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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2화 (132/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2화

“첫 녹화 하는 날이 오기는 오네요.”

지난 넉달간 의학 예능인 DR.트루를 기획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석 PD는 CP에게 넌지시 이야기 했다.

메인 PD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 팀의 막내였지만, 원래 막내가 더 열심히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녀야 하니 더 의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 프로그램 시작이라 고생이 이제 시작이겠지만, CP는 앞으로도 제일 바쁠 석 PD의 어깨를 다독이며 고생했다며 칭찬을 했다.

CP에게 칭찬을 받자, 부끄러운지 석 PD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첫 예능이라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는 석 PD는 손끝에서부터 땀이 차올라 계속 손을 문지르며 프로그램을 지켜보았다.

“그나저나 패널들 사이에서 이 원장님이 조금 불편하실 것 같지 않나요?”

첫 대면과 리딩을 하는 자리에서 누가 봐도 텃세를 부리는 패널들 사이에서 낯선 모습의 이재마가 무리에 합류하기 힘들어 보이는 모양새였다.

“그렇긴 해도, 우리가 나설 수는 없고 일단 두고 봐야지. 그렇지 않아도 박상도 대표 자리를 메꾼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CP도 걱정을 하지 않았던 부분은 아니었지만, 의사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꽉 막힌 집단 중 하나라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이재마를 더 난감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첫 촬영을 무사히 넘기면 다른 의사들도 재마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재마를 처음 만났을 때 예능 국장도 그를 못 미더워했지만,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꽤 호의적으로 돌아선 상태였다.

“넵. 그럼 적당히 지켜보며 이 원장님 서포트가 필요할 때, 눈에 안 띄게 하겠습니다.”

CP는 거수경례를 하는 석 PD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기는 했지만, 꽤 제 할 일을 찾아서 잘하는 녀석이라 걱정이 없었다.

“오늘 DR.트루에서 첫 주제로 알아볼 주제는.”

개그우먼으로 데뷔를 했지만, 꽤 많은 시사 프로그램들을 거쳐, 의학 예능 프로그램 경력이 꽤 있는 MC가 패널들을 둘러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패널들도 프로그램 첫 화에서 어떤 주제가 나올지, 자신의 전공이 어떤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설레는 표정이었다.

“심근경색입니다.”

뜸을 들이던 MC의 입과 패널들 뒤로 보이는 전광판에 심근경색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장 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심근경색과 자신의 전공과목인 비뇨기과와는 먼 주제였기에 오늘 촬영에 제 얼굴이 한 번이라도 잡힐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흠.”

가장 연장자인 장 원장이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앙에서 패널들의 상황과 준비한 것들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는 스탭들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작가님, 장 원장님…….”

장 원장의 불편한 기색을 읽은 작가는 조마조마한 얼굴이었다.

가장 연장자이자, 방송경력이 가장 많은 근수이니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하는 인물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잖아. 그리고 송 MC가 잘할 거야. 베테랑이잖아.”

메인 작가인 이 작가는 막내 작가의 걱정스러운 우려 섞인 목소리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모니터링을 했다.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이 괴사 되는 것인데 조기 사망률이 무려 30%에 달하는 무서운 병이죠.”

송 MC는 이 작가가 기대하는 만큼 첫 주제를 대본에 적힌 대로 잘 풀어갔다.

“장 원장님? 장 원장님도 심근경색 걱정이 많으시죠?”

“하하. 제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불편한 표정이었던 근수였지만, 자신을 언급하는 MC의 부름과 함께 카메라가 돌자 표정을 풀고 농담을 건넸다.

송 MC의 말에 패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심근경색 자가 진단법을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송 MC는 한의사인 이재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어봤다.

첫 질문이 첫 출연인 재마에게 돌아간 것이었다.

“혀를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혀요?”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던 혀라는 대답에 송 MC의 눈이 커졌다.

“혀를 보면 생각보다 쉽게 심장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손과 발로 알아보는 건강상태는 익숙한데 혀는 금시초문인데 의료진이 아니어도 지금 시청하시는 시청자분들도 쉽게 알아채실 수 있나요?”

“네. 한의학에서 보는 얼굴과 장기의 연관성이 있어서인데요. 눈은 간, 귀는 콩팥, 입은 심장과 연관이 깊습니다”

대체 의학에 관심이 없다는 수진은 언제 자신에게 돌아올 줄 모르는 상황에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혀 앞쪽 1/3지점이 심장에 해당하는데요.”

재마의 설명에 따라 패널들도 귀 기울여 들으며 자신의 혀를 낼름 내밀어 옆 사람과 각자의 혀를 바라보는 패널들도 있었다.

“특히 혀의 갈라짐 모양을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혀 앞쪽 1/3지점에 갈라짐 현상이 있다면 심근경색 위험성이 증가합니다.”

재마의 설명에 평소 심근경색 환자들을 많이 돌보는 심장내과 전문의인 유 선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하하. 심장 하면, 유 선생님이 빠지실 수 없는데 이재마 원장님의 자가 진단법에 의견이 있으신가요?”

“혀끝 앞쪽이 심장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유난히 빨간 경우는 어떻게 된 거죠?”

“혀끝이 유난히 빨간 부분은 상체에 열이 몰리고 염증이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몸 상체에 염증이 생겼을 때도 혀의 변화가 있으니 심장이 약해졌다는 뜻이죠.”

