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30화
MBX 방송국 예능국 대회의실.
새 의학 예능 프로그램, ‘DR. 트루’의 패널들 제작진들이 함께 보여 방송이 들어가기 전 첫인사를 나누는 날이었다.
미리 도착한 패널들은 서로 인사를 간단히 나누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미 방송 경험이 여러 번 있어 얼굴을 익힌 사람들,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았던 사람들까지 이미 안면이 있는 의사들은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앞으로 적어도 3개월 이상은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이니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한껏 미소를 지으며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은 덤이었다.
-어디까지 추락하나, 정한 한방병원.
-정말 이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대형 한방병원의 실체.
-한의사 협회, 정한 사태 정말 모르고 있었다.
-전국의 한의사들, 뿔났다.
“와, 정말 골 때리네.”
“왜요, 왜요?”
장근수가 휴대 전화를 보며 고개를 가로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소리에 이미 안면이 있는 수진이 그에게 다가왔다.
김수진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근수의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았다.
“아, 한방병원 사건이요? 한방병원 뿐 아니라 대형 브랜드 병원이라 하면 환자들이 의심부터 하고 본다니까요?”
수진은 요즘 환자들이 전혀 관계없는 진료과목인 이비인후과에 와서도 자신을 의심하는 눈초리로 본다며 입술을 뾰로통 내밀었다.
평소 한의학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관심은 없었다.
모두 환자와 간호사들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들뿐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우리 방송에 박상도 대표가 내정되어 있었다던데…….”
“박상도 대표요?”
“유력 후보였다는 데, 이번 사건으로 잘렸다더라고.”
“에이. 정말요? 그럼 한의사 대표로는 누가 나오는 데요?”
근수는 어디선가 들었다며 목소리를 낮춰 수진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한의학 하면 박상도인데, 몇 주 이후 정한 한방병원에서 다른 의사가 자리를 메울지 몰라도 프로그램 이슈를 위해서라도 방송국에서는 박상도를 앉히길 바랐을 수도 있었다.
8년 정도 방송을 떠나 있던 사람이었으니, 이번에 출연했다면 그의 컴백과 동시에 비슷비슷한 의학 예능이라고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야 모르지. 대타로 갑자기 구했을 때 어떤 사람이 나오나. 아마 제작진도 골머리 썩었을 거야. 박상도 대표라 하면 시청률 팍 찍고 시작했을 텐데, 그것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매번 정한 한방병원에서 페이닥터들 데려다가 돌려가며 찍었었는데 이젠 정한 표를 쓰지를 못하니.”
“박 대표가 그정도였어요?”
박상도 대표와는 방송을 해본 적이 없는 수진이, 경험이 있는 근수에게 물었다.
“이번 일이 이렇게 돼서 그렇지. 박 대표 인물이기는 인물이지. 실력이면 실력, 사업수완이면 사업수완. 거기에다 방송까지 타고났으니.”
“실력이요? 이번에 다 밝혀진 거 아니에요? 거짓으로.”
박 대표가 실력이 좋다는 말에 수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 한의학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관심이 없는 것에 한몫했다.
“이번에 일 터진 게 실력 문제가 아니라 사업 확장하면서 이미지 포장한다고 이것저것 거짓말을 한 게 문제가 된 거지. 뭐 4대째 한의원을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고, 문화재 지정한 ‘병합경훈’ 도 집안 물건이 아니라 매입을 했다고 하고.”
박 대표에게 평소에 관심이 많았는 지, 비뇨기과 의사였지만 정한 한방병원 사건에 대해 술술 읊었다.
“장 원장님, 정한에 관심 되게 많으시네요?”
수진은 전혀 관련 없는 과목인데도 잘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비뇨기과계, 대한민국 정한 한방병원이 되려고 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이 무너졌지. 그대로 따라갔다가는 골로 갈뻔했어.”
한의학에 전혀 신뢰도 관심도 없는 자신과는 다른 모습이 제법 우스워 보일 정도였다.
전혀 다른 과목임에도, 청담동 개원의인 근수는 인간적으로 박상도를 꽤나 따랐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롤모델의 추락에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혀끝을 내찼다.
“비뇨기과계 정한 한방병원은 뭐예요. 장 원장님도 참.”
김수진은 손사래를 치며 근수의 농담이 재밌다는 듯 웃자, 근수는 진지하게 답변을 했다.
“수진 씨는 모르지. 이 비뇨기과가 남성 건강의 척도라고. 비뇨기과 질환이 생겨봐, 우울감도 오지. 우울감 오면 전신 피로감은 따논 당상이지. 항상 피로하고 스트레스 쌓여봐 만병의 근원이라고. 이 비뇨기과 건강관리를 잘 해야 자신감도 팍팍 오르고, 인생도 술술 풀리고. 한의원 가서 정형외과 진료, 정신과 진료, 내과 진료 다 보는 것이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꽤 나름 한의원과 비뇨기과를 비슷한 점을 찾아 퍼즐을 맞춰가며 박상도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근수는 꽤나 진지했다.
