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35화
DR.트루 2화 촬영은 정말 장근수의 원맨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아니면 다른 의사들이 입을 열기 힘들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신이 했고, 다른 의사들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끼어들기 일쑤였다.
송 MC는 적당히 자르고 다른 의사들에게 추가 질문을 했지만 그 또한 어느새 근수의 몫이 되어 있었다.
다른 패널들까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결국 근수는,
“일단 용기를 가지고 병원에만 나오십쇼. 다 해결해 드립니다. 약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약이면 다 된다니…….’
촬영을 지켜보는 모든 스탭들의 이마를 짚게 만드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당황한 송 MC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물론 편집을 통해 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잘라내면 되었지만, 오늘 촬영 내내 근수의 태도는 다른 패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네? 아, 장 원장님. 그렇죠. 고민이 있는 시청자분들이 혼자 마음 앓이를 하는 것보다는 원장님처럼 실력 좋으신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이…….”
무조건 비뇨기과를 찾아와 해결책을 찾으라고, 약이면 다 된다고 장담을 하는 장근수의 발언에 방송경력이 화려한 송 MC도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퍽 난감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근수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체 의학, 민간요법 이런 거 찾아봐야 소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꼭 전문의를 찾아오세요. 흠.”
더구나 한의사인 이재마가 다음 질문을 앞두고 있을 때는 결국 대체의학은 찾지 말라고 못까지 박은 장근수였다.
송 MC는 어쩌냐는 듯 더 이상 자신은 힘들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CP와 메인 작가 쪽을 바라보며 구원의 손길을 바랐다.
장근수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난감해하던 CP는 잠시 쉬었다 가자는 신호를 하고는 컷을 외쳤다.
“컷. 장 원장님, 잠깐만요.”
도무지 자신이 나서지 않고는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았는지 CP가 직접 나서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미 화는 참을 대로 참아왔던 CP였다.
“장 원장님, 원장님 단독 촬영도 아니고……. 그렇게 타 전공을 방해하시면 어떡합니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어쨌다고. 내가 사실이 아닌 걸 말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환자들이 병원으로 잘 안 나오면, 공감하는 시청자분들이 마음을 바꿔서 나갈 수 있게 하셔야지. 약으로 다 되면 된다고 하시면 안 되죠. 방송에서. 약장수도 아니고.”
CP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장근수를 답답하다는 듯 이야기를 하자, 장근수는 발끈했다.
지금까지 스탭들과 의사들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했던 근수는 자신의 발언은 생각지도 않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보자 보자 하니까. 약장수?”
“약장수죠. 약이면 다 해결된다고요?”
CP는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양팔을 걷어붙였고 지켜보던 PD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장근수와 CP를 떼어놓았다.
앞으로 촬영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충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진정하세요. 선배님. 이제 프로그램 시작이잖아요.”
예능국장이 이야기했듯, 첫 시작부터 시끌벅적한 프로그램이 잘될 리가 없었다.
만약 CP와 패널인 의사가 불화가 있다는 기사라도 나가는 날에는 프로그램을 접어야 할지도 몰랐다.
“장 원장님도 진정하시고요.”
“내가 진정하게 됐어? 약장수 취급을 당했는데.”
장근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상관치 않은 지 되레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후.”
CP는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더 이상 큰소리치는 것이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숨을 거칠게 쉬며 화를 참았지만 근수는 참지 않았다.
“장 원장님, 2화 주제가 원장님 전공인데 촬영장 무단 이탈 하실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화 좀 누그러뜨리세요.”
메인 작가까지 근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지만, 근수는 그 이후에도 한참 후에야 화를 가라앉혔다.
“원장님은 잠시 대기실 가서 진정 좀 하세요. 다음 촬영 진행할게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박 PD가 스튜디오를 향해 촬영이 재개될 것을 알렸다.
이미 진수가 쓰러지는 바람에 미뤄졌던 촬영이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있었다.
시간이 금인 의사들을 모아 놓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촬영을 더 이상 쉴 수 없었다.
“아니, 오늘 주제가 발. 기. 부. 전인데 내가 없이 촬영이 되겠어! 말이나 돼?”
결국 대기실로 쫓겨나는 장근수는 갈 수 없다는 듯 큰소리를 쳤다.
“후. 저 양반 좀 어떻게 해봐. 계속 보다가는 내 혈압이 터질 것 같으니까.”
CP는 더 못 참겠는지, 뒷목을 잡았다.
송 MC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분위기를 환기 좀 시켜볼까요?”
어수선했던 스튜디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송 MC는 자신의 주특기인 개그까지 오래간만에 보이며 애를 썼다.
어느 정도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잡히자, 송 MC는 다시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몇 분의 사례를 들고 왔습니다.”
송 MC의 발언에 방청객들의 웃음이 빵하고 터졌다.
의학 정보보다 실제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실제 예를 들을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30대입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3년 연애를 하고.”
“오~”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 놓은 예비 신랑입니다.”
“와~”
“더구나 자영업을 하기에 결혼 이후, 더욱 완벽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 부담감이 많은 상태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고개를 들기 힘듭니다.”
고개를 들기 힘들다는 사연에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안타까운 얼굴을 한 송 MC가 재마를 바라봤다.
“원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30대분들이 가장 많이 겪는 심인성 발기부전, 심인성 조루 문제인데요.”
재마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한의학적 소견을 이어갔다.
