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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1화 (131/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1화

“무슨 자리에 앉기도 전에 꿰뚫어 보는 무르팍팍도사도 아니고.”

모두들 재마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누가 봐도 전문의들 사이에서 나이가 가장 적어 보였기 때문인지, 재마의 너튜브 채널명을 비꼬는 소리가 재마의 귓가까지 들렸다.

하지만 재마에게 진료를 받기 전, 그리고 재마의 능력을 알기 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고 익숙한 재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았다.

그 이후에 그의 능력과 실력에 대해 논해도 늦지 않았다 생각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본인도 아는구만.”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비뇨기과 장 원장이 피식 웃자, 옆에 앉아 있던 수진이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지금까지 롤모델로 생각했던 박상도가 추락을 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재마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장 원장님, 다 들려요.”

“김 선생은 저 채널 알고 있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수진이니 요즘 MZ세대뿐 아니라 3~40대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채널을 알고 있냐는 듯 물었다.

“저도 듣기는 해봤는데, 원장님도 아시잖아요. 저는 대체 의학에는 관심이 없는 거.”

대체 의학에 관심이 없던 수진도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수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수진은 자신이 첫 방송을 하기 전, 패널들과 대면을 하러 처음 왔을 때를 떠올리니 낯선 사람들 앞에서 텃세 아닌 텃세를 당하는 재마가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질문해도 됩니까?”

그때, 소아과 전문의인 패널이 손을 번쩍 들고 재마를 바라봤다.

“네. 질문하시죠.”

아직 뉴페이스인 재마에 대해 관심이 쏠린 것을 확인한 CP는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듯, 질문을 받았다.

“양방학 쪽 의사들은 각자 전문적인 분야가 있는데, 솔직히 한의학은 아직까지 대체 의학이기도 하고 한 가지 전문 분야가 없는데 매주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전문의의 의견을 듣는 의학 예능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날카로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패널들이 더러 있었다.

이 부분은 재마뿐 아니라 재마를 캐스팅 한 스탭들에게도 향한 질문이었다.

“한의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한의학에도 다양한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임상에 나가게 되면 남녀노소, 병의 유무에 상관없이 다양한 임상 케이스들을 만나지만요. 전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시는 다른 전문의분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적극 반영하고 존중할 생각입니다. 양방학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한의학에서 다루게 되어 협진을 하게 된다면 더더욱 좋고요.”

재마는 낯선 자신을 경계하는 패널들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도록 똑소리 나는 대답을 건넸다.

그의 대답에 날카롭게 질문을 했던 소아과 전문의도, 시시덕거리며 웃음을 흘리던 패널들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 이재마 원장님의 실력은 차차 알아가도록 하고요. 자기소개는 모두 마쳤으니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마음으로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은 싸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CP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박수를 요청했다.

재마를 소개할 때와 다르게 CP의 요청에 적극적인 박수 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 * *

정한 한방병원의 추락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성은이 소속되어 있는 채널에서 더 이상 후속 보도를 하지 않아도, 정한 한방병원의 임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퇴사를 해야 했던 정우와 효주의 인터뷰를 내보낼 필요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피해를 봤던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인터넷 신문사와 방송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특종이라면서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는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고스란히 언론에 보도했다.

-7년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사람을 고치는 한방병원이라는 곳에서 사람이 먼저가 아닌 정한 한방병원 타이틀을 가지고 환자도 임직원들도 쉽게 생각을 했죠.

7년 전 퇴사자, 물리치료사 김ㅇㅇ

-그때는 나설 수가 없었어요. 정한이잖아요. 우리나라 최고의 한방병원. 거기에서 밉보이고 퇴사하면 다른 한의원을 갈 수가 없었다고요.

3년 전 퇴사자, 한의사 박 ㅇㅇ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한의사도 아닌 사람들이 어찌나 갑질을 하던지, 그 형님이라는 사람이랑 그 집안사람들이 모두 치가 떨렸어요. 운전기사 일만 30년째인데 그런 집안은 또 처음이었죠. 아무튼 일찍 그만두기를 잘했어요.

2년 전 퇴사자, 운전기사 강 ㅇㅇ

정한 한방병원에서 근무했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례를 들어가며 인터뷰를 하는 상황에서 정한 한방병원은 이제 공식적인 입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 입장 발표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언론이 조용해질 리 만무했다.

지금까지 전무후무했던 사건을 계속 파헤치려는 기자들이 늘어날 뿐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인터뷰와 기사에 정한 한방병원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점점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피로도가 쌓일 정도였다.

-글쎄요.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는 이제 피로하죠. 도대체 그런 사기 집단이 대형 한방병원이 될 때까지 정부에서는 무엇을 했나…….