재마의 설명에 의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 박사님, 이런 심근경색 왜 나타날까요?”

“심장은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불가능하고, 심근경색 환자의 30~40프로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겨울 돌연사의 80~90프로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큰 요인입니다. 낮은 온도에 혈관은 수축, 혈압은 상승해서 심장이 무리하기 때문이죠.”

재마의 자가 진단법에서 자연스럽게 심장내과 전문의인 유 선생에게 질문이 돌아갔다.

DR.트루 첫 촬영의 첫 질문을 무사히 마친 재마는 자신의 차례가 지나가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다소 전문적인 지식을 시청자들에게 정확하고 쉽게 설명하는 것을 요하는 예능이었기에 쉽고 간편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는데, 전달이 어떻게 될지 첫 방영일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유 선생이 심근경색과 동맥경화를 연관 지어 설명을 하는 사이, 1부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CP의 컷 소리와 함께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선생님, 자가진단법 잘 들었습니다.”

텃세를 부리던 패널들이 하나, 둘 재마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첫 촬영에 첫 주제이니 긴장도 될 만했을 텐데 무사히 마친 재마에게 칭찬과 격려의 인사였다.

“잘했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쉽다고 받아들이면서 거울로 혀 한 번씩 바라볼 것 같아요.”

촬영 때, 손거울로 열심히 혀를 들여다보던 소아과 전문의가 재마의 설명이 쉬웠다며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근데 제가 지난번에 선생님 소개 듣고 채널 들어가서 봤거든요.”

“아, 제 채널에 오셨었군요.”

재마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둘러보았다는 소아과 전문의의 정원의 이야기에 재마는 감사의 의미로 묵례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이 눈만 보고도 검안을 하신다고 신기해하던데 실력도 실력인데 요양원 봉사 다니시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정원은 자신이 인상 깊게 본 내용을 이야기했다.

재마와 정원이 채널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켜본 근수는 콧방귀를 끼며 지나갔다.

“어디까지나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지, 괜히 시청자들 혼란만 야기하는 거 아닐지 몰라.”

실제로 의학예능에서 언급한 이야기로 환자들이 혼란을 느끼며 전문의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부분은 재마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체 의학인데 한의사를 의학 예능 패널로 적합한지 모르겠군.”

의심의 눈초리로 재마를 한번 흘겨본 근수가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선생님들! 잠시만요! 환자요! 환자. 아까 유 선생님 어디 가셨죠?”

갑자기 중앙 쪽에서 스탭들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의사를 찾는 외침이 들렸다.

“유 선생 밖으로 나간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막내 PD가 쓰러졌어요. 급한데, 어디 가셨지.”

막내 PD가 쓰러졌다는 말에 대기실에 들어갔던 의사들도 동시에 뛰어나와 스탭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채널 이야기를 하던 재마와 정원도 막내 PD가 쓰러진 곳으로 뛰었다.

“잠시만요. 혹시 PD님 평소에 앓고 있던 질병이 있었나요?”

막내 PD를 둘러싸고 스탭들은 119에 연락을 하며, 둘러싼 의사들이 응급조치를 할 수 있게 한 발자국 물러났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을 경험한 적 없기에 스탭들은 그저 놀란 마음에 손을 덜덜 떨 뿐이었다.

인파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간 재마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진수의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막내 PD인 진수가 건강이 어땠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없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간질 아닙니까. 간질.”

비뇨기과 의사인 근수가 전신에 경직이 일어나는 간질을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제가 봐도 뇌전증, 간질 같아요.”

재마는 뇌전증을 의심하며 거품을 물고 있는 진수의 동공을 확인하려고 했다.

“근데 진수는 군대 현역으로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진수와 가장 친한 선배 PD가 혹여 간질이 아니지는 않을까 하며 군 면제 조건인 간질은 아닐 것이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 스트레스 받는 게 많았다거나……. 과로를 했다거나…….”

수진은 검안을 하는 재마 뒤에서 간질이어도 지금까지 진수가 모르고 있었을 수 있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재마는 빠르게 동공을 확인했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이렇게 많은 의사들 앞에서 급하게 동공을 인식해 환자의 상태를 돌봐야 하는 일이 있을 줄 몰랐지만, 지금 상황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름 : 유진수

-나이 : 28

급성 증상성 발작. 즉시 치료를 요함.

재마가 예상했던 것처럼 뇌전증(간질) 증상이었던 진수였다.

“뇌전증 증상이 맞는 것 같고, 급성 증상성 발작입니다. 119 연락하셨었죠?”

“네. 5분 다 되어가니까 아마 도착했을 겁니다.”

119에 연락했던 스탭이 구급대원들을 밖에서 기다리다 안쪽으로 들어오며 소리를 쳤다.

“비켜주세요. 구급대원 왔습니다.”

“이게 진짜 갑자기 무슨 일이야.”

DR.트루가 기획되며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진수가 쓰러진 상황에서 작가팀에서도 PD 측에서도 놀랍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이 막내에게 일이 너무 많이 주어져서 일어난 상황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눈물을 훔치는 PD도 있었다.

“특발성 발작이라 뇌 손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응급실로 옮겼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재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치를 했으니 걱정을 말라며 스탭들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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