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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3화 (133/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3화

재마는 주머니에서 침을 꺼내 손에 들었다.

혹시 몰라 습관처럼 준비를 했던 침통이었는데, 이렇게 방송국에서 사용하게 될지는 몰랐던 재마였다.

“거, 이 원장. 뭐 하는 거요? 발작 일으키는 거 안보입니까? 일단 고개를 돌리고 숨 쉴 수 있게 확보했으니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지켜봅시다.”

장 원장은 재마가 침을 손에 쥐자, 마치 이 상황에서 시술을 하기라도 할 것이냐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간질 발작, 공황 발작 등 발작으로 이어지는 환자 등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비뇨기과 전공을 하고 개원을 하면서 응급환자를 마주한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자신도 의사였지만, 응급환자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환자를 재마가 돌보는 것에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거품을 물고 방송국 복도에 누워 있는 막내 진수의 모습이 안타까운지, 동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응급실까지 갈 때까지 그냥 가자는 겁니까?”

“구급대원 분들이 오셨으니, 괜찮겠지. 일단 과학적이지 않은…….”

장근수는 아직까지 대체 의학에 지나지 않는 한의학을 믿고 환자에 시술하는 모습은 못 보겠다는 듯 이야기했다.

만약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방송국 복도에서 시술을 하는 것을 가만두었다가 혹여 막내 PD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괜히 원망이 이곳에 있는 의사 모두에게 쏟아질 수도 있었다.

특히 첫 촬영에 오래간만에 MBX의학예능이 돌아온다며 이목을 잔뜩 집중시켜 놓은 상황인지라 기자들도 밖에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세어 나간다면 어떤 내용의 기사를 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원장님, 지금 발작이 일어나고, 환자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한의학이 대체 의학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고 저도 뇌전증 환자들을 임상에서 꽤 만났고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침놓으실 거예요?”

구급대원은 들것에 실은 진수를 구급차에 옮기기 전 실랑이를 하는 두 의사 사이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만약 유 PD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원장이 모두 책임지는 거요. 이 안에 의사가 이렇게 많았지만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단 한 명, 이재마 원장만 환자에 손을 댔으니. 알겠소?”

근수는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 시, 재마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받듯 이야기했다.

“네. 그러죠.”

“시간 없습니다. 그럼 한의사께서는 구급차에 같이 타세요. 타서 침을 놓으시건, 다른 조치를 하셔야 합니다.”

구급대원은 갈 길이 멀다는 듯, 재마를 재촉했다. 아직 촬영이 남은 재마였지만 진수를 응급실까지 옮기는 동안이라도 침술을 하기 위해 따라나섰다.

이미 발작이 시작된 지 오래라 사지가 굳어가듯 딱딱하고 떨리고 있었다.

구급차에 따라 오른 재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움직이는 차에서 시술을 한 적이 없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진수를 바라봤다.

‘막내 PD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재마가 처음 방송국에 와서 인터뷰를 할 때, 사인을 부탁하며 잘 부탁드린다고 부끄럽게 인사를 하던 진수의 모습이 재마에게 떠올랐다.

아직 나이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재마 또래의 친구였는데 어쩌다 뇌전증을 앓게 되어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까 쓰러지자마자 진수의 동공을 확인한 재마의 눈에는 간질 발작으로 뇌세포들의 비이상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진수의 몸은 뇌에서부터 손발 끝까지 샛노란 섬광이 그야말로 발작이라도 하듯 불빛을 내고 있었다.

재마는 침을 들고, 진수의 용천혈에 침을 꽂았다.

그리고 양손과 양발의 혈 자리까지 침을 놓았다.

침술로 응급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간질 발작을 수그러들게 하는 것이 재마의 목표였다.

“다 된 겁니까?”

재마의 처치를 지켜보고 있던 구급대원은 이제 막 침술을 끝낸 재마에게 물었다.

한의사의 처치가 끝났으니, 구급대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네.”

금방 사그라들지는 않지만, 진수의 상태는 침술을 하기 전의 발작보다 조금 사그라든 상태였다.

그제야 재마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매뉴얼대로 구급대원은 간질 환자에게 응급 처치를 했고, 이송이 되는 병원에 상황을 전달하며 진수가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준비를 마친 구급대원도 한숨을 내쉬었다.

“신기하네요.”

“네?”

“저희는 뇌전증이나 당뇨 환자도 그렇고 발작을 하는 환자들 많이 접하는데 침놓으신 이후에 환자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네요.”

진수의 손과 팔을 메우고 있던 노란 섬광이 사그라들 때쯤 아직 응급실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호전된 상태에 구급대원은 신기한 듯 입가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리 발작을 하는 환자들을 많이 접한다 해도 매번 마주할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구급 대원들이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저도 침술을 하기는 했지만, 늦지 않고 구급대원분들께서 힘써주셔서 환자가 응급실에 무사히 도착했네요.”

구급차가 응급실에 도착했는지, 멈춰서자 재마는 구급대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상태를 보고한 응급실로 들어가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진수를 응급실로 들여보내고 재마는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CP에게 들어와 있는 메시지를 확인한 재마는 CP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 원장님. 저희 막내를 이렇게 맡기게 돼서 죄송합니다.

