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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6화 (136/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6화

MBX 예능국.

어제 DR.트루 첫 방송이 나가고, 모든 스텝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출근을 해 시청률이 나오는 순간까지 시청률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떨리는지, 평소 회의 시간 직전까지 예능국인 만큼 와글와글한 분위기였지만 오늘만큼은 누구 하나 떠들지 않고 시청률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회의실로 시청률 표를 들고 나타날 예능 국장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국장은 A4용지 한 장을 나풀나풀 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국장과 오랫동안 일을 해온 CP도 DR.트루의 성적이 감이 오지 않았다.

“너희들.”

들어오자마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국장은 DR.트루 팀을 한번 훑어보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긴장하는 스탭들은 저도 모르게 침이 꼴깍 삼켜졌다.

“미쳤구나? 다들?”

“네?”

다짜고짜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알 턱이 없는 CP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국장이 들고 있는 A4용지를 빼앗아 들었다.

A4용지를 빼앗아 들은 CP도 국장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국장은 그제야 활짝 웃었다.

“어떻게 신생 프로그램이 동 시간대 1위를 할 수 있어!!”

“와!!! 대박!”

“아, 진짜. 국장님! 진짜 심장 쪼그라드는 줄 알았잖아요.”

국장의 입에서 시청률 발표가 될 때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스탭들은 긴장이 풀려 손발이 떨릴 정도였다.

“이 녀석들 이번 프로그램 만들면서 속 꽤나 썩이면서 고집부리더니 결국 일을 쳤구만.”

국장은 스탭들을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대박. 어떻게 시간대도 그렇고 대박 나기 힘든 요일인데 4프로가 넘었죠?”

시청률 대박은커녕, 동 시간대 1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스탭들은 자신들의 기대보다 더 높은 결과에 열광했다.

“자, 이제 시작이니까 너무 들뜨지 말고, 지난번 촬영장에서 시끄러웠던 사실 잊지 말고. 다음 촬영 때는 회식할 거니까 패널들한테 잘 알리고. 알았어?”

“네!!!”

국장의 이야기에 스탭들은 입을 모아,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회식한다고 할 때만 제일 말 잘 듣지. 고집들은.”

국장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회의실을 떠났다.

“CP님! 진짜 대박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작가님도 수고하셨어요.”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CP와 메인 작가에게 스탭들은 박수를 쳤다.

“자, 너무 들뜨지 말고,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노력한 것보다 운이 좋아서 더 높게 나온 거야. 너희도 알잖아. 더 보여줄 것도 많고. 그렇지? 더 열심히 하자.”

CP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는 스탭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남겼다.

“당연하죠.”

“DR.트루, 이제 시작입니다!”

스탭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으로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위해 외쳤다.

“각자 맡은 패널들에게 시청률 보고하고, 감사 인사 드리고. 다음 주 촬영 이후 회식 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자, 각자 자리로.”

시청률 1위를 했지만,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 해야 하는 스텝들은 모두 자리로 돌아갔다.

더 알차고, 더 재미있는 의학예능을 위해.

* * *

김천의 연성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시내.

버스로 시내까지 가기에는 버스가 하루에 많아야 세 번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연성마을 어르신들은 아침 일찍 서둘러 채비를 해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새 한의사 양반이 오신다매?”

“그렇다던데, 젊디야.”

“젊어?”

옆집 정순은, 한의원을 매일같이 함께 다니는 순진을 만나자 새로 온다는 한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강 원장이 갑작스럽게 한의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썩 좋지 않다는 소식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이었다.

“응, 어제 강 원장이 그러던데?”

“아니. 산이가 아니고?”

정순은 강 원장의 외동아들 강산이 서울에서 들어가기 어렵다는 한의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아들에게 한의원을 물려주지 않냐는 듯 물었다.

강산이 한의학과에 간다고 했을 때, 마을 주민들은 암암리에 앞으로 강산이 내려와서 아버지를 돕겠거니 싶어 했었다.

“산이는 아직 내려올 실력이 안 됐다나?”

“갑자기 아들도 못 기다려주고 한의원을 넘겼다고?”

정순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프다는 걸 어째, 우리도 아쉽지만 제일 아쉬운 건 강 원장이랑 강산이겄지.”

순진은 어쩔 턱이 있냐는 듯 쯧 입소리를 내었다.

“저기 할배 나오네.”

“안녕하셔요.”

“아이고. 오늘도 무탈허시구만.”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동무들처럼, 하루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의원을 열자마자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의원 개점 전부터 나가서 기다리는 것이 일과가 된 그들이었다.

또 이렇게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동무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있으니 서로의 건강도 체크할 겸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하루라도 늦는다거나,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집까지 찾아와 얼굴을 들이밀며 생사를 확인하는 동지들과도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머, 산이 아니냐?”

마을에서 시내까지 줄지어 걸어서 도착한 한의원 앞에 다다른 3인방은 낯익은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잘 지내셨죠?”

“잘 지내다마다. 지난번에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한의원에 있더니 오늘은 새로운 한의원 연다고 온 게야?”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몇 없는 아이로 자란 강산이 반가운 듯, 정순도 순진도 강산을 제 손주처럼 반겼다.

