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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24화 (12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24화

“음…… 나 이거, 스몰 사이즈로.”

“네. 고객님.”

연아가 명품관을 쭉 훑더니 신상으로 나온 백을 가리키며 보여달라는 듯 직원에게 주문을 했다.

직원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긋 웃었다.

VIP 회원인 박연아이니, 오늘 그녀 기분만 잘 맞춰 주면 오늘 자신 앞으로 매상이 올라갈 것이었다.

연아의 마음에 쏙 들도록 그녀가 보여달라는 S사이즈 백을 더스트백에서 꺼내며 직원은 활짝 웃었다.

“준비되었습니다. 고객님.”

“힝. 진짜 이쁘다. 이거, 인기 많죠?”

“인기가 많기는 한데, 아직 신상이고 따끈따끈한 거라 아직 사가신 고객님은 별로 없어요. 지금 사시면 희소성 있게 들 수 있으실 거예요. 아마 딱 들고 나가시면 다들 바라볼걸요? 이번 신상은 특히 더 예쁘게 나왔잖아요.”

연아가 보여준 가방을 맘에 들어 하니 이대로 결제까지 쭉 이어지길 바라며 직원은 그녀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신상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연아의 반짝이는 눈이, 자신의 손목에 걸친 백을 사랑스러운 미소로 바라봤다.

이대로 결제하고 메고 나가면 완벽할 것 같았다.

오늘 입고 온 코디에도 제격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손님, 휴대 전화에서 알림이 계속 울리는 것 같은데요.”

안내를 하던 직원이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에, 연아의 가방을 바라봤다.

쉴새 없이 울려대는 알림음에 사랑스럽게 가방을 바라보던 연아가 자신의 휴대 전화를 찾았다.

신상 가방을 메고 나가는 상상을 깬 사람이 누구인지, 짜증이 나기 시작한 연아는 가방 안을 거칠게 휘저었다.

“누가 이렇게 연락을 하는 거야. 바쁜데.”

연아는 신경질적으로 휴대 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평소 자주 매장을 찾는 고객이기에 그녀의 성격을 아는 직원은 조용히 연아가 할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뭐야아! 이게!”

연아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서 비명으로 바뀌었다.

명품관에 있던 고객들이 갑작스러운 여자의 비명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연아를 바라봤다.

휴대 전화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는 연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 고객님.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진정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미친거 아니야, 진짜? 감히…… 정한을 건드려?”

치밀어 오르는 화에 목소리가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는 연아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괜히 자신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짜증을 내었다.

연아의 돌발 행동에 매니저도 놀라 연아와 담당 직원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고…… 고객님? 무슨 문제라도.”

VIP 고객인 연아에게 혹여 실수라도 했냐는 듯, 담당 직원을 바라보는 매니저였다.

“하, 진짜.”

연아는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집어 던지려다, 명품백에 처박듯 집어넣고 자신의 코트를 챙겼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명품관을 빠져나갔다.

“뭐야? 방금? 박연아 고객님한테 뭐 실수라도 했어? 김은진 씨?”

매장 VIP 고객인 박연아이니, 매니저는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연아와 직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매니저는 대답도 없이 소리만 지르다 매장을 빠져나간 박연아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 아뇨. 그냥 휴대 전화에 연락이 계속 오고, 휴대 전화 확인하더니 소리 지르면서…… 나가신 것밖에.”

매장 직원인 은진도 당황스럽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매니저는 박연아는 매장을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무슨 일인지 어수선한 매장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다른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강남에 백화점 명품관에서 정한 한방병원까지 거리는 짧았지만, 연아는 자신이 어떻게 운전을 해왔는지, 어떻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네. 네.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문화재 지정에, 저희 한방병원이 뭐라고 관여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상황 파악 후, 공식적인 입장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혼이 빠진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온 연아 눈앞에는 전쟁통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홍보팀 직원 셋 모두 전화를 양손에 들고, 먼저 들어온 전화를 응대하느라 바빴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파악 했어?”

외부에 있다가 홍보팀으로 들어온 연아는 이 상황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전화 응대를 하던 박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아를 따라 연아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게…… 저…….”

“말 더듬지 말고, 제대로 말해봐.”

연아는 자신의 직원이 똑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자,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사무실의 전화뿐 아니라 이제는 연아의 전화도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연아는 신경질적으로 휴대 전화 전원을 꺼버렸다.

어디에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번에 대표님과 미팅을 했던 김성은 기자가 후속 보도를 한 거라고 합니다.”

“뭐? 김성은?”

박연아는 지난번에도 자신의 작은 아버지인 박상도를 겁도 없이 찾아왔던 김성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자리에는 연아의 아버지인 박상철도 있었는데, 젊은 여기자가 겁도 없이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지시했던 요양원 보호자 영상과 아버지가 기획했던 해인동 문화재 지정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지난번 영상이 올라왔을 때 다시는 후속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밟아놨어야 했는데, 요양원 보호자 영상 조작 문제로 자숙을 하라던 박상도의 지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그때 가만둬서는 안 됐는데…….”