실제로도 비뇨기과 환자들을 보면 비뇨기과 질환뿐 아니라 다른 질환으로 연결되는 것을 흥미롭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 줄 만한 의학 지식이 충분한 의사들과 나눠야 이해를 해줬다.
하지만 수진은 근수의 이야기에 아쉽다는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박상도를 따라가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 분위기였다.
“장 원장님의 롤모델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네요.”
김수진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사람이 한의사로 올지, 저는 진짜 궁금한데요? 꽤 부담스러울 차리일 텐데.”
정말 근수의 말대로 박상도의 자리였던 것을 메꾸려 들어 오는 것이라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었다.
웬만한 인지도가 있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비교가 뻔한 자리를 채우러 들어오지 않을 테니 말이었다.
더구나 질병에 대한 검사를 하고, 수치로 나타나는 과목들과 다르게 한의학은 무엇인가 뜬구름을 잡는 느낌이라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목이었다.
종종 한의학에 맹신을 하며 한의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이비인후과로 가져와 정말 그렇냐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재마였다.
“아, 안녕하세요.”
모두들 처음 만나는 자리라 약간 긴장한 모습의 재마가 회의실로 들어오자, 조금 전까지 한의사에 대해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했던 수진도, 박상도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던 근수도 그가 누구인지 몰라 얼떨결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수진과 근수는 들리지 않게 서로를 바라보며 ‘누구’ 하고 물었지만 둘 중 누구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비뇨기과 장근수입니다. 청담동 청 비뇨기과 대표원장이고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명의 한의원 이재마라고 합니다.”
“아, 한…… 한의사셨구나. 반갑네요.”
그렇지 않아도 미리 와서 자리를 채우고 있던 소아과 전문의, 피부과 전문의들을 둘러보며 한의사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근수였기에 그 부담스러운 자리를 이 젊은 의사가 채우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찰나였다.
누구든 박상도의 자리를 채우겠거니 했지만,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한의사가 자리를 채운다는 것에 의아한 근수였다.
‘한의사는 특히 경력을 중요시한다던데…….,’
트렌드를 따라가는 성형외과나 비뇨기과와 다르게 경력이 곧 실력으로 점쳐지는 한의학이라는 이야기 종종 들었던 근수였다.
“안녕하세요. 이비인후과 김수진이예요. 영동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아직 개원을 하지 않은 수진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영동 병원의 명함을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재마는 그 뒤로도 회의실에 먼저 도착해 있는 의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생각보다 젊은 한의사네요?”
수진은 재마가 오기 전까지 같이 담소를 나눴던 근수에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게. 겁도 없이 저 자리를 왔네.”
근수는 앞으로 비교 당하는 것이 훤하다는 듯, 혀끝을 내찼다.
“자, 이제 어느 정도 다 오신 것 같은데 각자 자리에 앉아 볼까요?”
밖에서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CP와 PD들, 그리고 작가들까지 회의실로 들어오며 테이블에 미리 준비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의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모이시니, 프로그램을 구상한 저희로서는 든든합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때, 한 명씩은 만났었지만 이렇게 8명이나 되는 전문의 의사들을 모이게 한 것이 내심 뿌듯한지 CP는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의사들은 모두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이제 한배를 탔으니 프로그램 시작부터 끝까지 누구 하나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를 곁눈질 하며 파악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가까워지는 의미에서 한 분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좀 해보겠습니다. 이미 친분이 있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처음 뵙는 분들도 있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CP의 말에 다들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이재마에게 가장 시선이 쏠렸다.
지금까지 의학 예능이나 의학 방송에서 한의학쪽 전문의라면 정한 한방병원에서 모두 채웠었는데 새로운 인물이니 그럴 만도 했다.
차례대로 일어나서 자신의 과와 근무지, 그리고 방송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재마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인동에서 5대째 명의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마라고 합니다. 공중파 방송은 처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재마는 자신이 첫 고정패널이라는 것을 미리 알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모두들 뉴페이스인 재마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때, 한쪽에서 재마를 알아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인동 명의 한의원이라면, 너튜브에서 유명한 분 아니신가요?”
“너튜브?”
한의학에 큰 관심이 없는 의사들이 재마가 너튜브에서 유명한 의사라는 말에 의아한 얼굴로 그를 다시 바라봤다.
“아, 너튜브 ‘환자를 읽는 한의사’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읽는?”
“하하, 정말 검사 없이도 환자의 상태에 대해 아신다는 이야기입니까?”
재마의 채널명을 들은 전문의들은 조금은 재밌다는 반응과 우습다는 반응으로 나누어져 웃음을 지었다.
재마는 그들의 조소 또한 이해가 가기에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으시니 저희가 모인 거겠죠. 이번 프로그램 진행하시면서 그 분야에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 모이게 됐는지 여러분도 몸소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CP는 다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다.
혹여 재마가 기분이 상하지 않았는지 살피는 것 또한 제작진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