“정신적 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심장이 피로해져 군화 제어가 되지 않습니다.”
“아…….”
여기저기에서 재마의 이야기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럴 때 뇌와 심장을 안정시키고 심장근육을 편안하게 하면 기능이 회복됩니다. 한의학에서는 조급하지 않게 뇌와 심장을 안정시키는 방법으로 치료를 권하고 있습니다.”
“와아~”
재마의 이야기가 끝나자, 방청객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 * *
재마가 없는 명의 한의원은 평소와 다르게 한적했다.
아무래도 원장인 재마가 휴진을 하고 방송이 잡히자 그날은 환자가 확연히 줄었다.
한적한 한의원이 이제는 낯설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한의원 문을 닫고 휴진을 할 수는 없었다.
“원장님 첫 촬영인데 잘하고 계시겠죠?”
미정은 오늘 자신이 촬영장에 간 것도 아닌데 괜히 기대에 차 처치실과 데스크를 들락거리며 설레했다.
재마가 DR.트루에 출연이 확정됐을 때도 가장 기뻐했던 미정이었다.
이제 드디어 공중파에 자신의 소속된 한의원 대표원장이 입성한다며 여기저기에 소문을 내기도 한 그녀였다.
“저희 엄마가 방송날짜 언제냐고 매일 물으세요. 기대가 크시다고.”
“잘하고 계시겠지? 우리 원장님이 보통 분은 아니잖아?”
최 실장은 아무런 걱정이 안 된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제 내일부터 강산의 고향인 명인한의원 2호점과 동시 진료를 하기로 한 날이라 정신이 없는 최 실장은 진료차트부터 탕재실 재고 확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앞으로 2호점이 안정될 때까지 최 실장은 쭉 바쁠 예정이었다.
“진료차트는 제가 좀 봐드릴까요?”
미정이 바빠 보이는 최 실장을 대신해 데스크로 들어왔다.
이제 최 실장이 바빠진 만큼 처치실에도 인력을 충원하고 미정이 최 실장의 일을 돕기로 했다.
“아냐, 여유 있으면 이쪽 말고 정우 선생님한테 가볼래요?”
최 실장은 자신은 괜찮으니 정우에게 가서 도울 것이 있나 물으라는 듯 미정을 보냈다.
환자도 없는데, 한참 동안 진료실에서 나오지 않는 거로 봐서는 지방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느라 정우도 바쁜 모양이었다.
“선생님, 바쁘세요? 정신없으시죠?”
갑자기 서울 토박이인 정우가 재마의 한 마디에 지방 한의원으로 전출을 가는 것이 안타까운지 미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의원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라 모두 축하를 하고, 설레했지만 정작 지방으로 내려가는 정우는 기쁜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 미정 쌤. 저 이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정우는 고개를 빼꼼 내민 미정에게 자신이 프린트하는 것들을 부탁했다.
프린터는 쉴 새 없이 무엇인가를 인쇄하고 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아, 명의 한의원으로 제가 온 이후에 임상에서 만난 환자들 치료 일지예요.”
“우와. 벌써 이렇게나 많이 모였어요?”
6개월 만에 꽤 두툼한 일지가 완성되어 있었다.
“근데 이걸 어디다 쓰시려고요?”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지 작성은 꾸준히 해서 정리해두려고요. 그래야 제가 진료하고 환자들을 만나는 밑바탕이 될 것 같아서요.”
정우의 조용하게 무던한 노력을 해온 증거였다.
미정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프린터 된 일지들을 정리했다.
역시 이런 노력이 있어서 한의사가 된 모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수가 조금 서운해하죠?”
미정은 정우와 정이 쌓인 지수가 꽤 아쉬워할 것이라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 지수뿐 아니라 지수를 담당했던 정우도 꽤나 아쉬운 상황일 것이었다.
“지수요? 이제 잔소리할 사람 없어서 좋다고 해서 다음에 내 자리로 오는 쌤한테 다 전달해 주겠다고 했어요. 녀석이 2호점까지 놀러 오겠다는 거 간신히 말렸어요. 친구 녀석들 다 끌고 오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정우는 귀찮다는 듯 이야기를 했지만, 얼굴에는 성격이 바뀐 지수의 자신을 따르는 그 모습마저 고마운 듯 뿌듯한 얼굴이었다.
“지수 소식은 제가 가끔 전할게요. 아마 선생님 안 계셔도 문턱이 닳도록 올 것 같은데요? 농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제 중3이 되니까 농구 좀 적당히 하라고 하기는 했는데…….”
정우도 공부보다 이제 정말 농구가 좋아서 우선이 된 지수가 걱정이 된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근데 선생님은 부산에서 본가가 멀어서 서울로 올라오셨다더니, 다시 지방으로 가셔도 괜찮으세요?”
미정은 조심스럽게 정우에게 물었다.
“하하, 다들 제 걱정하셨나 봐요. 조심스러우시더라고요.”
요 며칠 자신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에서 조심스러움을 느꼈던 정우였다.
미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저는 명의 한의원, 이 원장님한테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지방으로 발령이 되도 다녀오면 다 경력이 되고 명의 한의원이 발전하는 데 밑바탕이 되겠죠.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큰 숲을 보려면 지금 나무를 심어야 된다는 마음으로 선뜻 가겠다고 했네요.”
정우는 지금보다 명의 한의원의 발전이 기대가 된다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