장님께 그 소리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소리예요.”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재성의 이야기에, 바로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한 조세민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세민은 민망할 만도 했지만, 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두 사람의 이런 티키타카로 시청률이 꽤 나오는 나퀴즈였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평소에도 젊으시다는 소리 많이 들으십니까?”
조세민은 자신의 눈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젊지 않냐는 듯 물었다.
자신의 나이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 재마의 나이가 궁금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많이 듣고, 실제로도 젊습니다.”
“그럼 혹시 나이가…….”
“하하, 저희 환자들이 제 나이를 확실히 모르시는데 올해 서른입니다.”
재마는 자신의 나이를 묻는 세민의 질문에 재마는 솔직하게 나이를 대답했다.
재마의 대답에 실례라고 이야기를 했던 재성도, 질문을 한 세민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한의학과를 졸업하신 지?”
“한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에 나온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명의 한의원을 지방 지역까지 4호점까지 내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수 없이 받았던 질문이었지만 웃음으로 넘겼던 질문이었다.
환자들도 어느 정도 추측하고는 있었겠지만, 명의 한의원을 자리 잡게 하고 지방에 분원까지 낸 대표원장치고는 나이가 상당히 젊은 편이었다.
“와우. 생각보다도 더 젊으신데요?”
나재성은 본인이 생각했던 나이보다 더 젊은지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근데 어떻게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지방까지 분원을 내신 겁니까?”
미리 명의 한의원과 이재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세민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라며 물었다.
“제가 혼자 했다면 분명히 이룰 수 없는 일이었죠.”
“그렇다면?”
“저희 한의원은 외조부께서 물려주신 한의원이십니다.”
“오, 한 세대를 거쳐서 이어오고 계시는…….”
세민이 재마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하자, 이번에도 재성이 무릎을 탁 쳤다.
대본을 흔들어 보이며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냐는 제스처도 곁들였다.
“작은 자기. 이렇게 공부 안 하고 올 겁니까? 원장님은 5대째 이어온 한의원을 운영하고 계신 겁니다.”
“5대요?”
세민은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아마 미리 정보를 들었겠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모른 체를 하는 모양이었다.
“네. 5대째 한 자리에서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마의 대답과 함께, 세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스크립트 화면에서 대화 사이에 명의 한의원의 자료화면이 나갈 것이라는 안내 문구가 띄워졌다.
자료화면에는 명의 한의원의 지난 세월의 사진 자료들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이야,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한의원이 참 고즈넉하네요. 2년 전에는 문화재 지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네. 항상 한의원 문이 환자들에게 열려 있었지만, 이제는 환자들뿐 아니라 더 많은 서울 시민, 대한민국 국민들께 열려 있습니다.”
재마는 문화재 지정이 결코 제 업적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자신은 정말 운 좋게, 외조부의 한의원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오랫동안 환자들과 함께한 한의원이 더욱 오랜 시간 환자들,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문화재 지정 제안이 들어와 수락한 일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의원이 결코 오래만 됐다고 환자들이 많은 것은 아닌데 이제는 전국에 네 개의 분원이 있는 대형 한의원이 되었네요.”
대본을 확인한 세민은 이제 지방 분원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지난 3년간 어느덧 4호점까지 늘어난 분원이었다.
“대형 한의원까지는 아니고요.”
대형 한의원으로 성장했다는 세민의 말과 평소 그를 치하하는 목소리를 재마는 잘 알고 있었지만 대형 한의원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대형 한의원이라는 말에 항상 부끄러운 재마였다.
실제로도 대형 한의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전국에 네 개의 분원이 있는데요? 분원이 네 개이고 본원이 있으니까 총 다섯 개의 한의원을 운영하시는 것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만…… 규모가 모두 크지 않은 것들입니다.”
재마는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한의원의 분원들을 낸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재마의 이야기에 준비된 사진들을 재성이 꺼내 들었다.
네 컷의 사진에는 재마가 지난 3년간 명의 한의원 분원의 사진들이었다.
첫 분원이었던 김천의 2호점의 사진부터 가장 최근에 재오픈을 한 홍천의 5호점까지.
모아놓고 사진으로 보니 재마의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 원장님 말씀대로 규모가 큰 병원은 하나도 없네요.”
의아하다는 듯 세민이 이야기를 했다.
“네. 모두 시골 작은 마을에 있는 한의원들입니다.”
재성과 세민은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다.
보통의 병원들이 확장을 하는 경우 대도시의 인구밀도를 파악해 그중 가장 사업성이 큰 곳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원장님이 추구하시는 분원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추측을 하는 것보다는 직접 재마에게 듣고 싶은지, 재성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제가 추구하는 분원의 조건은…….”
재마는 희미하게 웃었다.
재마의 절친인 강산의 아버지의 건강 상태로 갑작스럽게 운영할 수 없게 된 한의원.
그리고 한의원이라면 제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끝까지 운영하고 싶어 하셨던 강산의 아버지의 의지로 시골 마을의 한의원을 인수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3년 후, 자신이 다섯 곳에 한의원을 두고 있을지 예상치 못했던 재마였다.
“소외된 어르신들이 이왕이면 자주,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언제든 열려 있을 수 있는 한의원들입니다.”
재마의 말에 재성도, 세민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 모두 한의원을 찾을 때, 가까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면 이왕이면 유명하고 큰 병원을 찾기도 했다.
“원장님의 대답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재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대답했다.
재마가 오늘 너퀴즈에서 질문받았던 것 중 새로운 질문은 어떤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한의원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꾸준하게 받아왔던 질문들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게 되는 것만 바뀔 뿐이지 그 질문의 요지는 항상 같을지도 몰랐다.
‘왜.’
왜, 라는 질문에 항상 재마는 오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왜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한옥 한의원을 물려받았나요.
왜 유명 한방병원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했나요.
왜 하필 시골 마을에 있는 한의원들만 인수하시나요.
그 질문의 대답은 항상 한결같았다.
“사람들이 모두들 말합니다. 이제 한의원이 너무 많다고. 병원도 경쟁의 시대라고. 저는 그 경쟁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경쟁을 하며 더 좋은 곳, 더 인구가 많은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한의원이나 병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지금 있는 한의원이 사라지면 하루 한두 번 있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나가야 진료를 볼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을 뿐입니다.
재마가 경쟁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에 모두들 벙찐 표정을 짓고는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재마의 소신은 모두를 이해시키기에 충분했다.
재마에게 경쟁은 더 많은 곳에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것이었다.
다른 한의사, 한의원, 의사들과의 경쟁이 아닌 스스로와의 경쟁이었다.
지난달보다 더 많은 환자를 만나기 위해,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의 한의원으로 스스로 찾아가고 직접 환자들을 만났다.
물론 너튜브나 방송도 쉬지는 않았다.
그의 대외활동은 명의 한의원을 더 알리고, 재마를 알려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의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재마는 타고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화려한 커리어를 꿈꿨고, 대형 한방병원의 면접도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며 해인동 골목을 지켜오며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져 왔던 외조부와 그의 선조들의 뜻을 따르기 시작한 날부터 한의원의 성공보다는 환자를 생각한 재마였다.
대형 한방병원의 달콤한 제안들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걷는 길이 자신에게 하루아침에 주어진 한의사로서는 축복과도 같은 능력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