자신의 팀원을 이재마에게 떠맡긴 것에 대한 상황에 미안한 탓인지 진수의 안위가 걱정된 탓인지 CP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한 건데요. 방금 유 PD님 응급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의식은 돌아온 상태였고요.”

-아이고.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2부 촬영은 어떻게 됐나요?”

재마는 자신이 참여하지 못한 2부 촬영에 대해 물었다.

한번 촬영을 할 때마다 2주씩 찍는다고 했으니, 첫 주 촬영은 마쳤고 두 번째 주제로 둘째 주 촬영을 진행 중일 시간이었다.

예능 촬영보다 환자가 우선이니 재마는 후회는 없었다.

-유 PD도 그렇게 되고 원장님도 따라가시는 바람에 잠시 촬영 보류를 한 상태였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방송국으로 오실 수 있나요?

우왕좌왕한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잠시 촬영을 보류한 채 상황을 지켜보던 상황이었다.

응급환자 이송을 도운 재마에게 촬영장으로 다시 복귀하라는 것을 강제로 할 수 없는 CP는 재마에게 선택권을 건넸다.

“네. 들어가겠습니다.”

유 PD의 상태가 호전된 것을 확인했던 재마는 다시 MBX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 * *

“아까 나 진짜 놀랐잖아…….”

송MC는 의학 예능만 여러 개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의학지식이 늘어났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환자가 발작을 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인지, 진수 PD가 응급실로 실려 가고 한참 뒤까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놀라셨구나. 2부 촬영 가능하시겠어요?”

막내 작가인 진영은 생수 한 병의 뚜껑을 따서 송 MC에게 건네며 자신도 놀랐지만 그녀를 위로했다.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송 MC에게 무사히 생수병을 건넸다.

평소에 친한 진수가 그렇게 아파서 방송국 복도에서 발작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였다.

“바로 들어갈 건 아니잖아? 자기가 가서 말 좀 해. 나 좀 진정해야 한다고.”

심호흡을 하며 송 MC는 2부 촬영을 위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복도로 떠밀린 진경은 그제야 진정되지 않는 두 손을 덜덜 떨며 복도 한편에 주저앉았다.

가장 친한 진수가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바로 진정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때, 재마와 전화를 마치고 나온 CP가 복도에 주저앉아 있는 진경을 알아챘다.

“진경, 너 왜 그러고 있어?”

“아, CP님. MC님이 촬영 좀 늦춰달라고 진정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떨리는 목소리의 진경을 바라본 CP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도 좀 진정해, 이 원장 돌아올 때까지. 아, 그리고 진수는 응급실 잘 도착했대.”

“정말요?”

“그래. 이 원장도 2부 촬영 들어갈 수 있다고 출발한다는 거 보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나저나 진수 녀석 원래 몸이 안 좋았어?”

진수의 병력 확인을 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CP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경도 처음 듣는 일이라 머리를 가로저었다.

만약 진수에게 병이 있었다면 이번 프로그램 들어가면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도록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뇨. 저도 처음 보는 거라……”

“너도 많이 놀랐겠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 원장 돌아오면 이야기 좀 들어보자고. 다른 패널들한테 이야기 좀 잘 전달하고.”

DR.트루에 출연하는 출연진 모두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예능을 찍는 터라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예민해질 수 있는 상황에 CP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다고 촬영 첫날부터 2부를 미룰 수도 없었다.

CP는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진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어수선한 분위기를 해결하는 것 또한 CP의 몫이었다.

“우리 채널에서 응급환자가 나왔는데, 많고 많은 의사들 중에 한의사가 응급처치를 해서 괜찮은 건가 모르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근데 나도 간질 환자는 너무 오래간만이라…….”

각자 전공에 맞는 환자들만 만나다 보니 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보고 당황한 나머지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신경외과 전문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다른 의사들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래도 이 원장이 나서서 따라갔으니, 다행 아니겠어? 이 원장은 뇌전증 환자 다룬 적도 있다고 아까 말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한의사가 뭐, 응급환자 만나 봤겠어요? 기껏해야 허리디스크나 발목 삐끗한 정도의 환자만 만나봤겠지.”

입술을 쭉 내미는 수진의 이야기에 피부과 전문의인 정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나도 이 원장 채널 구경 갔었거든? 요양원 봉사도 많이 다니고, 거기에서 진료과목 생각하지 않고 다 보더라니까. 심지어 최근에는 파킨슨병 환자 치료하는 영상도 올라왔어.”

“나는 대체 의학은 아직 좀…… 신뢰가 안 가서.”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듯 수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정화장을 시작했다.

똑똑.

“선생님, 2부 촬영 차질 없이 진행하신다고 합니다.”

고개를 빼꼼 들이민, 진경이 두 여 의사에게 보고를 하자 정연이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진경 씨, 유 PD 연락 받았어요? 어떻대요? 이 원장이 처치 잘했대?”

조금 전 재마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정연은 이재마 덕에 유 PD가 적당한 때 처치를 받았을 것이라 찰떡같이 믿는 듯한 표정이 수진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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