“대표님, 어쩌죠? 이미 영상은 올라갔고……. 특히나 이번 영상은 대표님이 직접 움직이신 정황이 그대로 올라간 거라서…….”

“기다려봐. 나도 상황 파악 안 되니까!”

박연아는 아직 도대체 어떤 영상이 올라갔길래 이 난리 인지, 파악이 안 되어 머리가 멈춘 상황이었다.

“대표실에서는 아무 이야기 없었어?”

“네. 아직 비서실 측에서도 상황 파악 중이라고 해서요.”

“알았어.”

연아는 더 이상 사무실에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감당이 되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로 향했다.

* * *

“박 대표.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됩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연락을 바로 해줘야지.”

예능국장은 가까스로 연결된 박상도와의 통화를 하기 위해, 자신의 국장실로 들어갔다.

국장이 박상도와 전화 연결이 된 것 같자, 휴대 전화를 붙들고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읽느라 바쁘던 직원들은 하나같이 유리 벽 너머의 국장실로 시선이 향했다.

국장은 국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블라인드를 내려 버렸다.

“이게 뭐요. 도대체. 한의사 패널로 내가 박 대표를 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요. 이렇게 찬물을 끼얹어 버렸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한방병원의 대표라며 박상도를 치켜세우기만 했던 국장이었지만, 앞으로 자신의 후배들이자 직원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도무지 고운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욕지거리라도 뱉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상황이었다.

“난 이제 모르겠소. 다른 직원들한테 구설수 오를 만한 인물은 일단 배제하라고 했는데 나는 말을 번복할 수도 없고.”

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도에게 이런 일은 생길 줄도 모르고 스텝들에게 떠들었던 말들이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정한 한방병원에서 해결을 봐도 이번 일은 쉽게 지나갈 것 같지 않으니 박 대표는 다음 기회를 봐요. 이재마인가 하는 젊은 한의사가 부디 잘 안 되길 바라는 길밖에 더 있겠소?”

국장은 박상도의 자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이제는 프로그램의 승패는 이재마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국장이 국장실로 전화를 받으며 들어가 블라인드로 창을 모두 가렸지만, 새 의학 예능을 준비 중이었던 스텝들은 국장실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근데 이거 국장님이 뭐라고 하던, 결정된 거 아니예요?”

막내 피디인 필승이 CP를 바라보며 물었다.

중립 입장을 고수하고 프로그램에 가장 필요한 인물을 선택할 생각이었던 CP는 이번 일 만큼은 고를 것도 없이 이재마 원장으로 밀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더구나 국장이 누누이 말했던 것처럼 구설수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은 불 보듯 뻔했다.

간혹 구설수를 이용해 관심을 끌고는 했지만, 그런 관심은 필요 없었다.

만약 국장이 이번 일을 기회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헛소리라도 한다면 사원증이라도 내놓고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좀 지켜보자.”

국장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지켜보자는 CP의 말에 필승을 포함한 다른 PD들은 지켜볼 필요도 없다는 듯 귀가 입에 걸렸다.

누구보다도 CP의 성격을 잘 아는 그들이었다.

정한 한방병원은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넌 것이었다.

아무리 국장이 박상도를 밀려고 해도 정도가 있었다.

“자, 그럼 결정된 패널들께 전화 돌립니다?”

마지막 한의사 패널을 두고 회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으니, 이 상황에서 모든 패널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 막내 작가는 책상 위에 있는 유선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래. 전화 돌려.”

메인 작가인 이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CP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싸.”

이재마 원장이 패널이 되기를 기다렸던 스텝들은 모두 쾌재를 불렀다.

* * *

점심시간에 밥도 먹지 않고, 옆 반과 농구 대항을 한 지수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찝찝함에 교실로 들어오는 길에 세수를 간단히 하고, 교실로 돌아와 준비한 위 속옷을 갈아입으려던 지수는 친구들이 몰려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와. 이거 진짜 대박이네.”

“왜? 뭔데?”

“너 정한 한방병원 아냐?”

가끔 농구가 끝나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한의원을 간다는 지수의 말을 기억한 친구가 지수를 바라봤다.

“정한 한방병원? 왜?”

“그 있잖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한의원. 거기 다 개뻥이래. 완전 사기꾼 집안인데?”

“뭐?”

“너 다니는 한의원도 믿을 만한 거 맞냐?”

가뜩이나 할아버지처럼 아프면 한의원을 찾는다고 놀려대던 친구들은 지수가 다니는 한의원은 아니었지만, 정한 한방병원의 소식에 낄낄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한의원이 다 비슷비슷할 텐데 정한 한방병원이 사기꾼이면 다른 한의사들도 사기일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게 말이 되냐? 침으로 사람을 고치고 기를 뚫고 뭐 그러는 게. 그냥 그 뭐냐. 피그말리온 효과 뭐 이런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지수는 가방에서 위 속옷을 꺼내 갈아입고는 휴대 전화를 들어 자신을 담당하는 정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쌤, 기사 보셨어요?

자신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한의학의 효과를 톡톡히 본 지수는 정우를 비롯해 명의 한의원의 재마만큼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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