한참을 바쁘다고 서울에서 김천까지 내려오는 일이 없었던 강산이었는데, 요즘은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가울 따름이었다.

“네. 새로운 간판 좀 다니까 다른 한의원 같죠?”

명의 한의원 2호점을 오픈하기 전날까지, 마지막까지 진료를 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강 원장 덕에 간판만 간신히 새로 달은 한의원의 겉모습이었다.

그동안 2호점 준비를 하며 오래된 강 원장의 한의원을 틈틈이, 진료에 방해가 되지 않게 공사를 진행한 탓에 50년은 거뜬히 지난 한의원의 건물이 조금은 깔끔해져 있었다.

“아이구. 새 건물 같구만!”

시내에 있는 작은 건물들 모두 연식이 된 탓에 조금씩 시간적 여유가 되는 대로 고쳐왔던 한의원 건물이 만족스러운지, 연성마을 3인방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근데 산이 너는 서운하지 않어?”

“왜 서운해요, 제가?”

아버지의 한의원을 물려받을 생각에 한의학과까지 가서 그 어려운 공부를 마쳤다는 강산이 아버지의 한의원을 물려받지 않는 상황이 서운하지 않냐는 듯 어르신들은 산이를 바라봤다.

제 손주와도 같은 강산이니, 그가 아쉬워하면 모두가 아쉬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으면, 먼저 나섰겠죠.”

오늘은 진료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밖으로 나온 강 원장이, 아들의 뒤에서 이야기를 하며 나타났다.

진작에 서둘렀다면 강산에게 당연히 한의원을 물려줬겠지만, 방황을 한다고 1년 이상을 허비한 아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더 이상 한의원을 운영하기 힘들 때, 강산의 친구인 재마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이렇게 후련하게 한의원을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인구가 서울이나 조금 큰 지방도시에 비하면 한참이나 적은 도시였고, 그중에서도 외진 마을 앞이니 강 원장이 한의원을 그만둔다면 이 시골에 새로운 병원이 들어올 턱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40년을 근무해 온 강 원장은, 이제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아들이 방황을 한다고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아들 덕에 한의원을 폐업하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이고. 강 원장.”

“이제 강 원장 아니고 그냥 동네 주민 강정원입니다.”

강 원장은 40년이나 자신을 의미하던 한의원 원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오늘부터는 한의사가 아닌 평범한 동네 주민으로 지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강 원장 스스로 결정한 일은 아니고, 모든 책임감과 걱정 염려를 내려놓고 치료에 매진하자는 아들 강산의 부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아들인 강산도 조금은 낯선 차림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거의 매일같이 진료복을 입고 계시던 아버지가 어깨에 책임감을 내려놓으시고 한결 편안한 얼굴로 동네 주민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에이. 그럼 좀 더 기다려 주지 않고.”

“이 녀석은 배울 게 많아요. 새로 오는 선생님들도 실력 좋으신 분들이니까, 걱정 말고 찾아오세요.”

“참말이여?”

“그럼요. 제가 아무한테나 맡기겠어요?”

강 원장은 자신만 믿으라는 듯, 3인방에게 장담을 했다.

서울에서 명의 한의원을 하는 재마는 물론 김천의 명의 한의원을 전담할 정우 또한 강 원장이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젊은 한의사들이 시골로 내려와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정우 또한 재마를 따라 요양원 봉사를 한 지, 6개월 정도가 되었다니 맨땅에 헤딩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명. 의. 한. 의, 원.”

정순은 4년 전, 동네 초등학교에서 뒤늦게 배운 한글로 한 글자 한 글자, 명의 한의원의 이름을 읊었다.

“할머니, 서울에서 유~명한 한의원이에요.”

“응? 서울에서 유명한 한의원이 왜 여기 있디야?”

“어제저녁에 MBX에서 하는 의사들 나오는 프로그램 보셨어요?”

“의사들 나오는 프로그래엠?”

정순에게 명의 한의원이 서울에서 유명한 한의원이라고 설명을 하는 강산의 이야기에 연성마을 3인방뿐 아니라, 다른 어르신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새로운 한의사가 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서울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 내려온다는 소식은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어제부터 시작하는 의사들 나오는 프로그램에 대표 원장님이 출연한다고요. 여기 보세요.”

어제 첫 방영이 된 DR.트루에 대한 기사를 휴대전화에서 찾아 보여주는 강산이었다.

“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한글을 잘 모르는 순진은 정순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글만 알어, 그것도 띄엄띄엄 읽는구만.”

정순은 입술을 비죽이면서 무슨 내용이냐는 듯 강산을 바라봤다.

“빵 터졌다. 새 의학 예능 ‘DR.트루’, 뉴 페이스 이재마 원장.”

“뉴 페이스?”

강산이 기사 제목을 읽자, 정순과 순진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이 사람이 대표 원장님인데 어제 처음 방송 출연을 하셨거든요. 성공적으로 출연했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할머니들도 다음 주부터는 본방 사수 하시라고요!”

강산은 재마가 출연하는 ‘DR.트루’ 홍보까지 톡톡히 했다.

오전 9시, 김천의 작은 마을의 시내에서 새 시작을 하는 명의 한의원 2호점이 개점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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