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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27화 (127/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27화

“이런 쯧쯧.”

“좀 말을 해보세요. 유 원장.”

한의사 협회 원로들은 정한 한방병원 사건으로 급하게 모여 벌써 세 시간째 머리를 맞대고 있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게 지난번에 원로회 공식 입장까지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까?”

“이제 와서 그러면 뭐합니까. 지금까지 박 대표 하나 믿고 그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소 했던 사람들이 누구인데.”

10년이 넘도록 정한 한방병원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현업에 물러나 있으면서도 박상도의 전관예우를 받지 않은 사람이 누구 하나 없었기 때문에 모두 무엇이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이번 일도 어떻게 조용히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박상도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던 유 원장이 원로들을 바라보며 넌지시 이야기를 했다.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그였다.

“이게 조용히 넘긴다고 넘길 일입니까? 문화재 지정을 하겠다고 집안 물건도 아닌 물건을 매입해와서 가보인 것처럼 포장을 해 언론 플레이를 했는데요. 그뿐입니까. 이번 일로 정한 한방병원의 정통성에 의심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경기도 광주에서 지금까지도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 원장이 혀끝을 내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박상도에게 도움을 안 받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잘못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내보였다.

“아니, 정통성이 의심된다고 하는 건 어디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이번에 ‘병합경훈’ 매입 과정에서 최시원 선생의 후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최 원장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한의사 아들이 한 이야기를 원로들에게 전달했다.

지금까지 ‘병합경훈’ 최시원 선생의 후손으로 알려지며 한방병원을 키워왔던 박상도였기에 원로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 대표의 아버지는 한의사가 맞지 않습니까.”

원로회 회원이었던 박상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최시원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럼 앞으로 한의학 이미지는 어쩝니까. 지금까지 박 대표 하나 믿고 밀어주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하는 건 물론이고, 원로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젊은 한의사들에 대해서 알아가야죠.”

최 원장은 쓰고 있던 돋보기를 끌어 올리며,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요즘 방송에도 종종 나오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한의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 해인동에 있는 한의원 말입니까?”

“그래요. 명의 한의원.”

이재마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원로들은 무릎을 탁하고 쳤다.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손자 녀석이 한번 보라고 휴대폰을 들이밀어서 영상을 봤는데 영 사기꾼 같아서.”

“맞아요. 나도 눈으로 환자를 읽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경험도 부족한 한의사가 관심만 받으려고 하는 거로 보입디다.”

이재마에 대해 알고 있는 원로들도 평소에 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의견도 속속 내놓았다.

“그야 그건 우리가 직접 이 원장의 실력을 알아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직접이요?”

직접 나서서 이재마의 실력을 알아보겠다는 최 원장의 말에 다른 원로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 * *

“나는 원장님 믿는데이.”

“네. 믿고 오셔도 됩니다.”

“구 원장님은 잘 계시재?”

“네. 그럼요.”

이재마는 치료가 끝났음에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서 확인을 하듯 대답을 원하는 순철의 물음에 지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정한 한방병원 사건이 터지고 나서 벌써 3일째 있는 일이었다.

환자들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재마가 예상했던 그 이상으로 한의학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더러 있었다.

오랜 명의 한의원 단골 환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오늘도 진갑순 환자는 안 오시나요?”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던 진갑순 환자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재마는 정 실장에게 물었다.

혹여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오전에 연락드려 봤는데요. 당분간은 아들들이 한의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좀 댁에서 쉬신다네요.”

정 실장은 아쉬운 목소리로 재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명의 한의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처음 보는 신규 환자들, 얼굴이 익숙한 환자들 모두에게 관심을 쏟던 갑순이 조용하자, 한의원 전체가 조용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쩔 수 없네요.”

“신규 환자 수도 많이 줄었어요.”

재마가 한의원을 맡은 후로 꾸준하게 있던 신규 환자 수도 3일째 줄어든 상황이었다.

“예상했던 일입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분위기에 동요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정한 한방병원 사건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환자들이 줄어든 다거나 환자들이 불안해할 때 의료진으로서 당연히 분위기에 동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위기에 휩싸여 의료진까지 이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 그리고 원장님 아까 진료 보실 때 MBX에서 연락이 왔었는데요.”

정 실장은 진료시간에 이 원장에게 왔던 전화를 대신 받아 적어놓았던 메모지를 재마에게 건넸다.

“축하드려요. 새 의학 예능에 출연 확정되셨네요.”

“감사합니다.”

상황이 애매하기는 했지만, 결국 예능 출연이 확정된 재마는 축하 인사를 하는 정 실장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무거우시겠어요.”

정 실장은 축하를 하면서도 활짝 미소를 짓지 못하는 재마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조금은 무겁네요. 아무래도 상황이 이런지라…….”

“원장님이 나가셔서 다시 한의학 이미지를 굳건히 하시면 되시죠. 저희는 믿어요.”

정 실장은 재마의 능력을 믿는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재마는 언제나 자신의 편에 서서 응원을 해주는 정 실장이 있어 그나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흐음.”

