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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4화 (13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4화

재마가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를 하자, 어수선했던 촬영장의 분위기가 그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던 상황에서 제일 이성적이게 다가가 진수를 케어한 사람이 재마였다.

특히나 응급처치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침을 보고는 놀라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원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었어요. 정말.”

“와, 아마 저희끼리 있었을 때 진수 쓰러졌으면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못 하고 발만 동동거렸을 텐데.”

“나는 손 떨려서 119에 신고도 못했을 거야.”

특히 촬영 스탭들이 눈앞에서 쓰러져 있는 동료를 보고 손 쓸 방법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거렸을 상황을 생각하며 한시름 놓았다.

비뇨기과 전문의인 근수는 재마에게 침술 놓는 것을 반대했지만, 다른 이들은 속으로는 재마를 응원하고 있었다.

제발 동료인 진수가 고통받지 않고, 빨리 조금이라도 상태가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유 박사는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연락을 받고 곧장 촬영장으로 올라왔지만, 빠르게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이미 진수를 응급실로 옮긴 다음이었다.

물론 자신이 촬영장에 있어도 응급처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뇌전증이라는 것이 즉시 항뇌전증약을 투여해야 하는데, 촬영장에 항뇌전증약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발작으로 인해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옆에서 돕는 일 정도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 뻔했다.

유박사는 자신이 비웠을 때, 한의사인 재마가 처치를 했다는 소리에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그가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를 하자, 안심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이 원장이 조치를 빨리했다는 소리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유 박사와 재마의 대화를 듣고는 입술을 삐죽이며 제 자리에 앉은 장근수는 2화 주제를 미리 살피고 있었다.

1화에서 자신의 분량을 충분히 뽑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2화는 기대를 해볼 만했다.

1화에서는 심근경색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비뇨기과 질환에 대한 주제였다.

아무래도 작가들이 시청자들을 초반에 끌어모으려고 머리 쓴 것이 눈에 보였다.

“하하, 아무래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오려면 성 관련된 지식을 풀어놓는 것이 제일이지.”

근수는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1화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잘만하면 단독컷으로도 촬영의 반 이상을 자신이 확보할 수도 있었다.

“원장님, 이번 회차에 하실 말씀 많겠어요?”

근수를 지나치며 그와 친분이 있는 패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 근수이니 제 전공이 나오면 얼마나 대단할지, 겪지 않아도 훤했다.

미리 대본을 살피는 근수는 조금 전까지도 끌어내리려야 내려지지 않던 광대로 활짝 웃었지만,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이 작가.”

“네. 장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대본을 살피던 근수가 메인 작가인 이 작가를 부르자, 촬영준비를 다시 시작하던 메인 작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패널들 중, 가장 임상경력이 많고, 고령인 그였기에 다른 작가뿐 아니라 메인 작가도 그의 부름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번 주제가 발기부전인데 그럼 내 얘기가 제일이지 한의학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거야?”

“에이. 원장님도 참. 방송 하루 이틀 하시나.”

이미 장근수와도 작업을 여러 번 했던 메인 작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본 작업을 하며, 분명 근수와 트러블이 있겠거니 했지만 역시나였다.

대본을 읽으며 전문의인 자신의 의견 바로 다음으로 등장하는 한의사 재마의 소견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의학 예능을 하면서 한 화를 온전히 원장님 이야기로 채워요. 그럼 원장님도 힘드실걸요?”

이 작가는 입술이 뾰로통하게 나와 있는 근수의 마음을 풀기 위해 그를 설득했다.

장근수뿐이 아니었다.

장근수의 전문의적 소견만 주야장천 나간다면 지루해할 사람은 패널들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끊고, 다른 의사들의 의견도 들어야 했다.

특히 비뇨기과라는 주제는 한정적이라, 한의학적 소견을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전문적인 원장님의 소견 듣고, 해결 방법 찾고. 또 부족한 부분은…….”

“전문의의 의견이 있으면 되지 부족한 부분은 무슨. 대부분의 문제는 양약으로 해결이 된다고.”

양방과 한방이 협진이라도 하듯, 비뇨기과 전문의인 장근수의 의견과 그 이후 부족한 부분을 재마의 의견으로 채우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근수는 말을 딱 잘랐다.

자신의 분량만 나간다면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도요. 한의학은 정말 빠질 수 없는 것 아시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문제가 있어도 비뇨기과 찾기 힘들어서 전전긍긍하는 분들도 많을 거고요.”

답답한 나머지, 이 작가는 회의를 통해 나왔던 이야기들을 근수에게 그대로 전했다.

비뇨기과 환자들의 대부분이 부담감을 느낀다는 설문 조사도 있었다.

그 또한 근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

비뇨기과의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비뇨기과 개원을 하는 의사들은 인테리어도 따뜻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꽤나 신경 쓴다.