서울시 도봉구 40대

-나라에서도 책임을 지고, 다른 대형병원들도 조사를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시 연성구 50대

한의사 협회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돌파해야 한다며 원로회는 물론이고 협회 회원인 한의사들에게도 여러 차례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환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매출 걱정을 하는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소리를 냈다.

장정천이 사퇴를 한 이후,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덕영은 오늘 올라온 기사들과 더불어 그사이 들어온 컴플레인에 대한 내용을 보고 받으며 피로한지 눈 앞머리를 꾹꾹 눌렀다.

이 책임을 협회에 돌리는 환자들과 협회 회원들의 원성에 정한 한방병원만큼이나 괴로운 덕영이었다.

“부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지난 3주간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하루에 두세 번씩 회의를 해가며 돌파구를 찾는 덕영이 안타까운지, 그의 비서가 물었다.

“여기 괜찮은 사람이 있던가.”

덕영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고생하는 만큼 고스란히 고생을 하고 있는 비서실 직원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서가 들고 들어온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애써 피곤함을 떨쳐내려고 했다.

정신을 다시 차린 덕영은 비서가 가지고 들고 온 자료를 다시 한번 쭉 훑고 입을 열었다.

“홈페이지 메인에는 지난번 교통사고 후유증 한의 치료 만족도 조사 자료 올렸나?”

“네. 일주일 게시하기로 했던 계획을 연장해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 진단기기 사용 관련 대법원 판결 내용은?”

“그 내용은 판결 내용에 대한 공식보도와 함께 올라갔고요.”

어떻게 해서든 여론을 긍정적으로 몰아오기 위한 홍보 수단을 여러 방면으로 힘쓰고 있는 덕영이었다.

때마침, 현대 진단기기를 한의학에서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면서 앞으로 한의학에서도 진단기기를 접목해 더 정확한 진단과 진료, 처방이 가능해질 전망이었다.

“후, 대법원 판결이 잘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아마 부결이 났다면, 낡은 의료법 그대로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로 해석돼서 한의학에는 어두운 미래를 예고했을 것이었다.

한의학의 순기능에 홍보가 될만한 자료들은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팝업을 사용해서 인식 개선에 힘을 썼다.

“원로회에서는 이번 사랑의 한약증서 행사에 이재마 원장을 초대하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이재마 원장?”

“네.”

“지금까지 그렇게 당해 놓고 또 다른 인물을 내세울 모양이구만.”

덕영은 협회와 원로회를 구워삶았던 박상도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했다.

그렇다고 한의사 협회의 떨어진 신뢰도를 바닥에 처박아 둘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가 다시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어두운 표정이었던 덕영이 이재마라는 이름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협회 일에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너튜브에서 한의사로서 인기몰이를 한다고 할 때부터 관심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지만, 덕영은 안면이 없는 재마를 협회 공식행사에 초청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다.

“아무래도 임상경력이 적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의사 협회 가입 햇수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고요. MBX 채널에서 시작하는 DR.트루의 고정패널로도 출연한다고 하니, 접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몇 주째,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전력기획을 맡아서 한 안 비서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 재마를 적극 추천했다.

경력은 적었지만, 한의원뿐 아니라 대외 활동에 적극적인 이재마라면 한의사 협회 인식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덕영은 아직 이재마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한의원을 무조건 홍보하기 위한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건 협회로서는 위험성이 있었다.

“음…… 5대째 한의원을 운영한다라……. 누구랑 너무 겹치지 않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덕영은 안 비서의 적극적인 추천에 잠시 주춤했다.

결국 정한 한방병원의 4대째 이어오고 있다는 전통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이미지는 거짓이라는 것이 이미 판명 났다.

환자들이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부분이었다.

대를 이어 한의원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 한의학에 있어 가장 큰 메리트가 되었던 정한 한방병원이었다.

마치 그 한의원만의 전통적인 치료법이 있을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겹친다고 생각은 하실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을 한의원 홍보를 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겠죠?”

“흠. 눈을 보고 환자를 치료한다라…….”

“동공을 이용해 환자의 병을 확인하는 것은 한의학에서 대표적인 검안 방법입니다.”

안 비서는 정한 한방병원과는 다른 노선을 타고 있는 이재마를 한번 믿어 보자는 듯 덕영의 우려 섞인 질문에 답변을 했다.

“부회장님이 직접 너튜브를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서는 기다렸다는 듯, 태블릿을 덕영에게 건넸다.

태블릿 안에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이 띄워져 있었고, 가장 최근 영상으로는 외국인이 한의원을 방문한 영상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럼 일단 시도를 해보자고.”

덕영은 더 이상 고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듯, 서류들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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