정 실장과 재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명의 한의원의 문이 삐걱하며 열리며 두루마기를 입은 연로한 환자가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 한의원 처음 오셨죠?”

딱 봐도 연로한 환자의 모습에 데스크에 있던 정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부축하기 위해 잰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네. 내가 좀 멀리 사는데, 아들 녀석 집에 올라왔다가…….”

“네네. 잘 오셨어요.”

정 실장은 연로한 환자에게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도 한 톤 높여 접수를 시작했다.

재마는 그 모습을 보고는 진료실로 돌아가 신규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접수를 마친 환자는 잠시 후, 정 실장의 안내로 재마의 진료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원장 이재마 입니다.”

“한의사 양반이 젊구먼.”

조금 전 대기실에서 마주했던 사내가 한의사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는 듯 환자는 쓰고 있던 안경을 코끝까지 내려가며 재마를 다시 보았다.

“네. 젊긴 하지만, 걱정 말고 이쪽으로 앉으세요.”

“흠. 내가 경력이 많은 한의사들만 찾아다니는데. 흠.”

못마땅한 듯,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내는 환자의 반응에도 재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최두식 환자, 맞으시죠?”

“맞소. 최두식.”

재마는 두식의 왼쪽 손목을 짚어 진맥을 짚으며 동시에 그의 동공을 바라봤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두식의 동공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재마는 그의 몸 상태를 살폈다.

-이름 : 최두식

나이 : 79세

담탁(淡濁), 습열(濕熱), 어혈(瘀血) 상태.

기식비감후미의 외인과 간비신 기능 실조의 내인에 의해 담탁과 습열, 어혈이 발병한 상태.

재마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두식의 상태에 반대편 손목을 짚어가며 다시 진맥을 짚기 시작했다.

“고지혈증이 있으신 것 알고 계시죠?”

“고지혈증?”

듣던 중 처음이라는 듯, 두식의 눈이 커졌다.

“네. 원래 고지혈증이 눈에 띄거나 증상이 발현되는 질병은 아니라서 대비도 힘든 질병입니다. 양약을 드신다거나 생활습관, 식이조절을 해가며 관리 하셔야 하는 질병이에요.”

“에이. 내가 한의원을 찾아왔는데 양약 이야기를 꺼내?”

두식은 재마의 진맥에 무엇인가 맘이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혀끝을 차냈다.

“물론 한의학으로 도움을 드릴 수는 있지만, 기존에 건강검진을 통해서 질병에 대해 알고 계셨나 확인하는 건 당연합니다.”

싫은 표정을 두식이 내보이며 혀끝을 내찼지만, 재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내가 뚱뚱한 것도 아닌데 고지혈증인 게 맞습니까? 한의사 양반?”

재마의 진맥을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의 두식은 다시 한번 물었다.

“보통 다양한 의학 상식이 일반화되면서 비만 환자들이 고지혈증이 높다고 인식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만 범주에 들지 않는 환자들도 고지혈증인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오늘 한의원에서 제가 드리는 약 드셔보시고 치료도 받으시고. 건강검진도 해보시면 더욱 정확히 수치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재마는 두식이 이해를 잘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그뿐 아니라 직접 자신이 진맥을 짚은 것에 대한 소견을 자세히 적어 프린트했다.

“건강검진 하실 때, 가져가시면 도움이 좀 되실 거예요.”

지금까지 재마의 진료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있었던 두식이었지만, 재마가 봉투에까지 담아 놓은 소견서를 자신의 두루마리 안쪽으로 잘 넣는 모습을 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재마였다.

“아까 오늘 주는 약이 있을 거랬는데, 그 약에는 뭐가 들어가나?”

두식은 소견서를 정성껏 넣은 후 다시 재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수오, 적소두, 홍삼, 천마 등 환자분도 익숙히 들어보신 한약재로 약을 지을 겁니다. 최근에 고지혈증이 약침으로 눈에 띄는 치료 효과를 내었다는 논문 발표도 있고 걱정하지 않고 치료받으셔도 됩니다. 저희 환자들도 고지혈증 환자분들도 많고요.”

재마는 다소 귀찮을 수 있는 질문까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차근차근 두식에게 설명을 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두식이었다.

“저희 실장님이 처치실로 안내해주실 겁니다. 그쪽으로 가시면 침 치료와 뜸 치료 해드릴게요.”

진료를 마친 재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 실장이 두식을 안내할 수 있도록 했다.

“한의사 양반.”

“네. 최두식 환자.”

“요즘 가뜩이나 한의학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데 한의사 양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아, 요즘 언론에서 조금 시끄럽긴 합니다만, 저희 한의원에서는 오시는 환자분들께 걱정하시지 말고 저희 믿고 오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물론 잘잘못을 따지자면 잘못이 있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오랜 시간 선조들이 발전시키시고, 환자들과 함께 발전해 온 의학임은 분명합니다. 저희 한의사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서 배운 대로, 또 저희가 환자들을 통해 경험한 대로 진료를 합니다.”

재마는 두식을 비롯한 환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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