환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싶게끔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의학 예능의 본뜻이 뭐겠어. 그렇게 부끄러워서 비뇨기과를 못 찾는 사람들을 병원으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하는 거잖아. 거기에다 한의학 관점을 이야기하면 비뇨기과로 환자들이 오겠어? 한의원으로 다 찾아가지.”

근수는 자신의 의견에 한의학 소견을 곁들이면 찾는 데 부담이 없는 한의원으로 찾지 않겠냐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이 작가는 퍽 난감한 듯, 근수의 팔을 붙잡고 진정하자며 그를 불렀다.

“원장님……”

“진작에 한의사를 패널에 앉힐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근수는 자신의 분량을 재마와 나누는 것이 썩 불편한 기색을 팍팍 내었다.

스텝들은 한의사인 재마가 있는 앞에서 싫은 티를 내는 근수의 모습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촬영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CP는 이 작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CP의 목소리에 이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근수를 바라봤다.

“원장님, 표정 푸시고. 이제 촬영 시작해요. 원장님이 최대한 화면빨도 잘 받게 찍어 달라고 촬영감독님한테도 부탁할게요. 기분 푸시고요.”

이 작가는 어린애를 달래기라도 하듯 장근수를 달래고 무대를 내려갔다.

촬영이 곧 시작한다고 표정을 풀라고 조언을 하고 이 작가가 내려갔지만, 마뜩잖은 근수의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필이면 한의사인 이재마와 엮일 게 뭐람.’

“원장님, 스마일~”

송 MC도 곧 촬영이 들어가고 이번 주제가 비뇨기과 전문의인 근수가 끌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그를 살폈다.

촬영도 들어가야 하고 아무 죄 없는 송 MC에게 짜증을 낼 수 없는 근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3. 2. 1 큐”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건강을 책임지는 DR. 트루. 첫 방송이 나가고 두 번째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어떠셨어요.”

송 MC는 능숙하게 오프닝을 시작했다. 첫 방영이 나가기 전이지만, 긴장되는 첫 방영을 마치고 패널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대사로 오프닝을 시작했다.

아직도 밝지 않은 근수를 바라보며 그가 준비가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끌었다.

그것이 MC의 역량이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의학 예능인 만큼 시청자분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요. 이번 주도 채널 고정! 대단한 주제가 나옵니다.”

송 MC의 큰 목소리와 함께 두 번째 촬영의 주제가 공개되었다.

“발기부전!”

발기부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패널들은 평소보다도 더욱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방청객으로 참여 중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약간의 야유가 섞인 조소도 들려왔다.

“음, 원장님들도 하실 말씀이 많은 것 같은데요. 모두들 자신만만 웃고 있는데 안 웃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죠?”

송 MC는 고민이 있는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기 위한 대사였다.

의사 패널들 뒤쪽으로 있는 화면으로 설문조사 내용이 게시되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비뇨기과의 방문이 무섭고 두렵다는 의견이었다.

설문조사가 나오자, 아까와는 웃음은 사라지고 다르게 침체된 분위기였다.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뜻이었다.

“장 원장님, 어떠세요. 청담에서 비뇨기과 직접 운영하시는데요.”

“예전과 다르게 걱정이 있으면 바로바로 병원으로 찾아오는 환자분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치료를 거부하는 분들도 계시고, 아직까지도 속앓이만 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근수의 이야기에 송 MC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인테리어도 아기자기하게도 꾸며보고, 진료실에 귀여운 인형도 가져다 놔봤지만 낯설기는 한가 보더라고요. 하하.”

썩 편치 않았던 근수였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자 농담을 곁들이며 꽤 마음이 풀렸다.

“처음이 어렵지, 치료를 시작하면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시면 좋을 텐데요. 자, 그럼 오늘은 고민만 하고 있을 시청자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여기 계신 전문의분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다음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스토리가 있는 화면이었다.

자료화면이 나가는 동안, 막내 작가가 재마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메인 작가인 이 작가가 자신을 투입시켜 한의사인 재마에게 양해를 구하라는 이야기를 전달시켰다.

“원장님, 장 원장님 의견 이후에 원장님 의견이 나갈 건데요. 최대한 트러블이 없게 부탁드릴게요. 장 원장님 성격이…….”

“네. 무슨 일인지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대기실에서부터 근수를 지켜봐 왔던 재마이니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뜻이었다.

근수가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패널들이나 방청객 중에 Q&A 시간도 가져도 될까요?”

근수가 불만을 토로하는 바람에 급박하게 프로그램 구성을 추가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을 재마의 의견을 묻는 진경이었다.

갑작스러운 구성에 근수가 불만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할게요. 원장님, 힘내세요!”

아직도 텃세 아닌 텃세를 몸소 느끼고 있을 재마에게 진경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빠르게 무대를 빠져나갔다.

재마는 그래도 자신을 응원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급박하게 프로그램 구성이 추가되었다고 해도, 재마는 부담은 없었다.

항상 새로운 환자를 만나고, 새로운 환자의 동공을 읽고 그들이 고민하는 부분까지 쏙쏙 들을 수 있으니 오히려 제 능력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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